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 스페셜
통일비용 줄이려면 ‘표준’이 필요하다남북한을 더 강하게 만들어줄 ‘상호 호환성’의 힘

 


미국 남북전쟁(1861~1865년)에서 북부연방이 남부연합을 누르고 승리한 요인의 하나는 야전 공병(工兵)과 병참(兵站)의 우세였다. 북부는 공업이 발달한 반면, 남부는 농업이 발달한 산업적 요인이 컸기 때문에 북부연합은 전쟁 수행에 긴요한 도로 철도 교량 등 수송망 건설에서 크게 앞섰고, 이는 남부연합의 공격을 막아내고 승리한 토대가 됐다. 


표준은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북부군의 승리 요인이 또 하나 있다. 바로 ‘표준’이다. 남북전쟁 초기 남부연합군은 흑인 노예를 거느리고 농장을 경영하던 농장주들의 막대한 자금력으로 선진 유럽 국가의 발달된 무기를 사들여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반면에 북부 연방군은 산업 시설을 바탕으로 성능은 부족했지만 무기를 자체 생산해 나갔다. 시간이 흐르자 남부연합군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무기간에 상호 호환성이 없어 고장 날 경우 다른 부품으로 대체해 사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무기는 많았지만 공통된 규격의 ‘표준’이 없었다.

반면에 북부 연방군은 자신들이 만든 매뉴얼을 바탕으로 생산을 하고 규격도 표준화돼 있어 어느 대포든 포탄만 있으면 사용할 수 있었고, 고장 난 대포가 몇 대 있으면 부품의 보완을 통해 새로운 대포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북부군은 막강한 표준의 힘을 통해 남부군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의 남북 전쟁은 ‘표준 무기’를 가진 북부의 승리로 끝났고 전쟁 이후 이러한 표준은 전 산업으로 확장되었다. 표준화는 결국 미국 경제성장 동력으로 이어졌고 오늘날의 미국을 만드는 기틀이 되었다.


표준이 필요한 남한과 북한

민족의 정체성 형성에서부터 산업과 국가 경쟁력까지 ‘표준’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표준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선사시대 사냥감을 찾거나 잡을 때 무리가 함께 움직이며 몸짓과 소리에서 한 단계 발전한 표준이 필요했다. 첫 번째 표준은 ‘말(言)’이었다. 말이야말로 인류와 동물을 구분 짓게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의 표준을 만들었다.

말의 한계를 또 한 번 뛰어넘은 표준이 바로 ‘글(文)’이다. 글의 발명은 인류문명을 선사시대와 유사시대로 구분 짓는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유사 이래 글을 가진 민족이나 국가는 타민족과 주변 국가들에 영향력을 미쳤다. 바로 표준의 확산이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표현을 넘어 지식을 교류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핵심수단이다. 우리나라는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 덕에 다른 나라와 차별화된 새로운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을 넘어 문자가 없는 인도네시아 찌아찌아 족에게 한글을 보급했다. 이것이 바로 문자가 만드는 표준의 힘이다.

표준의 문제는 남북에게 선택의 문제가 아닌 꼭 해야만 하는 과제 중의 하나다. 현재 남과 북에 가장 필요한 표준의 영역이 언어의 부분이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60년이 넘게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아오면서 언어이질화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남한은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사회·문화를 적극적으로 개방해 말과 글에도 외래어가 급속히 유입됐고 방송통신과 인터넷 문화가 발달하면서 신조어도 빠르게 생겨났다.

이에 비해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 ‘자력갱생’ 등의 구호에서 엿볼 수 있듯이 폐쇄정책을 써오며 외래어 유입을 차단해왔고 언어를 사회주의 의식화의 도구로 사용하며 정치화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렇게 남북 언어이질화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례들은 퀴즈 문제로 활용되거나 개그 소재가 되면서 흥미를 끌기도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남북 간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불길한 전망도 있다.

2007년 국립국어원의 조사에 따르며 남한과 북한 교과서에 나오는 학술 용어를 비교해 살펴본 결과 남북의 교과서를 바꿔 읽을 때 학생들의 용어 이해도는 50% 이하의 수준이라고 한다. 그리고 분단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해도는 더욱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한글 자판의 표준화

중국은 한족(漢族)과 55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의 동북지역에 주로 거주하고 있는 200만 조선족도 55개의 소수 민족 중 하나다. 2010년 가을, 중국이 한글 자판의 국제표준화를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보도 내용은 중국이 자국 내 소수 민족 언어를 표준화해 국정 전반의 정보화 관리에 적극 활용하고, 이를 국제기구에 등록해 주도권을 장악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 보도를 접한 한국의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동북공정’에 이어 ‘한글공정’이 본격화되었다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고 10여 명의 북한 연구원들이 중국의 한글 표준화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북한이 민족의 혼(魂)인 한글을 중국에 팔아먹고 있다는 성토까지 이어졌다.

이 문제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자 중국이 우리나라의 표준화 제정안을 받아들인다는 입장을 밝히며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중국만 탓할 일이 아니다. IT 강국으로 자부한 한국이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된 한글자판의 표준을 제정하지 않은 것이 1차적인 원인이다.

