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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하지 않는 법

기사승인 2024.04.15  05:25:01

김수영 대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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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하지 않는 법>, 제니 오델 지음,  김하현 옮김, 필로우, 2021)

  이른 아침부터 털털털 경운기 소리가 들린다. 트랙터가 마을길마다 진흙덩어리들을 떨구곤 바쁘게 지나간다. 다들 바쁘게 봄을 맞이한다. 이렇게 저들은 늦은 가을까지 바쁘게 일한다. 도시인들은 더 바쁘게 살아간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목사도 바빠야 속이 편하다. 일이 없으면 너무나 불편하다. 그러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마치 죄를 짓는 것 같고 사람 구실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늘 그런 일상의 불편함을 안고 사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큰딸이 제니 오델의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법”을 건네주었다.  
  
  저자 제니 오델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로, 스탠퍼드대에서 시각 예술을 강의하기도 한다. 그녀는 새를 관찰하거나 작품 소재를 위한 관찰 활동을 중시한다. 그리고 디지털 권력과 관심경제에 의해 분산된 관심의 주권을 되찾아 다른 방향으로 확장하는 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버락 오바마가 ‘올해의 책’으로 추천했고 《뉴욕타임스》 등이 선정한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저자는 서문 “쓸모없음의 쓸모”에서 오클랜드 어느 산 속에 유일하게 500년 된 삼나무를 예로 들고 있다. 골드러시 이후 오래된 삼나무들을 거의 다 벌목을 하는 와중에도 이 할아버지 삼나무만 살아남았다. 그 이유는 아주 가파른 언덕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웠고, 그런 환경 속에 있다 보니 나무가 뒤틀리고 다른 삼나무에 비해 키가 작았고, 그래서 벌목꾼 보기에 목재로서는 쓸모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벌목꾼 입장에선 쓸모없는 것이었지만, 그 쓸모없음 때문에 그 삼나무는 500년 넘게 그 자리에서 살아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인들은 ‘쓸모없음의 쓸모’처럼 진정한 나를 위한 삶의 가치를 창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그런 점에서 저자는 이 책을 “끊임없이 우리의 주의를 빼앗으려 하는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에 맞서는 정치적 저항 행위의 일환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법을 제안하는 현장 가이드”라고 했다(18). 

  저자는 SNS를 예로 들어 관심 경제를 설명한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은 타인을 향한 관심과 공동체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를 활용하는 댐과 같아서, 우리의 본질적인 욕망을 장악하고 방해하며 그로부터 이득을”(18) 취하는 것이라고 했다. 즉 어떤 SNS의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과 같은 관심이 돈이 되는 경제 시스템 속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이 우리의 자아 성찰과 호기심, 소속의 욕구를 이용해 가짜 목표물을 만들어낼 것”(18-19)이라고 경고한다. 

  저자는 디지털 기술이나 인터넷, 소셜미디어 등을 거부하진 않지만, 휴대폰을 내려놓고, “디지털 세계가 아닌 실제 세계, 내가 살고 있는 장소와 지금 이 순간에 관심을 기울이자”고 주장한다(20). 그래서 그녀는 일과 예술 작업을 위해 주로 사용하는 컴퓨터에서 멀어지고 싶을 때 집 가까이에 있는 장미 정원에 가서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 있곤 한다고 했다. 저자는 그게 자신의 생존 전략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게 시간 낭비가 아니고 시각예술가가 필요로 하는 의미 있는 생각과 발화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고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음에 무사색적 걷기, 딥 리스닝, 꾸준한 관찰 등을 동반하면서 대상을 더 자세하게 관찰하게 되고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는 디지털 디톡스(디지털 단식), 곧 컴퓨터, 인터넷, SNS 등에 대한 중독으로부터 벗어나 심신을 회복시킬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본인이 말하는 디지털 디톡스는 단순히 어디론가 떠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이브리드적 대응”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색하는 것과 참여하는 것, 떠나는 것과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언제나 다시 돌아오는 것”이며 저자는 이걸 “한 발짝 떨어지기”라고 했다(120). 그리고 이를 위해 때로는 “거부의 기술”과 동시에 “관심 기울이기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럼 면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생태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필요함을 말한다. 

  저자는 자신이 생태지역주의를 중요시하는 것은 “관심이 우리가 철회할 수 있는 마지막 자원이듯이 물리적 세계는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마지막 기준점이기 때문”(247-248)이라면서, “생태 지역주의는 우리에게 새로운 출현과 상호의존을, 절대적 경계의 불가능성을 가르쳐준다. 물리적 존재로서 우리는 말 그대로 이 세상에 열려 있으며 다른 곳에서 온 공기가 매 순간 온 몸에 퍼져 있다. 사회적 존재로서 우리는 놓인 맥락에 따라 결정된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 우리와 타인의 정체성을 매번 새롭게 나타나는 유동적 경이로 인식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구름과 늘 움직이는 땅 사이에서 발생하는 번개처럼, 우리의 화합에서 나올지 모를 상상조차 못했던 새로운 생각 앞에 스스로를 열어놓을 수 있다.”(255)

  저자는 세심한 관심의 실천이 존재와 정체성의 미묘한 생태계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도와준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새들을 관찰하는 것을 사례로 들며,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서로 인과 관계에 있다는 것과 그 맥락을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찾아내야 하며, 이것이 바로 생각의 토대를 복원시켜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스스로 이같은 생태계라는 맥락 속에서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갖게 하면서, 현재의 관심 경제 체제에서 빠져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292). 그가 추구하는 “건전한 소셜 네트워크는 현상의 공간이다. 이는 친구와 함께 하는 산책, 전화통화, 비밀 채팅, 동네주민 모임 등 매개체를 경유한 만남과 대면 만남이 결합한 공간이다....기업이 운영하지 않는 탈 중앙적 네트워킹 기술을 이용해 대면 교류가 힘든 사람을 포함시키고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점점 경제적 특권이 되어가는 이 시기에 여러 도시에서 지지의 교차점을 만들어 낼 것이다.”(292) 라고 말한다.       
 
   책을 읽어가면서 책 제목에 대한 엄청난 선입견을 가지고 엉뚱한 기대를 한 것 같은데 우리 현실 속에 아주 적절하고 필수적인 고언을 들은 느낌이 든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엄청나게 많은 이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정치 경제 종교 사회 문화 등등 모든 분야에서 넘쳐날 정도의 정보를 과식하고 과잉 의존과 중독 현상까지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로 인해 종합적 사고, 생태적 사고, 맥락적 사고의 토대가 무너지고 파편적 사고로 인해 인간 생태계가 더욱 황폐해져 가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상황에 꼭 필요한 성찰을 주는 책이다 싶어 일독을 권하고 싶다.  
                                  
김수영 목사(대영교회)

김수영 대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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