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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토에 갇힌 한국교회, 탈출할 수 있을까?

기사승인 2024.07.09  00:15:54

이광섭 h-stai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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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신교 근본주의>, 배덕만 지음, 대장간, 2019)

코로나 이후 한국교회의 생명력과 건강함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 찾는 이들에게 필자는 게토(ghetto)가 된 교회를 극복하는 게 길이 아니겠느냐고 대답을 해왔습니다. 지금껏 한국교회는 자기 지역과 마을을 외면하고 구름 저편 하늘만을 찾아왔습니다. 애초부터 한국교회가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교회는 매우 지역적이었고, 매우 상황적이었습니다. 한국교회는 민족과 사회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지역사회에 적합한 상황 신앙을 구축했습니다. 사회 변화에 민감하고, 민족과 운명을 같이하는 민족교회로서의 위상을 확실하게 정립해왔습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비약적 성장을 이루면서 사회의 변화에 둔감한 비 상황적 교회가 한국교회의 주류로 확실히 자리 잡았습니다. 공적인 영역을 신앙에서 밀어내고 초월성만 강조하는 교회로 자신을 규정하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이는 한국교회 안에 내재하고 있는 근본주의 신앙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교회 부흥회에 참석했던 기억이 납니다. 낮 성경 공부 시간이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예배당에 들어갔습니다. 강사님은 칠판에다가 알 수 없는 도표와 그림을 잔뜩 그려가면서 종말의 때를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강의는 근본주의에서 말하는 세대주의 종말론이었습니다. 천년왕국과 7년 대환난 이야기였지요. 그날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는 성도들 모습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교회 안에 팽팽했던 영적 긴장감도 떠오릅니다. 어린 나에게도 두려움과 기대감이 마구 밀려오는 게 느껴졌을 정도니까요. 그날의 경험은 내 마음 한구석에 종말을 규정하는 중요한 소스가 되었습니다. ‘종말이란 모든 게 불타고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는 걸 말하는 것이구나!’

마음 한편에 깊이 묻혀있던 종말에 관한 기억이 불쑥 고개를 내민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녹색 신앙, 녹색 교회를 강조하면서 몇몇 교인들이 던지는 질문을 통해서였지요. 아무리 생태신앙을 강조하고 창조 세계를 회복한다고 해도 마지막 종말에는 모두 불타 없어지고 말 텐데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물질세계가 불타 없어지는 날, 구원받은 사람은 현재의 물질세계와 육체에서 탈출할 것이라는 근본주의 종말 의식은 광범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종말 의식은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녹색 신앙 실천은 물론이고,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신앙의 결단을 무익한 것으로 만듭니다. 오히려 하나님 구원의 경륜을 훼방하는 불신앙적인 일로 규정당하기까지 합니다. 복음적이고 역사 속에서 나름 역할을 해온 한국교회의 다양한 신앙 전통들이 근본주의의 눈치를 봅니다. 

근본주의는 한국교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한국교회의 핵심적인 현상입니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근본주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기본 자료가 상당히 빈약합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근본주의 신앙 자체가 깊은 신학적 성찰을 필요로 하거나, 복잡한 역사를 규명하는 작업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신학자들 또한 근본주의 신학에 딱히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근본주의 신앙은 반지성주의라는 딱지가 늘 따라다녔고, 실제로 미국에서는 최근까지도 소수자의 방어신앙이란 의식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배덕만이 저술한 소책자 《한국개신교 근본주의》는 미흡하긴 하지만, 근본주의를 이해하는 가이드로 나름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습니다. 

《한국개신교 근본주의》는 모두 3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미국 개신교 근본주의, 2장-한국개신교 근본주의 형성과정, 3장-한국개신교 근본주의 특징.’ 배덕만은 한국개신교 근본주의를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의 전적인 이식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의 기원과 형성과정을 살펴본 후에 그것이 한국에 어떻게 전래하였고, 한국교회가 어떻게 근본주의화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한국전쟁을 통해 근본주의가 반공주의와 견고한 결합을 하였다는 점입니다. 그 이후 한국개신교 근본주의는 공산주의 반대를 전면에 내세우는 교회로 자리 잡습니다. 

이후 한국개신교 근본주의는 ‘4가지를 전적으로 배격’하는 데 이르게 됩니다. 진화론과 공산주의, 동성애와 이슬람이 그것입니다. 근본주의가 자신을 방어하는 데서 출발하긴 했지만, 배격과 혐오를 신앙의 전면에 내세우면서 한국교회의 게토화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습니다. 사랑과 화해라는 교회의 근본정신은 뒤로 밀려나고, 방어와 혐오가 한국교회의 전면을 장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인 교회 공동체의 변질을 용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국교회는 다양한 교파, 다양한 신학적 입장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해방 이후 하향 평준화된 근본주의 신앙으로 수렴되고 말았습니다. 근본주의에 빠진 한국교회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강한 분리주의와 독선적 모습을 자기 정체성이라고 날마다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복음의 자기 분열 증상이기도 합니다. 근본주의는 교회 내부는 물론이고 사회를 향해서 숱한 모순을 드러낸 채, 자기 벽만 높이 쌓아가고 있습니다. 그 모순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얼마나 큰 부메랑이 되어 한국교회로 돌아오게 될지 여전히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습니다. 

이제 근본주의가 가진 신앙의 순수한 열정은 긍정의 에너지로 받아들이되, 복음의 본질이 더는 훼손되지 않도록 복음을 제대로 드러내는 일에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근본주의의 모순을 언급하는 배덕만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근본주의가 얼마나 허약하고 부실한 것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유사 복음은 이제 스톱! 하고 진짜 복음으로 세상을 살려야 할 때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는 생물학적 진화론에 맹공을 퍼부으면서, 사회적 진화론에 기초한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맹목적 지지를 선언하는 근본주의의 이중적 모습을 진지하게 반성할 때가 되었다. 하나님의 섭리를 부정하는 생물학적 진화론을 기독교의 근간을 위협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승자독식과 적자생존을 기초 원리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또한 생존과 공존을 지향하는 창조 섭리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근본주의자들이 잊어서는 안 된다.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p.72) 

이광섭목사 / 전농감리교회

이광섭 h-stai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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