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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교수의 “그때 그들이 흘려들었던 예언자의 소리” 세미나

기사승인 2024.05.17  17:06:50

이종만 봉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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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6일(목) 11시 봉재교회(담임:이종만 목사)에서 이사야 교수(남서울대학교. 구약학)를 초청하여 그의 저서 “그때 그들이 흘려들었던 예언자의 소리” 세미나가 열렸다.

아산지방교역자회(지기룡감리사) 1부 예배시간에 이종만 목사의 사회 안승천 목사(인주중앙)의 기도와 이사야 교수의 강의 그리고 새로 부임한 대동교회 서영석 목사 부부 소개, 이혁헌 목사(성내중앙) 축도순으로 진행됐다.

이 세미나를 위하여 봉재교회는 1달 전 “그때 그들이 흘려들었던 예언자의 소리” 책을 구입하여 전 교역자들에게 나누어주어 읽고 묵상하게 하고 이날 세미나에 참석했다.

이날 이교수는 예언서 17권에 대한 전반적인 개요와 예레미야서를 중심으로 우리 목회자에게 “오늘날 이 시대의 예언은 무엇이고 예언자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서두로 “예언자들은 그 세대의 백성들로부터 비록 환영받지 못한 말씀을 전하며 그 말씀속에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희망을 전하는 사명이 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잔잔한 음성으로 평소 우리들이 잘못 알고 있거나 난해한 구절들을 쉽게 이해하게 하여 참석한 교역자들에게 큰 은혜에 시간이 됐다.

다음 기회가 될 때 사경회나 말씀부흥회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며 이날 이 교수가 강의한 그이 저서 “그때 그들이 흘려들었던 예언자의 소리” 중 <예레미야> 부분과 백남호 목사의 서평을 자료로 첨부하여 올린다.

   
▲ 강사:이사야 교수(남서울대학교. 구약학)
   
 

 


예레미야(Jeremiah): “주의 말씀이 뼛속에까지 타들어 간다”

 

아나돗의 제사장

예레미야(Jeremiah)는 아나돗(Anathoth)의 제사장 가문 출신으로, 요시야 13년(기원전 627)부터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그리고 마지막 왕 시드기야에 이르기까지 남왕국 유다에서 활동한 7세기의 예언자이다. 아나돗은 베냐민 땅에 있던 네 레위 성읍(기브온, 게바, 아나돗, 알몬) 중 하나인데(수21:17-18), 이곳의 제사장은 솔로몬에 의해 성전에서 축출된 대제사장 가문의 후손이고, 아비아달의 후손이다. 아비아달은 다윗 왕 때에 대제사장이었으나 왕위쟁탈전에서 솔로몬을 지지하지 않은 것 때문에 솔로몬에 의해 파면되어 아나돗으로 유배되었다. “왕(=솔로몬)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 너는 마땅히 죽을 자이로되 네가 내 아버지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또 내 아버지가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은즉 내가 오늘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 하고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왕상2:26-27). 예레미야는 바로 이곳 아나돗의 제사장 가문에서 활동을 하다가 요시야 왕이 죽은 해인 기원전 609년부터 본격적으로 예루살렘에서 활동을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예레미야의 생애를 연대순으로 재배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대체로 넷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1기는 소명 후부터 요시야 왕이 므깃도에서 전사할 때이다(기원전627-609년). 거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는 시기로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에 대해서 예레미야가 어떤 지지를 보냈는지의 여부도 분명히 알 수 없다. 제2기는 요시야 왕의 전사 후 여호아하스를 거쳐 여호야김이 재위한 10년이다(기원전 609-598년). 이집트와 바벨론 제국 사이에서 남유다가 우왕좌왕하던 시기로 여호야김 왕이 왕궁을 치장하고 국고를 고갈하던 시기였다. 이때 예레미야는 여호야김에 대해 극히 비판적이었다.

15네가(=여호야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요시야)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16그는(=요시야)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7그러나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 18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 19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지고 나귀 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렘22:15-19).

