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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계간 [통일코리아] 2014년 겨울호
분단의 길, 통일의 길 : 분단 70년, 통일 10년

분단 70년인 2015년, 남북, 한반도 주변 환경을 보면 통일코리아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한반도는 어떤 상황이고, 어떻게 통일코리아의 길을 열 수 있을 것인가. 국내 최고의 역사, 정치, 정책 전문가들이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기고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분단의 길, 통일의 길: 분단 70년, 통일 10년(배기찬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
②2015년 미국과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 전망(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③2015년 북한의 대외, 대남 전략(김근식 경남대 정치학과 교수)
④2015년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및 남북관계 전망(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분단의 길: 분단의 원인
70년이나 된 민족분단의 역사를 뒤돌아보고 통일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분단의 원인을 따져보면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분단의 원인을 외부에, 곧 코리아를 둘러싼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거대한 지정학적, 군사적 쟁탈전에서 찾는 것이다. 이 경우 그 시점은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오랫동안 조선을 관장하고 있었던 중국에 대해 신흥강국 일본이 도전함으로써 코리아는 중국과 일본, 나아가 러시아와 일본(영국·미국)의 전장이 되었다. 이때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세력양상에 따라 코리아의 분할이 논의되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말기였던 1945년 5월 30일, 일제는 소련군의 참전에 대비해 38선을 기준으로 그 이북과 만주는 관동군이, 그 이남과 일본열도는 일본대본영 직할군이 담당토록 했다. 이 38선이 8월 15일 미군과 소련군의 점령선이 되었고, 3년에 걸친 공산세계와 자유세계의 세계적인 전쟁 뒤 휴전선(DMZ)으로 재설정된다.

다른 하나는 민족 내부에, 곧 우리나라의 정치세력 분열과 대립에서 분단의 원인을 찾는 것이다. 이 경우 분단의 근원은 19세기 말 친중 개화파와 친일 개화파, 나아가 친러파와 친일(미·영)파의 대립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은 일제강점으로 해소되었고, 1919년 3·1운동으로 탄생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의해 새로운 나라를 만들 정치세력의 통합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919년 3월 2일 국제공산주의운동인 코민테른이 활동을 개시하자 독립운동세력은 공산세력과 민족세력으로 나뉘었고, 1945년 8·15 해방 이후에는 건국세력이 공산세력과 반공세력(민족세력+친일세력)으로 나뉘어졌다. 이러한 정치세력의 분열이 결국 1948년 남북 분단정부의 수립으로 귀결되었다.

분단의 과정만 보면 미국과 소련 등 민족 외적 요인이 분단의 핵심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단이 70년간 지속된 상황을 보면 외적 요인 못지않게 민족 내부의 원인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분단체제의 공고화: 한국전쟁과 미-중(소)의 경쟁체제
분단이 70년간 지속되는 동안 분단은 공고화되고 체제화된다. 곧 1945년에서 1950년까지 분단은 지극히 ‘비정상적 상황’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겪고, 이후 남북한이 각각 자유세계와 공산세계 안에서 독자적인 경제발전경로를 걸음에 따라 분단은 하나의 ‘유기체’가 된다.

‘분단의 체제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한국전쟁’이라는 세계적인 전쟁이다. 이 전쟁의 결과 남(미국)과 북 사이에는 적대와 증오 그리고 서로에 대한 두려움이 뿌리 깊게 각인되었다. 그 결과 휴전선을 사이에 둔 남(미)과 북은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동물처럼 위협적 언사(言辭)와 함께 군사훈련 및 군비경쟁을 일상화한다. 남침·북진, 적화통일·북한붕괴, 핵무장·핵우산, 미사일발사·한미합동군사훈련 등이 그러한 예이다.

남과 북 사이의 적대적 관계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의 특성상 한반도에 머무르지 않고 동북아, 나아가 세계적 차원의 패권경쟁과 직결된다. 냉전 형성기였던 1950년 6월, 미국은 북한의 남침을 소련이 세계 공산화를 위한 야욕을 드러낸 것이라고 규탄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중국인민군이 한국전에 참전하자 이를 중국공산주의의 아시아 팽창으로 규정했다. 1980년대까지 남한은 단지 북한 침략의 방어벽이었을 뿐만 아니라 소련 봉쇄를 위한 미·일·한 삼각체제의 최일선에 위치했다. 소련이 붕괴되고 세계적 냉전이 종식된 2000년대 이후 남한은 대중국 견제를 위한 미·일·한 삼각체제의 최일선에 다시 위치 지워지고 있다.

