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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놈을 더 때릴까 말까, 네가 결정해!”오영필 감독의 서쪽나라(4) - 감옥생활. 단순함. 공포.

 
그렇게 우리는 극적인 화해를 했다. 그가 사무실에 다녀오더니 종이와 펜을 가지고 왔다. 연락처와 주소를 적어달라고 한 다음 무언가를 썼다. 평소에 그렇게 물어도 말해 주지 않았는데, 흰 종이 위에 아름다운 보석이 박히고 있었다. 왕징후이. 그의 이름이었다.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나는 둥치 간수소에서 하이라얼에 있는 또 다른 간수소로 이송되었다. 이곳 하이라얼 감옥은 둥치에서보다 규모가 조금 작았다. 간수가 수감자들에게 내가 한국인이며 중국말을 못한다는 것을 주지시켰다. 그들은 편하게 앉으라고 하면서 오히려 자신들이 긴장하는 듯했다. 간수가 빵과 반찬을 주었다. 먹기 전 한 방을 쓰게 된 수감자들에게 음식을 건넸다. 못이기는 척 그들이 빵을 집었다. 감옥이란 곳을 처음 들어왔을 때는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몰라 많이 당황했지만 이곳에서는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의 대화를 자장가 삼아 하이라얼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새벽에 잠을 설쳤다. 자는 사람들 틈에서 나와 옆 바닥에 자리를 깔았다. 좁은 공간에서 새우잠을 잔 터라 허리가 쑤시고 아팠다. 날이 샜지만 인기척이 날 때까지 가만히 누워 있었다. 옆에서 자던 누군가가 바깥에서 어떤 소리를 듣자 재빨리 일어나 밤새 밖에 두었던 수감자들의 소지품을 갖고 들어왔다. ‘요’라고 했다. 이곳의 막내인가 보다. 문이 열리자 오물통을 들고 나간 후 깨끗한 물을 받아왔다. 이곳에서의 서열은 세수하는 순서에서 드러났다. 먼저 ‘우’가 하고 ‘싼’과 '*요'가 한 다음 그 물로 마지막으로 내가 세수를 했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우는 마당을 거닐고 싼은 카드를 하고 요는 양손이 불편한 ‘슈’의 옷을 입혀 주었다. 식사는 밀가루 빵과 소금으로 절인 양배추와 감자국이 나왔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슈였다. 그는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처럼 심하게 말랐다. 두 손은 붕대를 감은 상태여서 옷 입고 식사하고 배설하는 모든 일을 요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그럼에도 그는 사람들을 무섭게 대했다. 그가 나를 유심히 훑어보더니 보친로가 선물로 준 빨간색 실을 자기 팔에 묶으라고 했다. ‘안 돼. 이건 사연이 담긴 특별한 선물이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요가 일방적으로 끈을 푸는 바람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간수가 갑자기 방문을 열고 나오라는 신호를 했다. 그를 따라 오른쪽 복도 끝 빈 방으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말끔히 쓸고 닦은 흔적이 역력했다. 몇 분 간격으로 간수들이 들락거렸고 그러는 사이 침구, 오물통, 휴지, 양동이까지 텅 빈 공간이 사람 사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담당 공안이 통역과 함께 들어와 몸 상태를 훑어보았다.

“뭐 필요한 건 없는가?”
“괜찮습니다.”
“목욕한 지는? 속옷은 자주 갈아입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온갖 상상이 시작되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해. 분명 이럴 사람이 아닌데.’ 그의 행동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가 나간 후 마루를 거닐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그가 도와주겠다고 하면 무엇을 부탁할까?’ 그때 섬광처럼 스치는 것이 필기도구였다. 솔직히 감옥 생활이 힘든 근원적인 이유는 의식주 문제가 아니라 마음속에 떠오르는 여러 생각들을 놓치는 것이었다. 두 시간이 지나서 담당 공안이 다시 내 방을 찾아왔다. 그는 내의 한 벌, 양말 네 켤레, 컵, 치약, 칫솔 등을 사왔다. 감사를 표하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갑작스런 환경 변화로 이곳 생활이 무척 힘듭니다. 마음의 생각을 기록할 수 있도록 종이와 펜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공안이 흔쾌히 나의 요청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강 사장이 모든 식사비용을 대는 조건으로 앞으로 한국식 밥과 반찬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정말 그의 말대로 저녁 식사로 흰 쌀밥에 닭고기 요리가 나왔다. 게 눈 감추듯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그리고 감격스러운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이 얼마 만에 느끼는 정신과 육체의 온전한 포만감인가! 육체라 함은 한 달 만에 목욕을 하고 쌀밥에 반찬을 곁들인 식사를 말함이요, 정신이라 함은 생각을 자유롭게 글로 옮길 수 있음을 의미했다. 비록 석방되지는 않았지만 하루 만의 대단한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이 모든 일은 주님의 은혜였다. 누군가의 눈으로 보면 지금의 상황은 절망적인 환경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중국의 외딴 형무소 독방에서 쌀밥 한 공기에 행복에 겨워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고백이 절로 나오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정신의 가난함 때문이다. 담당 공안이 가져다 준 볼펜도 잘 나오지 않아 몇 번이고 흔들어 가며 써야 하지만 말이다.

