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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는 한반도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가?KPI ‘Issue Brief’ 2021년 6월호

1. 시작하는 말: 마지노선이 주는 교훈

역사상 한 국가가 자신을 지키는 데 있어 결정적 실수를 한 것의 대표적 예로 이야기되는 것이 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프랑스가 만들었던 마지노선이다. 독일과의 국경선 350㎞에 걸쳐 당시로서는 최고의 현대적 과학기술을 총동원하고 엄청난 비용을 투입하여 독립적으로 작전을 펼칠 수 있는 142개의 요새와 352개의 포대, 그리고 5000개가 넘는 벙커를 설치한 것이 마지노선이었다. 그것은 강력한 포격이나 탱크의 공격도 막아낼 수 있게 단단히 지어졌을 뿐 아니라 전력, 급수, 공조, 통신 및 요새간 이동에서도 최첨단 시설들을 갖추고 있었다. 그야말로 철통같은 방어선이었다.1) 그러나 실제로 독일과의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마지노선은 하루아침에 아무 쓸모없는 시설로 바뀌었고, 프랑스는 6주 만에 독일에 항복하게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었을까? 독일은 프랑스의 마지노선을 우회하여 벨기에 지역을 탱크로 돌파하였고, 그에 따라 프랑스는 마지노선 앞뒤에 적을 두게 되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이유는 단 하나, 프랑스의 1차 세계대전에서의 성공 경험 때문이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는 국경 지대에 견고한 참호를 구축하여 독일의 침공을 막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종전 후에도 독일과 다시 전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정확히 예측하였다. 그런데 독일과 다시 있게 될 그 전쟁도 1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국경선에서의 참호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런 참호전에 적합한 군 작전을 수행하기 위하여 건설에 착수한 것이 마지노선이었다.

이 일에 너무도 엄청난 돈이 투입되었기에 프랑스는 공군력을 키울 기회도 잃게 되었지만, 그들은 마지노선 건설이 매우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선택이라고 확신하였었다. 그러나 그들은 근본적으로 착각을 하고 있었다. 1914년에 발발한 1차 세계대전과 1939년에 발발한 2차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 동안 군사전략과 전쟁의 개념 자체가 변해버린 것을 그들은 미처 알아채지 못하였던 것이다.2) 즉 고정된 참호 속에서 버티는 전쟁이 아닌, 탱크와 비행기 등 빠르게 이동하는 군사력이 전쟁의 핵심이 되었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프랑스는 자기들이 싸워야 할 ‘진짜 적’이 아닌, 자신들의 과거 고정관념 속에서 만들어진 ‘상상 속의 적’을 상대로 엄청난 전쟁 준비를 하였던 것이고, 결국 그들의 ‘진짜 적’을 만나는 순간, 패배하고 말았다. ‘상상 속의 적’은 늘 고정되어 있으나, ‘진짜 적’은 늘 변화해 간다. 그래서 무엇이 자신의 ‘진짜 적’인지를 정확히 알아 차려야만 그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교훈을 마지노선은 우리에게 주고 있다.

2. 인류에게 주어진 세 개의 과제 또는 ‘진짜 적’

역사적으로 인류에게는 세 가지의 중대한 과제(또는 ‘진짜 적’)가 순차적으로 나타나 왔다. 이 세 개의 과제는 하나가 오면 다른 것은 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하나의 과제만 있다가, 그 다음에는 두 개의 과제가 공존하였고, 그 다음에는 세 개의 과제가 동시에 있는 형식으로 인류에게 주어져 왔다.

