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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生, 어그러진 삶의 산물>, 홍인표, 대장간, 2024)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1937~2007)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려서 그의 첫 동화 『강아지똥』을 읽으면서 자란다. 염무웅 교수의 평가대로 권정생의 동화는 우리나라에서 국민문학의 반열에 올라 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어린왕자의 이름을 딴 체험관, 문학관, 심지어 전남 보성의 대원사에서는 <어린왕자와 선(禪)문학관>을 열어 재생산 및 향유가 확산되는 반면 권정생의 <강아지똥>은 아동기의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재생산되지 못하고 있다. 서양 것보다 우리 것을 소홀하게 여기는 풍토가 작동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권정생은 1937년 일본의 도쿄 빈민가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인 44년에는 미군의 도쿄 폭격을 경험해야 했고 조국에 돌아와서는 또 한차례 가장 6.25 전쟁을 경험하면서 이웃들의 몸, 대지의 몸, 무엇보다 자신의 몸이 찢기고 흩어지고 죽어가는 비극적인 현장을 경험해야 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권정생은 수많은 동화, 수필, 소설을 써냈다. 그는 한국사회의 고통을 자기 고통으로 삼았고 글 속에서 그 고통을 표현하면서 녹아냈고 전쟁을 통해 철저히 어그러진 인간의 본성과 도리를 깨닫도록 승화시켰다. 그가 글을 쓴 것은 몸이 너무너무 약해 다른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권정생은 어려서 늑막염과 전신 결핵을 알았고, 29세에는 콩팥과 방광을 드러내는 수술을 받았다. 6개월도 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과 달리 권정생은 70세까지 살았다. 그의 삶은 이름대로 바른 삶(正生)을 산 사람이지만, 그의 바른 삶은 어그러진 삶과 어그러진 역사와 사회 속에서 바르게 살려고 자신에게는 한치의 곁도 내주지 않은 철저한 삶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책 제목 『正生, 어그러진 삶의 산물』은 나를 돌아보면서 어그러진 우리 사회를 바르게 꿈꿀 수 있는 무한한 생명의 에너지원이라고 말하고 싶다. 권정생의 말이다. “나의 동화는 슬프다. 그러나 절대 절망적인 것은 없다.”
『강아지똥』은 예수님의 짧은 ‘밀알’ 비유를 동화를 통해 풀어낸 것이지만, 이 이야기에는 예수님의 삶과 권정생의 삶의 빛이 어둠 속에서 더욱 움직이며 빛나는 반딧불이 같다. 『몽실언니』 또한 상생과 공존의 삶을 위한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깨우침이다. 종교가 우선 할 일은 바로 이러한 일 아니겠는가. “몽실아, 사람은 누구나 처음 본 사람도 사람으로 만났을 땐 다 착하게 사귈 수 있어. 그러나 너에겐 좀 어려운 말이지만, 신분이나 지위나 이득을 생각해서 만나면 나쁘게 된단다. 국군이나 인민군이 서로 만나면 적이기 때문에 죽이려 하지만 사람으로 만나면 죽일 수 없단다.”
권정생이 일직교회 종지기로 있던 어느 날 부흥회 인도한 목사로부터 듣게 된 “거지 나사로”의 비유는 그의 “자아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권정생의 말이다. “개들에게 헌데를 핥이면서 부자가 먹던 찌꺼기를 얻어먹던 나사로였지만, 그는 하늘나라를 볼 줄 알았다. 그래, 그것이면 족한 것이다. 나는 거지 나사로를 알고부터 세상을 보는 눈을 달리했다. 천국이라는 것, 행복이라는 것,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여태까지와는 거꾸로 보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권정생은 불편함을 제거한 착한 사람 권정생이 아니라 반역자 권정생으로 거듭난 것이다. 폭력적 국가에 반역하고 왜곡된 교회에 반역하고 풍요를 강요하는 경제에 반역했던 권정생이다. 그러나 반역의 힘은 온유와 자신이 거름이 된다는,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영성의 소산이다.
‘나오는 말’까지 19꼭지로 구성된 이 책 하나하나의 주제가 성찰적이면서 감동적이지만, “종소리에 실린 기도”는 권정생의 삶을 보강하는 파동으로 만나 내 삶의 파동이 증폭될 수 있는 부분이다. “첫 번째 종소리가 맡은 소임은 예배당 언덕 아래 오두막에 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깨우는 것이다.” “두 번째 종소리의 소임은 냇가 둔덕에 있는 방앗간 아저씨를 깨우는 것이다.” “세 번째 종소리는 대추나무집 아줌마를 깨우는 종소리이다.” “네 번째 종소리에 잠이 깬 담배 가게 아저씨는 예배당하고 조금도 인연이 없기에 다만 불을 밝히고는 그날 할 일을 준비한다.” “다섯 번째 종소리부터는 찾아가는 곳이 일정하지 않다.” 종소리는 마을 전체 집집마다 주님의 음성을 전할 뿐 아니라 산돼지도 눈을 뜨고, 까치 아빠도 눈을 뜨는 등 산짐승들도 종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권정생이 꼭두새벽마다 울렸던 일직교회 종소리는 책을 통해 혹은 다른 매체를 통해 그를 기억하는 사람뿐 아니라 온갖 생물에게 자연과 더불어 시를 노래하는 삶을 환기한다.
심광섭 목사(원로, 색동교회 소속)
심광섭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