   
▲ 영화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

   
▲ "각각의 시대를 대표하는 여배우의 스타일을 보면서 바깥 세계의 흐름을 간파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시대를 정확히 파악하고 희망에 대한 강한 확신이 섰을 때 평생을 준비해 온 탈옥을 시도한다."


영화 <쇼생크의 탈출>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영화는 다른 탈옥 영화와 달리 희망에 관한 접근 방식이 독특한 영화다. 살인자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주인공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곳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한편 자신의 힘을 키워간다. 이쯤 되면 탈옥을 시도할 만한 데도 그는 이 절망의 교도소에서 ‘희망의 단계화’ 작업에 들어간다. 먼저 그는 교도소의 도서관에 사서로 있으면서 수년간 죄수들이 충분하게 볼 수 있는 책을 공급해 달라고 주 정부에 탄원서를 제출한다. 결국 그의 요청이 받아들여진다. 책을 읽는 죄수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꿈이 이루어짐에 감격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주인공이 자기 방 벽면에 시대를 대표하는 마릴린 먼로, 리타 헤이워드, 제인 폰다 같은 여배우의 포스터를 나란히 붙여놓는 장면이다. 감옥은 단절된 곳이기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이런 한계를 각각의 시대를 대표하는 여배우의 스타일을 보면서 바깥 세계의 흐름을 간파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시대를 정확히 파악하고 희망에 대한 강한 확신이 섰을 때 평생을 준비해 온 탈옥을 시도한다. 희망의 단계화를 통해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 낸 영화 속 주인공의 자세가 오늘 나에게 절실히 요청된다. 그가 죄수라면 나도 죄수고 그가 해방을 원한다면 나도 해방을 원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희망을 단계화시켜 이 감옥 생활을 견디어 낼 것인가?

이곳 중국의 감옥에 오기 전 나는 서울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누나는 결혼해서 임실에 계셨고 형은 영국 유학 중이었다. 형은 내가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기 며칠 전 악몽을 꾸었다고 했다. 악몽에서 깨어나면서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데, 열흘 뒤 내가 중국에서 붙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감옥에 갇혀 있는 나를 위해 가족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강 사장의 ○○선교회에 새로운 소식을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거는 것뿐이었다. 내가 출석하고 있는 내수동 교회에서도 발만 동동 구른 채 당황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와중에 석방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해준 사람은 십년지기 친구 노대영이었다. 그는 구호단체 간사로 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나의 석방을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고 동분서주했다. 연락이 끊기자 그는 내가 체포되었음을 직감하고 2002년 1월 초 베이징(北京)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 실종신고를 했다. 그리고 모든 인맥을 동원해 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당 관리의 연락처까지 손에 넣게 되었고, 1월 중순경 내가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 하이라얼의 간수소에 구금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대영이의 이런 모습은 일반적인 친구 이상의 헌신이었다.

하루는 뿔테 안경을 쓴 젊은 간수가 날 부르더니 쪽지 하나를 건넸다.
“What do you think? Write it. I can help you. friend.”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쓰라고? 날 도와주겠다고?’ 특별히 마지막 문구가 나를 감동시켰다. “friend.” 간수가 죄인에게 다가와 도와주겠다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일이다. 감동스러워 그가 건넨 메모지 뒷면에 형의 전화번호를 적고 지금의 상황을 가족에게 알려 달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

따뜻한 물을 공급해 주고 배설물을 갈아 주기 위해 하루에 두 번씩 찾아오는 간수에게 오후에 다시 쪽지를 건넸다. 4호실에 있는 김 부장에게 짐을 맡긴 하얼빈의 호텔 이름을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저녁 무렵, 내가 알려준 전화번호가 틀린 것 같다며 다시금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서두르다 보니 국가 코드번호를 적지 않았나 보다. 다시 메모지에 전화번호를 적어 주고 평소처럼 글을 쓰고 있는데 복도에서 강 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낮은 목소리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나중에 다시 조사를 받을 경우 촬영을 지시한 사람이 방송국이 아니라 자신이 시켰다고 말을 바꾸라고 했다. 방송국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게 알려질 경우 사건의 파장이 매우 커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모 방송사의 프로듀서였던 선배의 제안으로 찍었다고 진술한 상황에서 갑자기 말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음 날, 점심 식사를 갖고 온 간수에게 이번엔 강 사장에게 보낼 쪽지를 건네었다.