제3기는 시드기야 재위 기간이다(기원전 598-586년). 예레미야의 활동이 집중되어 있는 시기로, 이때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하나님의 도구라고 선언했고, 바벨론에게 항복할 것을 외쳤다. 목에 멍에를 매는 상징적인 행동을 했고(렘27장), 바벨론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에도 바벨론에 투항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고, 시드기야 왕에 대해서는 극히 비판적이었다. 제4기는 유다왕국 멸망 이후이다(기원전 586년. 렘39-44장).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유다의 총독으로 세운 그다랴(Gedaliah)를 왕족 출신 국수주의자 이스마엘이 살해한 사건 때문에 많은 유다인들이 바벨론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이집트로 피난을 갔다. 예레미야는 이집트로 피난가는 것을 반대하고 유다 땅에 남을 것을 외쳤지만, 강제로 끌려간 예레미야는 그곳에서 생애를 마감했다. 이때 예레미야의 활동을 돕고 그의 말씀을 받아 기록한 비서 겸 제자 바룩(Baruch)이 예레미야와 그 삶을 같이 했다(렘32:12-13,16; 36:4-5,8,10,13-19,26-27,32; 43:3,6; 45:1-2). 바룩은 예레미야를 대신해서 문서를 기록했고, 예레미야와 함께 이집트로 끌려갔던 것으로 보인다.

 

말할 줄 모르는 아이

예레미야가 소명을 받는 장면은 기원전 8세기의 대예언자 이사야와는 사뭇 다르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하며(사6:8) 즉각적으로 응답했던 이사야와는 달리 자신이 어린 아이에 불과하고 말을 잘할 줄 모른다는 이유를 들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려 했다.

5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6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렘1:5-6).

이와 같은 모습은 마치 모세(출4:1-17)와 기드온(삿6:15)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모세도 자신이 말을 잘할 줄 모른다는 이유를 들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찍이 모세와 기드온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예레미야와도 함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시며 그를 예언자로 부르셨다(렘1:8).

예레미야는 소명체험에서 두 가지 환상을 보았다. 하나는 살구나무 가지이고, 다른 하나는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였다.

11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12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13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하니 14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렘1:11-14)

히브리어로 ‘살구나무’(샤케드, 11절)는 ‘지키다’(쇼케드, 12절)와 언어유희를 이룬다. 즉 예레미야가 보았던 살구나무를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말을 신실히 지킬 것을 예레미야에게 약속하고 있다. 하나님이 무엇을 신실하게 지킨다는 것인가? 그것은 장차 예루살렘에 임할 재앙을 말한다. 예루살렘은 난공불락의 요새이지만 북쪽은 경사면으로 이루어져 있어 적의 공격에 취약하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 북쪽은 늘 재앙을 뜻하는 방향이다. 일찍이 아시리아의 침략도 북쪽으로부터 있었고, 앞으로 있을 바벨론의 침략 또한 북쪽에서부터 있을 것임을 말하고 있다. 예루살렘 주변을 보면, 서쪽은 대해(=지중해)이고 동쪽과 남쪽은 광야이기 때문에 대규모의 적이 몰려올 수 있는 방향은 언제나 북쪽이다. 예레미야는 북쪽에서부터 시작될 끓는 가마, 곧 재앙을 보았던 것이다.

 

광야의 혼인 시절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광야 시절을 하나님과의 신혼 시절, 즉 첫 사랑의 시기로 묘사했다.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렘2:2)

이는 8세기의 예언자 호세아도 마찬가지다(호2:14,19-20; 13:5). 호세아와 예레미야는 모두 변절한 이스라엘을 향해 ‘여호와께 돌아오라’, ‘회개하라’고 부르짖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과 유다의 관계를 부부관계로 본 점(렘2:2. 참고 호2:16; 9:10; 11:1-2)이나 우상숭배자를 변절한 창녀로 본 점(렘2:33. 참조 호5:3-7)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점 등에서 호세아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성전설교, 여호와의 성전이라는 거짓말

예레미야의 말씀 중에는 예루살렘 성전 문에 서서 예배하러 오는 백성들을 향해 외쳤던 두 번의 성전 설교(Temple Sermon)가 있다(렘7장, 26장). 예레미야는 아마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성전으로 와야 했던 삼대 명절(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중 하나를 맞아 설교했을 것이다. 여호야김의 통치 초기(기원전 609-608년)에 예레미야는 성전 안뜰로 들어가는 여러 문 가운데 하나에 서서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아 전했다. 신명기 12장과 열왕기상 8장 29절에 따르면 하나님이 성전에 계시겠다고 약속하시지만, 이것이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무조건 제외된다는 보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일찍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 이스라엘의 성소는 실로(Siloh)에 있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에 회막을 세웠으며 그 땅은 그들 앞에서 돌아와 정복되었더라”(수18:1).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둔 처소라는 점에서 예전의 실로는 예루살렘 성전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러나 실로는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파괴되었다(삼상1-3장). 예레미야는 실로가 심판을 받았던 것처럼 예루살렘도 하나님의 심판을 비껴갈 수 없음을 역설했다.

