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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에 대한 상처로 상담 공부한 가족심리상담사 김순임 실장

기사승인 2024.07.10  22:00:42

최윤희 aa2291415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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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오빠에 대한 상처로 상담 공부한
가족심리상담사 김순임 실장

아픈 사람이 많은 교회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꿈을 이뤘어요”

 

 

요즘은 교회 안에서 상담실을 운영하는 경우가 꽤 많다. 김순임 실장도 교회 안에서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만큼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이 아닐까? 이제 오픈한지 9개월 정도 됐다고 하는데, 어떻게 교회에서 상담실을 오픈하게 됐고, 그녀의 상처는 무엇이었으며, 기억에 남는 내담자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등을 물어보았다.

글. 최윤희(계간 ‘치유’ 편집장) │사진. 이종관

 

   
 

집안에 우환이 찾아오다

“제가 상담공부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용서하지 못함이었어요. 저희 둘째 오빠를 용서하지 못했거든요. 저는 5남 1녀 중 다섯째예요. 집에서 유일한 딸이죠. 그런데 집안에 우환이 좀 많았어요. 큰오빠와 넷째 오빠가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넷째 오빠는 암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사업에 실패하면서 경제사범으로 쫓겨 다니셔서 넷째 올케언니와 아이들이 우리 집에서 살았고, 부모님은 넷째 오빠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 주면서 집안이 어려워졌어요. 게다가 저랑 6살 차이 나는 남동생도 사업을 했는데 어려웠어요. 그러면서 동생네 부부가 이혼을 하느니 마니 해서 부모님이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집안에 우환이 많다 보니 저희 아빠가 술로 생활하시는 날이 많았어요. 밥을 안 드시고 술만 드시니 살도 많이 빠지시고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시다 보니 우울증도 굉장히 심하게 오고, 방에서 밖에 있는 화장실도 못 가실 정도로 쇠약해지셔서 엄마가 방에 요강을 갖다 놓으실 정도가 되셨어요. 아빠가 갑자기 악화되신 건 아빠가 공무원이셨는데, 평소 남들 시선을 많이 의식하시던 분이셔서 더하셨던 것 같아요.”

 

예수에 미친 딸

그녀의 아빠는 그녀를 너무 좋아하셨다고 한다. 하나밖에 없는 고명딸이니까.
“저는 그때 당시 교회에 미쳐있었어요. 그때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는 주5일 근무제가 아니라 토요일까지 근무하던 시절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다음 날 교회를 가야 하잖아요. 그러면 하루 종일 교회에 있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아빠를 만나러 갈 시간이 많지 않았어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집이 포천이었는데 서울로 유학을 오면서 가족과 떨어져 지냈어요. 아빠는 저를 너무 좋아하셔서 자주 보고 싶어 하셨지만, 제가 평일에는 직장 다니고 주일에는 교회 다니니까 집에 못 가서 자주 못 뵈었어요. 그래서 아빠는 저한테 그러셨죠. ‘내 딸을 예수한테 뺏겼다’고.”

아빠가 아플 때 2주에 한 번씩 갔는데 목욕을 시켜드려야 했다.

“아빠가 커피를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커피믹스를 좋아하셨는데 커피도 타드리고 식사하실 땐 생선도 발라 드렸어요. 식사를 다 하고 났는데 아빠가 갑자기 저한테 5만 원짜리 한 장을 주시더라고요. 차비해서 가라고. 그래서 그걸 들고 집에 왔는데 그날 새벽에 주무시다 돌아가셨어요. 저는 아빠한테 너무 죄송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자주 찾아뵀어야 했는데 하는 마음에...”

 

둘째 오빠를 미워하다

집안에 우환이 많으니까, 그녀의 엄마가 정신적으로 무너졌다.

