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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불이 큰 숲을 태운다

기사승인 2022.08.04  01:26:16

김기석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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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정치인들에게서 품격 있는 언어를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정치 마당이 쟁론의 현장임을 모르지 않지만 모든 논쟁이 분열적이거나 비아냥거림일 필요는 없다. 치열한 탐구 정신, 정확한 정보, 사안에 대한 공정한 이해, 적절한 표현이야말로 설득력의 요체이다. 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현실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만들기도 한다. 히브리어 ‘다바르’는 말이라는 뜻과 사건이라는 뜻을 두루 내포한다. 말은 사건을 일으킨다. 사람은 말로 세상을 짓는다. 친절하고 따뜻한 말이 발화되는 순간 누군가의 가슴에 꽃이 핀다. 거칠고 냉혹한 말은 우리 내면에 얼음 세상을 만든다.

말을 하는 자리에 서는 것이 두려운 것은 그 말이 일으킬 사건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농담처럼 세상의 첫 사람이 만든 문장은 사랑의 고백이었다고 말하곤 한다. 신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한 후 그의 갈비뼈 하나를 뽑아 여자를 만든다. 잠에서 깨어난 아담은 자기 앞에 있는 낯설면서도 왠지 낯익은 존재를 보고 탄성을 내뱉는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이 표현은 나의 있음이 너의 있음과 무관하지 않다는 고백이다. 인간은 상호 공속된 존재이다. 언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이음줄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말이 권력으로 변하면서 사정이 사뭇 달라졌다. 언어가 때로는 칼날이나 채찍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독재자들은 홀로 말하는 사람이다. 그의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허용된 것은 그의 말을 받아쓰거나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뿐이다. 다른 말은 허용되지 않는다. 권력자의 눈치나 보는 정치인들의 말은 비루하다. 진실과 자유에 복무해야 할 말이 거짓과 분열과 혼돈을 빚는 일에 더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정치권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신뢰의 토대가 되어야 할 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문화인류학자인 말리노프스키는 원초적 차원에서 언어는 행동의 양식이지 사고를 표현하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발화된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말의 이면에 숨겨진 음습한 욕망이나 그가 속한 진영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다. 많은 정치인들이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여론이 악화되면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말하며 허리를 숙일 뿐이다. 언론은 그가 허리를 얼마나 깊이 숙였는지 허리 각도까지 언급하며 그의 유감 표명을 받아들일 것을 종용한다. 문제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자기 자신을 반복하는 게 인간이다. 가장 깊이 숙인 허리가 오히려 그의 오만과 고집을 보여주기도 한다. 카메라가 꺼진 자리에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실떡거리며 자기 길을 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논쟁이나 대화는 상대방과 함께 진실을 모색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에서 대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대화는 타인에 대한 존중에서,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을 타인이 갖고 있다는 확신에서 태어납니다. 대화는 타자의 관점, 타자의 의견과 주장이 들어설 자리가 우리 마음 속에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대화의 태도는 선험적인 유죄선고가 아니라 진심어린 수용입니다. 대화를 하려면 방어벽을 허물고 문을 열고 인간적인 친절함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정치적 담론의 지평에서 이런 대화가 이루어진 적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말이 문제다. 아니, 이 말은 그릇된 말이다. 사실 말이 무슨 문제겠는가?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 문제지. 성경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라야 온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신은 말씀으로 질서를 창조했지만 인간은 말로 혼돈을 창조한다. 말을 다루는 이들은 재갈을 물려 말을 길들인다. 능력 있는 사공은 거센 바람에 밀리는 배를 키로 조정하여 가려는 곳으로 몰고 간다. 혀는 아주 작은 지체에 불과하지만 아주 큰일을 할 수 있다. 그것은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작은 불이 큰 숲을 태우듯이 우리는 말로 세상을 위태롭게 만들곤 한다. 사도 야고보는 그래서 혀는 걷잡을 수 없는 악,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이라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말, 진실과 자유에 복무하는 말, 품격 있는 말, 숙의의 과정을 거친 참된 말이 그리운 시절이다. 

김기석
(*2022/07/30, 경향신문 '사유와 성찰' 원고입니다)

김기석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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