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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앞에 선 사랑(Beyond Violence)이승철의 가나안 묵상(2)

영화 ‘신과 인간’은 1996년 5월 아프리카 알제리에서 살해당한 7명의 카톨릭 사제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당시의 알제리는 정부군과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간에 내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때로서, 7명의 사제들은 그 내전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입니다.

영화는 이른 아침 7명의 사제들이 함께 모여 미사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오직 침묵과 그레고리안 성가로 가득한 예배당. 그 곳엔 지루함마저 느껴지는 평화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 평화는 마을에서 일하던 크로아티아 노동자들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하면서 깨어집니다.

평화가 깨어진 자리에 총을 든 군인들이 찾아옵니다. 총을 든 군인은 테러리스트들로부터 사제들을 보호해 주겠다고 합니다. 군인들이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테러리스트들이 총을 들고 찾아와 약과 의사를 내어놓으라고 합니다.

   
▲ 영화 '신과 인간'의 한 장면.

이렇게 영화에는 총을 든 두 무리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사제들은 이 두 무리 중 어느 편에도 서지 않습니다. 정부군의 보호는 거절하면서,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사제들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모든 종류의 폭력(정부군, 반군)에 대해서 철저하게 비폭력과 사랑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마침내 참된 평화를 찾게 됩니다.

영화는 테러리스트들의 폭력에 7명의 사제들이 살해당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죽음을 결코 패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땅에 존재하는 폭력을 피해 도망하거나 또 다른 힘으로 맞서 싸우기보다는, 폭력 앞에 철저하게 사랑으로 서고자 했던 그들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평화’가 ‘폭력’ 너머에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사2:4)

한반도의 남과 북이 서로에게 칼을 겨누고 전쟁을 준비하며 연습해온 시간이 벌써 60여년을 넘어 70년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여러 차례 작은 전쟁이 있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남한도 군사력을 확충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과 북 모두가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폭력으로는 결코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앞으로 100년을 넘게 전쟁을 준비한다 하여도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양 손에 칼과 창을 들고서 상대방에게 평화를 전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군대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도 그런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군대가 우리가 원하는 평화를 가져다 줄 거라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군대는 잘 조직된 폭력일 뿐, 결코 평화를 이루는 도구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총으로 지켜지는 평화는 거짓 평화일 뿐입니다. 만약 우리가 참된 평화를 이루고자 한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폭력 앞에 사랑으로 서는 용기입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용기입니다. 너의 칼과 창을 먼저 내려놓으라는 말은 의미가 없습니다. 폭력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나의 칼과 창을 먼저 내려놓고 상대의 칼과 창 앞에 사랑으로 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평화는 폭력 너머(Beyond Violence)에 존재합니다.

<평화한국 사무국장>

이승철  napals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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