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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기록, 용기있는 고백book review; 『칼날 위의 평화』 이종석/ 개마고원(2014),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 김종대/ 나무와숲(2010)

노무현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정책인 ‘평화번영 정책’은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서둘러 덧붙이자면, 이것은 아주 논리적인 판단이다. 평화번영 정책의 목표는 2가지였다. 첫째,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막는다. 둘째,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한국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국가로 자리매김 한다. 이 두 목표 모두 달성하지 못했으니 실패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참여정부 후반기인 2006년 10월 9일 핵실험을 단행했고 이후 수차례 미사일까지 쏘며 무기화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과 세계전략을 논하는 G2로 등장한 시점에 한반도 문제나 동북아 정세 속에서 한국의 입지는 더욱 위축되고 있다. 목표한 바에 이르지 못했으니 결과적으로 실패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참여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활동을 기록한 이 두 권의 책은 실패에 대한 반성문 내지 변명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노무현 시대 통일외교안보 비망록’이라는 부제를 달고 2014년 5월에 출간된 『칼날 위의 평화』는 참여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체계를 만들고 그 사무차장으로 재직하며 뒤에는 통일부장관까지 지낸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원이 쓴 책이다. 이 책을 소개하는 김에 다시 호출하고 싶은 책이 2010년 2월에 나온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라는 책이다. 참여정부 국방보좌관실에서 근무한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이 쓴 책으로, 이종석 장관의 책보다는 국방 분야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

   
▲ 이종석 저서 <칼날 위의 평화, 김종대 저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 책표지

참여정부 외교안보정책의 실패에 대한 반성문
이 두 권의 책 외에도 참여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변명’하는 책이 여럿 있다. 6자회담의 한국 수석대표였던 이수혁 당시 외교통상부 차관보의 『북한은 현실이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지난 2012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공개된 남북정상회담 녹취록을 해설한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이 있고,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봉하마을에서 쓴 원고를 모은 『성공과 좌절』이란 책에서도 외교안보 분야의 내용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같은 시대를 같은 주제로 기록한 여러 책들 중에서도 이종석, 김종대 두 사람이 쓴 이 두 권의 책은 아주 잘 쓴, 반박하기 어려운 변명이다. 이 책을 통해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 정책은 어느 정도 명예를 회복했다고 본다.

사실 노무현 정부가 2003년 출범하면서 ‘평화번영 정책’을 내세웠을 때부터 사람들은 이룰 수 없는 목표라고 코웃음쳤다. 2014년의 대한민국에선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만 해도 정권이 뭐를 발표하든 사람들은 비웃을 준비를 하고 있긴 했다. 게다가 한국이 나서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고,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의 틈바구니에 있으면서 오히려 동북아 중심국가가 되겠다는 주장을 당찬 포부라며 박수 쳐주기엔 상황이 만만치 않았다. 현실을 모르는 아마추어들의 택없는 헛소리 내지는 국민을 기만하는 헛된 꿈이라고 평가하는 게 앞뒤 안맞는 소리는 아니었다.

노무현 정부 초기 외교안보 분야를 취재했던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그 5년 동안 평화번영 정책은 자신들의 목표에 굉장히 어렵고 힘들게, 그러나 아주 끈질기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 두 권의 책을 읽고 나서는, 그 목표에 꽤 가깝게, 거의 손에 잡힐 정도로까지 다가갔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당시 취재 현장에서는 이해하지 못했던 여러 사건들 뒤에 숨겨졌던 외교안보적인 계산과 북한이나 미국과 있었던 비밀스런 일들을 기록한 대목을 읽으며 뭐라 말하기 어려운 감회와 당시의 여러 일들이 생각나 수시로 책장을 잠시 덮고 눈을 감아야 했다.

이종석의 책을 읽은 소감을 먼저 밝히자면, 먼저 남과 북이 서로의 생존을 위해 위협과 도발을 쌓아가길 멈추고 평화와 공존을 위해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일은 가능하구나 하는 묵직한 감동을 느꼈다. 또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그래서 강한 인내심과 냉철한 계산, 개인적인 명예보다 한반도의 운명을 개척하겠다는 강한 사명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새삼 절감했다. 특히 6자회담이 성공 일보 직전에 좌절하는 대목에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극복하기 힘든 국제외교안보의 잔인한 현실에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었다.

