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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유시민 지음, 생각의 길, 2024)
정치평론집을 소개하는 게 최선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누구도 현 대한민국의 현안을 피해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은 단상을 나누려고 합니다.
누구나 다 그에게 욕을 합니다. 이렇게 단정하는 것은 그가 취임한 당일 이외에는 그에 대한 지지율이 단 한 번도 50%를 넘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미국 ‘모닝 컨설트’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에 대해 잘못한다는 부정적 평가가 23년 1월, 70%를 넘은 이래 한 번도 70%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이야기입니다. 그에게 욕을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욕이 단편적인 인상평에 머무는 게 대부분이어서 피로도가 매우 높아졌습니다. 아예 그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는 게 예의이고 상식이 되었습니다. 그럴 즈음 출간된 책이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 책은 ‘다소’ 놀라운 책입니다. 사람마다 놀라움의 정도가 다를 것이기에 ‘다소’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저는 놀라웠습니다. 한 인간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 단초가 되어 대한민국의 사회와 정치를 해석하는 틀을 유추해내는 게 그랬고, 정치활동의 중심인물들이 서 있는 자리를 정확하게 통찰하는 게 그랬습니다.
일단 책은 술술 읽힙니다. 어려운 개념 없이, 인상 비평하듯 현 상황을 무덤덤하게 읊조리듯이 이야기합니다. 나쁘다는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고, 그럴 수 있다는 여지를 언제나 열어놓습니다. 저자는 그가 우리나라 대통령이 된 게 ‘정치적 사고’였다고 봅니다. 그는 얼결에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온 코끼리’입니다. 나쁜 의도를 가지고 도자기를 깨뜨리는 게 아니라 들어왔기에 도자기가 깨지는 것입니다. 그의 무능함과 무지함, 무학습력과 사대주의와 사악함의 크기가 코끼리의 덩치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코끼리를 멈추게 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박물관에 들어온 그를 멈추게 할 복안이 세 가지가 있다고 털어놓습니다. 물론 그 이야기를 책에서는 아껴둡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장에 가서야 그 안을 제시합니다. 첫째, 자진 사퇴, 둘째, 협치, 셋째, 대결입니다.
과연 이 세 가지 복안 가운데 어느 것이 실행 가능한 방법일까요? 그건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어떤 경우이든 국민 주권이라는 힘, 여론의 힘이 모든 것의 향배를 결정할 것입니다. 저자는 탄핵보다 더 좋은 방법은 자진 사퇴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가 결단을 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사면법을 개정하자고 합니다. 국민이 사임을 원한다는 게 확실해지면 국회의 탄핵과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기다리지 말고 ‘놀리 프로시콰이’(Nolle prosequi, 항구적 불기소 특별사면) 제도를 도입하자는 겁니다. 이는 대통령뿐 아니라 그런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대통령으로 선출한 국민의 잘못도 함께 사면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지요. 흥미로운 주장입니다.
저자가 던지는 근원적인 질문. ‘현 무도한 정권이 끝나면 무엇이 올까? 대한민국의 미래는 희망이 있는 걸까? 더 자유롭고, 더 민주적인 정치와 더 유능한 정부를 만들 수 있을까?’ 저자는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주권자의 수준이 국가 수준을 좌우한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합니다. 그렇지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훌륭한 시민이 정치에 참여할 때 국가가 훌륭해집니다.
공자님 같은 책의 마지막 이 어록보다는 이 책이 제공해주는 진짜 흥미진진한 두 가지 통찰이 있습니다. <제5장 그의 적들>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첫째, 인물에 대한 평가입니다. 저자는 ‘L은 아직 죽이지 못한 자’라고 합니다. ‘J는 죽였는데 살아난 자’라고 합니다. 저자는 L은 정치자영업자가 아니라 정치가로 분류합니다. 해야만 하는 일 때문에 모멸감을 이겨내고 권력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J는 완벽하게 선하지 못했다는 약점에 잡혀 위선자로 죽임을 당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J는 자기를 죽인 자는 선한 척할 마음조차 없는 악한 사람임을 증명할 것이라는 겁니다. 그게 그가 완벽히 살아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현 대통령의 가장 위험한 적은 J라고 통찰합니다.
둘째, 그들이 속한 당에 대한 통찰입니다. 민주당이 내걸고 달려온 최고의 목표는 ‘고루 잘 사는 사회’, ‘수준 높은 민주주의’, ‘평화로운 한반도’입니다. 민주당은 이 목표 아래 현재 150만 명이 넘는 권리당원을 확보한 정당이 되었습니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민주당이 대한민국의 모든 사회문제를 다룰 수 있는 플랫폼 정당이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정당이 꾸준히 발전하여 마침내 정상급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향후 대한민국 사회는 위에서 언급한 두 명의 정치인과 민주당의 향배에 따라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여전히 진영논리에 의존해서 한쪽을 외면하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래서는 안됩니다. 현실을 주목하고, 정치 지도자와 대화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복음 안에는 보수와 진보, 좌와 우가 다 함께 있습니다. 한때 역사 속에서 한국기독교회는 ‘재야’의 큰 어른으로 한국 사회의 나아갈 바를 탐색하고, 제시하는 역할을 해내곤 했습니다. 제도권 정당들이 사회를 견인하지 못할 때 교회가 그 미진한 사회적 플랫폼 역할을 감당했던 것이지요. 그때에도 교회에는 보수와 진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품이 넉넉했습니다. 복음이 담고 있는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넉넉히 펼쳐나가도록 교회를 열어놓았습니다. 한국교회를 과잉 대표해온 가짜 보수를 분별해내는 것이 이 믿음을 제대로 살리는 첫걸음일 것입니다. 사족 하나, ‘국민의 힘’ 진영에서도 오늘 소개한 책과 유사한 정치평론집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이광섭목사 / 전농감리교회
이광섭 h-stair@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