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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이기에?' 의심하는 이 땅 탈북자들에게이상갑의 가나안 묵상(4) 탈북자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역사의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이다. 역사의 겨울은 영원하지 않다. 봄의 기운이 퍼지고 햇살이 비추이기 시작하면 모든 국경선의 꽁꽁 얼어붙었던 얼음이 풀리고 희망의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역사의 겨울도 성령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꽁꽁 얼어붙었던 문제들이 녹아 흘러내릴 것이다. 그렇다. 봄은 기어이 오고야 말 것이다. 우리 민족을 위한 기도를 드리는 가운데 느끼는 것은 눈에 보이는 이 땅의 분단된 현실이 아닌 이 민족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 민족의 미래를 주도해 가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북한과 중국과 변방의 추위가 문제가 아니라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기에 이 땅의 통일 문제를 두고 모두들 절망한다. 상황을 보면 어둠이 짙은 가운데 소망이 없어 보이지만 북한 땅의 그리스도인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되고 있기에 소망은 여전히 강력하게 존재한다. 독재자들이 북한 형제자매들을 괴롭히고 학대한 세월이 1945년 광복 이후부터 따지면 이제 머지않아 70년이 되는 셈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의 신음소리를 기억하신다. 부르짖음을 듣고 계신다. 독재자들의 학대를 다 알고 계신다.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출 3:9) 

우리 곁에는 단지 생존이 아닌 독재자의 학대를 피해 출북한을 한 용기있는 사람들이 있다. 북한의 선전선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자유의 가치를 보고 듣고 배우고 사모하여 자유를 찾아 길을 떠난 이들이 있다. 북한의 세뇌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의 회복을 위해 길을 떠난 이들이 있다. 나는 탈북자들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여기에서 찾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탈북자, 그들의 뒤에는 역사의 주인이신 한 분이 계신다. 그리고 그분은 말씀하신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  참으로 흥분이 되는 말씀이다. 지금 구석 구석에서 역사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탈북자 형제자매들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이다. “내가 너를 보내어 북한 땅에 자유를 선포하리라. 내가 너를 보내어 그들의 눈물을 씻겨 주리라.” 그렇다. 탈북 지체들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역사의 중대한 사명을 부여 받은 통일의 길을 준비하는 인생으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탈북의 과정에서 험난한 산과 들판과 강을 건너며 온갖 고초를 당하고 죽음의 위험을 경험한 광야의 길이 이 민족의 미래를 준비하는 통일로인 것이다.

   
▲ 한 탈북자의 남한 정착 과정을 리얼하게 그린 영화 '무산일기' 포스터.

그들은 어쩌면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 3:11) 모세의 고민은 자신이 누구인지는 아는데 자신에게 소명을 주신 하나님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세를 보내시는 분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우주의 통치자시다. 만유의 주가 되시는 분이시다. “내가 누구이기에” 이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나를 너무 깊이 인식하면 절망의 벼랑에 몰리지만 나를 부르시고 보내신 이를 깊이 묵상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환상으로 무장한 비전의 사람이 된다. 세상적인 정체성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서 자신을 보아야 한다. 이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거짓된 자아의 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어쩌면 길고 고된 작업을 거쳐야 한다. 모세는 그 작업을 40년이란 시간 동안 하였다. 그는 고향을 떠나고 부모형제를 떠나야 했다. 고통스러운 대가지불의 과정이 있었다. 그는 “잊혀진 존재” 처럼 나그네요 방랑자로 유리방황하였던 시간들을 통과해야만 했다. 자신의 인생이 초라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자신의 존재 자체가 무로 느껴지는 순간들이 수시로 괴롭혔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아득한 절망 가운데 내동댕이쳐진 자신을 바라보며 신음소리조차도 내기 힘든 자기 부정의 시간들을 그는 통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하나님의 손에 의해 빚어지는 인생으로 변화되었다.

자기를 부인하는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 3:12)  하나님께서 이렇게 속삭이시는 것이다. “넌 혼자가 아냐. 내가 너와 함께 할 거야. 넌 내 거야. 내가 너를 보호할 거야. 내가 너를 지키고 인도할 거야. 내가 너를 붙들어 줄 거야.” 이 속삭이시는 음성이 들리는가? 그대가 바로 이 시대의 모세이다. 그대는 탈북을 한 형제자매일 수 있다. 그대는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는 이 땅의 숨겨진 통일사역자일 수 있다. 그대들이 깨어나야 이 땅에 겨울이 가고 봄의 향기가 진동하는 그날이 올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아야 할, 깨어나야 할 세대는 누구인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너와 나 우리가 아니겠는가? 북한 땅에 울려 퍼질 희년의 웃음소리를 지금 여기에서 들으라. 그대를 통해 북한 땅에 성령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꿈과 환상을 지금 여기에서 보라. 탈북 형제자매들이여 기억하라. 그대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든지 그대들은 통일을 준비하는 인생들이다. 광야의 길을 통과하여 보았기에 그대들은 광야를 지나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거쳐서 북한 땅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 상황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 비교의식에 빠지지 말고 창조의식으로 채우라.

이 땅의 숨겨진 북한을 위한 중보자들이여, 청컨대 북한 땅을 위한 중보의 손길을 내리지 말라. 그대들의 눈물이 하나님의 보좌를 뒤덮게 하라. 탈북자들이 유리방황하며 짐승처럼 취급 받으며 송환되는 것을 반대하여 탈북자들의 인권이라는 공의가 물처럼 흐르고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기까지 무너진 데를 막아서라. 더 나아가 북한 땅의 형제자매들의 압재당하는 슬픔과 고통과 서러움의 신음소리가 멈추기까지 기도의 손을 내리지 말라.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차가운 바람이 분다. 그러나 봄을 재촉하는 따스한 바람도 분다. 그 어느 때도 이토록 민족의 문제를 두고 고민을 나눈 적이 없었다. 바로 지금이 온도를 높일 때이다. 여기저기서 탈북자들의 인권문제가 다양한 목소리로 나누어지고 있다. 바라기는 이 모든 소리들이 잠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스쳐 지나가는 이벤트성이 아니어야 한다. 한 순간 뜨거워졌다가 선거라는 폭우가 끝나면 차갑게 식어 버리는 냄비근성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한 순간 스쳐 지나가는 소리 정도로 그쳐서도 안 된다. 그 날이 오기까지 멈추지 않아야 소리여야 한다. 인권이 인정되는 그 날이 오기까지...더 나아가 북한의 백성들에게도 인권이 인정되고 자유의 희년이 선포되는 그 날까지...하나님의 형상의 회복과 하나님 나라 운동은 남북 곳곳에서 그리고 지구촌 도처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져야 한다.

(무학교회 청년대학부 담당 목사, 학원복음화협의회 협동총무)

이상갑  sg9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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