4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11내 이름으로 일컫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2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보라(렘7:12)(렘7:4,11-12)

예레미야의 눈에 비친 성전은 더 이상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소가 아니었다. 세 번씩이나 거듭해서 나타나는 ‘여호와의 성전이라’는 말은 거짓 예언자들의 거짓말에 불과할 뿐이었다. 일상의 삶이 하나님을 떠나 부패해 있으면서 하나님의 성전을 찾아나오는 것으로 그들의 신앙을 지킬 수 있다고 스스로 속아 넘어가는 백성들에 대한 질타였다. 이는 성전에서 단순히 절기를 지키는 행위로 참다운 예배를 대체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8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 9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10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렘7:8-10)

여기서 예레미야는 당시 예언자들의 선포와 백성의 통념을 거짓으로 규정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 사람들이 하나님의 집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예수께서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비유한 것은 이 말씀을 인용하신 것이다.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막11:17). 급기야 하나님은 예전의 성소가 있던 실로에 행하셨던 것처럼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떠나버리실 것이고, 북이스라엘 백성(=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내신 것 같이 유다 백성을 예루살렘에서 내어쫓으시리라고 하신다.

14...너희가 신뢰하는 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곳에 행하겠고 15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낸 것 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렘7:14-15).

 

두 번째 성전설교, 성전이 무너진다

4너는 그들에게 이와 같이 이르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내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며 5내가 너희에게 나의 종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의 말을 순종하라고 하였으나 너희는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6내가 이 성전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을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렘26:4-6)

예루살렘 성전을 비판하는 예레미야의 설교는 다시 이어졌다. 이번에는 훨씬 비판의 강도가 커졌다.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행한 이 말을 들은 제사장들과 여러 예언자들, 백성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 성전이 실로 같이 되겠고 이 성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리라 하느냐 하며 그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예레미야를 향하여 모여드니라 (렘26:9)

 

급기야 그들은 예레미야를 죽이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지방의 장로 중 몇 사람이 예레미야를 옹호했다. 그들은 예전 미가 예언자의 예언을 선례로 들며 예레미야를 죽이지 못하게 했다.

17그러자 그 지방의 장로 중 몇 사람이 일어나 백성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18유다의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의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시온은 밭 같이 경작지가 될 것이며 예루살렘은 돌 무더기가 되며 이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숲과 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19유다의 왕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가 그를 죽였느냐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언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가 이같이 하면 우리의 생명을 스스로 심히 해롭게 하는 것이니라(렘26:17-19)

그들의 말에 따르면, 예언자 미가도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했지만 당시 히스기야 왕과 백성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예언자 미가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위험했는지는 20-23절의 상황에서 잘 나타난다.

20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한 사람이 있었는데 곧 기럇여아림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라 그가 예레미야의 모든 말과 같이 이 성과 이 땅에 경고하여 예언하매 21여호야김 왕과 그의 모든 용사와 모든 고관이 그의 말을 듣고서 왕이 그를 죽이려 하매 우리야가 그 말을 듣고 두려워 애굽으로 도망하여 간지라 22여호야김 왕이 사람을 애굽으로 보내되 곧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몇 사람을 함께 애굽으로 보냈더니 23그들이 우리야를 애굽에서 연행하여 여호야김 왕에게로 그를 데려오매 왕이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시체를 평민의 묘지에 던지게 하니라(렘26:20-23)