 

1) 제1 과제: 영토와 주권의 확보라는 과제

인류 역사 수천 년 동안에, 인간의 안전과 부의 보장은 영토 및 주권과 직접 관련이 있었다. 그래서 각 민족, 각 나라들은 자신들의 힘을 길러서 다른 나라의 영토를 빼앗아서 더 넓은 농토, 광산 및 유전(油田) 등 다양한 자원들을 확보하든지, 또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지켜서, 안전과 부를 보장받으려 하였다. 이것은 인류가 농업 등의 1차 산업에 의존하던 시기뿐만 아니라, 18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서 공업의 발전을 이루었을 때에도 원자재 확보를 위하여 여전히 적용되는 원칙이었다. 이런 상황은 20세기 초와 중반에 그 극단에 이르렀다. 서구 열강들은 제국주의적 사고 속에서 영토와 자원의 확보를 위하여 경쟁적으로 전 세계를 식민지화하려는 각축에 들어갔고, 나중에는 일본까지 그에 가세하여 우리나라도 큰 고통을 겪어야만 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비극이 있었던 20세기 중반까지 인류가 가졌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영토와 주권의 확보였다. 그에 따라 모든 식민지 지역에서는 독립 투쟁들이 있었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마침내 많은 나라들이 독립과 주권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후, 영토와 주권을 가지게 된 국가를 지키기 위하여 각 나라들은 국방비를 과다하게 지출하여야만 했고, 그에 따른 큰 재정적 부담을 감수해야만 하였다. 한반도는 그런 군사비 지출에 대한 재정적 압박을 세계에서 가장 크게 받는 지역 중 하나가 되어 지난 70년의 세월을 보내 왔다.

 

2) 제2 과제: 인간의 자유로운 창의성과 기업가 정신 및 활동을 만드는 과제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인류는 새로운 과제를 추가로 더 가지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은 ‘전자 정보 혁명’이라는 3차 산업혁명과 연관을 가진다. 이 3차 산업혁명에 따라 인류가 가진 부의 창출 방식도 달라지게 된다. 1차 산업인 농업, 수산업, 광업 등에 의한 생산물과 2차 산업인 경공업 및 중화학 공업에 의한 공산품 생산들이 여전히 기본을 이루기는 하지만 전자, 정보, 통신, 금융, 문화, 서비스 등 새로운 산업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새로운 부의 창출은 그 규모 면에서 기존의 전통적 산업들과는 차원 자체가 다르게 되었고, 그것이 세계 경제 발전을 견인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런 새로운 기술에 뒤처진 나라들은 아무리 영토가 넓고, 또는 철광석, 석탄, 석유 등의 자원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하여도 그것만으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수는 없게 되었다.

그러나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사례에서 보듯이, 지금도 영토와 자원을 확보하여야 한다는 제1 과제의 충돌이 없어진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시도하여 확보하려는 부의 정도는,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과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된 세계적 IT 벤처기업 하나가 창출할 수 있는 부의 정도와 비교할 때, 매우 초라하게 되었다.3) 그야말로 이제는 자유로운 창의력과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을 가진 젊은이들을 그 국가가 얼마나 많이 배출하고 있는가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것은 영토와 주권의 보존이라는 제1 과제와 함께 자유로운 창의성 및 기업가 정신의 함양과 지원이라는 제2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 나가야 하는 과제를 국가가 가지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영토와 주권 확보’라는 제1 과제의 참호 속에만 들어가 있을 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전쟁’에서는 이길 수 없다. 제1 과제에 필요로 되는 도구들(그것이 재래식 무기이든 핵무기이든)에만 집중하고 있을 때, 진짜 전선은 이미 다른 곳에서 형성되고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4) 인간의 창의성은 무기로 위협하여 강제적으로 가지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제1 과제의 성공이 제2 과제의 성공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이것은 다른 종류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3) 제3 과제: 인간의 보편적 생존 위기와 관련된 과제

그런데 21세기 인류는 제1, 2 과제에 더하여 새로운 과제를 하나 더 가지게 되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라는 곳의 생태계가 인류의 생존에 부적합한 상태로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에 대한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대응을 하여야 하는 과제가 생긴 것이다. 온실가스에 의한 기후변화와 이상기후, 그로 인한 가뭄과 사막화와 홍수, 극지방 빙하들이 녹으면서 진행되는 해수면의 상승, 온갖 생활 및 산업 폐기물과 쓰레기가 땅과 바다를 뒤덮는 현상, 그리고 지구 온난화에 따른 생태계 변화와 그로 인한 신종 전염병의 창궐 등이 그것이다.

