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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사상과 기독교 신앙

기사승인 2024.03.03  23:53:15

손원영 sohnw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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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널리 잘 알려져 있듯이, 3.1운동은 당시 한국의 대표적인 종교였던 천도교(동학)와 기독교 그리고 불교가 힘을 합해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함께 힘을 모은 만세사건이다. 실제로 이 사건을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3.1운동이 일어난 그 다음 달인 4월 11일에 수립되었으니, 그 의미를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 기독교가 3.1운동 정신을 계승하려면, 3.1 독립운동을 함께 했던 이웃종교들과 인류의 공영을 위해 협력사업들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 기독교가 이를 위해 우선 천도교(동학)와의 관계를 조속히 회복하는 일은 대한민국의 통일과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동학의 핵심 사상인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3.1운동의 정신을 상기하는 의미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려고 한다.

인내천 사상은 한마디로 하면, “사람이 곧 하늘(하나님)이시다”라는 사상이다. 이 사상은 이 세계의 그 어느 철학 및 종교사상보다도 앞선 급진적이고 또 혁명적인 사상이다. 그래서 많은 철학자와 종교학자들은 동학이야말로 미래 한국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위대한 K-사상이라고 말하는데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 기독교가 동학과의 대화를 통해 ‘인내천 기독교’로 거듭난다면, 한국의 기독교는 명실공히 한민족과 함께 하는 진정한 한국 종교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사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내천 사상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이 있지만, 필자에게 영향을 끼친 학자 중 하나는 부산대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윤노빈 선생이다. 그는 독일의 프랑크프르트대학교에서 헤겔철학으로 박사학위를 한 뒤 귀국하여 한국철학으로서의 동학을 연구하였다. 하지만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월북하는 바람에 한국인들에게 오랫동안 금기시 되던 인물이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그의 동학해석은 그 누구보다 탁월하여 한민족 공동체의 사상적 미래를 생각하는 이라면 꼭 숙고해야 하리라 본다. 특히 한국 기독교가 윤노빈의 인내천 사상을 깊이 이해하여 소화할 수만 있다면, 한국 기독교 및 한국신학의 발전도 한 발자국 더 진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윤노빈은 ‘인내천’ 사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그것은 그의 책 『신생철학』(학민사, 1989) 안에 담겨진 짧은 논문 “동학의 세계사상적 의미” 안에 잘 반영되어 있다.

윤노빈은 ‘인내천’ 사상을 네 가지의 의미로 해석한다. 첫째는 인내천의 한자(漢字)의 구분을 통해 그 의미의 혁명성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인내천(人乃天)은 ‘인내천’(人乃賤) 혹은 ‘인내천’(人乃蚕)에 대한 혁명이다. 인내천 사상의 핵심은 ‘노예 천’(賤)과 ‘지렁이 천’(蚕)에서 ‘하늘 천’(天)으로의 변화라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역사를 포함하여 온 인류역사는 같은 인간끼리 얼마나 타인을 종으로, 지렁이보다 못한 노예로 취급하였는가? 그런데 동학은 이러한 지렁이 같은 노예적 삶에 대하여 근본적인 변혁을 시도하였다. 마치 모세가 노예였던 히브리민족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자유와 평화의 땅 가나안을 향해 출애굽하였듯이 말이다. 그래서 인내천 사상의 혁명성은 인간이 인간을 천대하던 과거의 역사에 대해 종지부를 찍은 것에 있다. 그러면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과거에 사람을 ‘노예’(賤)로 생각하던 것에서 혁명적 전환을 통해, 인간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오히려 최고의 존재인 ‘하나님’으로 존재의 위상을 격상시키고 있다. 이것이 기독교와 유사하면서도 기독교를 넘어서는 지점이다. 이 사상을 통해 동학의 인내천은 종전의 위선적 인본주의, 종군적 박애주의, 편애적 인간중심주의의 한계를 한꺼번에 넘어서고 있다.

둘째는 인내천의 시천주(侍天主) 사상이다. 여기서 ‘시’(侍)는 모심이다. 그것은 한울님 곧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신다는 사상이다.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 이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예수의 임마누엘 신앙과 다름 아니다. 이 시천주 사상을 통해 우리는 천-지-인의 내적인 통전성, 곧 인간과 우주의 자연적 통일, 인간과 인간의 사회적 통일, 그리고 인간과 사회의 혁명적 통일이 가능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존재하는 모든 존재자 속에 동일한 성령 하나님이 계시니 말이다. 그래서 서로 구분될지언정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우리 모두는 자신 안에 같은 하나님을 모신 거룩한 신적 존재들로서, 서로를 존경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다.

셋째는 인내천의 ‘양천주’(養天主) 사상이다. 어머니가 태아를 자신의 배 속에 모심은 태아를 ‘가두어둠’이 아니라 ‘키움’이다. 자궁은 감옥이 아니라 생명의 양육소이다. 하나님을 모심(侍天主)도 이와 같다. 그래서 인내천은 양천주로서 하나님을 내 안에 감금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키움’(養天主)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심으로서의 시천주는 가두어둠이 아니라 내 속의 하나님성(신성)을 키우는 것(養)으로서 양천주로 전개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동양의 종교 전통에서 군자나 성인이 되기 위해 애썼던 ‘수행’(修行)과 그 맥을 같이 하고, 동시에 서양 기독교 전통에서 강조해온 ‘영성수련’(spiritual exercise)의 다름 아니다. 모두 하나같이 내 안에 모셔진 하나님, 곧 신성을 잘 키우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최시형이 어린아이를 때리는 것은 하나님을 때리는 것과 같다고 말하면서 “아이들을 때리지 말”(勿輕打兒) 것을 엄격히 강조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그리고 그 대신에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정성껏 수행하는 일은 결코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일종의 종교교육의 자리로서, 한국교회가 기독교교육을 지금까지 주로 교인만들기 교육에 치중하였던 것을 반성하고 이제부터는 양천주 교육으로 탈바꿈할 것을 촉구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넷째는 인내천의 ‘체천주’(體天主) 사상이다. 여기서 체천주란 사람이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키우는 주체로서, 이제 더 나아가 하나님다운 행위 곧 하나님의 뜻을 몸으로 구현하는 ‘체천’(體天)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암 손병희는 이것을 ‘삼전론’(三戰論)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본래 하늘은 편벽됨이 없으나 성(性)을 따르는 자에게 하늘은 친(親)하다(...)한울님을 모시며 한울님 행위를 함으로써 이제 한울님을 체현(體現)하는 것이오.” 그러면서 그는 체천을 하나님다운 행위(行天)로 세 가지의 전투를 강조하였다. 그것은 도덕적 전투, 언어-심리적 전투, 경제적 전투이다. 말하자면 인간을 노예로 삼는 온갖 종류의 ‘인내천’(人乃賤)을 완전한 인내천(人乃天)으로 변혁시키기 위해 심기일전할 것을 촉구하였던 것이다. 3.1운동도 그런 체천주의 한 양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예수가 십자가를 지면서까지 그의 전 삶을 바쳐 구현코자 했던 ‘하나님의 나라’ 운동과 결코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이 땅에 자유와 평화, 그리고 공의와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체천주 사상을 공유하는 동학과 기독교가 공동으로 추구해야할 생명의 길이다. 

 

손원영 (서울기독대학교 교수)

손원영 sohnw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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