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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행위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왜곡하다

기사승인 2023.02.02  22:08:53

최재석 jschoi4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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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초기에 교회에서는 영화관에 가는 것을 금했다. 청교도적 전통을 이어받은 선교사들이 영화관에 가면 잘못된 세상 문화에 물들게 되니 영화관에 가지 말라고 가르쳤다. 어느 선교사는 사도행전 19장 31절에 나오는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는 구절에 근거해서 교인들에게 영화관에 가지 말라고 권면했다고 한다. 

사도행전 19장 31절 전후의 문맥을 보면, 에베소 사람들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는 바울의 주장에 격분해서 연극장에 모여서 농성하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의 친구들은 바울에게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런데 그 선교사는 앞뒤 문맥을 무시하고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교인들에게 영화관에 가지 말라고 당부했단다.

앞뒤 문맥을 살피지 않은 이 선교사의 실수를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자기의 입맛에 맞는 것만을 골라서 읽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비평가들은 선입견을 버리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글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루터도 성경을 읽을 때 자기 ‘성향’에 따라 읽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한 루터가 행위를 중시한 예수님의 비유적 말씀을 왜곡한 일이 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15-20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여기서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열매는 행위를 의미하는 비유적 표현이다. 거짓 선지자들이 많으니 선지자들의 행위를 보고 그들의 진위를 판단하라는 권면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루터는 이 예수님의 말씀이 행위를 중시하지 않는 것이라고 곡해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자유』 23장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그러므로 다음 두 가지 명제는 진실이다. 즉, 선하고 의로운 행위가 결코 선하고 의로운 사람을 만들지 않으며, 반대로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 선하고 의로운 행동을 한다. 그리고 나쁜 행위가 결코 나쁜 사람을 만들지 않고, 나쁜 사람이 나쁜 행동을 한다. 즉, 어떤 경우에도 인격이 모든 선한 행위에 앞서서 선하고 의로워야 하며, 이에 따라 선한 행위가 의롭고 좋은 인격에서 생긴다.”

루터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18절을 인용하여 행위가 중요하지 않다는 자기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리스도가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것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이것”은 바로 앞에서 말한 두 가지 명제를 가리킨다. 

루터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예수님이 자기와 같은 생각을 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말은 서로 다르다. 예수님은 열매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심으로써 행위와 그 행위를 한 사람의 됨됨이를 일치시키셨다. 그런데 “나쁜 행위가 결코 나쁜 사람을 만들지 않고”라는 루터의 말은 행위와 그 사람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말이 이렇게 다르기 때문에, 루터가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해서 그의 논지를 뒷받침하려고 한 것은 명백한 실수다. 이런 잘못된 인용은 루터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문맥을 제대로 읽지 않은 데서 나왔다.

다음에 이어지는 루터의 말을 보면 두 사람의 견해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 더욱 확실하게 드러난다.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한 다음에 루터는 “나무가 과실보다 먼저 있어야 하므로 과실은 나무를 좋게도 나쁘게도 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의 후반부에 나오는 “과실은 나무를 좋게도 나쁘게도 하지 않는다.”를 예수님의 말씀으로 바꾸어 보자. 이 비유적 표현의 “과실”과 “나무”가 예수님의 말씀에서는 “열매”와 “선지자”를 가리키기 때문에, 예수님이 ‘열매는 선지자들을 좋게도 나쁘게도 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된다. 이것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반대다.

이렇게 “과실은 나무를 좋게도 나쁘게도 하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써 루터는 열매(행위)가 구원을 받는 데에 필요치 않다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끌어낸다. “그리스도인이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그 어떤 행위나 계명도 필요치 않다.”

이렇게 루터가 행위를 중시하는 예수님의 비유적 표현을 왜곡한 것은 마태복음 7장 15-20절의 문맥을 살피지 않고,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이지 행위가 아니라는 선입견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루터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마태복음 7장 18절을 왜곡한 것은 단순히 성경의 어느 한 구절을 잘못 이해한 정도의 것이 아니다.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해서 행위가 중요하지 않다는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하려고 했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도 자기와 마찬가지로 행위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루터는 행위가 중요하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말았다. 

                   *  *  *  *  *  *  *  *  *  *

호기심 있는 독자들을 위해서 루터의 『그리스도인의 자유』 23장을 첨부한다.

그러므로 다음 두 가지 명제는 진실이다. 즉, 선하고 의로운 행위가 결코 선하고 의로운 사람을 만들지 않으며, 반대로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 선하고 의로운 행동을 한다. 그리고 나쁜 행위가 결코 나쁜 사람을 만들지 않고, 나쁜 사람이 나쁜 행동을 한다. 즉, 어떤 경우에도 인격이 모든 선한 행위에 앞서서 선하고 의로워야 하며, 이에 따라 선한 행위가 의롭고 좋은 인격에서 생긴다.

그리스도께서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마 7:18)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것이다. 원래 과실이 나무를 맺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나무가 과실 위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나무가 과실을 맺고, 그리고 과실이 나무에 열린다. 나무가 과실보다 먼저 있어야 하므로 과실은 나무를 좋게도 나쁘게도 하지 않는다. 반대로 나무가 과실을 좋게도 하고 나쁘게도 한다.

이와 같이 사람은 선하거나 나쁜 행위를 하기 전에 그 인격이 먼저 의롭거나 나쁘지 않아야 한다. 또한 그의 행위가 그를 좋게 하거나 나쁘게 하지 않고, 그가 좋거나 나쁜 행위를 한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서도 이와 같은 일을 볼 수 있다. 좋거나 나쁜 집이 좋거나 나쁜 목수를 만들지 않고, 좋거나 나쁜 목수가 좋거나 나쁜 집을 짓는다. 작품이 그 작품을 만드는 장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장인에 따라 그 작품이 결정된다. 

인간의 행위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신앙에 따라 사느냐 불신앙에 따라 사느냐에 따라 그 행위도 좋아지거나 나빠지거나 하지, 반대로 그 행위가 어떠냐에 따라 그 사람이 의롭거나 불신앙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행위가 사람을 신앙적으로 만들지 않듯이 의롭게 만드는 일도 없다.

이에 반해 신앙은 사람을 의롭게 함과 동시에 선한 행위를 낳게 한다. 행위가 사람을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므로, 행위를 하기 전에 먼저 사람이 의로워야 한다. 그러므로 오직 신앙만이 그리스도와 그 말씀에 의한 순수한 은혜로 사람을 의롭게 하고 축복하는 데 충분하다는 것은 매우 명백하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그 어떤 행위나 계명도 필요치 않다. 

그는 오히려 모든 계명으로부터 자유로우며, 그가 행하는 모든 일을 전혀 보답을 바라지 않고 순수하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행하며, 결코 자기 이익이나 축복을 바라지 않는다. 그는 그 신앙과 하나님의 은혜로 이미 충만하고 축복받았기 때문에, 그의 행위는 오직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최재석 jschoi4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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