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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을 기다리며 노래를

기사승인 2022.11.27  01:12:59

송병구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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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나라의 경우는 잘 모르지만 독일 사람들은 홀로 노래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그들은 한국인이나 이탈리아 사람과 달리 나 홀로가 아니라 함께 부르는 데 익숙하다. 그런 독일인에게 ‘돌림노래’는 위대한 발명품이다. 위대한 음악가들을 많이 둔 나라여서 도시마다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의 거리를 둔 나라이지만 유감스럽게도 독일 사람들은 노래를 즐기지 않는다. 민속 노래들은 겨우 카니발 풍의 노래들이다. 다만 지루한 독일 노래들 중 성탄 캐롤만큼은 예외이다. 그들은 세계 최고의 성탄곡을 뽐낸다.

  우리 민족은 노래를 참 부른다. 가히 세계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근래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의 성취가 한몫하였다. 이미 예견할 만한 사건이었다. 한국 사람들의 피에는 노래에 관한 한 DNA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노래 솜씨에는 남남북녀가 따로 없다. 굳이 차이를 들라면 남한사람들은 기를 쓰고 다른 노래를 부르려고 한다면, 북한사람들은 악착같이 서로 같은 노래를 고집한다. 

  우리 민족의 노래는 기쁨을 담고 있지만, 실은 아픔을 노래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따라서 입술로 노래를 부르기보다, 가슴으로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들 한다. 사람마다 가슴에 묻어둔 아픔이 노래 속에서 우려져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자랑하는 김치는 종류가 250여 종에 이른다면, 아리랑의 종류는 김치 가짓수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아픔이 얼마나 위대한 노래를 만들 수 있는지, 고난으로 가득한 슬픔조차 얼마나 노래다운지, 사람들은 잘 안다. 그래서 아픔의 역사일지라도 노래를 통해 희망으로 승화한 곡들이 많다. 슬라브인들의 로망스에는 비감함이 잘 녹아 있다. 떼제공동체는 “아픔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창”이라고 말한다. 마음은 찢어질 때, 곧 ‘상한 심령’(시 51:17)만이 하나님 앞에서 비로소 최선의 것이 되는 법이다. 

  우리 민족의 노래 아리랑은 전 세계 어디든 없는 곳이 없다. 그 이유는 그곳에 사는 한인 이주민들이 자신들의 사연을 담아 재구성하였기 때문이다. 정선아리랑은 그렇게 세계화하고, 재생산하고 있다.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에서 한국인응원단이 부르던 아리랑은 더 이상 맥 빠진 한풀이 곡이 아니었다. 저력이 흐르고, 뒷심을 붙잡아 주는 강인한 응원가로 들렸다. 슬픔의 노래일망정 부르고 나면 신통하게도 호르몬이 높아지고 생기가 솟는다.   

  무엇보다 노래에는 추억을 불러내는 힘이 있다. 독일 한인교회에서 목회하면서 교우들과 멀리 여행할 때가 많이 있었다. 한번은 멀리 베를린으로 협의회총회를 다녀오면서 함께 동행한 이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동요도 부르고 유행가도 부르고 아는 노래를 다 주워섬겼다. 특히 고향 노래를 부르고, 또 자기 세대의 가요를 부르면서 가슴을 적셨다. 그런 경험 때문에 동행할 때면 으레 함께 노래 부르는 즐거움을 잊지 않는다.   
 
  귀국할 즈음, 2세 청년들의 모임에서 부모 세대가 나눈 자동차 노래 경험을 이야기하였다. 그들은 더 이상 처음 만날 적 청소년이 아니어서, 나만의 길을 모색하는 풋내기 성인의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말했다. 나 역시 독일에 사는 동안 두렵고, 외롭고, 노여울 때 홀로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로 나가 고래고래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나는 한 시간이면 내 속을 다 풀어내지만, 아마 너희 부모님들은 네 시간이나 다섯 시간이 필요할 거야.” 그 말에 젊은이들은 숙연해졌다.  

  시편에는 찬송과 감사뿐 아니라 인생의 슬픔과 아픔을 하나님께로 토해내는 탄원을 주제로 한 노래들로 가득하다. 이를 통해 편편절절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응답하고 있다. 아브라함 헤셀은 이런 방식으로 찬양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켜 하나님과 동반자관계라고 해석하였다. 자기의 삶을 진실하게 노래하는 사람들과 동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대림절은 노래로 맞이하는 주님의 절기이다. 누가복음에서 성탄을 예비하며 부른 ‘마그니피캇트(마리아의 찬가), 베네딕투스(사가랴의 찬가), 눈크디미티스(시므온의 찬가)’는 한 인간과 세대의 깊은 우물을 휘젓는 노래들이다. 그리고 마침내 천사들의 영광송(눅 2:14)과 함께 기쁨으로 나아간다. 지금 우리 시대는 노래의 과잉을 경험하지만, 찬양의 빈곤이란 말도 듣는다. 독일노래 ‘주님의 선하신 능력에 감싸여’(본회퍼)는 성탄을 기다리며 불러야 할 노래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

송병구/색동교회

송병구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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