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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원본은 어디에 있나요?

기사승인 2022.07.04  17:22:10

민경식 연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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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기획시리즈 “길을 찾다”는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면서 만나는 고민과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감리회목회자 모임 <새물결>에서 기획한 것입니다. 이 작업이 목회자와 평신도의 균형 잡히고 건강한 믿음의 바탕을 마련하는데 밑거름이 되고, 예수의 길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발걸음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연재를 시작합니다.


성경 원본은 어디에 있나요? 

민경식 교수 (연세대학교)


 

<질문> 목사님이 성경공부 시간에 “성경은 원본이 없고 사본만 있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원본이 없는데, 과연 사본만으로도 성경을 신뢰할 수 있나 하는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다고 했는데, 차이를 가진 여러 사본이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이란 사회, 정치적인 영향 아래, 수많은 교회사에서 일어난 신학 논쟁 속에서 이루어진 정경화 과정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과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뢰할 수 있을까요? 그냥 믿어야만 하는 건가요?

 

질문자님은 두 가지 궁금한 게 있으시군요? 둘 다 일반 교인들이 잘 접하지 못하는 어려운 개념과 관련이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본문비평”(textual criticism)이라고 하는 학문분야와 관련이 있고, 두 번째는 “정경화”(canonization)라고 하는 미스터리한 과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1. 원본과 사본, 그리고 본문비평 


우선, 첫 번째 질문을 살펴볼까요? “성경은 원본이 없고, 사본만 있다.”고 하신 목사님의 말씀은 정확합니다. 일반 교인들에게는 생소한 이야기겠지만, 잘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기도 합니다. 물론 “원본이 없다”는 것은 성경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대의 문헌들이 다 그러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수천 년이나 된 책이 오늘날 고스란히 남아있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기나긴 세월의 흐름 속에서 언젠가 잃어버렸거나 삭아버렸을 것입니다. 화재로 인해 훼손되는 경우라든지 물에 젖어 버리게 되는 경우도 있었겠지요. 

아주 먼 옛날에는 인쇄기술이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금속활자가 조금 더 앞서기는 하지만, 서구사회에서 금속활자 인쇄술이 발명된 것은 15세기 중엽입니다. 이때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이용하여 처음으로 찍어낸 책이 소위 『42행성서』라고 불리는 라틴어 성경입니다. 어쨌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구텐베르크 이전에는 손으로 베껴서 책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사실입니다(물론 목판인쇄가 있기는 하였지만, 일반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성경을 필사한 경험이 있지요? 우리 교회에서는 매년 부활절마다 교인들이 함께 손으로 써서 만든 성경을 봉헌합니다. 인쇄술이 없던 시대에는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성경책을 만들었습니다. 손으로 베꼈다고 해서, 이것을 “필사본” 또는 “수사본”이라고도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사본”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사본”은 한편으로는 “원본”의 반대 개념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쇄본”의 반대 개념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성경의 “원본”을 기록하였겠지요. 구약의 경우, 매우 오랜 기간 구전을 통하여 내려오던 이야기가 어느 순간 문자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베꼈겠지요.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또 베꼈을 것이고요. 이것이 당시에 책을 만드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방식이었으니까요. 즉, 한 번 문서화된 것을 베끼고, 베끼고, 또 베끼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신약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예수에 대한 전승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을 것입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문서화된 기록들을 수집하여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저술하였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의 저자가 이를 잘 증언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1-4의 말씀입니다. 

“1 우리 가운데서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차례대로 이야기를 엮어내려고 손을 댄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2 그들은 이것을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요 전파자가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하여 준 대로 엮어냈습니다. 3 그런데 존귀하신 데오빌로님, 나도 모든 것을 시초부터 정확하게 조사하여 보았으므로, 각하께 그것을 순서대로 써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4 이리하여 각하께서 이미 배우신 일들이 확실한 사실임을 아시게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새번역>) 

