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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문학을 향하여

기사승인 2024.02.26  05:28:41

송화섭 꿈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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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문학을 향하여

(<그리스 시문학 연구에 관하여>, 프리드리히 슐레겔 지음, 박현용 옮김, 문학동네, 2023)

프리드리히 슐레겔(Friedrich Schlegel)은 독일 낭만주의(romanticism) 문학 이론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슐레겔은 1772년 독일 하노버에서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형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과 함께 노발리스, 셸링, 슐라이어마허 등과 교류하며 초기 낭만주의 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십여 년 전부터 국내에 소개 되고 있는 필립 라쿠-라바라트, 장-뤽 낭시와 발터 베냐민 같은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낭만주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슐레겔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다. 이들의 낭만주의에 관한 연구는 다음의 번역서를 참조하면 도움이 된다. 필립 라쿠-라바르트(Philippe Lacoue-Labarthe), 장-뤽 낭시(Jean-Luc Nancy)지음, 홍사연 옮김, 『문학적 절대: 독일 낭만주의 이론』(서울: 그린비출판사, 2015);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지음, 심철민 옮김,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서울: 도서출판b, 2013). 초기 독일낭만주의 연구와 미학 연구는 프레더릭 바이저(Frederick C. Beiser) 지음, 김주휘 옮김,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 초기 독일낭만주의 연구』(서울: 그린비출판사, 2011); 카이 함머마이스터(Kai Hammermeister) 지음, 신혜경 옮김, 『독일 미학 전통: 바움가르텐부터 아도르노까지』(서울: 이학사, 2013)      
 하지만 슐레겔이라는 이름과 명성에 비해 그의 저서를 직접 접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근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저서가 출간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최근 도서출판 <문학동네>에서 슐레겔의 저서들이 번역되었다. 소개하자면, 프리드리히 슐레겔(Friedrich Schlegel) 지음, 이영기 옮김, 『루친데』(서울: 문학동네, 2020); 프리드리히 슐레겔(Friedrich Schlegel) 지음, 박현용 옮김, 『그리스 시문학 연구에 관하여』(서울: 문학동네, 2023); 프리드리히 슐레겔(Friedrich Schlegel) 지음, 이영기 옮김, 『시문학에 관한 대화』(서울: 문학동네, 2023) 등이 있다. 
 슐레겔의 저서 중 <그리스 시문학 연구에 관하여>는 1795년에 집필한 그리스 문학 연구서인 <Über das Studium der Griechischen Poesie>를 옮긴 책이다. 

  우선, 이 책을 읽는 데 ‘시문학’이라는 말로 옮긴 ‘포에지’(Poesie)를 이해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포에지라는 단어는 라틴어 ‘poesis’에서 파생된 것으로 원래는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활동이나 창조적 행위를 말한다. 슐레겔은 포에지를 통해 자신의 문학적 원천이자 다양한 예술 영역의 자율성과 다양성 그리고 역동성에 대한 논의로 확장해 나간다. 나아가 포에지는 문학의 한 양식인 ‘시’(poet)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잠재력과 신의 형상을 실현하는 창조력을 의미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슐레겔은 특히 그리스 시문학에 관심을 갖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슐레겔에게 그리스 시문학(포에지)은 전체를 아우를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던 독일의 취미와 예술의 완성을 위한 본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 정신의 계승은 단지 지나간 것에 대한 동경이 아니다. 혼란에 빠진 근대 문학의 새로운 미래를 보완하고 치유할 수 있는 규범적인 이념이자 이상이다. 그리스 시문학을 논의함으로써 슐레겔은 일종의 미학적 혁명을 꿈꾸며, 고대와 근대의 본질적인 합일을 추구한다. 

  이런 목적을 가지고 슐레겔은 <그리스 시문학 연구에 관하여>를 서문을 포함하여 5장으로 구성한다. 특히 1장과 2장에서는 근대 시문학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진단하며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한다. 슐레겔이 보기에 계몽주의에서 비롯된 근대 시문학의 특징은 흥미로운 것, 즉 주관적이고 심미적인 것에 맞춰져 있다. 근대 시문학은 그것을 평가하는 척도로 삼고 있는 규정이나 지침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근대 시문학은 순수하고 절대적인 미적 가치의 객관성을 요구받는 것이다. 그런데 근대적 시문학이 필요한 이상적 조화를 이룬 시대가 바로 그리스 시대이다. 마르틴 하이데거가 후기 존재의 사유를 횔덜린의 시에 집중하며, 그리스 시문학에 관심을 갖은 것도독일 낭만주의 전통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책의 중심인 제3장에서 그리스 시문학에 나타난 미적 이상을 논의하며, 그리스 시문학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자연의 후견을 받던 교양의 첫 단계는 균형 잡힌 완전함과 가장 이상적인 조화가 지배했다. 그 시절 그리스 포에지(시문학)는 일방적인 방향이나 과도한 이탈 없이 인간 본성 전체를 아우를 수 있었다. 그리스 포에지는 튼튼하게 성장하여 곧 자립했고 자연과의 싸움에서 감정이 결정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그리스 포에지의 특징은 보편적인 인간 본성의 가장 강력하고 풍부한 표현이며 가장 확실하고 단순하면서도 가장 완전한 표현이다. 그리스 시예술의 역사는 시예술의 보편적인 자연사다. 따라서 완전하고 규율적인 직관이다.” 프리드리히 슐레겔(Friedrich Schlegel) 지음,  『그리스 시문학 연구에 관하여』, 84-85.
 