“엄마는 음식을 드시지 않으셨고 치매가 오기 시작하셨어요. 그러니까 누군가는 엄마를 돌봐야 하잖아요. 일단 둘째 오빠가 엄마를 모셨어요. 그런데 오빠랑 언니가 직장을 다니니까 제대로 모시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엄마는 치매가 심해지시면서 밤에 주무시지 않고 거실에다 소변을 보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오빠 부부는 엄마를 모실 수 없다고 얘기했어요. 그래서 제가 엄마를 모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둘째 오빠가 지금도 두 가지가 기억나는데, ‘너, 오빠 얼굴에 먹칠할래?’라고 했어요. ‘아들이 있는데 딸이 엄마를 모시고 간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하겠냐?’는 이유 때문이었어요. 또 하나는 우리 집이 좁다고 하면서 ”엄마까지 모시고 애들하고 어떻게 사니?‘였어요. 게다가 ‘너 혹시 돈을 바라고 그러는 거니?’, ‘엄마, 아빠 재산 정리해서 넓은 집으로 이사 가려고 그러는 거니?’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거예요. 제겐 엄청나게 큰 상처였어요. 이 상처가 오빠에 대한 미움으로 자라기 시작했고 용서가 안 됐어요. 그래서 제가 오빠에 대한 미움 때문에 1년 동안 오빠를 찾지 않았어요. 그리고 엄마는 요양원으로 가셨어요. 그리고 1년 반 동안 요양원에 계셨어요. 저는 오빠에 대한 미움의 마음이 커지면서 오빠를 점점 더 용서할 수 없게 됐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단다.

“하나님, 저는 제 사랑으로 사랑할 수가 없고 용서가 안 돼요. 하나님의 사랑을 주세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주세요. 교회 가면 몇 시간이고 울었어요. 그랬더니 교회에서 집사님과 권사님들이 ‘무슨 일 있냐?’, ‘왜 그렇게 우냐?’고 하고 저희 남편에게 이유를 물어보기도 하셨어요. 오빠를 못 보는 1년 동안 저희 시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오빠한테 연락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남편이 연락했더라고요. 둘째 오빠랑 큰 조카가 장례식장에 들어오는데 너무 애처롭고 안쓰러운 거예요. 오빠의 처진 어깨를 보고 더 그렇게 느꼈나 봐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게 하셨어요. 긍휼함을 주신 거예요. 그래서 그날 용서하지 못했던 게 싹 내려갔어요. 하나님이 그렇게 제 상처를 씻어주셨어요.”

 

   
 

아픈 사람이 너무 많아 상담을 시작하다

그녀는 상담을 하기 전에 방문교사를 했다.

“교회도 다니고 성경책도 있고 십자가도 있는데, 사람들이 어둡고 행복하지가 않아 보이는 거예요. 이게 뭘까? 하나님께서 세상과 구별된 평안과 안식을 주셨다고 하셨는데, 화목하라고 하셨는데, 믿음의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고 화목하지 않는 게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원치 않은 상황 속에서 받았던 상처들이 회복되지 않고, 건강하게 흘려보내지 못함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려운 분들이 많은 거예요.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관계에 그들의 상처와 아픔들이 걸림돌이 돼가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걸 보게 하셨고, ‘너는 교회 안에서 상담사 역할 뿐 아니라, 가정사역자야!’라는 말씀을 주셨어요.”

 

혹시 상담하시면 안 돼요?

그녀가 둘째 아들 입시상담을 갔을 때였다.

“둘째 아들 입시상담을 갔는데, 교육대학원 교수님과 상담대학원 교수님이 계셨어요. 상담대학원 교수님이 제 아들 입시상담을 하면서 ‘어머님, 혹시 상담하시면 안 돼요?’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학교 상담대학원을 갔어요. 그 교수님 밑에서 배웠어요. 상담 공부를 하면서 ‘하나님, 저는 믿는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가 있는 곳에 가고 싶어요’라고 기도했어요. 처음부터 교회 안으로 들어오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상담 공부를 하다 보니 교회 안에 심리 상담실을 오픈한다는 게 정말로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교회의 특수성도 있고, 목사님들이 심리상담을 세상적으로 보시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일단 기독교 상담 외에도 일반상담 공부도 하면서 외부 상담센터에서 인턴, 레지던트를 다하고 외부에서 요구하는 자격증을 다 땄어요. 모든 걸 다 갖추고 있어야 하니까요. 그러고 나서 외부에서 제 센터를 열었어요. 외부에서 일반인 상담을 하면서 많은 내담자를 만났고 봉사활동도 꽤 많이 했어요. 건강가정지원센터 다문화센터에서 6년째 무료 상담을 하고 있고, 교회 주변 경찰서의 전경과 의경을 상대로 무료 상담을 2017년부터 해오고 있고, 비행 청소년들 무료 상담 교육도 해주고, ‘밥퍼’라는 NGO 단체에서 아이들에게 무료 상담도 해주고 있어요. 그러다가 제가 이 교회로 옮기고 나서 재작년 11월쯤 담임목사님이 저에게 전화를 하셨어요. 교회 안에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하시면서.”

