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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글항아리, 2014)
소득 불평등과 분배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제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이는 단지 지금의 관심사만이 아니다. 경제 문제가 학문만 아니라 사회의 중심이 된 자본주의 사회 이후 지속적인 흐름이었다. 그러나 그 방향은 서로 정반대로 흘러갔다.
“19세기 카를 마르크스가 믿었던 것처럼, 민간자본 축적의 동학(dynamics)으로 인해 부와 권력이 필연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소수의 손에 집중될 것인가? 아니면 20세기 사이먼 쿠즈네츠가 생각했던 것처럼 더 발전된 단계에서는 성장, 경쟁, 기술적 진보에 따라 균형을 잡아가는 힘 덕분에 불평등이 줄어들고 계층 간의 조화로운 안정성이 확보될 것인가?”(7쪽)
그러나 여기서 저자는 어느 쪽이든 “부의 분배에 관한 지적‧정치적 토론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부족한 사실과 넘치는 편견을 바탕으로 진행되어 왔다.”(8쪽)라고 한다. 놀라운 지적이다. 그러나 피케티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몇 명의 중요 경제학자와 이론을 설명한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영국과 프랑스에서 … 분배 문제는 이미 모든 분석의 핵심에 있었다. … 1789년에 인구론을 출간한 토머스 맬서스가 보기에는 모든 것이 명확했는데, 가장 큰 위협은 다름 아닌 인구 과잉이었다. 그의 자료는 빈약했지만 그는 그것들을 최대한 잘 활용하려 했다. 그에게 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 여행기였다.”(10~11쪽)
심지어 이는 당시 최고의 정치경제학의 중심이었던 칼 마르크스도 예외가 아니다. “그 시대의 가장 놀라운 실상은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의 비참한 생활이었다. … 반세기 동안의 산업적 성장을 이룬 다음에도 대중의 상황이 여전히 그전처럼 비참하다면, … 산업 발전을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며 이 모든 기술 혁신과 이 모든 노역과 인구 이동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란 말인가? … 이후 20년 동안 마르크스는 … 자본주의와 그 붕괴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인 분석을 내놓기 위해 방대한 저작을 집필하는 데 힘을 쏟게 된다.”(16, 17쪽)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결론들을 정당화하는 데 필요한 통계자료가 부족했던 것이 틀림없다. … 그는 분명히 대단한 정치적 열광의 풍토 속에서 글을 썼는데 이 때문에 따로 성급하게 지름길을 택해야 했으며, 이것이 훗날 그의 발목을 잡게 된다.”(19쪽)
그러나 이제는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이 오랜 기간 동안, 매우 다양한 나라들의 소득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을 갖게 되었다. 피케티는 800쪽이 넘는(한국 번역서) 분량의 자기 책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한 결론을 미리 이렇게 소개한다.
“첫 번째 결론은 부와 소득의 불평등에 관한 어떤 경제적 결정론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의 분배의 역사는 언제나 매우 정치적인 것이었으며, 순전히 경제적인 메커니즘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 불평등의 역사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행위자들이 무엇이 정당하고 무엇이 부당한지에 대해 … 집합적 선택들에 의존한다. 불평등의 역사는 관련되는 모든 행위자가 함께 만든 합작품이다. … 두 번째 결론은, … 불안정하고 불평등한 힘이 지속적으로 승리하는 것을 막는 자연적이고 자생적인 과정은 없다는 것이다.”(32쪽)
무슨 뜻인가? 근대 이성적, 합리적 세계관은 학문이 그저 순수하고, 중립적인 토대에서 만들어지고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조차 행위자들과 상관없이 과학적 실증 자료가 주어질 수 있는 것처럼 착각했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의 시장의 힘은 지금도 시장경제에 대한 탁월한 설명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마치 개인(가게), 기업, 국가 등 행위자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별도로 움직이는 신비한 능력이나 되는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경제는 그저 수요와 공급, 가격 등의 그래프를 그려가면서 수학적 공식만 풀어내면 얼마든지 예측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라 인류 특히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더 올바르고, 공정한 분배의 길을 찾아내는 노력과 지혜가 필요한 학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어느 때보다 자본주의의 절정에 다다랐지만, 불평등과 투기적 행태, 부정의한 정부의 개입이 두드러진 시대에 읽어야 할 새로운 고전일 것이다.
구교형 목사 (성서한국 이사장)
구교형 성서한국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