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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 세계 공급망과 한국기업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173호

동병상련의 우크라이나 위기

작년 말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등 구소련 국가들의 추가 NATO 가입,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인접 NATO 회원국 내 지상발사 단·중거리 미사일 배치, 러시아 인접 NATO 회원국 내 과도한 군사력 배치 등을 ‘레드 라인’으로 제시하고 우크라이나와의 국경 지역에 10만 명의 병력을 집중시켰다. NATO도 ‘초신속합동군(Very High Readiness Joint Task Force, VJTF)’ 투입 준비로 대응하면서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었다.

실제 전쟁이 일어난다면 미국이 주도하는 NATO와 러시아 간 군사적 충돌은 물론 러·서방국가 간 대립 심화로 비화되면서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가능성이 많고, 이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안보·경제 환경에도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크라이나 민족과 러시아 민족은 같은 동슬라브족이며 러시아 국가 역사의 모태가 키예프 공국임을 생각하면 같은 민족이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 상황을 떠올리게 해서 씁쓸한 마음이다. 또한 현재 한반도 상황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를 먼 나라 불구경으로 치부할 수 없게 한다.

우크라이나 위기가 장기화하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추동력은 약화될 가능성이 있고, 미-일 간, 중-러 간 상호의존 관계가 더욱 강화되면서 동북아에 신냉전의 그림자가 더욱 드리울 수 있다. 미국은 AUKUS 및 QUAD 등을 통해 동맹 외교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파워와 영향력을 유지하겠지만 한국과 같은 동맹국들은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또한 러시아가 서구와의 전략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균형 수단으로서 북한과 전략적 제휴를 강화해 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이렇게 되면 북-중-러 삼각협력체제가 더욱 선명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 미국, 영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비핵화를 대가로 경제지원과 안보보장을 약속한 1994년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Budapest Memorandum on Security Assurances)’가 휴지 조각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향후 북핵 협상에서 북한을 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입장을 갖게 할 가능성이 있다. 향후 대러 외교도 더 어려워질 것이다. 한-러 관계는 미-러 관계에 동조화하는 현상을 보여 왔다. 이번 사태로 미-러 관계가 더욱 악화된다면 한-러 관계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서구 대 러시아의 체제 대립(systemic confrontation)이 위기의 뿌리

이번 전쟁 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2013년 11월 유로마이단 혁명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의 급격한 친서방 경도로 NATO와 EU가입 노력을 가속화한 우크라이나의 탈러 정책과, 우크라이나를 인질로 미국과의 지정학적 경쟁을 통해 유라시아 영향력을 회복하고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영향권으로 끌어들이려는 러시아의 유라시아 통합 및 세력권 유지정책과의 마찰이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원인은 미국/EU와 러시아 간 체제 대립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각각의 내적 속성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다. 이는 과거 냉전 시기와 유사한 것이다. 소련 억제(containment)의 창시자인 조지 케넌(George Kennan)은 체제의 내부 성격이 소련을 내재적으로 공격적으로 만든다고 보았고, 오늘날도 러시아 대외정책에서 우크라이나 위기 뒤의 주요 이유는 푸틴 정치체제의 성격이며 국내 정권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수정주의(revisionist) 행태를 계속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러시아도 미국이 세계 질서 유지에 미국만이 필수국가라는 예외주의에 입각해 여러 국가의 주권(sovereignty)을 침해해왔다고 본다. 특히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서구의 궤도에 굳게 안착시켜 러시아 경계를 위한 완충지대(cordon sanitaire)로 만들려고 이용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단극 질서를 다극 질서로 전환하는 것을 대외 전략의 핵심 목표로 삼고 있는 러시아는 미-중 경쟁이 심화되어 미국이 전선 확대를 꺼리는 현 상황을 기회로 우크라이나를 약한 고리 삼아 새로운 지정학적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주변국 지도. 구글맵 제공

전쟁 가능성 현재로는 낮지만, 근원적 갈등 해결은 어려울 것

러시아가 현재로는 전면전을 일으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러시아로서 미국의 강력한 경제제재를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새로운 제재 수단으로 제시하고 있는 노드스트림2 사업 폐기, ‘국제은행간 결제 시스템(SWIFT)’에서 러시아를 차단시키는 것은 러시아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또한 이미 미국이 전쟁의 위험을 선제적으로 알렸고 동구 지역에 신속 병력이동 준비 등 군사적 태세가 갖추어져 있으며, 미국과 NATO의 지원으로 우크라이나 군 능력이 최근 향상된 점도 간과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더욱이 크림 사태 때와는 달리 러시아 국민들 여론도 그리 긍정적이지 못한 것도 큰 이유이다. 러시아인의 66%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갖고 있으며, 23%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우호적인 이웃이 되어야 하지만 여전히 국경이 있어야 한다고 답했으며, 응답자의 17%만이 두 국가의 통합을 지지하였다.

러시아가 원하는 법적 구속력 있는 미-러 간 합의는 불가능해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가 상원에서 이를 비준 받을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미-러 양측의 체면을 살리는 차원에서 이 상황을 임시적으로 봉합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다. ‘안정적인 현상유지 상황관리 수준’에서 우선 갈등을 봉합해 나가되 계속 타협을 모색하는 협상을 이어갈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이는 것이다. 러시아 측은 우선 그간 러시아의 요구를 무시해온 서방이 러시아 안보 요구에 응해 협상에 나선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INF 재협상과 이전에도 논의되었던 국경 근접 지역에서의 군사 훈련 제한처럼 합의 가능한 의제부터 논의할 것을 합의하는 것이다. 향후 러시아와 NATO 간의 접촉선을 따라 군사 활동을 제한하는 완충 지대를 만들고 ‘NATO-러시아 위원회(NATO-Russia Council)’를 재개하고 어떤 형태로든 ‘항공자유화 조약(Open Skies Treaty)’을 부활시킬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번 전쟁 위기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볼모로 새로운 지정학적 경쟁의 신호탄으로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갈등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러시아 PNG 재검토해 볼 시점이다

