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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문학동네, 2022)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놓을 수는 없다”
소설 <하얼빈>은 작가 김훈이 젊은 시절부터 구상해 왔다고 한다. 짧고 강렬했던 청년 안중근을 그린 소설이다. 하얼빈역을 향해 달려가는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의 여정을 번갈아 가며 보여 준다. 짧은 문장과 간결한 필체로 담담하게 표현하여서 소설을 읽고 나니 한편의 다큐 영화를 본 느낌이었다. 쉽게 읽히고 글이 직접 주는 감동은 적었으나 독자가 소설 속에 들어가서 상상하게 하고 판단하게 하여 오히려 여운이 오래갔다.
소설은 대동아공영을 외치는 일본제국주의의 폭력과 야만성에 대하여 권총 한자루와 백 루블만 가진 채 홀로 맞섰던 청년 안중근의 치열한 정신을 부각시키고 있다. 안중근은 자신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일 수 밖에 없고 이토를 왜 죽이려고 하는지를 세상에 알리는 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시대의 악과 맞서려는 젊은 청춘이 주는 힘과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다. 거사를 같이 도모하는 우덕순과의 대화도 절제되어 있다. 거사후 자신과 주변에 일어날 비극을 다 알면서도 어떠한 감정도 느끼기 힘들 정도로 대화가 단순하다. 오로지 거사만을 목표로 냉정하게 정리하고 준비해 나간다. 하얼빈 저격 현장에서도 스스로 잡혔다. 이토를 자신이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명분에 대해서 법정에서 명확하고 당당하게 진술한다. 또 자신에게 세례를 준 신부와의 고행성사에서도 신부는 살인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기를 바라지만, 천주교 신자로 세례명이 도마인 안중근은 그것을 거절한다. 오히려 이토를 실수없이 죽일 수 있도록 주어진 여러가지 기회를 하느님께 감사하다고 한다.
소설은 평화는 모든 나라의 자주독립에 기초하여야 한다는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통하여 일본제국주의의 대동아공영론의 폭력성과 허구를 지적하고 있다. 이토는 조선을 강점한 일등공신이고 일제의 충직한 관료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이중적이고 가식적인 생각을 통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지배의 본질을 잘 표현하고 있다. 최근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서 논쟁이 된 식민사관(조선은 약해서 망했고 일본이 미개하고 가난한 조선을 근대화 시켰다)이 소설 속 이토의 말과 태도를 통해 똑같이 표현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 하다.
작가는 주변 등장인물의 거사에 대한 반응도 당시 있었던 모습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독자들이 소설 속 사건을 차갑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게 만든다. 조선의 황실과 황태자 이은은 이토의 죽음을 안타까와하고 애통해 하는 지극한 예를 표한다. 명동성당 대주교 뮈텔은 일제에 협력하고 안중근의 정치적 민족적 대의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거사를 죄악으로 공공연히 표현하고 고해성사를 베푼 신부를 중징계 한다. 또 소설 후기에서는 하얼빈 거사를 일제에 사죄한 아들 안준생,안현생의 행적도 동시에 보여 준다. 정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소설은 안중근의 원대한 대의를 말로서 설명하기 보다는 살아있는 몸으로 보여 준다. 권총 한자루, 실탄 7발, 강탈한 백루블의 여비만 가지고 혈혈단신으로 일본 제국주의와 부딪힌 청년 안중근의 순수한 열정을 생동감있게 보여준다.
신영배 (경기중부기독교교회협의회)
신영배 경기중부기독교교회협의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