제3 과제는 1, 2 과제와는 달리 수십 년에서 백년 단위를 가지고 서서히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남극 지대에서 무너지는 빙하를 매일 보고 살거나, 남태평양 섬에서 높아진 해수면 때문에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섬을 버리고 다른 더 높은 고지대가 있는 섬으로 이주를 하거나, 거대한 폐플라스틱 쓰레기 더미가 수 킬로미터의 덩어리를 이루어 바다에 떠 있는 옆에서 매일 물고기를 잡으려 힘겹게 돌아다니지 않는 이상, 인류는 이것이 정말 나와 내 가족, 내 마을과 직접 연관된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COVID-19가 터진 것이다. 이것은 단지 역사상 가끔씩 있곤 했던 유행병 창궐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인류가 미처 깨닫지 못한 가운데 이미 우리 곁으로 와버린 지구 생태계의 거대한 변화를 보여주는 빙산의 작은 한 끝이며, 인류가 이제부터 정말 해결하여야 하는, 싸워나가야 하는, 그 문제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를 가장 먼저 전령사처럼 전 인류 개개인에게 선명하게 알려준, 그런 사건이다. 그동안 ‘상상 속의 적’으로만 있었던 존재가 마침내 ‘진짜 적’으로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5)

제1 과제와 제2 과제는 그 내용면에서는 확연히 다르다 할지라도 본질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특성이 있다. 즉 그 과제들은 개인, 민족, 국가 단위로 맞이하는 과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문제 파악도 각 개인과 민족, 국가 단위로 하고, 그 해결 시도도 개인과 민족, 국가 단위로 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각 국가 단위로 자신들의 영토와 주권을 가지기 위하여 안보적 노력을 하고, 국민들의 자유로운 창의성을 키우고 기업가 정신에 의한 활동을 하도록 지원하면서 부강한 국가를 이루려 노력하면 그 과제들은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제3 과제는 어느 한 개인, 어느 한 국가가 자기만의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아주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한 나라가 아무리 탄소 배출량을 줄여도, 다른 나라들이 엄청난 탄소 배출을 계속 하면, 그 나라의 기온도 덩달아 급속히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다. 한 나라가 아무리 청정한 공기를 유지하려 애를 써도, 주변 국가에서 발원한 엄청난 황사와 미세먼지가 날아와 그 나라를 뒤덮어 버리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웃 나라에서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발생하면, 얼마 후부터는 자기 나라의 돼지들이 떼죽음 당하는 것을 볼 수밖에 없다. 한 나라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봉쇄 조치를 아무리 엄격하게 시행하고 모든 국민에게 백신을 맞추었다 할지라도, 다른 나라에서 다시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발생하여 유입되면, 그 나라는 다시 한순간에 국가적 재난 상황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제3 과제의 해결은 반드시 여러 국가들의 협력과 연대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특히 인접국들 간의 공동 노력이 일차적으로 필요로 된다.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공동의 노력을 하여야 한다는 공동의 의식과 목표를 가지고 공동의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약간의 시간차는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모두가 다 차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제2 과제를 무기로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 것처럼, 이 제3 과제도 무기로는 해결할 수 없다. 핵무기로는 COVID-19 바이러스를 죽일 수 없는 것이다. 제1 과제를 위하여는 어느 정도 쓸모 있는 무기일지라도, 그것을 가지고 참호 속에 들어가 있는 것만으로는 이미 제2, 제3의 과제의 전선에서 더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전쟁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인류가 맞이한 새로운 세계의 변화인 것이다.

