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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소리

기사승인 2024.07.07  23:54:54

김진양 연합감리교회 세계선교부 정의평화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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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소리>, 엔도 슈사쿠, 김승철 역, 동연출판사, 2016)

그동안 엔도 슈사쿠의 <침묵>은 박해, 순교, 배교와 같은 묵직한 주제를 둘러싼 신의 침묵으로 읽혀왔다. 그러나 엔도는 <침묵>의 집필동기와 배경을 설명한 <침묵의 소리>에서 이는 자신이 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번역자 김승철 교수는 <침묵의 소리>에서 엔도가 정작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신은 침묵 속에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은 침묵 속에서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침묵>은 신념이 강한 순교자들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전통적인 신앙에 도전하면서 신념이 약하여 또는 다른 여러가지 이유들로 배교한 배신자들 역시 그리스도인들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엔도의 중심 메시지는 <침묵> 마지막에 수록된 17세기 일본 고문서 자료집인 “기리시단 거주지 관리인의 일기”(이후 관리인의 일기)에서 잘 드러난다. 관리인의 일기에서 두 주인공 로드리고와 기치지로에 대한 묘사, 즉 배교자 역시 그리스도인이라는 등장 인물의 성격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관리인의 일기는 <침묵>의 한국어 번역판에서는 누락되었고, 윌리암 존스톤 신부의 영문 번역판에는 부록으로 간주된 반면, 사실 <침묵>의 가장 중심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침묵의 소리> 한국어 번역판에 국내 최초로 관리인의 일기가 수록된 것은 이 책은 가장 큰 공헌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소설 <침묵>의 중간 부분에서 배교를 밥 먹듯이 하는 기치지로는 “너는 그리스도인인가?” 라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한다. 거친 파도의 한 복판에서 “그라치아”와 “산타 마리아”를 중얼거리지만  기치지로는 자신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거듭 말한다. 그는 신념이 강하여 순교한 자신의 가족과 달리 후미에(일본의 그리스도교 박해시대에 성화를 발로 밟아 그리스도교인이 아님을 증명하는 행위)를 밟았다. 그러나 관리인의 일기는 이후 기치지로가 외면은 배교자의 모습으로 보이지만, 정작 내면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기치지로에게 여전히 그리스도인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관리인의 일기에서 기치지로는 정기적 신자 색출 의식 중 품 안에 몰래 간직한 자그마한 성물이 발각되어 감옥으로 잡혀가게 되고, 마타베라는 인물에게 그리스도의 신앙을 전수한 의혹도 받는다.

로드리고는 기치지로의 도움으로 일본에 들어오지만, 결국 그의 배반으로 인해 스승 페레라 신부처럼 순교가 아닌 배교의 길을 걷게 된다. 기치지로로 인해 로드리고 신부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변화를 경험한 것이다. 그는 더이상 전통 기독교 신앙의 독선적인 사제가 아니라, 배교한 사제이지만 약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게 된다. 배교 후 로드리고 신부의 삶은 관리인의 일기에 아주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로드리고는 그리스도인 거주지에서 반복되는 후미에 밟기와 지속적인 배교에도 불구하고 신부로의 삶을 이어간다.

전통적으로 선교는 서양에서 동양으로, 유럽이나 북미에서 아프리카로, 강자에서 약자로, 부자에서 가난한자로 복음이 전가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예수가 이방인 여인에게서  배운 것처럼(마태복음 15:21-28), 기치지로와 같이 약하고, 소외되고, 버려진 사람들도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쓰임 받는 소중한 일꾼이 되기도 하기에, 그들을 하나님 선교의 일꾼으로 세우시는 침묵의 소리를 듣게 된다.

김진양 (연합감리교회 세계선교부 정의평화국장)

김진양 연합감리교회 세계선교부 정의평화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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