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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Zamani barayé masti asbha, 2000)

기사승인 2022.07.04  23:43:06

이진경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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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Zamani barayé masti asbha, 2000)

   
 

혐오와 배제는 지금의 한국사회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일 것이 분명하다. 그 어떤 부끄러움도 없이 당당하고 무례하게 혐오와 배제를 표현하고 발설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혐오와 배제는 상상하기 쉬운 외국인 노동자나 난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노인, 청소노동자... 소위 ‘혐오의 영’이라 부를 만한 그 무엇이 광범위하게 사회 전반의 가장 취약한 계층을 향하여 그 위력을 떨치고 있다. 이 광풍이 어린이라고 지나칠 리 없다. ‘노 키즈 존’을 공공연하게 선언하면서 사회는 아이들을 불편하고 성가신 존재로 규정하고 존재에 대한 배제마저 정당화시킨다. 한 번 시작된 존재에 대한 거부가 마치 바이러스처럼 모든 분야로 빠르고 넓게 전염되고 있는 현상을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는 중이다.

모든 역사 속에서 아이들은 언제나 가장 약한 존재였다. 명사가 성을 지닌 고대 언어 헬라어와 라틴어에서 ‘아이’를 뜻하는 단어는 중성(中性) 명사였다. 문법적 중성이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상태를 의미한다. 즉, 아이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존재, 인간의 범주에 들지 않는 존재로 취급당했던 것이다. 가장 약한 존재는 언제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박탈당하고, 이용당하고 착취당한다. 감히 그런 존재가 어떻게 거룩하신 메시아 예수님께 가까이 올 수 있단 말인가? 바로 이것이 당대의 생각을 대변한 제자들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온유하신 주님께서 크게 화를 내신 몇 안 되는 생각 중 하나였다. 모든 약한 존재들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지이며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약자인 아이들 역시 당연히 보호받아야 한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이 당연함이 무너진 세상을 날카롭고 서늘하게 다그치는 영화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의 주인공은 이란과 이라크의 경계지역에 위치한 한 쿠르드족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이다. 생계를 위해 밀수를 하던 아버지가 지뢰를 밟고 죽음을 당하자 일찍 어머니를 여읜 12살 소년 아윱은 졸지에 가장이 된다. 그에게는 시한부 삶을 사는 왜소증 장애자 형에다 누나와 어린 여동생 둘이 있다. 이들 모두를 책임져야 하는 꼬마 가장 아윱은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마침내 아윱은 형 마디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밀수꾼들과 함께 이라크에서 팔 노새를 이끌고 눈으로 뒤덮인 국경지대를 넘는다. 혹독한 추위와 눈보라는 짐승들조차 견디기 어렵기에 짐을 실을 말들과 노새들에게는 술을 먹이고 짐을 부린다. 취해서 비틀거리는 노새와 함께 소년 아윱은 밀수꾼들을 노리는 강도들과 국경수비대, 아버지를 앗아갔던 지뢰 등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눈보라치는 산을 넘는다.

영화는 보는 내내 가슴을 아프게 하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지만 더욱 애처롭게도 아이들은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끝까지 포기를 모르는 이 아이들의 노력이 더욱 더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영화의 중간쯤에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장면에서 한 아이가 최초의 비행사 라이트 형제의 이야기와 비행의 역사를 낭독한다. 그리고 그 낭독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이제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것은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가 불과 몇 시간 떨어진 거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언제나 간단하고 명료하다. 그것은 바로 나다. “신이시여, 오빠 마디를 도와주세요. 마디의 병을 고쳐주세요.” 부모의 무덤 앞 차가운 눈 속에서 하늘을 향해 간절히 기도하는 어린 소녀에게 신의 대답을 들려주어야 할 사람 역시 바로 나다.

영화의 처음, 고되고 거친 일을 마친 후 트럭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입에서는 이런 노래가 흘러나온다. “인생이란 놈은 나를 산과 계곡으로 떠돌게 하고, 또한 나이 들게 하면서 나를 저승으로 이끄네.” 이것이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노래라니, 삶의 무게에 짓눌린 아이들이 어른스러운 것은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이진경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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