<누가복음>의 저자는 예수에 대한 많은 자료를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보다 먼저 예수의 이야기를 엮어낸 사람들이 많다고 하잖아요(1절). 그런데 그렇게 예수의 이야기를 쓴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예수의 첫 제자들이나 예수 사건의 목격자들이 아닙니다. 제1세대 목격자들이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람들(제2세대)이 예수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는 것입니다(2절). 그리고 자신도 이러한 자료들을 정리하여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저술한다고 합니다(3절). 그러니 <누가복음> 저자는 제3세대나 제4세대 정도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때 그가 기록한 것이 <누가복음>의 “원본”이겠지요. 그런데 <누가복음> “원본”을 접한 사람들은 이 책을 갖고 싶어 하였고, 그래서 그것을 “그대로” 베껴서 소장하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한 권의 책이 생산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사본”입니다. <누가복음>을 갖고 싶었던 사람이 단지 한 사람만은 아니었겠지요? 각 지역에 있는 기독교 공동체마다 <누가복음>을 하나씩 베끼고, 또 필요에 따라서 여러 권을 베끼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베끼고, 베끼고, 또 베끼는 과정에서 많은 사본이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바울의 편지들도 이러한 과정을 거쳤을 것입니다. “어? 이거 바울 선생님의 편지 아닙니까? 제가 이거 좀 베껴 가도 되겠습니까?” 이렇게 바울의 편지들도 사본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구약의 책들도 비슷한 과정으로 필사되었을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최소한 약 2,000년 전의 문서입니다. 2,000년의 세월 속에서 바울이 처음 썼던 편지들은 언젠가 사라졌습니다. 또 복음서 저자들이 기록한 최초의 문서, 즉 복음서 원본들은 사라졌습니다. 물론 구약 문헌들의 첫 원고도 같은 과정 가운데 사라졌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사본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본들이 얼마나 남아있을까요? 사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다수의 고대문헌들은 사본이 몇 개 없습니다. 플라톤의 작품이 그러하고, 타키투스와 같은 역사가들의 작품 또한 그러합니다. 고대 그리스 문화의 꽃이요 가장 위대한 작품인 호메루스의 『일리아드』의 사본은 수백 개 정도인데, 신약성경의 사본은 약 25,000개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원어인 그리스어로 기록된 사본만도 약 5,700개입니다. 오늘날에도 새로운 사본들이 끊임없이 발견되고 있으니, 이 수자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신약은 고대의 어느 문헌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본이 많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 사본들 가운데 똑같은 사본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베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실수가 생기기 마련이거든요. 한 번이라도 손으로 성경을 베껴 써본 사람이라면 너무나도 잘 이해될 것입니다. 오탈자가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한 줄을 빠뜨리고 베끼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렇게 2,000년에 걸쳐 베끼고 베끼는 과정에서 성경의 본문은 원문에서 차금차금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학자들은 이러한 방대한 양의 사본들을 하나하나 읽고, 분석하고, 연구해서, 소위 “원문”에 가장 가까울 것 같은 본문을 재구성하였습니다. “본문비평”이라는 학술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이러한 작업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는 본문비평 학자들은 이 고단한 연구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는 점점 더 원문에 가까운 본문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성경의 본문이 원문과 같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 점점 더 “원문”에 가까운 본문을 회복하리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본문비평이라는 학문이 방법론적으로 더욱 발전할 것이고, 또 새로운 고대의 사본들이 끊임없이 발견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정경과 외경, 그리고 정경화과정 