‘고군분투 실패기’
이종석은 책 서문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추구한 가치가 상식과 합리성에 기초한 보편적 가치였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으나, 책의 뒷부분에서 결국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실패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고백한 사실을 기록했다. 그의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고군분투 실패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실패는 미국 탓이라고 이종석은 말했다.

“실패로 따지면 미국이 논리적으로 제일 많이 실패한 게 되겠죠. 그리고 우리도 역시 설득을 하다가 못했으니까 실패한 거고 중국도 실패한 겁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들이 실패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국제사회의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로 북한 설득에 이렇게 어려움이 있습니다.”

미국 탓에 공감하지 않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애초부터 미국을 설득하려 하거나 미국을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라는) 다른 길로 끌어들이려 한 것 자체가 무모했다고 말할 이들도 적지 않으리라. 하지만 당시는 북한 핵시설에 대한 군사적 공격이 구체적으로 공개리에 거론되는 상황이었으며, 한반도의 어느 누구도 그런 상황에 손 놓고 미국만 쳐다보고 있으라고 주문할 수 없었다.

이 책은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의 구체적인 내막을 비교적 상세히 공개하면서 노무현 정부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고, 얼마나 많은 성취를 이뤘는지를 박진감 넘치게 전했다. 그 절정은 2005년의 6자회담 9·19 합의였다. 비핵화와 북-미 관계정상화 등의 원칙을 명시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 합의가 나오는 데에는 한국이 제안한 대북송전 계획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이종석은 책에서 주장했다.

그러나 잔인하게도 절정의 추락과 실패는 절정의 직후에 바로 다가왔다. 같은 달 미국은 마카오 소재 중국계 은행인 방코델타아시아(BDA)를 테러자금 세탁기관으로 지정해 북한의 관련 계좌까지 동결시켜버렸다.

9·19와 BDA
이종석은 “BDA사건이 9·19합의를 유린했다”면서 “2005년 가을로 잠정 합의한 남북정상회담까지 무산됐다”고 한탄했다. 훗날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된 미국의 관련 외교전문에 따르면,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도 북한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다. 중국 정부 내에서도 북한의 핵포기 의사를 믿을 수 있는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중국이 미국의 BDA규제를 내버려둔 것에는 이런 점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상황을 복기해보면 당시 북한 핵문제 해결에서 한국의 역할은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고, 결국 그 한계는 참여정부 마지막 순간에 등장해 한반도를 다시 옥죄었다.

이종석의 책에는 자신이 현직에서 떠나 있던 마지막 1년에 이뤄진 남북정상회담과 관련된 기록은 없다. 또 외교안보 분야에서 중요한 축을 차지하는 군사 분야에 관해선 상대적으로 개략적인 내용만 적었다. 전체적으로 무척 흥미진진하고 진솔한 기록이지만 이라크 파병이나 참여정부의 자주파 논란, 외교부의 조약국 파문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자신의 입장만을 너무 강하게 변호하고 있다는 인상도 받았다. 그 공백을 메워줄 수 있는 책이 김종대의 책이다. 김종대는 정책책임자의 입장보다는 내부관찰자의 시선으로 참여정부의 외교안보, 특히 국방 분야의 사건과 논란을 정리하고 있다. 그 자신이 “이 기록물을 내놓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자주론자뿐만 아니라 생각이 달랐던 보수층의 의견에도 충분히 귀를 기울였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NSC와 국정상황실의 갈등이나 이라크 파병 등의 문제도 당사자인 이종석의 기록과 김종대의 책을 비교해서 읽으면 흥미롭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후반에 언론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국방 개혁에 나서게 된 것은 윤광웅 당시 국방장관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윤광웅 장관은 해군 출신으로 군 무기체계와 관련된 일에 오랫동안 참여하며 자주국방과 국방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해온 인물이었다. 김종대는 자신의 책에서 박정희 노태우 김대중 등 전임 대통령들이 모두 장기적인 국가 청사진과 전략을 구상하면서 국방개혁을 추진했고 노 대통령의 노력도 그 연장선이었다고 피력했다. 천용택 김희상 등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서 국방개혁 작업을 주도한 인물들이 노태우 정부에서 818 군제개혁을 추진한 인물들이었다.

참여정부의 외교안보 문제라면 역시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서해북방한계선(NLL)과 관련된 기록이다. 2006년 5월에 열린 제4차 남북장성급회담에서 북한이 백령도 연평도 등 서해 5도의 남측 주권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새로운 해상분계선을 제안했다. 이듬해 열린 5차 장성급회담에서는 그러나 남측 국방부 대표단이 NLL문제에서는 협상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내세워 아무런 합의도 이뤄지지 못했다. 김종대는 당시 회담 진행 상황을 지켜본 청와대 NSC 관계자들이 국방부의 고답적인 태도에 분개하면서 “이종석이 있었다면 가만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적고 있다.

