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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책 없이 침착하게 나를 지키고 그를 돕는 법)
우도 라우흐플라이슈 지음, 장혜경옮김, 심심, 2021
이 책은 지독한 자기애가 불러오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자기애성 성격장애 당사자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50년 경력 임상심리전문가인 저자가 건네는 특별한 조언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인 우도 라후흐플라이슈는 심리학과 정신의학 분야에 몸담아온 독일의 저명한 심리치료사, 임상심리학자, 정신분석학자이다. 그의 주요 관심분야는 성 정체성, 성격 장애이다. 그가 쓴 책중에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은 이 책 외에도 “가까운 사람이 경계성 성격장애일 때”와 “가까운 사람이 의존성 성격장애일 때”이다. 그가 쓴 책은 환자 곁에서 고통받는 ‘주변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자기애성 성격 장애’란 자신이 타인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월하다고 생각해 일상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성격 장애를 가리킨다. 이들은 입만 열면 자기 자랑을 떠벌리고, 남 앞에서 보란 듯 권력을 과시하며, 상처가 될 독한 말도 서슴없이 내뱉고, 주변 사람을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이용한다. 가족, 친구, 연인, 직장 동료로서 이런 사람들 곁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끊임없이 상처받고 괴로워하면서도 쉽게 관계를 끊어내지 못한다. 자기애성 성격 장애 환자는 굉장히 매력적인 데다 상대방의 약점을 잡고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옭아매는 데 선수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처럼 매력적이지만 증오스러운 자기애성 성격 장애 당사자와 함께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이 자기애성 성격 장애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각 상황에 따라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어떻게 해야 환자를 돕고 자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지를 친절히 설명한다. 일평생 동안 임상심리학과 정신분석학에 몸담아온 독일의 노학자 우도 라우흐플라이슈는 자신이 만나온 자기애성 성격 장애 환자의 사례를 생생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며 우리가 일상에서 이들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법을 알려준다.
이 책은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자기애성 성격 장애란 무엇인가?)에서는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무엇인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이 성격장애에 이름을 선사한 고대 나르키소스의 신화와 나르시시즘 개념을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하려는 몇몇 인물의 노력에 관해 적고 있다. 2장부터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주요 증상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정리해본다.
2장(달콤한 상상이 위험하다)에서는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상상의 세계로 도피하는 자기애성성격장애자를 설명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들은 상상 세계로 도피하여 개인의 실패와 실망을 보상받으려 한다. 상상 세계가 한편으로는 방어기능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현실을 점점 더 외면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상상 세계로의 도피가 되풀이되면 그는 점점 더 회복탄력성을 잃어가고, 나중에는 소소한 일상의 문제마저 혼자서는 해결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를 수 있다.
3장(타인의 칭찬에 의존하는 사람들)에서는 타인의 칭찬과 인정에 목을 매는 그들의 특징을 소개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는 무슨 일을 하든 칭찬을 바라기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의 입장에선 성가시고 짜증이 난다. 그들이 강요에 가깝도록 칭찬과 인정을 바라는 것은 극도로 불안하고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칭찬을 향한 그들의 욕망은 ‘밑 빠진 독’이다. 아무리 주변 사람들이 칭찬을 퍼부어도 떨어진 그들의 자존감은 절대 회복되지 않는다.
4장(누구든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에서는 다른 사람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그들의 높은 경향을 이야기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는 매력이 넘치기 때문에 그들이 계산적이고 차가운 인간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리기 힘들다. 그들은 자존감 결핍에 시달린다. 이런 낮은 자존감을 보상하기 위해 사회적 인정과 권력, 돈과 미모, 성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의 인간관계는 ‘기능화된’ 관계이다. 가족이나 파트너마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한다. 그들의 인간관계엔 정서적 깊이와 책임감이 없다. 관계를 통해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이익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거나 자신에게 실망을 안길 경우 그는 곧바로 관계를 단절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린다.
5장(잘못 밟으면 터지는 폭탄처럼)에서는 그들이 극도로 예민하고 상처를 잘 받지만 상대를 공격할 때는 무자비한 모습을 설명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는 일관성 없는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힌다. 어떨 땐 마음이 어찌나 여린지 별것 아닌 말에도 큰 상처를 받지만, 화를 내고 공격할 때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정도로 차갑고 냉정하다. 이런 모순된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자존감이 낮아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 환자는 자존감이 낮아서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상처를 받으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만하고 공격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6장(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고백)에서는 겉으로는 확신이 넘쳐서 마음의 갈등이라고는 없어 보이지만 사실 속으로는 절망감이 깊고 자신감이 매우 낮은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를 설명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는 화려한 겉모습으로 낮은 자존감을 숨기려 애쓴다. 그러나 낮은 자존감을 끌어올려 줄 성공, 돈, 외모 같은 보상 전략이 힘을 잃을 때 그들은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심할 경우 자살하기도 한다. 그들은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마음을 닫아건다. 절망과 무력감에 시달리는 속내를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이들은 자살할 때도 유서를 남기지 않기 때문에 남은 사람들은 자살의 이유를 알 수가 없다.