19세기 후반 이래로 한반도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세력 각축장이 된 것은 변함이 없다. 또한 1945년 분단 이후 남북한이 자유(해양)세력과 공산(대륙)세력의 최전방초소로서 역할을 했던 것도 변함이 없다. 21세기 미국과 중국의 G-2 시대에도 이러한 성격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분단체제의 공고화 : 북한의 독재체제

분단과 전쟁을 통해 형성된 북한체제는 크게 네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정치(세력·사상)적으로 김일성집단(항일유격대 세력)은 1970년까지 여타의 모든 정치세력을 제거하여 김일성 독재체제, 즉 주체사상을 중심으로 한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했다. 이것을 토대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백두혈동’의 권력세습이 합리화된다.

둘째, 경제적으로 자립형 사회주의체제를 확립했다. 북한은 천리마운동 등 엄청난 노동력 투하와 계획경제를 통해 1970년대까지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나, 고립적 사회주의체제는 결국 1990년대 엄청난 기아사태로 귀결되었다.

셋째, 군사적으로 항일시기 유격대 전통과 한국전쟁의 경험 그리고 정전체제라는 조건에서 국가 전체를 군사체제로 바꾸었다. 이것을 극단화시킨 것이 핵무장으로 완성된 선군체제이다.

넷째, 외교적으로 중국과 소련(러시아) 사이의 ‘그네타기 외교’(북한식 자주외교)이다. 이때 남한과 미국, 일본, 제3세계 등이 필요에 따라 또 다른 ‘그네’가 될 수 있다.

   
 

결국 현재의 북한체제는 위의 그림과 같이 근본적으로는 분단체제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4개의 기둥 위에 서 있다. 첫째는 정전체제에 따른 미국과의 전쟁 상황으로 이에 의해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등 북한의 최고지도자는 모두 군사지도자의 성격을 띠고 나타난다. 둘째는 외교·경제적으로 북한의 최후 생존을 후견하는 중국의 존재이다. 이러한 중국의 역할은 상황에 따라 러시아(소련)가 맡을 수도 있다. 셋째는 항일빨치산을 중심으로 하는 백두혈통 중심의 지도체제이다. 그 중심부에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이 위치한다. 넷째는 남한 등 외부와의 관계단절이다. 특히 북한은 남한과의 각종 인적, 문화적 교류를 차단함으로써 사상적 동요를 막고 이를 통해 현재의 독재체제를 공고히 할 수 있다.

분단체제의 공고화 : 남한의 보수체제
한편 분단과 한국전쟁을 겪은 남한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군사, 경제, 정치, 외교 등 모든 영역이 미국 중심의 세계체제에 깊숙이 편입된 점이다.

우선 미국에 대한 군사적 의존이다. 북한의 남침으로 후퇴를 거듭하던 남한은 1950년 7월 14일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미국에 이양했다. 50여년 뒤 노무현 정부는 미국과 작전통제권은 2012년에 환수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 개발과 천안함 폭침 등을 이유로 이명박 정부는 전작권 환수를 2015년으로 연기했고, 2014년 박근혜 정부는 이를 다시 2022년 이후로 무기한 연기했다.

둘째, 남한의 경제가 미국 중심의 세계체제에 깊숙이 편입되어 큰 발전을 이루었다. 그 결과 분단 70년이 된 지금 남한의 경제발전에 북한의 존재는 별 상관관계가 없는 것이 되었다.

셋째, 남한은 민주헌정을 기초로 하고 있으나 반공을 내걸고 독재체제를 30년간 계속했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에도 분단체제에 기반을 둔 정치세력은 선거 때마다 ‘색깔론’을 전가의 보도로 활용했다.

넷째, 남한은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1970년대 말까지는 뒤져 있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남한이 앞서가기 시작했고,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0년 소련동구 공산주의체제의 붕괴에 따라 체제경쟁에서 확실히 승리했다.

   
 

북한의 ‘백두혈통 독재체제’가 근본적으로 분단체제에 기초를 두고 있다면, 남한의 보수체제도 위의 그림과 같이 근본적으로 분단체제에 기초를 두고 있다. 특히 남한의 보수체제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기둥은 미국과 북한의 존재, 즉 미국에 대한 의존과 북한과의 적대적 경쟁이다.

분단체제와 남·북 체제를 매개하는 네 가지 요인
북한의 독재체제와 남한의 보수체제는 모두 분단체제에 기초하고 있지만, 분단체제 또한 북한의 독재체제와 남한의 보수체제에 의존한다. 분단체제와 남·북의 체제를 매개하는 요소는 네 가지인데, 남북간의 체제경쟁(색깔론), 남북관계, 전쟁 상황, 미·중의 영향력이다.

첫째, 분단체제를 추동해온 남북한의 체제경쟁은 큰 틀에서는 이미 끝났다. 따라서 이 점에서 분단체제를 지탱하는 큰 기둥은 이미 무너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체제경쟁이 이미 20년 전에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남북간에 체제경쟁이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남한정치에서 색깔론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적화론 등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이 분단체제를 지탱하는 기둥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남북관계의 악화에 따라 북한의 고립상태가 심화될수록 분단체제는 강화된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부시기에 남북간 교류협력이 강화됨에 따라 분단체제를 지탱하던 이 기둥도 심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등장이후 시행된 북한 봉쇄정책은 이 기둥을 다시 공고하게 만들었다.