 

5개월을 기도하다

그녀는 가온 상담실을 오픈하기까지 5개월을 기도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제가 외부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고, 두 개다 하기는 집중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판단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교회 안에 들어왔을 때 내가 신앙적으로, 상담사로서 본이 되는 모습을 보여야 되는데, 혹시 나로 인해 우리 교회가 또는 우리 목사님이 목회하시는데 걸림돌이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어요. 그러나 기도 끝에 외부센터를 정리하고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됐어요. 드디어 저는 상담 공부할 때부터 마음먹은 아픈 교회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꿈을 이룬 거예요.”

 

   
 

기억에 남는 내담자1

처음으로 기억에 남는 내담자는 그녀의 강의를 들으러 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상담을 하고 싶다는 요청을 하셨어요. 그분의 이슈는 자녀의 마음을 알고 싶다는 거였어요. 그분은 다자녀를 두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점점 말이 없어지고 아이들이 자기 생각이나 자신의 마음을 부모에게 잘 얘기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게다가 큰아이부터 셋째 아이까지 학교나 친구 관계에서 조금씩 부족하고 연약한 부분이 보인다는 거였어요. 게다가 남편이 굉장히 바빠서 부인 혼자 독박육아를 하고 계시던 분이셨는데, 자신의 양육방식도 점검받고 싶어 하셨어요. 그래서 남편하고 같이 오시라고 했죠. 그랬더니 같이 오셨더라고요. 부모 양육검사를 했고 해석 상담하는 과정에서 남편분이 아이들에 대한지지 표현을 전혀 하지 못함이 발견됐어요. 굉장히 강압적인 태도로 아이들을 다루고 있었어요. 게다가 아이들을 야단치거나 부모의 생각을 전달할 때, 비일관적인 모습들을 보였어요. 상황에 따라 자주 바뀌는 거예요. 그러면 아이들이 혼란스럽죠. 엄마는 간섭 수치, 강압적인 양육 태도가 굉장히 높았어요. 이 검사를 하면서 엄마와 아빠가 자신의 어린 시절과 부부의 모습을 보기 시작했어요. 아이 상담을 하러 오셨는데, 부부 상담이 됐고, 개인 상담이 됐어요. 그러면서 이 가족이 다 상담을 하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은 평일에 학교에 가야 하니까 방학을 이용해 주말 상담을 진행했고, 남편 분은 직장에서 잠시 외출해 상담을 받으셨어요. 제가 남편 분께 뭔가 미션을 드리면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셨어요. 이렇게 하면서 엄마와 아빠가 달라지니까 아이들도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은 말을 하기 시작했고 아빠한테 “아빠 파이팅 해!”라는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아이가 엄마한테도 전화해서 힘든 부분을 얘기하기도 했다고 한다. 상담사로서 굉장히 뿌듯했을 것 같다.

 

기억에 남는 내담자2

또 한 사람은 외부상담실에서부터 상담 받던 학생이란다.

