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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악마 사이

기사승인 2023.01.28  23:46:29

이혁 의성서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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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악마 사이>, 헬무트 틸리케, 손성현 역, 복있는사람, 2022

<신과 악마 사이>는 1938년 나치가 세상을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던 시절, 인간의 잔혹함과 절망적 현실을 경험하던 한 젊은 신학자 헬무트 틸리케가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악마에게 받은 시험의 근본적 의미를 물으며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이 경험하는 악마적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바, 하나님의 뜻을 품고 이 땅에 보내진 인간의 삶은 낙관적이지 않다. 본의 아니게 시험은 우리에게 다가오며, 스스로 시험거리를 만들어 누군가에게 괴로움을 안겨다 주기도 한다. 시험을 이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보지만 시험이 주는 압도적 힘에 짓눌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험의 늪에 허우적거릴 때가 많다. 시험을 벗어나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의도치 않은 절망적인 상황을 우리의 삶의 많은 부분에서 맞닥뜨리곤 한다. 신학이 죄와 시험, 유혹의 문제에 시원한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지만 신학이 존재함에도, 우리의 삶은 지지부진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과연 우리의 믿음의 문제일까?

성서는 하나님과 악마의 전쟁에서 언제나 하나님의 승리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철저히 패배한 모습으로도 등장한다. 하나님의 승리만을 이야기한다면 성서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후회, 하나님의 한숨, 하나님의 걱정, 하나님의 분노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뻔한 하나님의 승리의 메시지가 성서 도처에 있다 하더라도 지금 우리는 여전히 시험의 한복판에 서 있다.

헬무트 틸리케는 그동안 우리가 이해해왔던 예수의 시험 이야기에 관한 뻔한 결론을 전복시킨다. 우선 그리스도와 악마가 대결하는 이 이야기를 우리들의 이야기로 바꾸어 놓는다. 예수의 시험은 곧 인류의 시험이 된다. 하여 예수의 시험 이야기는 신화가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틸리케는 여기서 ‘시험’은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을 포기하려는 마음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 하나님에게서 벗어나고자 계속해서 기회를 엿보는 것, 하나님에 대한 의심을 품고 살아가는 것’(29쪽)이라고 설명한다. 시험의 본질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그 무엇인 셈이다. 

이런 시험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다가온다. 그 중에 위험한 것은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고, 또한 이런 분이셔야 한다”라는 나의 생각, 즉 내 생각으로 하나님을 규정하는 것이다. 악마는 이런 인간의 욕망과 약점을 물고 늘어져 자기만의 하나님 우상을 만들도록 한다. 악마의 시험은 매우 정교하고 섬세할 뿐만 아니라 경건하기까지 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이해와 상식, 종교적 심성을 통해서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균열을 일으킨다.

틸리케의 인간 이해는 ‘처음부터 의심하는 존재, 시험에 드는 존재’(37쪽)라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인간이 본디 시험에 드는 존재라는 것은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믿는다는 것이다(창세기 3장.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진다는 뱀의 유혹에 따라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 악마가 의도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는 것! 그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곧 시험인 셈이다.

틸리케는 이러한 시험이 예수께서 광야에서 고독 속에 있을 때 찾아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46쪽). 시험은 생의 우여곡절이 깃든 위험천만한 때에 닥쳐오는 것이 아니라 유혹에 빠질만 한 여건이 전혀 없는 곳에 찾아든다는 것이다. 고독은 외부적인 것이 배제된 오롯이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그렇기에 현대인들은 고독을 마주하기 싫어한다. 거기에서 우리의 삶의 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험이 고독 가운데 깃든다는 것은 외부적인 충격이나 사건을 통해 시험에 빠져들기보다는 수많은 악한 생각들이 갈마드는 마음 안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는 철저한 고독 속에서 시험이 시작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악마는 예수에게 굶주림의 현실 속에서 기적을 부추기는 첫 번째 시험을 던진다. 이런 현실에서 예수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마땅히 .... 해야 한다”는 악마의 교묘한 속삭임에 대해 “빵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선언하신다. 굶주림의 현실 가운데 빵이 문제를 해결할 것 같지만, 그렇게 될 때 빵이 곧 하나님 노릇을 하게 된다는 걸 아신 주님은 빵이 있든 없든 변함없이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주님은 우리를 초대하신다.

자기과시의 욕망을 부추기는 악마의 두 번째 시험에서 악마는 경건한 몸짓과 거룩한 언어들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공명심을 자극하고 하나님의 권능을 자신의 손으로 주무르려고 한다. 예수는 이 유혹이 우리가 하나님이란 이름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할 수 있는지를 꿰뚫어보셨다. 주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도깨비 방망이 마냥 생각하는 우리들의 그릇된 신앙에 죽비를 들어 내리치신다.

마지막 시험은 권능을 부추기는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악마의 세상은 힘과 권능으로 주무르는 세상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무기력해보이지만 끝내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던지는 ‘무방비’의 사랑을 통해 이루어지는 나라임을 예수는 선포한다. 
  

에필로그에 남긴 틸리케의 마지막 말은 긴 여운을 남긴다. 

“우리는 이중의 위로를 받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형제이시기에 우리는 시험을 당할 때 결코 외롭지 않다. 사탄이 만들어 낸 가장 깊은 시험에 우리가 떨어져도 그분은 거기서 우리와 함께 고통당하신다. 또한 그분은 모든 죄를 초월하여 하늘의 순결함 속에 계시는 분이기에, 우리는 그분께 우리를 시험에서 보호해 달라고 간구할 수 있다.”

“예수의 평화는 세상이 줄 수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는 평화다. 이 평화는 두 가지 확신에 기초한 평화다.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닥쳐오는 모든 일의 주님이시며, 또한 우리가 하나님과 악마 사이의 줄다리기, 곧 시험으로 마주하는 모든 인간적인 사건들 속에 나타난 깊은 고통까지 다스리는 주님이시라는 사실이다. 또 하나의 확신은 그리스도께서 그런 사건, 그런 깊은 고통 가운데서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다.”

 

이혁 의성서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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