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4월 14일 밤, 인류는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해상 사고 중 하나가 일어났습니다. 영국 사우샘프턴을 출항하여 미국 뉴욕으로 향하던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북대서양에서 빙산과 충돌하며 침몰한 것입니다. 약 2,200여 명의 승객 가운데 1,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이 사건은 단순한 해난 사고를 넘어, 기술에 대한 과신과 인간의 한계를 일깨우는 상징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엄청난 비극이 있기 직전에도, 타이타닉호에서는 사람들이 여느 날과 다름없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일상 중 하나가 바로 ‘커피’였습니다. 계층은 달랐지만, 승객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커피 한 잔의 향을 누리며 항해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1등석 승객들의 커피 – 품격과 여유의 상징
1등석 승객들에게 있어 커피는 단순한 기호 음료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식사 후 즐기는 문화이자, 사교의 매개체이며, 품위 있는 삶의 일부였습니다. 당시 타이타닉 1등석의 정찬 메뉴에는 ‘카페 노와르(Café Noir)’라는 블랙커피와 ‘카페 베리에(Café Verre)’라는 유리잔에 담긴 커피가 등장합니다. 커피는 대부분 프렌치 프레스 혹은 드립 방식으로 우아하게 추출되었으며, 때로는 크림을 올린 비엔나 스타일의 커피도 제공되었습니다. 이들은 진한 프렌치 로스트 커피 원두를 사용해 깊고 풍부한 풍미를 즐겼고, 고급 은제 커피포트와 정제된 도자기 잔은 커피의 품격을 더욱 높여주었습니다.

2등석 승객들의 커피 – 중산층의 취향과 실용성
2등석 승객은 주로 교양 있는 중산층 가족, 기술자, 또는 전문직 종사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유럽식과 미국식 생활양식 사이에 있는 과도기의 문화를 지니고 있었고, 커피 역시 그 경계선에 놓여 있었습니다. 식사 후 블랙커피가 제공되었으며, 우유나 설탕을 곁들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커피의 맛과 향을 즐기기보다, 하루의 피로를 달래고 기분을 환기하는 실용적인 음료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원두는 1등석보다는 덜 고급스럽지만 여전히 깔끔한 품질을 유지한 중급 로스트 커피가 사용되었습니다.

3등석 승객들의 커피 – 고단한 희망 속의 따뜻한 위로
3등석, 흔히 '스티어리지(Steerage)'라 불리던 구역의 승객들은 대부분 아일랜드, 이탈리아, 스칸디나비아 등지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 미국으로 향하던 이민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커피는 사치품이 아닌, 생계와 연결된 생필품에 가까웠습니다. 
주방에서는 대량으로 끓인 보일드 커피(Boiled Coffee)가 제공되었고, 로부스타 계열의 강한 원두가 사용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콩고가 원산지인 로부스타 커피는 19세기 말부터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는데 아라비카 커피보다는 서민들이 마시기에는 가격이 부담이 없었습니다. 때때로 우유나 설탕이 커피와 함께 제공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은 그저 따뜻한 한 잔으로 마음을 달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그 한 잔의 온기는, 낯선 땅으로 향하는 이들의 가슴에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되어 주었습니다.

커피는 기억을 담는 그릇입니다
타이타닉이 침몰하던 그 비극적인 밤, 누군가는 여전히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구명보트에 몸을 실은 이들 중 일부는 커피 향기를 기억하며 바다 위에서 추위를 견뎌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도 인간다움을 붙들게 해주는 조용한 동반자가 아니었을까요? 타이타닉호의 비극은 세월을 지나며 전설이 되었지만, 그 안에서 존재했던 커피 한 잔의 풍경은 여전히 오늘날 우리의 삶과 교차합니다. 신분과 계급,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서 사람들의 일상과 위안을 담아냈던 커피. 그것은 당시에도, 지금도 인간의 삶을 향기로 물들이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타이타닉호 위에서 피어났던 커피의 향기는 오늘도 우리에게 조용히 말을 건넵니다.
“삶은 짧고, 그 속에서도 따뜻한 향기는 남는다”고 말입니다. 

최우성(태은교회 담임목사. 강원대학교 커피과학과 교수, 감리교신학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 Ph.D, D. 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