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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계간 [통일코리아] 2014년 겨울호
미술, 통일을 그리다

우리나라엔 일본 강점기 만행, 6·25 동란으로 인한 동족상잔의 비극 등을 영화나 소설로도 접하지 못한 세대들이 아주 많이 살고 있다. 역사적인 사실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학이나 영화의 소재가 된다. 처음에는 그 리얼리티를 살려 전달하고자 하나 점차 흥행위주로 각색된다. 그리고 마침내 연예프로가 되기도 한다. 이쯤 되면 역사 속의 실존 인물들은 가슴을 치며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절규한다. 지금 역사의 증인인 그들은 80이 넘은 노년층이다. 그리고 그 인원은 매년 급속도로 줄어든다. 불과 얼마 전에 이 땅에서 일어났던 그 사건들이 이제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 되어 간다.

나에게 통일은?
통일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 개개인의 생각은 좀처럼 같지 않다. 좁게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우선하기 때문이고, 넓게는 자신들이 속한 집단의 입장을 따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미래나 국제 질서를 생각하여 평화통일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이들은 아주 넓은 시각과 역사의식이 뚜렷한 이들 몇몇뿐이다. 따라서 필자는 여기에서 통일의 필요성이나 방법 등을 가지고 논쟁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대한민국 땅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명의 예술가로서 자신의 작품에 왜 통일을 주된 관심사로 택하게 됐는지 그 배경을 소개하고자 한다.

작가는 그가 낳고 자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성격이 형성되고 그에 따라 작품이 탄생한다. 필자는 우리나라가 근대화가 되기 전, 시골보다 더 낙후된 조그만 섬에서 자라며 보고 배우고 느꼈고, 이것들이 내 예술의 모토가 됐다. 특히 가난, 노름, 젊은이들의 폭력, 게으른 어른들, 상이용사를 가장한 거지와 용천배기 등등을 보는 것은 무척 두려웠다. 맑고 고요한 하늘과 파란 바다, 그러다가도 폭풍우 몰아치고, 거센 파도에 배가 부서지고, 지붕이 날아가는 변화무쌍한 자연 현상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필자는 어린 시절 이렇게 폭력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따라서 이와 같은 성장배경이 작품에 있어서 현상보다는 본질, 시각적인 장식성보다는 역사의식을 가진 실험을 하는 작가로 성장하게 됐다.

또 하나는 필자의 직업에 의한 영향이다. 필자의 주장으로 2004년에 목원대학교에 기독교미술과가 신설됐다. 05학년도에 신입생을 받고, 주임교수로 자리매김하고, 06년부터 지금처럼 점을 주된 요소로 작업 방법이 바뀌고, 사랑이 내 작품의 주제가 됐다. 이는 작품에 찍힌 하나하나의 점들이 파장을 일으켜 온 인류가 서로 사랑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욕망으로 비롯된 것이다. 나는 사랑, 평화, 자유, 구원, 기쁨 등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하나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즐거움, 즉 기쁨을 최상의 단계로 놓기도 하지만 작업을 하는 작가로서 더 깊고 심각하게 분석할 문제는 아니다. 다만 보편적으로 쓰이는 말로 사랑을 주제로 제작한 작품을 가지고 평화를 살현하고 싶은 것이다. 이제 내게 있어서 평화는 가장 주된 관심사가 됐다.

   
▲ 허진권 작 ‘5병2어를 가지고온 소년’

 

   
▲ 허진권 작 ‘샤론의 꽃’

예술가와 역사의식
예술가가 주목받는 것은 자신의 작품으로 사회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상생활로 스트레스 쌓인 삶에 자유를 주기 때문에 존경도 받는다. 한 점 작품이 시각적인 즐거움을 위하여 벽에 걸려 있기만 하다면 디자인과 다를 바 없다. 아니 인테리어 소품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따라서 필자는 예술가에게 있어서 꼭 갖추어야 할 필수 항목은 역사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신문에 게재된 기사들은 현대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의 사초다. 신문의 1면은 언론의 얼굴이다. 그 얼굴을 바탕으로 하여 작가가 제작을 하면 그 것은 작품이 된다. 즉 언론이 작품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고 그 작품을 다시 신문에 게재하면 기사가 되니 작품이 곧 언론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언론이 작품이 되고 그 작품이 다시 언론이 되는, 순환 자체를 한 점의 작품으로 해석하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으로 삶 자체를 작품으로 해석한 첫 작품은 아마도 “삶이 곧 예술이다.”라는 모토로 1981년 7월 27일부터 29일까지 필자가 행한 첫 개인전을 예로 들어도 될 것이다.