김종대가 이 책을 쓴 것이 2010년인데, 우리가 알다시피 2012년의 대통령선거에서 새누리당은 남북정상회담 녹취록까지 공개하면서 NLL문제를 쟁점으로 삼았다. 2014년에 출간된 이종석의 책은 NLL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5차 남북장성급회담이나 남북정상회담 때에는 이종석 자신이 일선에서 물러난 입장이니 비망록으로 쓴 책에 당시 야인이었던 자신의 입장을 굳이 밝힐 필요는 없긴 하다. 그래도 참여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컨트롤했던 그의 판단과 관찰이 궁금하다. 이종대는 NLL논란에 대해 윤광웅 전 장관의 이런 의견을 결론 삼아 옮겨놓았다.

“우리가 북한에 ‘NLL은 통일되면 없어질 선인데 이 문제로 시끄럽게 할 것이 무어냐. 일단 경계선을 건드리지 말고 양쪽의 불편을 해소하는 길을 찾아보자’고 하는 것, 현재로서는 이것이 최선이다. 더 이상 나가서는 안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뒤 쓴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윤광웅의 의견과 같은 얘기다.

“NLL문제는 단박에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선 평화, 경제협력 등을 합의한 다음, 이를 위해서 NLL 문제와 관계없이 협력하여 일정한 평화지대를 만들면, 크게 싸우지 않고 분쟁의 소지를 예방할 수 있는 장치가 되지 않겠는가”(‘성공과 좌절-노무현 대통령 못 다 쓴 회고록’)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시시때때로 다음 대통령선거 때 또 책의 한 대목을 거두절미 인용하면서 쟁점으로 활용당하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북한과 관련된 외교안보 사안이나 군사 분야의 이슈는 NLL 문제에서 보듯이 폭발력이 엄청나다. 지난 대선에서 남북정상회담 녹취록까지 공개해가면서 쟁점으로 삼고 심지어 사실을 왜곡하고 온갖 비난거리를 만들어내기까지 해 어느 한쪽이 톡톡히 재미를 보았는데, 과연 다음 대선에서는 누군가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부끄러움까지 공개하는 용기와 책임감,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안타깝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북한에 둘러싸인 우리는 외교의 회오리바다에 떠 있는 것과 같은 처지다. 6자회담의 성취와 좌절에서 보듯이, 우리가 분단의 현실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니 그저 일상적인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도 유연하고 창의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우리의 능력을 100% 이상 발휘한다고 해도 평화를 지키는 일조차 쉽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는 스스로 경직된 길로 간다. 회오리 물결치는 바다에서 벗어나려 하기보다 굳이 무거운 닻을 내려 그 자리를 고수하려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참여정부의 외교안보 분야를 기록한 이 책들을 우리는 성실하게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유달리 격렬했던 참여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논쟁과 사건들은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라는 값비싼 비용을 치르면서 얻은 결과물이다. 상처뿐인 영광으로만 간주해선 안된다. 우리가 모두 공유해야 할 값진 경험이며 앞으로도 역사의 중요 순간마다 불러내어 교훈으로 삼을만한 가치가 있는 일들이다. 그러니 혹여라도 책들의 한 대목을 억지로 인용해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그런 일이 되풀이된다면, 진솔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선 점점 더 큰 용기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참여정부에 관해서는 일일이 다 꼽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책들이 나와 있는데, 아직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기록이 거의 없다. 통일부 장관을 지낸 김하중 전 주중대사의 신앙간증집 정도가 생각난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이명박 정부에 관련된 인물들이 이종석이나 김종대 못지않은 기록을 남겨주길 바란다.

무언가 현상을 타개하고 변화를 이뤄내고자 도전했다면 성공했든 실패했든 흥미진진한 얘깃거리가 있는 법이다. 후대를 위해서 부끄러운 대목까지 공개할 수 있는 용기와 책임감이 있어야 진솔하게 자신의 경험을 밝힐 수 있을 터. 이명박 정부나 지금의 박근혜 정부에도 그런 인물들이 있으리라 믿고 싶다.

김지방/ 국민일보 기자

김지방  fatty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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