예루살렘과 그 성전에 대해 불길한 예언을 했던 이는 예레미야 뿐만이 아니었다. 기럇여아림 출신의 스마야의 아들이었던 예언자 우리야 또한 ‘예레미야의 모든 말과 같이’(렘26:20) 그 성과 그 땅에 경고했던 사람이었다. 예언자 우리야는 예레미야서에만 등장하는 인물로, 그의 예언은 왕과 고관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렘26:21). 그는 자신의 예언이 문제가 되자 이집트로 도망했으나, 여호야김 왕은 사람을 이집트로 보내 우리야를 연행해 왔고 직접 칼로 그를 죽이고 시체를 평민의 묘지, 즉 가난한 사람들의 묘지에 던져버렸다. 이 사건으로 인해 여호야김 왕은 예언자를 살해한 유일한 왕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그런 여호야김이 예레미야를 살해하지는 못했다. 우리야처럼 예레미야 역시 죽음의 위협에 놓여있었으나,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를 도와주어 그를 백성의 손에 내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렘26:24).

 

예레미야의 고백

   
▲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레미야는 예언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데에 따르는 어려움을 하나님께 솔직히 고백한 예언자였다. 예레미야서에는 그의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탄식 혹은 고백이 일곱 번에 걸쳐 나타난다: ①렘11:18-23 ②렘12:1-6 ③렘15:10,15-21 ④렘17:14-18 ⑤렘18:18-23 ⑥렘20:7-13 ⑦렘20:14-18). 그의 슬픔을 특별히 깊이 표현하는 이 단락들은 ‘눈물의 예언자’로 알려진 예레미야의 시 가운데 선별된 것들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Confessions of St. Augustinus)에 비견할 수 있다하여 전통적으로 예레미야의 고백(Confessions of Jeremiah)이라고 불린다.

<첫번째> 나는 끌려서 도살 당하러 가는 순한 어린 양과 같으므로 그들이 나를 해하려고 꾀하기를 우리가 그 나무와 열매를 함께 박멸하자 그를 살아 있는 자의 땅에서 끊어서 그의 이름이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함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렘11:19)

예레미야의 고향 아나돗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암살하려 했을 때의 고백이다. 예레미야의 설교가 자기 고향 사람들로부터의 죽음의 위협을 초래한 것이다. 이에 하나님은 오히려 아나돗 사람들을 벌하시고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고 응답하셨다(렘11:22-23).

<두번째>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렘12:1)

예레미야는 악한 자들의 잘됨을 두고 하나님께 물었다. 예레미야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분명 의로우신 분인데, 왜 하나님은 악인의 길을 형통하게 내버려두느냐고 탄식하며 물었다.

<세번째> 15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원하건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돌보시사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로 멸망하지 아니하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부끄러움 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 18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찌 됨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 (렘15:15,18)

예레미야 15장은 유다 백성을 외면하겠다는 하나님의 결연한 의지로 시작한다. 지금의 상황은 모세와 엘리야가 있어도 하나님의 마을을 돌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신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리리라(렘15:1)

왜 하나님께서 모세와 사무엘을 언급하셨을까? 모세와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들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백성을 위해 기도했다는 것이다(출32:11-14; 민11:2; 14:13-20; 삼상7:8-9; 12:23).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삼상20:7-8). 그처럼 위대한 지도자들이 유다 백성을 위해 기도하더라도 “죽을 자는 죽음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고(렘15:2), 하나님은 더 이상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렘15:5-9). 그만큼 유다를 벌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결심은 견고했다.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결심 때문에 예레미야는 탄식한다. 예레미야가 만난 하나님은 마치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a deceitful brook)와 같은 분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시내(와디)는 비가 오면 생겨났다가도 비가 그치면 흔적만 남고 물은 금방 사라져버리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네번째> 14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15보라 그들이 내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느냐 이제 임하게 할지어다 하나이다(렘17:14-15)

<다섯 번째>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하는 계략을 주께서 다 아시오니 그 악을 사하지 마옵시며 그들의 죄를 주의 목전에서 지우지 마시고 그들을 주 앞에 넘어지게 하시되 주께서 노하시는 때에 이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하니라(렘18:23)

네 번째 고백에는 예레미야가 대적자들로부터 받는 조롱이 담겨있다. 대적자들은 예레미야가 말한 재앙이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자,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조롱했다. 물론 재앙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다행스런 일이고, 실제로 예레미야는 자기가 예고한 재앙이 실제로 닥치기를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거짓예언자들로부터 거짓예언자로 낙인찍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치욕을 갚아주실 것을 간구했다. 이 간구는 다섯 번째 고백(렘18:18-23), 즉 원수를 벌해달라는 기도로 이어졌다.

