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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금지의 요구, 그것은 미친 짓이다.[이상갑목사의 가나안묵상] 탈북자 소환금지는 하나님의 형상회복운동


미친 짓이다. 사람들은 말했다. 정말 미친 짓이다. 탈북자 송환 문제를 두고 하는 말들이다. 최근에 숱한 사람들이 국내에서 국외에서 중국을 대상으로 송환금지를 요구하였다. 세상이 보기에 어쩌면 정말 미친 짓처럼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최강대국인 중국을 상대로 정면승부를 하면서 송환반대운동을 한 것을 두고 사람들은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사실 송환반대의 본질은 인권의 존중이다. 여기에는 찬성하지만 방법론에 있어서는 제각기 다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중요한 것은 북한 사람들의 인권이다. 그리고 탈북자들의 인권의 문제가 부각되는 것은 단순한 치기어린 유행이 아니라 역사의 물줄기란 생각을 한다.

역사는 소리 없이 한 지점을 향해 가고 있다. 잊혀진 약속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잊혀지지  않았던 약속이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과 요셉에게 약속을 하셨다.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주겠다고 언약하셨다. 그 누구도 그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모세를 준비하고 계셨다. 그리고 모세를 보내어 당시 세계 최강국인 애굽의 바로에게 가서 출애굽의 정당성을 외친다.

미친 짓이다. 출애굽의 요구! 이것은 미친 짓이다. 노예에 불과한 이스라엘 백성이 감히 애굽 왕 바로와 정면승부를 하다니 불가능한 일이다. 애당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다. 심지어 모세조차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나님, 이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제가 생각해도 애굽 왕 바로의 생각과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무엇이 두려워서 저의 요구를 듣겠습니까? 그는 세계 최강국의 1인자입니다.” 여기까지 생각만 해도 골치가 너무 아팠다. 더 생각도 하기 싫었다. 출애굽의 요구에 바로가 응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시도조차 하기도 부담이 되었다.


   
▲ 오홍성기와 중국대사관에 비쳐진 십자가 ⓒ유코리아뉴스 구윤성


모세에게는 하나의 고민이 더 있었다. 동족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염려였다. “하나님, 제가 동족들에게 가서 출애굽을 하자고 한다면 그들이 나를 보고 비웃을 것입니다. 나의 동족들은 왕자였던 시절의 저도 배반하고 믿지 않았는데 심지어 양치기가 된 지금의 초라한 저를 지도자로 인정하겠습니까? 그들은 저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모세의 가슴이 계속 아려왔다. 상처받은 사람이었기에 상처에 민감한 것이다. 다시 상처 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거절감을 경험하기 싫기에 배수의 진을 치려했다.

동족을 사랑하는 마음에 저질렀던 일들이 다시 떠오르며 그 후로 계속 추락하였던 자신의 삶의 여정들이 떠올랐다. 왕자였던 그때도 못했었던 일을 양치기가 된 지금 하라니 도무지 이건 모순이 아닌가? 혈기왕성하고 가장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총기가 넘쳤던 젊은 시절에도 못해 낸 일을 나이 80에 하라니 이거야말로 해외토픽감이 아닌가? 이것을 노망이라고 치부한다면 어떡한단 말인가? 왕자에서 양치기로 전락한 정신적 충격으로 나이가 들어 치매에 걸렸다고 난타한다면 어쩌란 말인가?

적어도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전엔 그랬다.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 소망이 없어 보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이성적인 사고로 판단해도 양치기 80대 노인이 최강대국 애굽 왕 바로와 정면승부라니 이것이 코미디 프로도 아니고 현실이라니 어이가 없어 코웃음만 나올법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 하신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출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3:12)


지금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는 것이다. 스스로 있는 자가 말씀 하시는 것이다. 스스로 있는 자 그분은 자존자시다. 그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다. 하늘을 지으신 분이시다. 땅을 지으신 분이시다. 우리 인간을 자기 형상을 따라 지으신 분이시다. 자존자이신 그분은 역사의 주인이시다. 모세, 그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아니 그 어떤 변병이나 핑계도 할 필요가 없었다. 자존자이신 하나님이 말씀 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이고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역사의 장인 오늘의 현실을 본다. 강대국인 중국은 결국 탈북자들은 송환해 버렸다. 송환반대를 거부한 것이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바로의 거절은 계속 될 것을 어차피 예상하지 않았는가? 여기에서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역사의 요청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역사적인 요청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탈북자의 인권의 보장”이 나는 천상의 소리라고 생각한다.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파도 좌파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탈북자의 자유와 인권의 회복”에 대해서 침묵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탈북자의 인권옹호는 정당하다. 탈북자에 대해 중국과 주변 강대국들은 하나님의 형상회복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이 일은 멈출 수 없는 운동력으로 자유의 그날이 오기가지 계속 되어야 할 부르짖음이고 통일의 그날까지 불러야 할 노래이다. 탈북자 송환반대 운동은 이제 시작이다. 절망할 이유가 없다. 이 풀뿌리는 계속 꽃을 피우기까지 뿌리를 내려야 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5대양 6대주에서 “하나님 형상의 회복”을 위해 외쳐야 할 이 땅의 소리이다.

탈북자의 송환반대 요청, 그것은 결코 미친 짓이 아니다. 이 땅을 향한 하늘의 음성을 들은 누군가가 외쳐야 할 소리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멈춤이 없이 돌고 있다.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거슬릴 수는 없다. 역사는 하나님의 형상 회복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모세는 출애굽의 불쏘시개가 되었다. 천상의 소리를 들은 자는 땅에서 침묵할 수 없다. 내 안의 두려움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순종만 하면 되는 것이다. 역사라는 무대의 배우들은 계속 바뀌고 있다. 주역도 바뀐다. 주연도 바뀐다. 엑스트라도 바뀐다. 역사의 연출자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오늘 우리는 다시 역사라는 무대 속에서 들려오는 연출자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자는 외쳐야 한다.

“ 탈북자들에게 하나님의 형상 회복으로서의 인권을 보장하라 ”


이상갑목사  sg9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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