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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평화를 지키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평화재단 현안진단 제276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며 즉각적 철군을 요구한다

러시아 정규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상대국의 자주권을 노골적으로 짓밟는 푸틴의 모습은 히틀러를 연상시킨다. 우크라이나 내전의 반정부 교전단체를 국가로 승인함과 동시에 그 단체의 요청으로 참전한다는 구실을 내세우지만 정당한 명분이 되지 않는다.

이미 미·중 간 패권경쟁 양상도 국제사회의 경계와 주시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러시아가 영향력을 넓히려는 전쟁을 감행해서 국제평화에 대한 우려를 더하고 있다.

히틀러는 독일민족의 생활권(Lebensraum)을 주장하면서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합병하고 패권을 추구했다. 이런 상황에 편승해 일본은 만주 침략을 정당화하고 대동아공영권을 꿈꾸었다. 그것이 세계대전으로 이어져 많은 나라가 엄청난 희생을 치렀고 독일과 일본은 결국 전범국으로 몰락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자기의 영향권으로 주장하여 사실상 붉은 제국의 재건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이번 사태를 대미 패권경쟁에 끌어들이지 말고, 정당하지 못한 전쟁에 대해 중립이나 방관이 아닌 확실한 반대 입장을 보여야 한다. 대국굴기(大國屈起)를 지향하는 중국의 입장과 행동이 전쟁과 평화의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엔총회는 3일 러시아를 규탄하고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압도적 다수(찬성 141표, 반대 북한포함 5표, 중국은 기권)로 채택했다. 우리 정부는 러시아의 침략행위를 규탄하며 찬성표를 던졌고 대러시아 제재에 참여하기로 입장을 정했다.

평화재단은 이 같은 정부의 결정을 지지하며 영토와 주권, 자유를 수호하려는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민들을 응원한다.

 

북한 비핵화 문제에 미치는 영향과 평화를 지키는 힘

공교롭게도 북한과 우크라이나는 1994년 같은 시기에 비핵화 약속을 했다. 우크라이나는 구소련이 남겨둔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겨준다는 자발적 비핵화를 약속했고(부다페스트 각서), 북한은 핵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미·북 제네바합의)을 했다. 우크라이나는 약속을 이행했고 북한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약속을 어기고 국제제재 속에서 핵무장을 강행했다.

우크라이나가 핵무장을 했다면 러시아가 침공을 못했을 것이며 그런 점에서 북한의 핵무장이 옳았다고 할 수 있을까? 북한은 그들이 취했던 입장의 정당성이 입증되었다고 주장하겠지만, 한 나라의 안보가 핵무기만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북한의 판단은 허상 위에 서있었고 그 결과는 점차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국가주권과 국민생활의 수호를 위한 자위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핵무기가 있어도 그것 때문에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국가주권의 대외행사가 제약되고 국민경제가 위협받아 대다수 주민의 고통과 희생이 따른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국민의 인내와 희생이 한계를 넘으면 핵무장은 무거운 짐이 될 뿐 큰 의미가 없다. 핵무기가 절대무기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핵무장이 소련의 붕괴를 막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북한이 주민의 희생과 인내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기 위해 충성심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노심초사하는 것은 이런 사실을 북한당국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대통령을 비롯하여 많은 국민이 피난을 가지 않고 전장에 남아 조국수호의 무기를 들었다. 조국이 지향하는 가치가 생명을 바쳐 수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하는 국민들은 전쟁에 패해서 나라를 빼앗기더라도 언젠가 되찾을 수 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100만 대군에 맞서 아테네가 승리한 힘은 민주주의에 있었다. 페르시아 병사는 전쟁의 목적도 모르고 대부분 수단으로 강제동원 된 반면, 그리스 병사는 시민으로서 조국에 대한 책임감으로 참전하였으며 이러한 시민의식을 확립한 것은 민주주의가 가져온 결과였다.

자발적 시민의식을 기르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과 비판에 열려 있어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힘이다.

 

민주적 선거만으로는 민주주의 정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집권당과 야당 간에 타협 내지 협치가 되지 않고 극단적인 대립으로 소수 의견이나 비판이 수용되지 않는 정치는 아무리 선거가 절차적 공정성을 갖고 치러졌다고 해도 민주주의라 할 수 없고 그런 사회에서 공동체의 유대감이나 자발적 시민의식에 의한 책임감을 키우기는 어렵다.

비판을 허용하지 않고 침묵시키는 사회나, 비판이 극단적으로 이루어져 타협 없이 대립하는 사회나 진정한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그러한 사회는 구성원들의 역량을 침잠시키는 죽은 사회이거나 혼돈과 무질서로 가득 차서 진정한 소통을 잃어버린 사회다.

민주적 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이 큰 역할을 하는 반면 정치과정에서의 타협과 협치에는 정치인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그런 정치인을 정치무대에 등장시키는 책임은 유권자에게 있지만 유권자 정치의식에 부합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을 다 걸러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정치참여 의식은 우리만큼 높다. 2004년 오렌지 혁명 때는 여당의 부정선거에 항의하여 들고 일어난 시민들이 재선거를 관철시켜 정권교체를 이루었고, 2013년 유로마이단 때는 대통령을 탄핵시키기도 했다.

우크라이나는 국민의 18%가 러시아계이고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러시아 언어를 이해하고 러시아에 많은 친척들이 있지만, 소련 해체 이후 신생공화국으로서 나름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타협이나 협치보다는 극단주의적 대립으로 흘러서 국민을 친러와 친서방 세력으로 갈라치기 하면서 나라를 분열시켰다. 한때는 우크라이나를 동서로 가르는 드미프로강을 중심으로 동쪽은 친러 정당이 서쪽은 친서방 정당이 각각 90%를 득표할 정도였다.

결국 극단적 비타협 정치로 인해 친러 주민이 많은 크림반도와 동부의 돈바스 지역이 독립을 주장하였고 러시아에 병합되거나 개입 구실을 주었다.

나라가 사실상 분열된 상태에서 기성 정치권의 극단적 대립과 무능에 지친 유권자들이 배우 출신의 정치신인 젤렌스키 대통령을 당선시켰다. 무려 70%가 넘게 득표했고 그가 이끄는 정당은 의회의 과반수를 차지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이번의 국난을 극복하여 평화를 회복하고 민주주의도 정착시켜 그동안 갈구해오던 국민통합에 바탕을 둔 실질적인 나라세우기(nationbuilding)를 완성하길 기원한다.

우리도 지금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치르고 있다. 그러나 비전 제시와 정책 토론은 접하기 힘들고 어느 때보다 상호 거센 비방전과 진영논리에 바탕을 둔 적대감 확산 시도가 판을 휩쓸고 있어 국민통합을 멀어 보이게 한다. 이미 많은 유권자들이 선거 이후를 더 걱정하고 있다. 타협이 사라진 극단적 정치행태의 출현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우리 사회의 각계 원로인사들을 중심으로 대선 후보들에게 “20대 대통령 당선 즉시 인수위원회를 중심으로 연합정부 구성 준비를 하고, 책임총리를 비롯한 초당적 내각 구성을 약속하라”고 요구한 것은 시의 적절했다.

아울러 패자는 선거결과에 승복하고 승자의 협치 요구에 응해야 한다. 유권자들도 아무리 정치에 실망했어도 시민적 책임감을 가지고 선거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번 대선을 우리가 원하는 국민통합의 정치를 정착시키기 위한 개혁을 반드시 실천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 민주주의 성숙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북한에 핵무기보다 강력한 민주주의의 위력을 절감케 하는데도 긴요하기 때문이다.

평화재단  hyeonan@p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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