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365’를 딱 한 회 남겨두고 있다. 2년 전 ‘바이블25’에서 연재 중인 <굿모닝 하나님>을 마친 후 새벽기도회에서 나눌 말씀을 고민하였다. 애초에 너무 일을 크게 벌렸구나 싶어 부담스러웠다. 용두사미가 되지 않으려고 이번에는 4복음서를 365등분하여 꾸준히 이어갔다. 대단한 작업은 아니지만, 밤마다 생각보다 많은 품이 들었다. 덕분에 예수님의 말씀을 구석구석, 행간행간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종점이 다가오면서 2년 전에 했던 같은 걱정에 직면하였다. 기왕에 밤 시간을 반납하기는 마찬가지라 여겨 이번에는 ‘바울 앤솔로지’를 준비 중이다. 바울의 편지 13권을 365등분하여 해설하는 것이다. 사도는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전달하고 있을까. 평소에 드믄드믄 해오던 일이지만,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심정으로 도전한다. 앞으로 이런 작업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싶은 초조함도 한몫했을 것이다.

  ‘앤솔로지’(Anthology)는 그리스어 ‘안톨로기아’(anthologia)에서 유래했는데 ‘꽃을 모아놓은 것’이란 뜻이다. 여러 시집에서 유난한 관심으로 뽑아낸 시들을 묶은 시선집(詩選集)처럼, 신약에 묶인 바울의 어록을 민감한 애정으로 살피려는 것이다. 모두 86장 분량의 바울서신을 더듬거리며 들춰보면서 그동안 너무 대강대강 사도의 진심을 들먹인 데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누구나 목회자라면 성경을 맛있게 요리하려고 한다. 오래전에 독일 시사주간지 <포커스>(1996.4.15.)는 ‘요리 취미를 가진 알렉산더 페니욱 목사(44)’를 소개하였다. 자신만의 특별한 ‘성경 찌개’(Bibelsuppe)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요한복음 4장 7절 2리터에 양념으로 마태복음 23장 23절 약간 그리고 히브리서 4장 12절 한 쌍을” 등 이런 식으로 말씀을 재료 삼아 요리하는 그만의 비법(Recipe)을 일러주었다. 그리스도교 문화를 지닌 나라다웠다.

  독일에 있는 동안 한국에서 방문한 목회자 그룹과 함께 복흠시청사를 방문하여 시장을 예방한 일이 있다. 초청자인 독일 파트너 교회가 주선한 자리였다. 시장은 처음 인사하면서 성경 말씀을 화제에 올렸다. 그날 아침에 읽은 <로중>(Die Losungen)의 메시지를 소개하면서, 자기의 느낌을 말하는 것이었다. ‘로중’은 헤른후터(Herrn Huter) 공동체가 발행하는 매일 성경묵상집으로, 올해로 295년째 68개 언어로 출간되었다. 경건한 독일인들은 ‘로중’을 읽는 것을 “하나님과 약속을 잡는 일”(Termine mit Gott)로 여긴다.

  시장은 “우리 도시가 왜 복흠(Bochum)인줄 아십니까?”라고 물었다. 복흠이란 이름은 ‘책’(Buch)이란 단어에서 유래한 것인데,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하였다. 책을 많이 읽는 교양인의 도시이거나, 책을 너무 안 읽는 바보들의 도시, 둘 중 하나라면서 좌중을 웃겼다. 당시 시장은 사회민주당 소속이었다. 성경을 높이는 정치인이 남다르게 보인 까닭에 오래도록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

  자크 아탈리가 쓴 <미테랑 평전>은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이 얼마나 성경을 적절히 인용했는지, 높은 안목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야곱은 총명하지 못한 유일한 유대인이며, 언제나 실수를 저지르는 경솔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가 이스라엘 국가를 세웠습니다”고 하였다. 이스라엘을 두둔하려는 말이 아니었다. 

  “이 좁은 세계(팔레스타인)는 돌멩이마다 뱀을 한 마리씩 숨기고 있습니다. 아랍인들에게 호의적인 모든 말은 이스라엘에 적대적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유대 표시는 아랍인들에 대한 배신으로 여겨집니다. 우리가 힘든 것은 이중언어가 아니라 하나의 언어를 유지하려는 우리의 의지를 지키는 일입니다.” 정치인이 성경의 언어를 다룰 때에 자칫 위선을 범할 수 있는데, 대통령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얼마든지 성경 사랑을 하는 이들이 많다. 풀무원 기업을 일으킨 원경선 선생의 한마디는 허를 찌른다. “성경은 아기를 낳는 말씀인데 구약은 할머니가 낳았다는 말씀이요, 신약은 처녀가 아기 낳았다는 말씀이다.” 민족의 불행을 원망하기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함석헌 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썼다. 우리 민족에게 이스라엘처럼 초월적 꿈이 없는 까닭에 비전 창조에 실패했다면서 “고난의 민족인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날마다 성경을 읽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대로 사는 일이다. 달라스 윌라드는 성경을 밥 먹듯이 읽는다는 사람들을 향해 바늘로 찌른다. “1년 동안 성경의 모든 단어를 눈앞에 스쳐 지나가게 하는 것보다 딱 열 구절만 내 삶의 본질로 바꾸는 편이 낫다.” 말씀대로 사는 일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성경으로 이런저런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두고두고 염두에 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