한글자판 표준화 사업은 1990년대에 시작되어 10여 년간 지속된 대표적인 남북한 과학기술협력사업이었다. 하지만 남북한 간의 컴퓨터 용어 비교집을 출간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을 통해 실제로 통용되는 한글 표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이때 한글 표준화를 추진하며 논란이 된 것은 사회주의체제와 자본주의체제의 표준화 추진방법의 차이였다. 흔히 표준은 두 종류, 곧 국가 등의 권위에 의해 강제되는 ‘공적인 표준’과 시장경쟁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사실상의 표준’으로 나뉜다. 북한은 정부 주도의 표준화가 가능하고 컴퓨터 보급 대수가 적어 남북이 합의만 하면 쉽게 이를 추진할 수 있는 구조다. 북한 내에서는 북한 정부가 정해 버리면 곧 공적인 표준이 된다.

이에 비해 남한은 관련기업들이 다양한 입력방식을 개발해 왔고 이미 상당한 시장 규모를 형성해 단일 표준 제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실상의 표준’이 되기 위해 기업 간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제 더 이상 ‘사실상의 표준’을 기다리기에는 시간적 그리고 심적인 여유가 없다. 먼저 남한에서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기업들의 참여로 사용자들에게 가장 편리한 자판 표준을 먼저 만들어 ‘공적인 표준’으로 공표하고 이후 남북 교류를 통해 북한을 설득하고 북한의 의견을 수렴하여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궁극적인 언어의 표준을 위한 노력들

남북 언어의 이질화는 점점 심해지고 있지만 우리말과 글의 뿌리를 바탕으로 새로운 표준을 만들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남북의 언어학자들은 2013년 출간을 목표로 <겨레말 큰사전> 편찬 작업을 하고 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1989년 평양을 방문한 문익환 목사의 제안에 따라, 2004년 남한의 ‘통일맞이’와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가 의향서를 체결하고, 2005년 남과 북의 편찬위원들이 만나 첫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법’을 제정하고 재정 및 행정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 지난 2009년 10월27일~11월3일까지 북한 개성에서 진행된 제19차 공동편찬위원회 회의 및 제3차 공동집필회의

분단과 지역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넘어서는 겨레말큰사전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 분단 이후 남북의 ‘국어학자들이 함께 편찬하는 첫 사전’이면서, 남북의 겨레가 함께 볼 최초의 사전이다.
- 분단 이후 남북에서 ‘뜻이 달라진 낱말’의 뜻을 풀이에 적극 반영한 사전이다.
- 지역어를 표준어에 단순 대응시키지 않고 자세하게 뜻풀이한 사전이다.
- 남북의 국어학자들이 함께 ‘단일어문규범’을 작성하여 편찬한 사전이다.
- 기존의 남북 사전에 수록되지 못했던 ‘지역어’ 및 ‘문헌어’를 광범위하게 조사하여 올림말로 수록한 사전이다.
- 남북의 어휘를 집대성한 ‘최초의 한국어 전자대사전’의 기반이 되는 사전이다.
- 수집한 어휘 자료 가운데 남과 북이 공통으로 쓰는 말은 우선 올리고, 차이 나는 것은 남과 북이 성실히 합의하여 단일화한 약 30만 개의 올림말을 실을 대사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겨레말 큰사전은 민족 언어 표준화에 초석이 되는 작업이다. 언어표준을 위한 노력은 ‘겨레말 큰사전’ 사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의 현장에서 실용언어를 정리하는 작업들도 이루어지고 있다. SK텔레콤은 2007년부터 소외계층이 휴대폰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 사업 중에는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휴대폰 이용안내서 제작 지원도 있다. 이 사업은 '3G', 'SNS', 'smart phone', 'App store'어는 물론이고 'SK' 'KT' 'Show' 등 회사 이름과 상표까지 온통 영어이다 보니, 도무지 뭔 소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는 탈북자들을 위한 배려에서 시작되었다.

이 작업에는 남한 대학생 10명과 탈북 대학생 10명이 참여했다. 안내서는 북한 사람들의 시각에서 핸드폰 사용에 관련된 용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비록 작은 안내서 하나이지만 이질화된 언어를 이해하고 향후 표준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노력들은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다.


단일 표준화를 위하여

남북 간의 이질적인 표준은 언어에만 그치지 않는다. 현재 남북이 사용하는 수많은 장비와 물자, 물류 등 모든 부문의 규격이 다르다. 이런 상황을 외면한다면 어느 날 갑자기 남북 교류가 본격화될 경우, 막대한 비용과 그에 따른 심각한 갈등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러한 남북 간의 표준 불일치는 천문학적인 표준 구축 비용을 유발 할 것이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모든 영역에서의 표준 단일화다. 기원전 3세기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이 문자, 화폐, 도량형 등의 표준을 만들며 강력한 국가를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전병길 (예스이노베이션 대표, <통일한국 브랜딩> 저자)
 

 

전병길  holiman@naver.com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