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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회의 통일 담론, 어떻게 이끌까?고려시대에서 배운다, 다문화 사회의 통일 운동


# 전라남도의 한 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인 사려 깊고 명석한 김월남 군 (12)은 다문화 가정의 자녀다. 김군의 외가는 베트남이다. 얼마 전 학교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배웠다. 부드러운 선율에 뭔가 감동을 주는 듯 한 노래였다. 그런데 가사 중에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이란 말이 나왔다. ‘겨레’가 무슨 뜻이지 하며 집에 와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겨레 :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민족’. 뜻은 이해가 되었지만,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나도 ‘이 겨레’에 해당되는가?


# 경상북도의 한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활달한 성격의 이율빈 군 (17)도 다문화 가정의 자녀다. 이군의 외가는 필리핀이다. 이군은 얼마 전 강원도로 수학여행을 가서 조금은 낯선 경험을 했다. 고성군 통일전망대에 들렀을 때 민족 분단의 역사와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시는 선생님과 이를 열심히 경청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를 이질감을 느꼈다. 쾌활한 성격의 이군이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와 통일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며 고민을 했다.


한국은 이미 다민족, 다문화 사회


김월남군과 이율빈군의 이야기는 설정된 가상의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를 한국 사회의 다문화 가정 이야기다. 2010년 여성가족부, 국가브랜드위원회, 동아일보가 공동으로 진행한 한국인의 ‘다문화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은 한국이 다문화 사회라는 데 74.7%가 동의했다. 한국인 10명 가운데 7명은 한국을 다문화사회라고 보는 셈이다. 2010년 6월 기준으로 국내 결혼이민자는 18만 2,671명, 이들의 자녀는 12만 1,935명이다. 체류 외국인 역시 113만 9,283명으로 5년간 2배가 늘었다. 한국이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는 속도만큼, 국민의 다문화 가족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아직 한국 사회는 다문화에 대해 긍정적인 편이다. 응답자의 79.5%가 다문화 사회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고 부정적 평가는 긍정적 평가의 1/4에도 못 미치는 17.2%를 기록했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개방성이 높아진다’가 57%로 가장 많았다. 이어 ‘노동인구 유입으로 국가경쟁력이 높아짐’(16.6%), ‘관련국과의 교류가 증진돼 대외 이미지 향상’(11.7%),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를 억제하는 효과’(10.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다문화가족의 증가가 사회 통합을 저해할 소지가 있다는 우려도 나타났다. 다문화가족 증가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문화적 충돌과 사회적 갈등이 유발된다’(46.9%)라고 답한 응답자가 절반 가까이 됐다. ‘단일민족 국가 전통이 약화되므로’(22%), ‘한국 고유의 문화가 변질되므로’(19.4%) 등 한국의 고유한 정체성이 흔들리는 데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다문화 시대의 통일담론

한국 사회는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지만 통일에 대한 논의는 아직 단일민족 문화의 정서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의 통일 논의는 1989년 노태우 정부 때 발표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기초로 발전되어 왔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지난 20여 년간 급속한 변화를 겪었다. 21세기 세계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이민자가 한국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이 되었다. 다문화 가정이 급증하고 100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거주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여 학계에서부터 전통적인 ‘단일민족’ 국가를 상정한 기존의 통일론에서 다원적이고 복합적인 통일론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는 이러한 다문화 사회의 대안으로 ‘연성복합통일론’을 제시했다. 연성복합 통일이론은 통일의 최종적 목표로 하나의 단일민족 국가의 완성에 둔 기존 방안에서 탈피하여 전통적 민족주의보다 한반도 내의 이질성과 다원성을 적극 포용하는 '열린 네트워크형' 통일을 지향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열린 네트워크형' 통일이란 한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에서처럼 점진적이고 단계적 통일을 추구하되 무력이나 강제력보다는 문화적이고 지적이며, 이질적인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연성권력인 ‘소프트파워(soft power)’를 중시한다. 또한 정부 대 정부 중심의 정치적 사건으로서의 통일보다 비정부기구, 시민단체와 개인들의 유연하고도 부드러운 연결을 바탕으로 한 통합을 지향하는 것이다.

북한대학원대학교의 이수정 교수도「다문화주의와 통일담론」이란 글을 통해 탈냉전과 세계화, 다양한 이주민의 존재로 한국 국민을 더 이상 민족적 범주로만 묶기 어렵다고 밝히고 개인·집단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소통을 중시하는 다문화주의를 새로운 통일론의 기반으로 삼을 것을 제안했다. 또 차이를 무시하고 타자를 수용하지 않는 태도는 진정한 통합에 장애가 되며 통일의 주체는 더 이상 선험적으로 주어진 기준에 근거한 동질적 주체가 아니며, 다중화된 주체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준비되지 않은 다문화 사회의 통일

학계를 중심으로 다문화 사회의 통일에 대한 논의가 시작 되었지만 아직 남한, 북한 모두 다문화 시대의 통일에 대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 남한의 경우 다문화 가정이 급증하고 체류 외국인 수가 늘어나고 있으나 아직 이들과 함께 하는 통일에 대한 논의나 프로그램이 없다.