오후에 공안이 불러 나가 보니 잔뜩 화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당신은 교활한 거짓말쟁이야.”
그는 조금 전 간수에게 건넨 쪽지를 책상 위에 펼쳤다. ‘아니 이런.’ 숨이 턱 막혔다.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친구라고 먼저 다가와 놓고 이렇게 뒤통수를 치는 것이 네가 말하는 친구냐?’며 당장이라도 간수에게 달려가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태연한 척 공안이 묻는 질문에 담담히 답했다. 그는 심문 과정 내내 ‘날 배신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 주겠어’ 하는 냉소적인 표정을 지었다. 조사를 마치고 마음을 추스려 글을 쓰고 있는데 나를 배신했던 그 간수가 공안의 명령이라며 펜을 압수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나는 담당 공안에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상상의 세계로 들어갔다.
‘당신 입장에선 충분히 저를 교활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저도 피해자입니다. 쪽지를 처음부터 쓸 생각은 없었어요. 그가 돕겠다는 말만 하지 않았어도 이 쪽지를 남기지 않았을 겁니다. 동기를 부여하고 구체적으로 도운 사람이 그 간수입니다. 제가 잘못했다면 그도 책임이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러나 그가 처벌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대신 이번 일을 없던 걸로 해주세요. 이 메모를 법정에서 증거 자료로 사용한다면 그를 반드시 언급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도 다칩니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다음 날 간수가 의례적으로 내 방을 찾았다. 어떤 사과도 없이 태연히 행동하는 그에게 화가 났지만 그 일에 대해 모른 척했다. 펜을 압수당했기에 그저 방안을 거니는 것만으로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예전처럼 마음의 평안을 찾은 나와 달리 그의 표정은 시간이 갈수록 어두워만 갔다. 평소보다 복도를 서성이는 횟수도 잦아졌다. 나로 인해 그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며칠 후 밤중에 복도를 거닐고 있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요즘 어때?”
“뭐, 그냥. 잘 지내. 너는 요즘 무슨 생각해?”
“집 생각.”

일상의 대화를 나누다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꺼냈다.
“잠시 얘기 좀 들어 줄래? 네가 공안에게 쪽지를 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 하지만 너를 용서하고 싶어. 여전히 널 믿고 싶어.”
“…….”


잠시 적막이 흘렀다.
“쪽지를 공안에게 준 것은 정말 미안해. 하지만 그 메모는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찼어. 잘못하면 나도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거든. 그 일로 마음이 계속 편치 않았어. 진심으로 사과할게. 미안해.”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가 말했다.
“Friendship is very difficult, because friendship is trusting.”
나의 말이 고마웠는지 그는 사무실에서 종이와 펜을 가지고 왔다. 흰 종이 위에 무언가를 적었다. 평소 그렇게 물어도 말해 주지 않던 아름다운 보석 하나가 박혔다. ‘왕징후이’, 그의 이름이었다.

감옥 생활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면 단순함이다. 아침에 일어나 배설과 식사를 하고 때가 되면 운동하고 마당을 거닐고 저녁이 되면 잠을 자는 것이 전부다. 이런 생활은 정신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자유의지가 철저하게 통제당하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숨을 쉬지 못해 힘들어하는 것과 비슷한 고통이었다. 인간은 자유에 의한 행위를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존재가 온전해지고 행복을 느끼는 피조물이다. 그런데 감옥은 인간의 존재(Being)만 허락하고 그가 하고 싶어 하는 어떤 행위(Doing)도 허락하지 않는 곳이다. 고로 감옥은 현상적으로는 몸을 가두지만 본질적으로는 정신을 가두는 곳이다. 여기에 사용되는 고문 도구가 바로 ‘시간’이다. 세상에서 시간은 생명이고 기회이지만 감옥에서의 시간은 누구도 대면하기 싫어하는 끔찍한 불청객에 불과할 뿐이다.