<여섯번째> 7주님, 주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주께 속았습니다. 주께서는 나보다 더 강하셔서 나를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들이 날마다 나를 조롱합니다. 8내가 입을 열어 말을 할 때마다 '폭력'을 고발하고 '파멸'을 외치니, 주의 말씀 때문에, 나는 날마다 치욕과 모욕거리가 됩니다. 9'이제는 주님을 말하지 않겠다. 다시는 주의 이름으로 외치지 않겠다' 하고 결심하여 보지만, 그 때마다, 주의 말씀이 나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속에까지 타들어 가니, 나는 견디다 못해 그만 항복하고 맙니다.(렘20:7-9. 표준새번역)

<개역성경>에서는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라고 번역했지만, 히브리어 ‘파타’에는 ‘속이다’라는 뜻이 들어있다. 실제로 예레미야의 고백 속에는 하나님께 속아서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예레미야는 ‘다시는 하나님께 속아서... 여호와를 선포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그의 불붙는 중심은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의 사명을 그만두지 않게 만들었다.

<일곱번째> 14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15나의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당신이 득남하였다 하여 아버지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17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머니를 내 무덤이 되지 않게 하셨으며 그의 배가 부른 채로 항상 있지 않게 하신 까닭이로다 18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 하니라(렘20:14-18)

마지막 일곱 번째 고백은 자기 생일을 저주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예레미야는 예언자로서의 자기 직무 전체를 포기하고 싶어하는 고뇌와 슬픔을 말한다. 그의 탄식은 자신의 생일을 저주했던 욥의 탄식과 닮아 있다.

<욥> 1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2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 3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 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리하였더라면...11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욥3:1-3,11)

 

상징적 행동

예레미야서는 다른 어느 예언자보다 상징적 행동을 많이 담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썩어서 못쓰게 된 허리띠(렘13:1-11) 외에 독신 생활(렘16:1-13), 깨진 옹기(렘19:1-13), 목에 건 줄과 멍에(렘27:1-15, 아나돗의 밭을 산 일(렘32:1-15), 축대에 감춘 큰 돌들(렘43:8-13), 유브라데 강에 던진 책(렘51:59-64) 등에 나타난다.

1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베 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고 물에 적시지말라 하시기로 2내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띠를 사서 내 허리에 띠니라 3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4너는 사서 네 허리에 띤 띠를 가지고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거기서 그것을 바위 틈에 감추라 하시기로 5내가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가서 그것을 유브라데 물 가에 감추니라...(렘13:1-5)

강가에 감추어둔 띠는 이내 썩어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띠가 사람의 허리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이 하나님께 속해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 썩어서 더 이상 사용하게 될 수 없음을 말한다(렘13:11). 여기서 유브라데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강이 아니라 이스라엘 아나돗 지역에 있는 요단강의 한 지류를 말한다. 이 강을 유브라데라고 말하는 이유는 앞으로 있을 바벨론 지역으로의 포로생활을 암시하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독신으로 삶을 마감한 예언자였다. 그의 독신 생활은 그 자체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조짐을 상징하는 행동이었다(렘16:1-13). 하나님은 예레미야로 하여금 가정생활을 포기하게 하셨는데, 이러한 독신의 삶은 단지 예언자직을 수행하는 데에 가족이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하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장차 유다 백성이 당할 미래의 재난을 앞질러 보여주는 것이었다.

1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너는 이 땅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지니라 3이 곳에서 낳은 자녀와 이 땅에서 그들을 해산한 어머니와 그들을 낳은 아버지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오니 4그들은 독한 병으로 죽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며 묻어 주지 않아 지면의 분토와 같을 것이며 칼과 기근에 망하고 그 시체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되리라(렘16:1-4)

예레미야의 독신 생활은 단순히 결혼을 포기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상가에도 들어가지 말고 그들을 위해 애곡하지 말라고 하셨다(렘6:5-7). 또한 이웃의 잔치에도 참여하지 못하게 하셨다(렘6:8-9). 이와 같은 조문이나 장례풍습, 결혼잔치 등 평범한 일상생활 조차도 자유롭게 따르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장차 유다에 임하게 될 심판의 상황을 예언자의 삶을 통해 미리 일러주신 것이다.

