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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메르시어와 유럽의 거리를 거닐다

기사승인 2023.09.27  00:23:54

우동혁 만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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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메르시어와 유럽의 거리를 거닐다
-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고 <언어의 무게>를 생각하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전은경 역, 김영사, 2022)

독서의 계절에 파스칼 메르시어와 유럽의 거리를 거닐어보는 건 어떨까요? 

파스칼 메르시어의 본명은 페터 비에리. 1944년 스위스 베른에서 테어나,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언어철학교수로 재직하다 2007년 은퇴했습니다.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은 자칫 딱딱할 수 있는 페터 비에리의 프로필에 온기를 줍니다. 실제로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은 언어에 대한 치밀한 사유 속에서도 따뜻한 사람 냄새를 풍깁니다.

‘모든 사람은 문제아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 다 그렇습니다. 아들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옥스포드에서 도망친 아들, 그 남자를 사랑한 반항적인 기자, 인간성 없는 법조 카르텔에 회의를 느낀 사법연수원생과 의사 세계를 카스트라 비판하는 레지던트, 약품을 밀매한 죄로 모든 걸 잃은 약사, 배신한 애인의 남자 친구와 다투다 과실치사로 감옥에 갇힌 남자, 환자에게 치명적인 오진을 내린 의사, 이탈리아의 명품 의류 회사를 상속해준 부모가 사실은 파시즘 정권에 부역하며 회새를 키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작가. 뇌종양 오진으로 인해 인생이 엎어져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언어의 무게>는 이렇게 많은 문제아를 이야기합니다.

문제아, 그것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라면 실패한 인생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많은 문제는 개인의 일탈보다 사회의 부조리에서 비롯됩니다. 

예를 들어 약사 버크는 불법이민자나 빈민처럼 의료 혜택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의 상황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약을 구하기 어려워 병을 키우다 큰 일을 치르기 일수입니다. 버크는 약을 빼돌려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힘이 닿는데까지 그들을 돕습니다. 아무리 선한 일이라도 악용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한 외국인 노동자가 마약성 진통제를 조금씩 받아두었다가 한꺼번에 복용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이로인해 버크는 재판을 받고 실형을 삽니다. 약사 면허도 약국도 모두 잃어버립니다. 영웅이었던 한 남자는 전과자의 굴레를 쓰고 동굴 같은 집에 갇힌 유배자가 됩니다.

사회적 부조리는 숙고하지 않는 사회 곳곳에 지뢰처럼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뢰를 밟지 않는 최선의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엇이 선인지 고민하면 발 밑으로 지뢰가 굴러옵니다. 지뢰를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숙고를 삶의 바탕으로 삼는 것입니다. 부모가 파시즘 정권에 굴복해 회사를 키운 사실을 알게 된 작가가 선대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재산을 청산해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살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독재자 살리자르 치하의 리스본이 무대입니다. 이 부조리한 사회에서 독재에 저항하는 모든 이들은 문제아입니다.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많은 이들이 비밀 경찰에 체포되어 극심한 고문을 받고 장애를 입거나 죽임을 당합니다. 그들에게 가해진 모든 폭력은 정당했습니다. 판사들은 법문을 이용해 고문에 눈감고 민주운동가들을 감옥에 보냈습니다. 민주주의자들은 살리자르식 자유경제민주주의를 비판하는 불온세력이었으므로.

이 시대에 대법관의 아들로 태어난 프라두는 숙고하는 인간으로 그 시대를 살아갑니다. 수도원 재단 중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시대에 대한 질문을 시작합니다. 대법관이 아버지와 독재와의 관계, 사랑하는 교회와 독재와의 관계를 고민합니다. 그리고 사재가 되기를 꿈꾸던 소년 프라두는 졸업식 대표 연설에서 이렇게 발표합니다.

“그러나 내가 살고 싶지 않은 세상이 또 하나 있다. 우리 몸과 독자적인 생각에 악마의 낙인을 찍고 우리의 경험 가운데 최고의 것들을 죄로 낙인찍는 세상, 우리에게 독재자와 압제자와 자객을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세상. 마비시킬 듯한 그들의 잔혹한 군화 소리가 골목에서 울려도, 그들이 고양이나 비겁한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거리로 숨어들어 번쩍이는 칼날로 등 뒤에서 희생자의 가슴까지 꿰뚫어도…..... 설교단에서 이런 무뢰한을 용서하고 더구나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가장 불합리한 일 가운데 하나다. 설사 누군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이는 유례가 없는 허구이며 완벽한 불구라는 값을 치러야 하는 무자비한 자기기만이다. 적을 사랑하라는 이 괴상하고도 비상식적인 명령은 사람들의 의지를 꺾고 용기와 자신감을 빼앗아, 필요하다면 무기까지도 들고 독재자에게 대항하여 일어 나야 할 힘을 얻지 못하도록 그들의 손아귀에서 나긋나긋해 지도록 하기에 적합해 보인다.”

숙고하는 인간은 사람(people)과 사회라는 주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가을에는 파스칼 메르시어와 유럽의 거리를 거닐며 사람과 사회에 대해 사유하는 건 어떨까요. 그 속에서 작은 희망의 불꽃을 발견할지도 모르니까요.

우동혁 목사 (만나교회)

우동혁 만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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