셋째, 정전체제의 종식과 평화체제 형성을 위한 남북간의 대화, 나아가 남· 북·미·중의 4자 대화는 분단체제를 흔드는 것이다. 2005년 9·19선언에서 합의된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평화체제를 위한 관련 당사국간 대화 및 동북아다자안보구상,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에서 합의된 평화체제를 위한 3자, 또는 4자간의 회담 등은 분단체제를 흔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들이 이행되지 않고 관련된 모든 대화가 중단됨으로써 휴전상황은 실전상황으로 전개되었다. 분단체제를 떠받치는 큰 기둥이 다시 강고해진 것이다.

넷째, 한반도의 분단체제에 대한 미·중의 영향력은 남북간의 대화와 합의, 교류와 협력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약해진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후 남북간의 대화가 단절되고, 그 결과 미국과 중국의 남과 북에 대한 영향력은 다시 강화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전시작전권 반환연기와 북한의 변화를 위한 남한의 중국접근이다.

통일의 길: 통일 10년과 통일의 추진력
분단 70년 동안 항상 한겨울의 동토처럼 분단체제가 강고했던 것은 아니다. 노태우 정부시기부터 훈풍이 불기 시작한 남북관계에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10년 동안 ‘한반도식 통일, 현재 진행형’(백낙청)이라 할 정도로 봄바람이 불었다. 분단 70년의 역사에서 보면 이른바 ‘통일 10년’이라 할 만 했다. 그러나 미국의 부시 정부 등장과 북한의 핵개발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남북관계는 다시 얼어붙고, 분단체제는 다시 봉합되었다. 이러한 남북관계 및 분단체제의 해빙과 결빙을 통해 우리는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해 다음과 같은 통찰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첫째, 미국과 중국이 남북관계 개선이나 통일과정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리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미국의 대한반도정책의 핵심이 중국견제를 위한 미·일·한 삼각체제의 형성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기적적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미국은 통일과 남북관계 개선의 변수가 아니라 현재의 분단체제를 유지하는 핵심 상수이다. 중국 또한 현재의 조건에서는 분단체제 유지의 상수이다. 중국을 통한 북한변화 시도나 남북관계 개선시도는 미국과의 관계만 악화시키고 북한과의 관계개선 노력을 약화시킬 뿐 현실성이 없는 환상에 불과하다.

둘째, 북한은 1980년까지 남한에 비해 앞선 국력을 바탕으로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행사했지만 1990년대 이후 국력의 열세와 함께 그 주도권이 상실되었다. 그리고 북한의 김정은이 2015년 신년사를 통해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자”고 외쳤지만 통일은 그들의 핵심 관심사가 아니다. 북한의 핵심 관심사는 체제생존을 위한 사상강국·군사강국·경제강국이고, 이것은 현 단계에서 ‘핵무장과 경제발전의 병진노선’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핵무장과 경제발전이 서로 상충한다는 점에서 북한은 결국 딜레마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고 남북관계를 일관되게 주도할 수 없다.

셋째, 분단체제 해체와 남북관계 개선의 주체는 결국 남한이라는 점이다. ‘남한’ 중에서도 색깔론 등 분단체제에 의존하지 않고 통일에 대해 간절한 비전과 구체적 전략을 가진 정치세력이 핵심주체라고 할 수 있다. 남한, 특히 새코리아, 통일코리아를 꿈꾸며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힘 있는 정치사회세력이 아니면 통일은 결코 불가능하다.

19세기 말 강력한 제국주의의 침탈 앞에서 국난을 극복하고 근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당시의 주요세력인 개화세력과 왕권세력 그리고 농민세력의 힘을 모두 결집할 필요가 있었다. 수백만 명의 군사력을 거느리고 대동아공영권을 향해 돌진하는 일제하에서 독립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동학과 서학, 천도교와 기독교, 친공과 반공, 외교파(실력양성파)와 무장투쟁파 등 모든 독립운동세력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했다. 해방정국에서 통일된 독립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도 독립운동세력들이 거족적으로 단결하고, 나아가 미국과 소련의 힘까지도 고려하는 고차원의 통합력이 요구되었다.

오늘날 통일은 단순히 남과 북을 통합시키는 것이 아니다. 통일은 새코리아이며, 새코리아는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 따라서 존엄하게 살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것을 핵심가치로 하는 나라이다. 이러한 핵심가치를 견지하면서 남한의 여러 정치사회세력을 통합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북한 그리고 미국과 중국에 대해 유연하고 지혜로운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강력한 세력만이 코리아의 통일을 가능케 할 것이다.

배기찬/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

배기찬  baekichan@gmail.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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