“병리적인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를 하고 있는 학생이었어요. 자해와 공황장애를 앓는 학생이었어요. 제가 그 아이를 만난 건 그 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자해가 너무 심해서 학교에서 손목에 칼을 긋고, 뛰어내리기도 하고, 건널목에서 뛰쳐나가기도 하고, 자기 마음이 불편하다는 마음이 들어오면 갑자기 과호흡이 와서 숨을 못 쉬었어요. 오죽하면 휴대용 호흡기를 사서 다닐 정도였어요. 우울증도 심해 신경정신과 약도 먹는 아이였어요. 아이의 이슈는 ‘인정욕구’였어요. 집안의 부모님한테 인정을 못 받은 게 친구들과의 관계까지 확장된 케이스였어요. 친구들이 자기를 왕따시키는 것 같고, 자기를 싫어하는 것 같고.... 그러면 과호흡이 오고, 그러면 ‘나는 살아서 뭐해?’, ‘나는 살 필요가 없는 애야’, ‘나는 왜 태어났을까?’라면서 이런 상황이 습관화되어 있었어요. 아이를 먼저 만나고 부모님을 나중에 만났는데, 중학교 3학년 때 잠깐 상담을 중단했었어요. 저항이 심했거든요. 저를 만나기 싫어했어요. 상담 시간을 자꾸 어기고, 저항이 일어나는 건 자기의 아프고 힘든 부분을 상담자가 건드리니까 그런 거예요.”

그런데 그녀가 교회 안에 상담실을 오픈하고 다시 찾아왔다고 한다.

“그 아이를 다시 상담하면서 영적인 것과도 결부가 돼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예배와 찬양드릴 때 과호흡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면 나가서 약을 먹고 들어와야 되고. 오랜 시간 약을 먹고, 오랜 시간 상처가 누적되니까 타인의 시선을 굉장히 많이 의식했어요. ‘걔가 왜 나를 보지?’라는 생각이 들고, 다른 사람이 째려보지 않았는데 째려봤다고 느껴지고... 그런데 그 아이가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그 아이가 ‘선생님, 저 건강해지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청소년부에서 예배드리면서 하나님이 그 아이를 많이 깨뜨려주신 것 같아요. 그리고 하나님이 그 아이에게 비전을 주셨어요. 선교, 목회, 신학이라는 비전을. 이런 비전을 주시니까 ‘건강해져야겠구나’라고 느끼고 달라지기 시작한 거죠. 그러면서 의지를 내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저와의 상담도 급물살을 타게 됐고요. 감사하게도 이 아이가 이번에 신학교에 들어갔어요. 이제는 학교적응도 잘하고 공황장애가 심해서 지하철도 잘 타지 못했는데, 제가 계속해서 ‘타봐’, ‘괜찮아’, ‘한 정거장만 한번 타봐’라고 하면서 ‘해봐. 할 수 있어’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니까 하기 시작하더니 전철 한 정거장을 타고, 두 정거장을 타고 있어요. 아이의 부모도 상담하고 있어요. 아이가 아플 때는 부모의 조력이 필수거든요. 양극성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밤을 꼬박 새우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서 학교를 갈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아주 잘 가고 있어요.”

 

기억에 남는 내담자3

10년 이상 상담을 했으니 얼마나 많은 내담자가 있었고 기억에 남는 내담자들도 많았겠는가? 이번에는 이런 아이가 있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내 아이는 아니야’라고들 하죠. 내 아이가 아프다는 걸 인정하기까지는 정말로 엄청난 자기와의 싸움이 있어요. 믿음의 부모들은 하나님 앞에 가서 우는 시간이 진짜 많으세요. 한 아이는 제가 만났을 때 공부를 진짜 못했어요. 인지장애가 있는 아이였거든요. 제가 아이를 만나보고 부모에게 검사를 받아보시라고 요청했어요. 그런데 거부하셨어요. 아이의 장애를 수용하기 어려웠던 거죠. 아이는 자신의 상태를 모르고 있는 상태였고요. 중학교 2학년 때 만난 아이였는데, 아이는 자기가 공부를 못하고 친구들이 자기를 좋아하지 않고, 왕따를 당한다는 것만 알았지 인지장애라는 건 전혀 몰랐어요. 결국 부모님은 제가 권해드린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고 경계선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 아이는 본격적으로 저하고 인지치료 상담에 들어갔고요. 중학교 3학년 때 일반학교와 특수학교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저하고 상담한 내용을 토대로 특수학교엘 갔어요. 그리고 특수학교 3년을 너무 행복하게 잘 다녔고 작년에 대학과 취업을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취업 쪽으로 선택하고 지금은 직업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마음 아팠던 내담자

