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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읽기] 보통 사람들의 '미래학' SF로 읽는 김정은 시대 북한의 미래
김태경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뉴스1


(서울=뉴스1) = 보통의 사람들에게 미래를 상상하고 준비한다는 것은 첨단 과학기술의 정확한 이해와 미래 예측에 대한 전문적 방법론에 근거한다기보다는 직관적인 이미지, 감성적 서사, 주관적 의지 등에 가까운 문제일 것이다. 특히 미래 세대인 청소년, 아동의 경우는 그들이 속한 사회가 그려내는 미래에 대한 스펙터클과 함께 모험, 정복, 경쟁, 좌절, 저항, 협력 등 다양한 서사적 구조를 접하면서 미래에 대한 상상과 준비의 태도를 형성할 것이다.

SF는 보통 사람들이 다가올 미래에 대해 나름의 대응을 성찰하도록 하는 길잡이가 될 수 있다. 냉전의 핵경쟁 시대 지구인들의 우주에 대한 상상을 자극한 <스타워즈>나 디지털 가상현실에서 어느 세계가 진짜 현실인지를 묻고 현실에의 개입, 변화를 위한 혁명적 상상력을 자극한 <매트릭스>와 같은 대중적 SF들은 새로운 변화, 미래상에 대한 다양한 감정을 자아내고 다양한 층에서 소비됨으로써 대중들이 미래에 대한 일정한 이미지, 시나리오들을 공유하도록 했다.

한국의 SF와 관련해서는 <판타스틱>, <해피 SF>, <거울> 등 장르문학 웹진들의 명멸이 있었고 대표적으로 포항공대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TCPT)가 발간하는 웹진 <크로스로드>(Crossroads)에서 한국창작 SF의 현재를 만나볼 수 있다. 2014년 <크로스로드> 창간 10주년 축하 기고에서 소설가 이덕래는 보통 사람의 ‘미래학’인 SF는 전형적인 크로스오버(과학+인문학)라고 언급하며 한국창작 SF의 꾸준한 성장을 기대했다. 중국 SF의 경우 2015년 류츠신의 『삼체』(三體)가 첫 영문 번역출간되어 ‘SF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을 수상하고 2016년 하오징팡의 『북경절첩』(北京折疊)이 수상하는 등 다양한 SF작가와 전문잡지, 팬덤의 생태계가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일본 SF는 데즈카 오사무의 <철완아톰>,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 등 서구 SF 고전들과 함께 장르 형성 자체에 큰 영향을 미친 애니메이션이 방대한 비중을 차지하며 현재도 특유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들을 펼치는 독보적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는 어떨까. 북한의 SF 작가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어떤 소재로 어떤 서사를 구성해왔을까. 북한 SF에서 우리는 김정은 시대 북한이 꿈꾸는 미래의 상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이 글은 보통 사람의 ‘미래학’이라는 SF를 통해 북한 사회의 미래에 대한 꿈을 이야기해본다.

동아시아 SF의 현재에서 잠시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자. SF연구자 이지용의 연구에 따르면, 동아시아의 근대화 맥락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의 첫 SF는 일본 유학생들이 만든 잡지 『태극학보』가 실은, 쥘 베른의 『해저 2만리』(1869)을 번안한 「해저여행기담」(1907)으로, 과학기술 발전을 통한 조선 근대화라는 이상향의 대중교양 차원에서 출판되었다. 사실상 동시기 중국, 일본 그리고 식민지기 조선의 SF 기원에서 드러나는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믿음과 대중계몽의 성격은 냉전기 근대화 과정의 한반도 남북 모두에서 지속되었다. 특히 북한에서는 ‘인민을 사회주의 정신으로 교양ㆍ개조하는’사회주의 문학예술의 본질상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상상력과 함께 당이 요구하는 국가건설의 방향에로 독자-인민을 불러일으키는 SF, 즉 ‘과학환상문학’ 작품들이 생산되었다.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의 사회주의문학예술이란 아직 다가오지 않은 공산주의 ‘미래’의 ‘현실’을 예술적 재현을 통해 인민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인민들이 이러한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인공물(artefact), 문예 이미지와 서사 등을 통해 체제에서 공적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언어를 습득하도록 한다. 예컨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장에 드러나는 수풍발전소, 풍년이 든 벼이삭, 혁명의 상징인 백두산과 붉은 오각별과 같은 이미지나 1930년대 항일무장투쟁 빨치산, 한국전쟁 영웅 등의 서사가 구현된 숱한 문학예술 작품은 공민으로서 체제 내 통용가능한 의사소통을 학습, 수행하고 규범에 맞게 행동하도록 만든다. 이에 대해 저명한 구소련 문화연구자 에브게니 도브렌코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사회주의 문예야말로 (소련) 사회를 가득 채운 이미지, 서사 등을 통해 사회주의 ‘현실’을 구성해내는 생산양식 그 자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사회주의 ‘현실’ 그 자체를 생산해내는 사회주의 문예의 힘과 이를 통한 강력한 집단주의적 동원의 동학은 천리마작업반운동이 들끓은 1950년대 말 북한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다. 해방 후 체제형성기 북한은 ‘소련을 향해 배우자’라는 캐치프레이즈 하에 광범한 사회주의 제도, 경제와 문화의 원형을 수용했는데 중ㆍ소대립이 본격화되기 직전인 1950년대 말에는 소련이 가까운 미래 미국을 따라잡고 중국이 영국을 따라잡을 때 북한 역시 공산주의 미래에 함께 육박할 것이라는 팽창적 열정에 사로잡혀있었다. 이 시기는 1957년 미ㆍ소 핵경쟁에서 ‘스푸트니크 쇼크’로 공산권 국가들이 미래에 대한 자신감과 기대에 한껏 부풀었던 순간으로, 북한의 ‘과학환상문학’은 냉전기 시대상을 반영하는 우주적 풍경과 사회주의국가 특유의 국제주의적 형제애를 그려냈다(대표작: 김동섭, 「소년우주탐험대-화성려행편」, 『아동문학』, 1960.3).