   
▲ 감옥 생활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면 단순함이다. 아침에 일어나 배설과 식사를 하고 때가 되면 운동하고 마당을 거닐고 저녁이 되면 잠을 자는 것이 전부다. 이런 생활은 정신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


2002년 2월 16일 목요일. 변비가 점점 심해졌다. 나의 식사시간은 아침은 7시, 점심은 12시, 저녁은 6시다. 하지만 그들의 아침은 9시, 저녁은 5시 이렇게 하루 두 번 식사를 했다. 먹는 시간이 다르니 배설 시간이 다른 것은 자연스런 이치였다. 그러나 규칙에 의해 배설 시간을 강제적으로 그들과 맞추어야만 했다. 나오는 것은 참아야 하고 나오지 않는 것은 억지로 나오게 하려니 변비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며칠 동안은 한밤중에 몰래 일을 보았으나 새벽에 뒤척이는 소리에 그들의 단잠을 깨워 핀잔을 들어야 했다. 배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이들과 잘 지내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다음 날 간수에게 방을 옮겨 달라는 편지를 썼다.

건의를 받아들여 간수가 방을 옮겨 주기로 했다. 다행히 그곳엔 영어를 구사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가 기본 수칙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방안의 분위기는 예전 방보다 훨씬 삭막했다. 특히 40대 중반의 고참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생길 정도의 험상궂은 얼굴이었다. 정해진 시간이 되어 화장실에 다녀오다 실수로 오물통을 허술하게 들고 오자 고참이 매섭게 나를 쏘아봤다. 그리고 옆 사람의 얼굴과 가슴을 때렸다. 내가 잘못했는데도 나를 때리지 않은 것이 마음을 더 불편하게 했다. 갈수록 태산이었다.

일주일 후 그 고참의 이름을 알았다. 펑신자오.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방의 원칙은 하나같이 까다로웠다. 밥그릇은 땅에 놓으면 안 되고 이부자리의 방향은 모두 같아야 한다. 베개는 이불 밑에 깔아야 하며 실내에서는 운동화가 아닌 실내화를 신어야 한다. 후용은 아침마다 그가 사용할 뜨거운 물을 준비했다. 강여홍은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왕웨이방은 옷을 빨아 주고 나는 밤마다 그를 안마했다. 이 방 사람들은 모두 펑신자오를 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부하들이었다. 그는 마흔일곱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근육질 몸매를 유지했다. 그는 우리의 체력도 강제적으로 관리했는데, 하루 세 번 팔굽혀펴기를 시켰다.

펑신자오가 먼저 60회를 하면 다음으로 여홍이 45회, 내가 45회, 왕웨이방이 40회, 후용이 35회씩을 했다. 한 번 할 때 3회를 하고 이것을 하루 세 번 하니 하루에 펑신자오는 대략 540회, 우리는 350~400회를 한 셈이다. 강제적이었지만 덕분에 단단해진 가슴팍의 근육을 만질 때면 뿌듯하기도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마당을 돌며 노래를 부를 때도 있었는데, 이때는 언어와 국적의 ‘다름’이 드러나기보다 서로에 대한 애정과 처지의 ‘같음’이 드러나는 시간이었다. 나는 <첨밀밀>과 <고향의 구름>을 즐겨 불렀다.

월요일 아침, 펑신자오가 깨는 소리에 얼른 일어나 배설부터 세수까지 10분 만에 모든 일을 마쳤다. 이 시간만 무사히 지나면 오후까지 한숨을 돌릴 수 있다. 그런데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무슨 영문인지 펑신자오가 왕웨이방을 일으켜 세우더니 얼굴을 구타했다. 평소에도 미숙한 일 처리 때문에 기합을 받긴 했지만 오늘은 정도가 심했다. 넘어진 그를 일으켜 세우더니 다시 얼굴을 때렸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도 그와 똑같은 공포심을 느꼈다. 그것은 우리 모두를 때리는 것 같았다. 그는 항복의 표시로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펑신자오의 감정은 좀처럼 통제되지 않았다. ‘도대체 당신은 왜 왕웨이방만 못살게 구는 거요?’ 나는 격분이 일었다. 그 시선을 눈치 챘는지 펑신자오는 갑자기 돌아서서 ‘너 지금 뭐라고 했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회심의 한마디를 던졌다.
“이 놈을 더 때릴까 말까, 네가 결정해!”
때리지 말라는 표시로 고개를 저었다. 왕웨이방에 대한 연민과 살아남기 위한 졸렬함이 합쳐져 나는 스스로를 때리고 있었다.
 
<5편에 계속>

 

오영필  zeroph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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