예레미야가 토기장이를 방문한 것도 상징적 행동이다(렘18-19장). 토기 제작은 고대 이스라엘의 일상적인 활동 가운데 하나였다. 이 일상의 생활을 통해 예레미야는 모든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하나님의 손 안에 놓여있는지를 보여주며, 특히 토기가 깨어지면 다시 만들 수 없다는 비유를 포함하는 것으로,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한 것임을 보여준다.

10너는 함께 가는 자의 목전에서 그 옹기를 깨뜨리고 11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읍을 무너뜨리리니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하리라(렘19:10-11)

그런데 예레미야 18장과 19장의 토기장이의 비유는 강도의 차이가 있다. 18장에 나타나는 토기장이의 질그릇은 바라던 모양대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경우 다시 다른 모양으로 만들 수 있음을 말하지만(렘18:4), 19장의 옹기는 이미 구운 것이어서 흠이 있거나 용도에 맞지 않을 경우 깨뜨려 버릴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한번 깨져버린 옹기가 다시 사용될 수 없는 것처럼, 왕국의 멸망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임을 말한다. 심판의 강도가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거짓 예언자들과 싸우다

10...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욕심내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11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8:10-11)

8나와 너 이전의 선지자들이 예로부터 많은 땅들과 큰 나라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9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거짓 예언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받게 되리라(렘28:8-9)

거짓예언자가 비단 예레미야서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레미야는 처음으로 참예언자와 거짓예언자를 구별한 예언자이다. 당시 남왕국의 국록을 먹으면서 거짓예언을 했던 예언자들은 ‘만사가 잘 되고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라는 식의 샬롬(shalom)의 예언을 했다(렘4:10; 6:14; 8:11; 14:13; 23:17; 28:8-9). 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평화, 평강을 외치던 때에 예레미야는 대부분 불길한 예언, 앤샬롬(no-peace), 즉 평화 부재의 예언을 했다. 그것이 하나님이 그에게 맡기신 말씀이었다. 그는 진실을 말하는 입술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현실, 제도와 의식과 거짓으로 가득 찬 ‘도적의 굴혈’같은 종교현실에서 끝까지 절망하지 않고, 패망으로 치닫는 조국을 향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올 것을 외쳤다(렘7장).

물론 예레미야 시대에 모든 예언자들이 거짓예언자였던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스마야의 아들 예언자 우리야도 ‘예레미야의 모든 말과 같이 이 성과 이 땅에 경고했던’ 참예언자였다. 하지만 그들은 소수였다. 다른 대다수의 거짓 예언자들이 평화를 운운하던 때에 평화의 부재를 예언하고, 앞으로 닥치게 될 국가적인 대재난 역시 유다왕국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말한 예레미야는 심지어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기까지 했다.

6이제 내가 이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또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섬기게 하였나니 7모든 나라가 그와 그의 아들과 손자를 그 땅의 기한이 이르기까지 섬기리라 또한 많은 나라들과 큰 왕들이 그 자신을 섬기리라(렘27:6-7)

예레미야는 자신의 목에 줄과 멍에를 걸었을 뿐만 아니라 시드기야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여러 나라의 사신들에게도 앞으로 느부갓네살의 통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일러주었다. 장차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고 그 멍에를 메지 않는 백성과 나라는 하나님이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 민족을 벌할 것이라고 말했다(렘27:8).

 

이집트에서 이집트로

시드기야 왕과 백성들은 바벨론에게 항복하라는 예레미야의 말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공격할 때 예레미야는 이미 감옥에 갇혀 있었다. 예레미야 자신도 유다왕국이 바벨론에게 멸망하지 않기를 원했지만, 결국 그의 예언은 역사적 현실이 되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무너지고 남왕국 유다가 멸망한 것이다(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에 석방된 예레미야는 유다 땅에 남아 하나님의 벌을 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유다의 총독으로 임명된 그다랴가 이스마엘을 중심으로 한 일당들에 의해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요하난을 비롯한 군 지휘관들이 유다 땅에 머무르라는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않고 유다의 남은 자들을 이끌고 달아났다. 바벨론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노소를 막론하고 백성과 군대 장관들이 다 일어나서 애굽으로 갔으니 이는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함이었더라”(왕하25:26).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유다 땅에 머물라는 말씀을 전했으나 억지로 이집트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예언 활동을 하다가 삶을 마감했다(렘43장 이하).