두 번째 질문은 “정경화”의 기준이 무엇인가와 관련됩니다.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기독교 세계 안에 유포되었던 고대의 많은 문헌들 가운데 왜 어떤 것은 성경에 포함이 되었고, 왜 어떤 것은 성경에 포함되지 않았는가?”와 같은 질문입니다. 그렇다면 “정경화”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실, 신약성경에는 4권의 복음서만 포함되어 있지만, 초기 기독교 세계에는 복음서가 수십 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초기 기독교 저술가들의 작품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복음서들이 언급되어 있거든요. 즉, 텍스트 없이 제목(과 내용 일부)만 전해지는 복음서들이 있습니다. 또한 본문이 전해지는 복음서들도 있습니다. 이것이 대략 20개입니다. 신약의 네 복음서를 포함하여 여러분이 잘 아는 『도마복음』, 『마리아복음』, 『빌립복음』, 『베드로복음』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또 『유다복음』도 2006년에 발표가 되었지요? 이 가운데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이렇게 4개의 복음서만이 최종적으로 정경에 포함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정경화”라고 합니다. 우리의 성경에는 하나의 행전만 있지만, 초기 기독교 세계에는 약 20개에 이르는 행전들이 있었습니다. 『바울행전』, 『베드로행전』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 당시에는 서신교환도 활발하였으며, 이에 우리는 이 당시의 편지들을 많이 알고 있는데, 바울의 편지 몇 개와 베드로 등 다른 제자들의 편지 몇 개가 정경에 포함되었고, 나머지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계시록의 경우도 사정은 같습니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에 최종적으로 포함되지 않은 초기 기독교의 문헌들을 “외경”이라고 합니다. 물론 구약의 외경 개념은 이와는 조금 다릅니다. 구약 본문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히브리어로 된 마소라 본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어로 번역된 칠십인역입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하여 기원전에 알렉산드리아에서 구약이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는데, 이것을 칠십인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칠십인역에는 마소라 본문에는 없는 책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지혜서, 집회서 등). 구약의 외경은 바로 이것들을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이것들을 가리켜 “제2성경”이라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정경으로 받아들여진 문서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다시 말하자면, 어떤 기준이 정경과 외경을 갈라놓았을까요? 몇 가지 생각할 수 있는 기준은 있습니다. 오래된 문서이어야 한다는 “고대성”, 사도들이 저술한 문서이어야 한다는 “사도성”, 당시 공교회의 신앙 노선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정통성” 등입니다. 그러나 정경에 포함된 문서들과 정경에 포함되지 못한 문서들에 이 기준을 적용하여 보면, 일관성이 없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고대성의 예를 들자면, 신약성경의 일부 문서들(목회서신 등)은 2세기 이후의 것으로 추정되는 반면, 1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문서들(『클레멘스서신』 등)은 정경에 포함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단지 오래 되었다고 해서 정경에 포함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성이 결정적인 기준일까요? 정경에 포함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사도성이 없는 작품인데 정경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까? 반면, 『베드로복음』, 『베드로행전』, 『베드로계시록』 등은 베드로의 저술로 알려졌지만, 정경에 포함되지 못하였습니다. 신학적 또는 신앙적 정통성도 정경의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바울의 편지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데,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소용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둘 다 정경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까? 또한 외경 가운데 정경에 포함되었을 만한 신학적 색채를 띠는 『디다케』와 『헤르마스의 목자』 등은 정경에 포함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무원칙의 원칙”이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합리적인 수준의 “기준”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더 보충하자면, 오늘날 우리가 “거룩한” 문서로 여기는 것들이 처음부터 거룩하게 여겨졌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서신은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바울이 각 공동체에 보낸 편지였습니다. 처음에는 거룩한 문서가 아니라 “그냥” 편지였습니다. 복음서들 역시도 처음에는 예수에 대한 평범한 기록일 뿐이었습니다. 제1세대 목격자들이 사라지기 전에 그들의 기억을 문자로 남겨야 할 필요에 따라 생산된 문서들입니다. 반면에, 1세기에 예수와 그 제자들이 보았던 “성경”은 구약이었습니다. 물론 이 구약도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형태는 아니었습니다. 예수가 활동하던 1세기 전반에는 토라(오경), 예언서들 가운데 몇 개, 그리고 시편 등이 유대인들 사이에서 거룩하게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물론 신약 문서는 아직 하나도 존재하지 않던 시기입니다. 1세기 중엽 이후로 신약의 문서들이 기록되었지만, 이것이 곧바로 거룩하게 여겨진 것도 아닙니다. 

오늘날 정경에 포함되어 있는 4개의 복음서와 바울의 편지들은 2세기에 들어서야 어느 정도 “거룩한 문서”로 인식되었고, 2세기 중반에 이르러야 구약과 어깨를 견주는 권위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년경에는 구약의 권위를 넘어서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신약 가운데 일부 문서들에만 해당합니다. 이 시기에도 <베드로후서>라든지 <요한계시록> 등은 그 권위를 의심받고 있었거든요. 이와 동시에, 오늘날 정경에 포함되지 못한 문서들 가운데서도 많은 것이 특정 지역에서는 “거룩하게”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초기 기독교 세계에서 특정 문서들이 “성경”의 지위를 얻게 되었고, 이 가운데 또 일부는 그 지위를 잃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즉, 넓은 의미의 정경화 과정은 좁은 의미의 정경화(선택, canonization)와 비정경화(배제, decanonization)의 합의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 세계에는 다양한 분파들이 존재하였는데, 이들은 서로 다른 전승을 따랐고, 서로 다른 신학적 견해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서로 경쟁하던 초기 기독교 공동체들은 일부 문서들을 공유하기도 하였지만, 서로 다른 문서들을 거룩하게 여기기도 하였는데, 경쟁에서 승리한 공동체가 정통이 되었고, 그들의 문서가 최종적으로 정경에 포함되었겠지요. 이러한 정경화 작업은 수백 년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졌고, 최종적으로 구약 39권, 신약 27권, 총 66권의 책이 정경에 포함되어 우리의 신앙의 표준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민경식 연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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