탈냉전 이후 관심이 제고되고 최근 SF 창작 작가, SF 어워드의 증가와 함께 독자들의 수요도 크게 늘어난 한국의 문화계와 달리, 북한의 SF는 『혹성간 비행선 달 1호』(과학소설 2집, 평양: 국립출판사, 1955) 등 냉전기 과학환상문학, 과학환상동화, 과학환상아동영화, 과학환상인형영화 작품들이 주요 공인문학잡지(『조선문학』, 『청년문학』, 『아동문학』) 지면을 차지해왔다. 김정은 정권에 들어서는 ‘지식경제강국’, ‘과학기술강국’을 내세우며 경제발전 전략 상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유례없이 강조하고 특히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따른 대외관계 개선의 기대 속에 ‘스핀오프’(군수경제의 민수 전환)를 지향하는 흐름 등 변화를 바탕으로 과학환상문학에 새로운 요구를 보이고 있다.

서동수, 복도훈, 김민선 등 대표적 북한 SF 연구자들에 따르면 김정은 시대 과학환상문학들은 상대적으로 젊은 신진 작가들의 출현(김민선), 기존과 달리 ‘근미래’, 즉 현재의 문제의식, 수요가 강하게 작용하는 소재, 시점의 선택(서동수) 등의 특징을 보인다. 특히 서동수는 ‘창전거리’(2012년), ‘위성과학자거리’(2013년), ‘미래과학자거리’(2015년), ‘려명거리’(2017년)이 일어선 평양의 스펙터클 자체에 대한 선전들에서, 김정은 시대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중첩되는 ‘가상의 현실화’ 경향이 보인다고 지적하면서 미래가 마치 가까운 현실로 다가선 것과 같이 그리는 최근 북한 SF의 서사들을 소개한다. 김정은 시대 SF를 세밀하게 독해한 김민선은 SF에 나타난 북한의 미래에 대한 흥미로운 감정선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김민선이 분석한 SF 중 세 작품의 에피소드를 맛보기로 소개한다.

「<광명성-30호>에서 날아온 전파」(『조선문학』, 2016.8)는 ‘광명성-30호’가 우주에 떠 있는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신승구의 소설로 ‘반물질우주비행선’과 ‘태양돛’을 개발한 남녀 과학자들이 ‘적국의 모략’으로 위협에 처한 ‘광명성-30호’, 그리고 조국을 과학기술의 힘과 죽음의 두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심으로 극복하는 서사를 보인다. 북한이 ‘광명성 4호’를 발사한 2016년에 출간된 소설은 ‘광명성 30호’가 지구 궤도를 돌고 있는 미래, 인공위성과 우주발전소를 위협하는 운석을 ‘반물질우주비행선’으로 올라타 파괴하는 고도의 테크놀로지를 자랑하는 ‘사회주의강국’ 북한이 적국과 ‘똑똑히 결산’하는 미래를 그린다.