특히,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자라나면서 통일 문제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가 없을 경우 이들은 통일 무관심층, 혹은 통일 반대층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에겐 백두산 천지나 금강산도, 한국전쟁의 비극도 자신들과 크게 관련이 없다고 느낄 것이다.

통일은 단순히 단일민족인 한민족의 관심 사항이지 다문화 가정 출신의 관심 사항은 아니다. 오히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에겐 한국과 엄마(혹은 아빠)의 나라가 축구 경기를 할 경우 어디를 응원해야 할까가 더 큰 고민거리인지도 모른다.



고려역사로부터 얻는 아이디어

   
▲ 과거제도를 쌍기의 활동을 기록. 《고려사 열전》
한국 사회의 다문화는 단지 과거에는 없었고 오늘의 문제로만 치부되기 쉽다. 하지만 삼국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에 귀화인들이 등장했다. 특히 11세기 고려 초에는 약 100년 동안 중국인들과 유민, 포로 신분으로 온 발해인과 여진인, 거란인, 아랍인을 포함해 귀화인은 약 17만 명에 달했다. 당시 고려 인구가 230만명 정도였으니 대략 8%에 달하는 적지 않은 숫자다.

고려에 귀화한 이들은 고려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고려를 만들어 나갔다. 귀화인들로부터 이전에 없던 새로운 문물이 들어와 사회는 많은 이질적인 것들이 융합된 다문화 사회가 되었다. 귀화인들은 외국사정에 밝아 외교에 관련된 직업을 갖거나 외국어 교육 업무에 종사했다. 귀화한 이들 중에는 뛰어난 의관제작자와 토목기술자들도 있었고, 의약과 악무 발전에 기여한 귀화인들도 다수 있었다.

특히 고려 건국 초기에는 문신들이 많이 부족해 중국계 지식인들을 적극 유치했다. 그 대표적 일례가 중국 후주의 쌍기(雙冀)다. 그는 일찍이 과거에 급제해 지방과 중앙의 사법관청에서 봉직하면서 후주의 개혁에도 참여한 경험이 있는 인물이다. 광종(925~975)은 그의 건의에 따라 사상 처음 과거제도를 도입했다. 과거제도는 이후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의 고시제도의 모태가 되었다.

고려시대에 귀화가 성행한 것은 고려가 적극적인 귀화인 수용책을 편 결과다. 고려는 ‘내자불거(來者不拒)’, 즉 ‘오는 자는 거절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견지했는데, 궁극적 목적은 우수한 인재 확보에 있었다. 고려는 귀화인들을 안착시키기 위한 일련의 사회적 시책도 강구했다. 우선 일괄적으로 주택과 전답, 미곡과 의복, 기물과 가축 등을 나누어주었다.

적극적인 개방 정책과 귀화인의 수용인 고려의 이름을 대외적으로 알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오늘날의 한국을 칭하는 영문 Korea도 바로 고려에서 나왔다. 고려의 힘 즉, 코리아(Korea)의 힘은 나와 다른 이질적인 것을 포용하고 이를 융합한 고려의 국력과 문화적 자신감에서 나왔다. 고려는 한민족의 코리아(One Korea)보다는 다문화 코리아(Mosaic Korea)를 지향했다.



통일한반도=Mosaic Korea

모자이크는 여러 가지 색상의 돌·유리조각, 도편(陶片)들을 사용하여 이것을 평면에 늘어놓고 모르타르나 석회·시멘트 등으로 접착시켜 무늬나 그림모양을 표현하는 기법을 말한다. 다양한 재료가 각기 표현되어 하나의 아름다운 예술이 된다. 모자이크는 이질적인 것이 모여 새로운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 다문화 시대의 통일한국은 바로 모자이크와 같다. 고려 초기 그러했던 것처럼 한민족의 코리아(One Korea)보다는 모자이크 즉, 다문화 코리아(Mosaic Korea)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고려 초기의 다문화와 지금의 다문화는 시대적 상황과 배경이 다르다. 하지만 ‘우리 민족끼리’만을 이야기 하는 것 보다 변화된 시대의 흐름을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된 다문화 가족들로부터 통일문제가 무관심과 외면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제는 지난 60여 년 동안 우리의 생각 속의 첫 자리를 차지했던 한민족의 코리아 (One Korea)를 넘어 다문화 코리아 (Mosaic Korea)로 가야 한다.


전병길 예스이노베이션 경영컨설팅 대표. 저서로 '코즈 마케팅' '새로운 자본주의에 도전하라' '통일한국 브랜딩' 등이 있다.  

 

전병길  holi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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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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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phzibah 2012-01-18 11:58:24

    2012년 명절을 통해서도 Mosaic Korea가 우리의 생각속에 자리잡기를 기대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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