이번엔 기억에 남는 내담자보다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있었던 내담자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50대 초반 남자분이 저희 상담실에 오셨어요. 걷는 모습도 어정쩡하고 좀 아프신 분 같았어요. 몸의 움직임이나 말하는 속도도 느리고 눈 맞춤도 잘 못하시는 분이셨어요. 제가 직접 물어보진 않았지만, 장애 등록을 받으신 것 같았어요. 저희 교회 장애부서에서 예배를 드리고 계셨거든요. 이분은 취업을 하셔서 직장을 다니고 계셨고 그래서 주말에 저를 만나러 오셨어요. 이분의 이슈는 ‘선생님, 저 커피 한잔 마시고 싶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였어요. 이분의 얘기를 듣다 보니 직장에서 자기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자고 말하는 사람이 없대요. 그런데 교회도 똑같다는 거예요. 너무 외로워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장애인부 예배가 있어서 저희 교회에 왔는데, 사회와 똑같이 커피 한잔 먹자고 한사람이 없었대요. 이분은 경계선 장애를 갖고 계시긴 했지만, 의사 표현을 정확하게 잘하셨는데도 말이죠. 이분은 너무 외로우셨어요. 이분의 신앙을 점검해 보니까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도 그렇게 깊지 않으셨어요. 자신의 외로움 때문에 교회를 선택했는데 막상 교회에 들어와 보니 교회도 세상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는 말이 제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어요. 그래서 이분이 오시면 커피믹스를 타드렸어요. 이분이 이 커피를 좋아하셨거든요. 그리고 풍성한 과자 간식도 준비해서 드렸어요. 이분은 생활고까지 있으시더라고요. 노부모와 살고 계셨는데 결혼도 안 하고 힘들게 살고 계셨어요. 제가 사정을 알고 ‘상담료 없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이 분이 ‘저는 선생님께 받은 만큼 드리고 싶어요. 저는 그렇게 살고 싶어요. 선생님’ 그러시면서 ‘제가 월급 나올 때까지 며칠만 기다려주세요’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분에 대한 예의는 제가 거절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서 ‘알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이분이 활짝 웃으시더라고요. 이분이 마지막 상담할 때 그러셨어요. ‘자기를 똑같이 평범하게 대해주셔서 너무 고맙다’고. ‘다르게 보지 않고 다르게 대하지 않아서 너무 감사하다’고.”

그녀가 마음이 많이 아팠던 건 의외로 교회 안에 소외돼 있는 분들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보이는 게 다가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 부분에서 그녀는 아팠고, 그런 분들에게 원하는 길을 열어드렸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 때문에 더 많이 아팠다고 한다.

 

   
 

아이들에 대한 상담이 많아지다

이것은 코로나 이후에 더 심해졌다고 한다.

“왜냐하면 코로나 기간 동안 아이들이 사회적인 연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공동체 생활이 전무했잖아요. 학교도 안 가고 비대면으로 수업하다 보니, 사람과 사람이 함께 부딪혀서 일어나는 스파크, 감정의 소용돌이들을 참아낼 만한 단단함이 없어요. 그러다가 학교를 가면서 특히나 코로나 시기에 새 학년에 올라가는 학생들은 함께하는 것이 많이 어려워졌어요.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잘 모르는 거죠. 그러다 보니 아동 상담, 청소년 상담, 자녀 상담이 조금 많아진 것 같아요. 그리고 비대면 수업을 하잖아요. 이때 컴퓨터라는 도구를 사용하다 보니 사람들과 만나서 소통하고 대면하는 것에 익숙하지가 않은 거죠. 그러니까 자기 감정표현이라든지, 감정을 조절해야 되는 거, 갈등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상대방을 배려하고 상대방과 조율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조차도 몰라요. 학교에서도 요즘은 선생님들이 대놓고 요청을 한 대요. 상담하고 오시라고.”