7장(돈 후안도 울고 갈 바람둥이)에서는 그들의 바람둥이적인 면을 설명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 남성 중에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돈 후안’처럼 여성들을 유혹하는 사람이 있다. 여성의 경우 같은 행동을 ‘님포마니아’라고 부른다. 자신에게 매달리고 의존하는 상대는 승리의 전리품이다. 보통 이런 유형의 나르시시스트는 상대를 ‘가지면’ 곧바로 관심을 잃고 만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는 대개 진정한 사랑을 모른다. 감정 자체를 나약함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상대를 손아귀에 넣기 위해 철저히 계산된 유혹 작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성행위 그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들에게 성은 힘과 우월함을 입증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8장(독한 말을 쏟아내는 냉혈한)에서는 그들이 다가오는 사람을 자꾸 밀쳐내는 특징을 말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 환자는 ‘얼음처럼 차가운’ 겉모습으로 실망과 나약한 심성을 숨기려 애쓴다. 그들은 어린 시절에 입은 상처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 세상에 분노하고 반항한다. 그런 식의 태도는 환자와 관계를 개선하려는 가족이나 친구의 노력에 찬물을 끼엊는다.
9장(끊을 수 없는 권력의 맛)에서는 극도로 권력지향적인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특징을 설명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들이 무너진 자존감을 보상하기 위해 사용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머리가 좋고 사회성이 뛰어난 경우 나르시시스트라 해도 정계나 재계의 높은 자리까지 오를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주변사람들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권력을 휘두른 대가로 그들 주변에는 아무도 남지 않는다.
10장(지나친 겸손은 오히려 독이 된다)에서는 그들이 무가치한 인간이라는 자괴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점을 말한다. 그들 중에는 자신감이 없고 자기 자신을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자괴감이 자기 주변의 사람들의 신경을 긁을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는 열등감을 보상하기 위해 남몰래 백일몽에 빠질 때가 많다. 만인의 존경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성공한 자신을 꿈꾼다.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고 칭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자의 태도는 ‘건강한’ 겸손이 아니다. 그런 태도에는 공격성이 담겨 있다. 그 누구도 자신을 도와줄 수 없다는 생각,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11장(나는야 지하 세계의 ‘영웅’)에서는 ‘최고’가 되기 위해서라면 범죄행각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그들의 모습을 설명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 환자에게 최악은 ‘중간’이 되는 것이다. 긍정적인 의미의 인정과 존경을 받지 못한다면 나쁜 짓을 해서라도 ‘영웅’이 되려 한다. 범죄행위와 범죄 집단이 보내는 존경이 그들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 폭력은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불안과 무력감을 보상해주는 효과적인 수단이기에 이들은 폭력을 휘둘러 공포와 불안을 조장한다.
12장(자존감을 높이는 잘못된 전략)에서는 극심한 수치심을 숨기려고 뻔뻔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기록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들은 자괴감과 극심한 수치심에 시달리는 나약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출 수 있는 전략을 개발한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전통과 터부를 무시하는 방식으로 주변에 웃음을 선사한다. 하지만 약자를 놀림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13장(좌절이란 걸 모르는 사람들)에서는 한 남성을 예로 들어 나르시시스트의 긍정적인 특성을 소개한다. 처음부터 희망이라고는 없는 상황에 놓이면 아마 보통 사람들은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심한 경우 자살을 시도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자기애성 성격 장애 환자들은 이 모든 역경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절대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끝까지 비현실적인 기대에 집착한다. 그럴 수 있는 힘은 바로 긍정적인 해석에서 나온다. 이들에게는 참담한 실패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어 고단한 상황을 참고 견디는 뛰어난 능력이 있다. 이런 능력은 만인의 존경과 감탄을 받아야 마땅한 능력이다. 덕분에 그들은 비참한 현실을 딛고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이 책은 ‘나르시시즘’현상에 관한 이해를 돕고,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앓거나 그런 성향을 보이는 사람에게 보다 현실적이고 긍정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내 주위 가까운 사람중에 이런 사람이 있지 않은지 한번 살펴보길 바란다.
임석한 목사(양정교회)
임석한 skygrace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