 

3. 한반도가 해결하여야 하는 과제

전 세계의 모든 나라처럼 남과 북 역시 위에서 언급한 제1, 2, 3 과제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 과제 자체만으로도 해결하기 매우 어려운 것들인데, 남과 북은 모두 분단이라는 상황 때문에 이 과제가 훨씬 더 복잡하고, 엄청난 추가 비용을 더 들어가는 그런 깊은 수렁 같은 문제로 바뀌어 버렸다. 더구나 그 분단이라는 것이 과거 동서독처럼 기계적이고 수동적으로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6.25라는 최악의 민족상쟁을 동반하여 이루어진 것이었기에, 그에 의한 상처, 트라우마와 그에 따르는 증오, 의심, 불신이 세 가지 과제 해결에 결정적인 어려움을 만들고 있다.

따라서 남과 북은 이 세 가지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있어서 더 침착하고, 더 객관적이며, 더 합리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마치 프랑스가 마지노선 만드는 데 돈을 다 써서 정작 중요한 공군력 증강에 돈을 쓰지 못하였던 것처럼, 분단에 의하여 남과 북은 제1 과제 해결을 위한 안보 비용을 지나치게 많이 쓰면서, 정작 제2, 제3 과제를 해결할 여력을 많이 가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지금 한반도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극적인 일이다. 분단에 의하여 제2 과제를 해결하는 데 경직성을 가지게 되어, 영토와 주권은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큰 발전을 이루어 내지 못하고 있기에, 이것은 한반도에서 새로 태어나는 차세대 후손들에게 매우 불행하고 비극적인 일이다. 분단에 의하여 제3 과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우리는 훨씬 더 좁은 시야 속에 묶여서 이에 대한 관심도, 해결 능력도 충분히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측면에서, 이것은 한반도 안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그러기에 한반도에서 남과 북은 다음과 같은 해결 노력을 함께 해 나가야 할 것이다.

 

1) “우선순위 경직성”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한반도 상황에서 이 세 가지 과제는 어느 것이 먼저 해결되어야 그 다음 다른 과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는 식의 우선순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제1 과제가 완전히 해결되어야 제2, 3, 과제에 대한 해결 시도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성격의 과제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1 과제와 제2 과제, 제3 과제는 그 성격상 각각 독립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모두 중요하며, 여건이 먼저 되는 문제부터 어떤 형태로든 먼저 해결하기 위한 시도를 시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하면서 어떤 과제에서라도 먼저 그 해결을 위한 진전을 이룰 수 있게 되면, 그것이 다른 과제들의 해결에도 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게 된다. 지금 한반도에서는 제1 과제와 제2 과제가 연계되어 있는 ‘비핵화 이후 경제제재 해제’냐 ‘경제제재 해제 후 비핵화’냐를 가지고 긴 논쟁 속에 있다. 그러나 아무리 길게 논의해 보았자, 정말 특별한 조건의 변화가 있지 않는 한, 그것은 쳇바퀴 도는 듯한 논쟁으로 이어져 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러면서 남과 북의 사람들은 모두 다 더 어려운 삶을 다음 세대들에게 넘겨주며 자신들은 사라져 갈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논쟁을 하고 있는 동안, 갑자기 COVID-19가 터진 것이다. 2021년 6월 8일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는 짧은 1년 반의 기간 동안, 37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어 갔고,6) 모든 학교 교육들이 일시적으로 정지하였으며, 수많은 기업체들이 문을 닫았고, 크고 작은 지역들이 봉쇄되는 일들이 발생하였다. 중환자가 급증하여 병원의 처리능력을 넘어서서, 아르헨티나, 중국, 인도 등 수많은 국가에서 병원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가운데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들이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비핵화가 먼저냐 경제제재 해제가 먼저냐는 논란은 그 빛을 바랜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COVID-19와 같은 더 본질적이고 시급한 문제가 발생하면, 그 논란은 잠시 멈추고 이 문제의 공동 해결을 위하여 더 큰 그림을 가지고 머리를 맞대는 것이 더 적절한 일이라는 것이다.