2004년작 리금철의 「항로를 바꾸라」(『조선문학』, 2017.7)는 2017년 7월 ICBM 화성 14호, 11월 화성 15호 발사 이후 북한이 ‘국가적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시점에 재게재된 사례로, 고도가 떨어지면 폭탄이 터지도록 장치된 항공기가 평양 상공의 (중력을 조절하여 이용하는) ‘반중력마당’의 힘으로 무사히 구조된다는 내용을 다룬다. 항공기 테러에서 딸을 구출한 구소련의 미사일연구자는 국제기자회견을 통해 평양 상공에 설치된 난공불락의 방어체계의 존재를 만천하에 알리고, 전대미문의 자주적 방어체계를 가진 조선의 위력이 증명된다는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리명현의 「대양에로」(『조선문학』, 2018.2)는 완전무결하게 통제되지 않는,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재난의 가능성을 다루고 있어 흥미롭다. 유전자변이 기술을 통해 생산한 양어들이 ‘집단도주’해 해양생태계를 파괴하는 위기 상황, 양어장 관리 로봇 ‘모범병’이 먹이공급 관련 오작동을 찾아내지 못해 30% 치어를 손실하는 오류 발생 에피소드는 보다 유연화된 북한 SF의 현재를 보여준다. 심지어 로봇의 실수를 추궁하며 이름을 ‘락후병’으로 고치자 로봇이 인간처럼 “굵은 물방울”을 눈에 떨어뜨리고 주인공 연구자는 이를 동정한다. 유전자변이가 아닌 자연어종 풍부화의 새로운 기술고안을 제시하는 소설은 같은 저자의 「숲을 사랑하라」(2016)에서 다룬 산림복원과 같이, 자연자원의 관리, 생태환경 보호에 대한 김정은 정권의 정책 방향을 가늠하게 한다.

냉전 초기부터 지속된 우주개발 서사로부터 김정은 정권 재생 에네르기, 해양 에네르기 등 에너지 문제, 식량 문제 결속 등 김정은 정권 시기 현실과 가까이 맞닿은 주제들의 탐색으로 이어지는 북한 SF. 끝으로 당의 정책을 수행하는 작가와 함께 독자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직접 현지조사가 불가능한 북한 연구의 특성상 아래로부터 독자들의 반응, 요구가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지 밝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여기서는 사회주의 문학예술의 대상이자 작가 부대의 원천이라고도 여겨지는 인민대중, 그 중에서도 후속세대인 청소년, 아동들에 대한 하나의 이미지를 통해 고민을 던지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 이미지는 필자에게 북한의 ‘우주인’ 재현을 가장 선명하게 잡아낸 것으로 기억되는 이미지로, 『뉴욕타임스』에 보도된 사진 컬렉션 중에 기자가 아동병원에서 찍은 ‘은하 9호’와 우주비행사의 카툰 이미지이다(David Guttenfelder,“Illuminating North Korea,” New York Times, 2015.6.10.). ‘은하 9호’는 김정은 정권이 출범한 2012년 12월 광명성 3호 2호기(은하 3호가 운반체) 발사 성과를 대대적으로 경축한 연회에서 제시된 ‘미래’ 발사체의 예고편격에 해당하는 모형으로, 김정은 정권의 ‘우주강국건설의 구상과 포부’의 상징이다.

북한의 ‘첫 실용위성’을 쏘아올린 민족사 특대사변을 기념한 경축연회 전 김정은 위원장은 우주개발사업 공로자 101명에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했는데, 이들과 함께 한 경축연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은하 3호, 은하 9호 모형을 동시에 세워두고 향후 우주정복구상에 대한 신념을 설파했다(『로동신문』, 2012.12.28.). 바로 이 은하 9호가 평양의 아동병원에 만화적 이미지로 들어가있다는 것, 이는 김정은 시대 북한이 미래 세대에 꿈을 말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김정은 시대 국가적 표창을 받는 것은 우주개발사업 공로자들만이 아니다. 2013-2015년 연말에만 연속으로 당중앙위원회 청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표창을 수여받은 군 수산업 부문 공로자들을 생각하면, 북한 SF의 주요 무대인 우주와 바다를 떠올리게 된다. 김정은 시대 SF는 그만큼 정권이 ‘지금, 여기’의 국가적 의제로 추구하는 정책들을 ‘가까운 미래’로 그려 보인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 서사들이 미래 세대에 일관되게 전달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북한 SF에 관심을 가질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보통사람들의 미래학’으로서 북한 SF를 말하기 위해서는 독자와의 상호작용, 다양한 균열과 목소리들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는 한계로 남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세계에 단일한 목소리로 송출하고자 하는 북한의 미래상에 대한 열망과 의지는 분명하게 들을 수 있다.


/김태경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칼럼의 내용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뉴스1 <뉴스커넥트>를 통해 제공받은 컨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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