 

스트레스 받았던 내담자

그녀의 스트레스 받은 얘기를 듣다 보니, 마치 학교 선생님들의 스트레스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 케이스가 떠오르는데요. 저하고 외부에서 오래 상담했던 분이신데요. 믿는 분이셨어요. 남편과의 관계에서 힘들면 수시로 문자를 보내거나 수시로 전화하셨어요. 근데 제가 그걸 거절을 못해요. 저의 연약함 때문이죠. 지금은 많이 단단해졌지만, 초창기 때는 잘 거절하지 못했어요. 상담 시간을 지켜야 하는데 계속 상담이 지연되면 어떨 때는 1시간도 좋고, 1시간 반도 좋고 막 시간을 넘겨요. 그러면 같이 하시는 분들이 맨날 문자 보내고 전화하고 빨리 상담 끊으라고 닦달하세요.(웃음) 그런 분들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럴 때 제일 좋은 반응은 뭘까?

“일단 반응을 보여드려요. 그분의 힘듦이 무엇인지 읽히니까요. 저랑 만날 시간은 멀었는데 힘드니까 그러시는 거예요. 문자나 전화가 올 때는 전화 통화보다는 문자로 드리는 편이에요. 전화 통화 하면 1시간도 좋고 2시간도 좋아서 계속 얘기하시려고 하니까요. 그래서 문자로 상담을 하고, 일을 하고 있다면 그분의 문자를 보고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단 좀 시간을 들여서 제가 상담 중이어서 늦게 답을 드린다고 그러면 그분도 감정이 한 텀 지난 시간이니까 반응이 빨라지지 않아서 좋은 것 같아요. 즉각적으로 반응하면 감정들이 올라오니까 상담사인 저의 마음도 지키고 그분도 어느 정도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고 자기를 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드려야 하는 것 같아요.”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마지막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뭐가 있냐고 물어봤다.

“저도 상처 입은 사람이잖아요. 제가 정말 감사한 건 상처받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를 사랑하려고 하고, 자기 상처를 바라보려고 하고, 아픈 자기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걸 바라볼 수 있는 제가 됐다는 거예요. 저는 상처받은 사람들을 만나면 지금까지 잘 참아주고 견뎌줘서 너무 고맙다고 하고 꼭 안아드려요. 포기하지 않으셔서 고맙다고, 그리고 용기를 내서 저를 만나러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이 자리에 오신 것만으로도 정말로 당신은 회복될 수 있고 치유될 수 있다고 얘기해 드려요. 성경에 보니까 ‘응원’이라는 단어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한글 성경에는 응원이란 단어 대신에 ‘격려’라는 단어가 있더라고요. 원어를 보니까 서로 사랑하고 섬기고 권면하는 것과 응원이라는 단어 속에는 편안, 안전함, 시원케 되는 이란 단어들도 있더라고요. 저는 아픈 분들, 힘든 분들, 연약한 분들이 저에게 자신의 아픈 부분을 이야기했을 때 마음이 시원하게 되고, 그분들이 상처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그분들을 편안하게 응원해 주는 그런 상담자로 남고 싶어요. 그래서 그분들에게 정말 당신은 사랑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는 분이라고 얘기해 드리고, 하나님은 당신을 너무나 많이 사랑하시고, 당신은 하나님의 걸작 중의 걸작이고,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말해드려요.”

괜히 ‘상처받은 치유자’란 말이 나온 게 아닌가 보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긍휼의 마음도 금방 들고. 그녀가 그런 것 같다. 그녀와 두 시간 이상의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건 그녀가 굉장히 밝다는 것이었다. 계속 웃으면서 얘기하고, 웃으면서 사진 찍고, 한 번도 웃음을 안 지을 때가 없었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더니 상처가 깨끗하게 치유되고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녀에게 상담을 받는 내담자들은 정말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친절하고 그렇게 잘 웃고 그렇게 마음을 잘 이해해 주는 상담자가 그들을 맞이해줄 테니까. 앞으로 그녀를 통해 보다 많은 상처 입은 사람들이 치유되는 기적이 많이 일어나길 바란다.

 

https://blog.naver.com/yunhichoi1/223440108465

이 기사는 계간 ‘치유’ 8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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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 aa2291415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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