 

2) COVID-19를 한반도 교착 상태의 “게임 체인저”로서 해석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문제는 COVID-19가 아니다. 그동안 전 세계 유행병 역사를 보았을 때, COVID-19는 일정 시점이 되면 천천히 자연소멸 되고, 이 문제는 결국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문제는 향후 COVID-19 보다 훨씬 더 전염력과 치사율이 높은 질병들이 차례로 계속, 그것도 더 짧은 주기를 가지고 인류를 엄습할 가능성이 매우 커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장기간 국가를 봉쇄하고, 그때마다 1-2년씩 걸려 불완전한 백신을 개발하여 접종하고 하다 보면, 결국 인류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제1 과제, 제2 과제가 아닌, 제3 과제에 걸려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이제 한반도에서도 제1, 2, 3 과제 각각이 가진 상대적 중요성의 비중에 큰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제3 과제가 가장 큰 비중을 가질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치 참호전을 위한 마지노선을 구축하여야만 미래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착각한 프랑스 정부와 군부처럼, 제1 과제만을 가지고 열심히 싸우면 미래의 국가 문제는 결국 다 해결될 것이라고 착각하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한반도의 남과 북에게 정말 크고 무서운 적은 이제 제3 과제와 연관된 것이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COVID-19는 교착되어 있는 한반도 상황에서 일종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7)로서 남과 북이 스스로 ‘해석’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제 남과 북은 서로에게 가장 큰 적이 아니라, 제3 과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데 있어 가장 인접되어 있고 중요한 파트너로 서로를 삼아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언어와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남과 북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적대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제1, 2, 3 과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면서 평화롭고 새로운 세상, 새로운 한반도를 만들어 가는 그런 상상력을 함께 가질 수만 있다면, 그 새로운 길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것이다.

 

3) 한반도 건강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는 구체적 활동에 나서야 한다.

6.25의 경험은 남과 북, 양쪽에 거대한 트라우마의 상처로 지금도 남아 있다.8) 그래서 서로를 증오하고 있고, 서로를 의심하고 있다. 의심을 신뢰로 바꾸는 과정을 점진적으로 충분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1 과제의 공동 해결은 접근하기 힘들다. 즉 비핵화의 논의는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뢰가 형성되지 못한 가운데, 제2 과제 해결을 하기 위한 논의도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작은 변화라도 만들려면 너무도 큰 ‘변화’를 감수하여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3 과제 해결은 다르다. 이것은 과제의 성격상, 상호간 깊은 신뢰가 충분히 없더라도, 일단 발등에 떨어진 불이고, 당장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점에서, 서로가 좀 더 객관적이고 명확한 이야기를 즉각적으로 나눌 수 있는 측면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

그런 의미에서 COVID-19를 포함한 제3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남북 공동의 노력과 접근은 남북을 가로 질렀던 트라우마의 깊은 골을 메꾸고 넘어갈 수 있는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즉 COVID-19 문제에서부터, 인수 공통 전염병의 문제들, 다재내성 결핵 퇴치, 그리고 홍수 대책을 위한 숲 만들기 등에 이르기까지, 당장 공동의 현안으로 이야기 나눌 내용들은 현실적으로 매우 많이 있다. 객관적으로 판단하면 이것은 제1 과제나 제2 과제와 얼마든지 분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반도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식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에 나서는 것을 우리는 ‘한반도 건강공동체’9) 구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4. 마치는 말 : 한민족이 세계에 던질 ‘K-메시지(K-message)’