이에 대하여 미술 평론가 김병수는 “ -전략- “삶이 곧 예술이다!”는 1981년 7월 허진권이 행한 첫 개인전의 모토였다. 이것은 쌀 포대 앞면에 써넣은 것이고 뒷면에는 “자연이 곧 예술이다!”라고 적었다. 전자에 대해서는 나름 설명이 있었고 후자는 그의 존재미학을 보여준다. 대상의 자연/행함의 자연이라는 이원성을 예술적으로 응대하는 것이다. 삶 하나하나의 과정을 실천적으로 인정하는 태도이다. 자연을 대상/객관으로서 인식하는 것과 실천을 통하여 감응하는 것은 다르지만 그 성취를 예술의 목표로 삼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의 작업은 서대전역에서 출발하여 목포를 거쳐 배로 제주에 닿았다가 부산을 돌아 다시 대전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그가 작가로서 초기에 「결혼현장전」(1982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결혼식이라는 의식을 하나의 퍼포먼스 작업이 탄생하는 현장으로 변모시켰는데 이를 이해한다면 제도와 그것의 유희성을 창출하는 능력을 알아볼 수 있다. 그의 핵심에 육박하려는 태도와 지속적인 엇갈림은 어떤 운동성, 생명성을 드러낸다. 일종의 생존 본능이다. 이것은 생물학적이기도 하면서 그에게는 아주 문화적인 전략이다. 개인의 삶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생존은 본능이다. 한국인이라는 특수한 개인의 확장으로서 우리의 상황은 통일을 바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생존의 보장과 지속을 위한 요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화가/예술가로서 허진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평화의 갈구는 보편적이다. 그 바탕에는 생존에 대한 보증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존으로서 인간이 회화로서, 예술로서 모색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는 끊임없이 탐색해왔다. 예술적 모험은 여기에서 실존적 차원으로 지위를 확보한다. 그렇다면 세계 속에서, 현실성을 획득하는 방식은 예술뿐일까. 이러한 국면은 순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예술가가 채택한 방식은 조형성으로서 순수를 넘어서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데올로기 혹은 이념으로서가 아니라 염원은 본능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하여 스스로 민감한 존재에게서 작동하는 공간을, 그렇게 확보되는 바를 우리는 운동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순수에의 의지와 거기에서 자발적으로 미끄러지는 유희야말로 생명성으로서 운동일 것이다. 회화로서 통일을 지향하는 한 예술가의 초상이 그려지는 순간이다. -후략-” 라 평하였다.

통일염원 프로젝트 ‘ILUK 운동‘
이처럼 예술가는 자기가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을 작품에 담아내야 한다. 따라서 21세기 현재 필자가 생활하고 있는 곳은 대한민국 대전이다. 그리고 그 대한민국이 풀어야 할 절실한 문제가 무엇인지, 필자의 종교적 신념과 역사의식에 비친 사회 현상,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예술가로서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아주 식상한 단어일지 모르지만, 통일보다 더 절실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주된 관심사 평화통일! 이와 같은 생각에서 출발하여, 현재 대전일보사와 공동으로 ‘통일염원 프로젝트 -ILUK 운동’을 하고 있다. ILUK는 ‘I Love Unification of Korea’의 첫 자를 가지고 만든 고유명사로, 우리말로 ‘이룩하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이는 통일이란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통일을 향하여 가고 있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필자 나름의 신념을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작업은 단순히 신문에 필자의 작품 하나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필자의 작품이 하나의 기사가 되고, 그 기사가 다시 작품이 되는 순환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니, 독자들의 의식 속에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각인되고, 그에 따라 통일에 대한 생각도 더 넓게 확장되게 된다. 따라서 언론이 작품이 되고 그 작품이 다시 언론이 되는, 순환 자체를 한 점의 작품으로 본다는 개념도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통일 염원 프로젝트 -ILUK 운동’은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계속될 것이다. 더 많은 작가들, 무용수들, 음악가들, 후원자들로 이루어진 토탈아티스트들이 전국을 무대로 대형 퍼포먼스를 펼칠 것이다. 통일이 되는 그 날까지! 나비효과 ILUK!

*허진권/ 목원대학교 미술교육과, 경희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서울, 대전, 북경 등에서 30여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400여회의 단체전 및 초대전에 참여하였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뉴 프론티어 공모전 등 다수의 미전 심사위원과 운영위원, 2010년 중일한청년작가기법교류회 한국측 수석 대표를 역임하였고, 현재 <통일염원 프로젝트-ILUK운동>을 대전일보와 진행 중이며 목원대학교 미술대학장 역임, 기독교미술과 창설 및 교수로 재직 중이다.

허진권  우리나라엔 일본 강점기 만행, 6·25 동란으로 인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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