  슐레겔이 그리스 시문학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개인의 흥미를 넘어서 문학의 새로운 부활과 세상을 꿈꾸는 보편적 개별성을 추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단순히 이것은 문학적 복고주의라기 보다는 전체와 부분, 보편과 특수의 이분법을 넘어 새로운 미적 혁명을 꿈꾼 것이다. 낭만주의는 엄밀히 말해 단순한 문학 운동도 아니고, 새로운 감성을 찾은 감성주의도 더욱 아니다. 슐레겔이 말한 것처럼, 시문학은 확고한 토대 위에 놓여 있다. 그것은 “자유로운 인간들의 축제와 같은 삶을 통해, 그리고 고대 신들의 성스러운 힘을 통해 하나이면서 나뉠 수 없는 전체로서 놓여 있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슐레겔(Friedrich Schlegel) 지음, 『시문학에 관한 대화』, 22.
 시문학의 토대란 한마디로 무한한 새로움을 추구하는 총제적 성격이자 ‘문학적 절대’이다. ‘문학적 절대’라는 표현은 낭만주의를 향한 라바르트와 낭시의 표현이다. 이에 대해서는 라쿠-라바르트(Philippe Lacoue-Labarthe), 장-뤽 낭시(Jean-Luc Nancy)지음, 『문학적 절대: 독일 낭만주의 이론』, 31이하를 보라.  
 문학적 절대란 완전히 새로운, 무한히 새로운 하나의 큰 작품 속에서 스스로를 생산해 나가는 것이다. 

  슐레겔이 꿈꾼 시문학(포에지)을 통한 미적 혁명은 포이에시스(poiesis), 즉 끊임없는 생산이다. 낭만주의의 포에지(시문학)는 포이에시스(생산)의 본질까지 꿰뚫고 들어가는 것이며, 문학적인 것은 생산 그 자체의 진리를 생산해 내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도야(Bildung)하는 생산이다. 슐레겔이 그리스 시문학 연구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들려주는 바는 자기 생산성(autopoiesis)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의 고유함을 찾고 고유의 사상과 이론을 생산해 나가는 가운데 스스로를 생산하는 것이 시문학이다. 이런 점에서 시문학은 종교의 영역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에 밀접하게 연결된다. 

  4차 산업과 AI(인공지능)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또 다른 시문학을 요청받고 있다. 20세기 초중반 하이데거가 “대상화하는 사유가 근대 기술 문명을 낳았고, 오늘의 섬뜩한 기술의 재앙 위기” 고명섭 지음, 『하이데거 극장: 존재의 비밀과 진리의 심연2』(파주: 한길사, 2022), 602.
를 숙고한 것처럼, 21세기 인공지능의 시대에 존재의 심연을 잃어버릴 위기를 겪고 있다. 이것은 기술을 악마의 작품으로 보고 부정하자는 말이 아니다. 슐레겔이 근대적 시문학의 위기를 그리스 시문학에서 돌파구를 찾은 것처럼, 우리 역시 새로운 시문학을 꿈꾸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공지능의 자율성을 합리적 도구로 사용하는 동시에 인간의 고유성을 놓치지 말자는 것이다. 

   슐레겔의 <그리스 시문학 연구에 관하여>는 신과 자아와 세계의 고유함과 새로운 인간성(humanity)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우리가 정신적 기원을 사유하고 고민하는 것은 동시에 진정한 미래를 꿈꾸는 것이다. 슐레겔은 과거와 미래가 충돌하는 현재에서 과거와 미래의 정신적이며 주관적인 합일을 통해 이루어지는 섬뜩한 아름다움을 제시한다. 아름다움이란 단순히 개인적인 취미와 예술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신의 왕국이자 미의 지평선 너머를 보는 것이다. 새로운 정신과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크리스토퍼 멘케의 주장처럼, “미학은 주체가 유래한 곳이지만 그에 반대로 연습하며 형성해 온 그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프 멘케(Christoph Menke) 지음, 김동규 옮김, 『미학적 힘: 미학적 인간학의 근본개념』(서울: 그린비출판사, 2013), 95.
 슐레겔이 시문학(Poesie)을 통해 새로운 시대와 정신을 꿈꾼 <그리스 시문학 연구에 관하여>의 일독을 권한다.     
          
송화섭 목사(꿈의교회 부목사, 감리교신학대학교 객원교수/철학박사)
 
 
   

송화섭 꿈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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