COVID-19가 2년만 빨리 창궐했어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랬었다면 2018년 평양 남북 정상회담이나 북미 정상회담도 다 없었을 것이다. 만일 COVID-19가 20년만 일찍 창궐하였어도, 2000년 남북 정상회담도 6.15 공동선언도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의식을 하든 하지 않든, 우리 민족에게는 강고(强固)하게만 보이는 교착된 남북관계와 분단의 상황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어떤 기회들이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게, 빠르게 오고 가고 있다. 어떤 때는 그 기회를 정확히 포착하여 긍정적 진전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고, 어떤 때는 그 기회를 순간적으로 놓쳐서 진전이 이루어지지 못하기도 하였다. 어떤 상황이 왔을 때, 그것을 남과 북의 고착된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로 스스로 ‘해석’하고 그것을 이용하기로 스스로 ‘선택’하는 것은 오직 남과 북에게 달린 일이다. 지금 전 인류에게 큰 위협과 경고로 주어지고 있는 이 COVID-19를 남과 북이 어떤 것으로 ‘해석’하고 서로 논의할 수 있는 ‘기회’로 ‘선택’하느냐, 즉 게임 체인저로 만드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상황은 뜻밖의 변화를 만들어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한반도의 평화’란 일종의 ‘불가능한 상태를 이르는 말’로 인식되고 있다. 아무도 한반도에서의 평화를 상상조차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불가능한 꿈을 꾸어야 한다. 그래서 그 꿈을 꾸는 사람들의 숫자가 하나씩 늘어 갈 때, 마침내 그 꿈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희망은 원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걷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면 자연스레 길이 되는 것이다.” 노신(魯迅)이 한 말이었다.10)

우리 민족은 인류 역사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긴 역사 속에서 세계 최강국들과 맞서 민족의 정체성과 국가를 지켜온 사례를 만들어 낸 것, 전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키는 K-pop, 전 세계인들을 매료시키는 뛰어난 드라마와 영화 작품들, 전 세계 시장에서 가장 인정받는 전자제품들을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기여를 한 것처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보다 훨씬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길들이 있다. 예를 들어 남과 북의 지혜로운 능력들을 모아서 모든 변종 바이러스에도 대응할 수 있는 수퍼 백신을 개발하고 공급하는 일에 착수하는 것을 남북이 공동으로 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인류에게 정말로 대단한 기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것을 넘어서서 가장 극단적인 갈등과 대립, 증오와 의심으로 가득 차 있던 한반도에서 화해와 용서, 평화와 상생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전 세계에 보여 줄 수 있다면, 그래서 전 세계의 모든 절망적인 분쟁지역 사람들에게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희망을 주고, 우리 스스로 그 모델이 되어 줄 수 있다면, 그것이 남과 북 우리 민족이 인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기여가 될 것이다.11)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K-메시지(K-message)’, ‘K-model’ 이라고 자랑스레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 남과 북은 우리가 싸워야 하는 ‘진짜 적’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는가? 한반도에서는 ‘마지노선의 착각’이 없어야 한다.

전우택/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 한반도평화연구원(KPI) 3대 원장

 

※ 본 원고는 2021년 6월 15일에 있었던 <6.15 남북정상회담 21주년 기념식 및 학술대회>에서 저자가 발표한 내용입니다.

※ 이 글의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한반도평화연구원의 공식적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 글은 한반도평화연구원 홈페이지(www.koreapeace.or.kr)에 수록된 것으로 연구원 측의 허락하에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1) 남도현, <무기의 세계> ‘마지노선’.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78160&cid=59087&categoryId=59087

2) 제레드 다이아몬드, <문명의 붕괴> (김영사, 2005) p.578-579

3) 2021년 5월 현재, 세계 기업의 시가총액 순위는 1위 애플, 2위 사우디 아람코 (사우디 아라비아 국경이업. 석유, 천연가스 관련 사업) , 3위 마이크로 소프트, 4위 아마존 닷컴, 5위 구글, 6위 페이스북, 7위 텐센트 (중국 IT 기업으로 중국의 카카오톡인 위체 및 게임회사 운영), 8위 버크셔 헤서웨이 (미국의 다국적 복합기업. 투자 전문가인 워렌 버핏의 회사), 9위 알리바바 그룹 (중국의 IT 기업), 10위 테슬라 (미국의 전기자동차 회사)이다. 이중 IT 관련 기업이 8개, 비IT 회사는 2개이다. https://freemovement.tistory.com/262

4) 이런 개념을 유발 하라리는 그의 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김영사, 2018) p.266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바 있다. “........만약 중국이 미국과의 전쟁(을 하여).......승리한 인민해방군이 실리콘벨리의 부를 약탈할 수 있을까? 물론 애플, 페이스북, 구글 같은 기업들의 가치는 수천억 달러에 이르지만 그것을 힘으로 장악할 수는 없다. 실리콘벨리에는 실리콘 광산이 없다.”

