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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공유에 관한 개인적 단상

기사승인 2024.07.06  00:43:56

이경우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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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이후, 2011)

   언젠가 읽었던 타인의 고통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 이유는 다시금 생각해보는 ‘타인의 고통’에 관한 생각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고통에 관한 질문에 빠질 수 없는 핵심적인 질문이다. 그리고 그 대답은 여전히 찾고 있는 중이다. 

   고통에 대한 해석학적 관점이 있다. 대충 그것은 고통은 개인적이고 현상학적인 것이라 공유할 수 없기에 오로지 필요한 것은 연대라는 것인데, 논문을 준비할 때 참고 한 것이니 정확한 내용은 휘발되어 사라졌기에 자세한 것은 독자들의 몫으로 돌린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번 책인 “타인의 고통”인데, 조금은 지난 이야기지만 읽게 된 계기가 있다. 언젠가 뉴스에 신림동에서 칼부림으로 인한 기사가 난 적이 있다. 꽤나 충격적인 사건이였고 그 후로 ‘살인예고’와 같은 형태가 등장하게 되면서 사회 전체가 경직되고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떤 적이 있다. (과거형으로 표현하였으나, 지속되는 중일지도 모른다) 

   시대의 발전에 따라서 많은 블랙박스와 거리의 CCTV 영상이 SNS에 떠돌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나도 그 영상을 친구들의 공유에 따라 카톡방에 올라오게 된 것을 경험했다. 개인적으로 보지 않았지만 그 순간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 떠올랐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너무나 쉽게 소비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쩌면 유희의 종류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필자의 친구들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아무튼 중요한 지점은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그 영상을 보는 것으로 말미암아 “나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라는 위안만을 얻을 뿐이다. 

   수잔 손택의 말에 따라 해석한다면 앞서 말한 위안의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미디어나 광고로 자주 나오는 자선사업 종류일 것이다. 아프리카 또는 생계가 어려운 사람에게 모금을 요구하는 광고의 내용은 사람들로 하여금 연민을 불러오면서 모금을 하게 만든다. 아마 수잔 손택의 책 내용에서 나오는 것 중의 하나가 이러한 미디어는 연출될 수 밖에 없는 한계다. 그런 점에서 아프리카 아동들은 항상 배가 고파야 하며 생계가 어려운 친구는 공병을 줍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결국 수잔 손택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무감각 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저 보는 것으로 말미암아 연민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마사 누스바움의 말처럼 연민은 자신과 상대방을 구분 짓는 무의식적 행위라고 한다면 오늘날 사회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비극과 안타까운 사건들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결코 단순하게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경우 (청년)
   

이경우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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