4이에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군 지휘관과 모든 백성이 유다 땅에 살라 하시는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5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군 지휘관이 유다의 남은 자 곧 쫓겨났던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유다 땅에 살려 하여 돌아온 자 6곧 남자와 여자와 유아와 왕의 딸들과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맡겨 둔 모든 사람과 선지자 예레미야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거느리고 7애굽 땅에 들어가 다바네스에 이르렀으니 그들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함이러라 (렘43:4-7)

예레미야서에 나타나는 유다 백성과 예언자 예레미야의 최종 거주지는 이집트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이집트에서 끝을 맺는다는 것은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집트가 어떤 곳인가? 노예생활과 학정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의 선조들이 뛰쳐나온 곳이자,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시작이 펼쳐진 곳이다. 출애굽 사건을 이스라엘의 뿌리경험(root experience)이라고 한다면, 엄밀히 말해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이 있었던 바로 그곳이다. 백성이 이집트로 가서 거주하게 된다는 것, 그것은 신명기가 말하는 마지막 심판의 말씀이기도 하다.

여호와께서 너를 배에 싣고 전에 네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네가 다시는 그 길을 보지 아니하리라 하시던 그 길로 너를 애굽으로 끌어 가실 것이라 거기서 너희가 너희 몸을 적군에게 남녀 종으로 팔려 하나 너희를 살 자가 없으리라 (신28:68)

이집트에서 이집트로!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나온 백성이 이집트로 돌아간다는 것은 최악의 저주이다. 포로기 이후 유다인공동체는 팔레스틴 공동체, 바벨론 공동체, 그리고 이집트의 엘레판틴 공동체로 나뉘게 된다.

 

새 언약과 희망

예레미야가 유다왕국을 향해 항상 불길한 심판의 예언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예레미야는 또한 희망의 길을 열어놓았다. 그는 유다 백성이 다른 신들을 버리고 회개하여 하나님에게 돌아온다면,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을 용서하리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유다의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했다. 포로로 끌려가 있는 자들에게 편지를 통하여 그곳에서 희망을 잃지 말고 살아갈 것을 권했다.

5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6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7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렘29:5-7)

바벨론 포로지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않게 하라’는 말씀은(6절) 훗날까지 모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Diaspora Jews)의 모토가 되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게 끌려간 자들에게 ‘칠십 년’이 지나면 그들이 가나안으로 돌아올 것과 하나님이 다시 유다 백성들을 만나주실 것이라고 했다(렘29:10-14). 예레미야가 밭을 사는 이야기 또한 희망의 메시지를 이어간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게 함락되기 직전에 은 십칠 세겔을 주고 아나돗에 있는 밭을 샀다(렘32:9). 이는 유다의 미래가 전격적으로 회복되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동이자 메시지였다.

14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봉인하고 봉인하지 않은 매매 증서를 가지고 토기에 담아 오랫동안 보존하게 하라 15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니라(렘32:14-15)

예레미야 30-33장은 ‘위로의 책’(The Book of Consolation)이라고 불린다. 이중 31장에는 새 언약사상(New Covenant)이 등장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배신행위가 너무 커서 계약 자체가 무효화되었다고 보았고,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과 새 언약을 맺을 구원의 시기가 올 것을 기대했다.

3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1:31-34)

이는 단지 언약이 갱신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옛 언약과는 다르다는 의미에서 새언약이다. 옛 언약이나 새 언약 모두 하나님과의 기본적인 관계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돌판 위에 새겨진 옛 언약은 문자적인 법을 준수하는 것이었으나, 마음에 새겨지는 새 언약은 그 마음이 움직여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새 언약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든 사람이 알게 하며, 또 하나님이 과거지사를 이미 용서하셨기 때문에 과거의 문제, 죄가 다시는 논의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다. 후에 신약성경(=새언약, The New Covenant/Testament)이라는 이름은 바로 이 예레미야의 말씀에서 생겨난 것이다.

  

   
 

<서평>

-어느 시골 마을 목사,『그때 그들이 흘려들었던 예언자의 소리』를 읽고 새기며...-

보러가기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1281

 

 

 

이종만 봉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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