5) 기후변화와 생태계의 파괴 및 변화는 인간이 새로운 질병에 감염되도록 만든다. 김명자는 그의 책 <팬데믹과 문명>(까치, 2020)에서 기후 위기가 신종 바이러스 출현과 연관된다고 이야기한다. 기온 상승으로 인해 병원체의 변종 가능성이 늘어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고온에 적응할 수 있는 형태로 병원체가 진화할 확률을 가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살모넬라균이나 콜레라의 창궐 가능성과도 연관된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 과정에서 벌어지는 야생동물 서식지 파괴도 감염병의 확산과 직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98-1999년 말레이시아에서 있었던 신종 뇌염 바이러스 니파(Nipha) 이다. 이 바이러스의 숙주였던 과일박쥐가 사람과 접촉하게 된 이유는 산불과 엘리뇨로 인한 가뭄, 그로 인해 양돈농장에 침입하게 된 과일박쥐가 돼지를 감염시키고 그에 따라 잇달아 사람까지 감염시킨 것이다. The Science Times. 2020. 6. 17.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C%BD%94%EB%B9%84%EB%93%9C-19-%EC%B0%BD%EA%B6%90-%EA%B8%B0%ED%9B%84%EB%B3%80%ED%99%94%EC%99%80%EB%8F%84-%EC%97%B0%EA%B4%80%EB%90%9C%EB%8B%A4/ COVID-19 와 연관된 바이러스의 기원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할지라도, 그것이 지구의 온난화 및 생태계 파괴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다.

6) COVID-19 실시간 상황판. https://coronaboard.kr/

7) “어떤 일에서 결과나 흐름의 판도를 뒤바꿔 놓을 만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나 사건, 제품 등을 이르는 말이다. 경영분야 등에 있어 기존의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가할 정도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시, 결과나 흐름의 판도를 뒤바꾸는 역할을 한 사람이나 사건, 제품 등을 가리킨다. 즉, 특출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며, 나아가 업계와 사회 전반에 큰 지각변동을 일으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컨대 게임 체인저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인물에는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 등을 들 수 있다.” pmg 지식엔진연구소 <시사상식사전> ‘게임체인저’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398167&cid=43667&categoryId=43667

8) 전우택, 박명림 외, <트라우마와 사회치유> (역사비평사. 2019).

9) 전우택, 김신곤 외, <한반도 건강공동체 준비>. 2판. (박영사. 2021 8월 발간 예정) 1장(전우택)은 한반도 공동체와 한반도 건강공동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한반도 정세의 현실은 매우 복잡하다. 그리고 현재까지의 상황을 본다면, 지금 북한은,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국제 사회에 소위 정상국가로 등장하는 과정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부터 남한과 북한은 각각 독립된 주권을 가진 정상국가로서 서로에 대한 관계를 가지게 될 것이고, 그 중에서도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접 국가이면서, 동시에 언어, 역사,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같은 민족 국가로서의 특수 관계를 가지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두 개 국가가 평화 속에서 각자의 번영과 공동의 번영을 위하여 함께 노력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단일 국가 형성으로서의 통일은 아니더라도, 곧 ‘한반도 공동체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큰 틀 안에서 남북한의 관계를 바라보고, 보건의료 영역의 활동도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최종적으로 단일 국가를 형성하는 통일이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현재 상황에서는 진정한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노력을 해 나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10) 루쉰, <루쉰 전집 2: 외침 방황> (그린비, 2010) p.104-105. 소설 ‘고향’의 마지막 문장이다.

11) 전우택 외, <평화와 반평화> (박영사, 2021). 

전우택  kpi@koreapeac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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