러시아는 최근에 가스 공급량 조절 등 에너지를 무기화하여 유럽 내 영향력 강화를 시도해 왔다. 따라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실제 발발하지 않더라도 글로벌 유가와 가스가격 특히 유럽에서는 상당한 상승이 일어날 것이다. 유럽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러시아는 유럽 석유의 약 30%와 천연가스의 약 35%를 공급하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야말-유럽 파이프라인 공급을 중단하는 등 에너지를 대 유럽 영향력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전쟁 위기를 빌미로 가스 가격 급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유럽을 위해 주로 한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 수출 중인 카타르 LNG를 유럽으로 돌리거나 미국산 셰일가스 수출을 유럽으로 돌리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으나, 실행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어 유럽에서의 에너지 혼란은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노드스트림2 중단을 대러 압박 카드로 활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국이 대규모 구매를 통해 러시아를 지원할 가능성이 있고 유럽조차도 러시아 에너지를 완전히 포기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도 당연히 비축유 확대와 긴급 대여 수단을 쓰겠지만 보다 장기적 안목도 필요해 보인다. 한국의 중동산 원유 도입 비중이 70%에 다다르는 상황에서 미-러 및 미-중 간 갈등이 남중국해 항로 안전을 불안하게 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의 천연가스 수입국 비중이 가장 큰 카타르(23%)와 미국(14%)의 LNG가 유럽 시장으로 전환하게 된다면 한국의 에너지 안보는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 공급 안정성이 큰 러시아 PNG의 장기공급 계약의 긍정적 검토를 해 볼 시점이다.

 

주요 금속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 해외자원개발사업 확대로 대응해야

우크라이나 위기 이전에도 한국 제조업에 필수적인 금속 가격은 이미 상승세였다. 이 분야에서 러시아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매우 높다. 니켈의 점유율은 약 49%, 팔라듐 42%, 알루미늄 26%, 백금 13%, 철강 7%, 구리 4%로 추정된다. 니켈은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주방용품, 휴대전화, 의료 장비에 필수적이고 팔라듐도 많은 전자제품에 들어간다. 짧은 기간의 전쟁보다 장기간의 적대적 평화가 관련 상품의 공급과 비용에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의 실패 이후 해외자원개발은 크게 위축되었다. 신냉전이 심화되면 주요국의 원자재 무기화는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보다 장기적 안목에서 해외자원개발을 확대를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곡물·비료 공급 위기 식량자주율 높이는 전략 검토해야

러시아는 세계 최대 밀 생산국이며, 비료에 들어가는 암모니아의 23%, 칼륨의 17%, 요소의 14% 및 인산염의 10%를 공급하는 국가이다. 코로나 위기로 이미 곡물 가격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다면 곡물 가격이 폭등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중국이 이미 국내 사용을 위해 요소와 인산염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예약한 상황에서 러시아 공급망을 잃으면 주요 비료 성분의 추가 부족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약 27%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해외 농장 개발이나 해외 곡물기업에 대한 투자 등을 통해 필요한 식량을 해외에서 즉시 조달할 수 있는 식량자주율을 높이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간 많은 노력을 해온 러시아 극동지역 농업투자 효율화 방안을 재검토하고 우크라이나 농업 투자에 대한 현실적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한국 기업들 대러 결제시스템 혼란 준비해야

SWIFT에서 러시아 차단 가능성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크림 사태 때 영국은 유럽 지도자들에게 그러한 선택을 고려하도록 호소한 바 있고, 2014년 4월에 VISA와 Master 카드는 블랙 리스트에 오른 러시아 은행 대상 서비스를 일시 중단하고 결제 시스템 사용을 차단하였다. 러시아는 이에 대응하여 Mir라는 국가 지불 카드시스템을 도입했다. 2014년 이후 Mir의 사업 점유율은 러시아 전체 국내 카드 거래의 24%로 성장했으나 러시아 이외의 지역에서 결제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제 Maestro 시스템, 중국 UnionPay 및 일본 JCB와 공동 브랜드 카드를 사용하여 일부 거래를 해외에서 수행할 수 있을 뿐이다.

 

중기적으로 2014년 러시아 중앙은행이 설립하고 브뤼셀 기반 은행간 이체 기능을 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러시아 SPFS(System for Transfer of Financial Messages)로 대체하는 것을 노력하고 있으나 외국 회원을 확보하는 데는 어려움이 큰 상황이다. 중국 CIPS(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와 연결하자는 의견도 있으나 국제 금융시장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미미한 점을 고려하면 이것도 현실화에는 어려움이 클 전망이다.

만약에 러시아가 SWIFT에서 차단된다면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인 자동차, 반도체, 가전 등에서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러시아 내 주요 국내기업의 외환 결제에 대해 러시아 정부와 협상을 준비해야 할 수도 있다. 또한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면서 러시아에서 자본 유출과 루블화 폭락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의 환위기 리스크 관리에도 각별한 유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필자소개

엄구호는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이자, Elsvier Press에서 연 2회 발간하는 영문 잡지인 Journal of Eurasian Studies의 공동편집장으로 있다. 또한 저자는 아태지역연구센터 소장으로 지냈다. 그는 10권이 넘는 책과 Global Economic Review 등의 학술적 잡지에 100개가 넘는 논문을 출간하였다. 저자는 2011년에 러시아 정부가 수여하는 푸시킨 메달을 받았다. 또한, 엄구호는 러시아와 유라시아 국가들에 대한 많은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엄구호  mail@kea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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