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국제
한미FTA 재협상: Think Big 전략으로 대비해야동아시아재단 ‘정책 논쟁’ 제76호

끔찍한 거래

지난 4월 29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100일째를 맞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수의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 핵문제, 사드 배치 비용분담 문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언급함으로써 향후 미국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한 6월 말로 예정된 문재인 대통령과의 첫 번째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그의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는 특이한 점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북한과의 “중대한 물리적인 충돌”(major conflict) 가능성을 언급했다. 북한 김정은을 “꽤 영리한 녀석”(pretty smart cookie)이라고 부르면서 양자회담 가능성은 일단 열어두었다. 둘째, 한국정부가 사드 미사일 방어체계의 비용인 10억 달러를 지불해야 하며 이를 한국정부에 통보했다고 언급했다. 셋째, 한미FTA를 “끔찍한 거래”(horrible deal)라고 부르면서 강력히 비판했다. 2016 미국대선에서 자신의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재직 당시 타결한 점을 강조하면서 “재협상 또는 파기”(renegotiate or terminate)의 입장을 재천명했다.

그라운드 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공약 중 하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한미FTA의 “재협상 또는 파기”이다. 특히 NAFTA를 “완벽하고 총체적인 재앙”(total and complete disaster)이라고 비판하면서 재협상보다는 파기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당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다면 NAFTA뿐만 아니라, 한미FTA도 미국에게 유리하도록 개정되거나, 파기될 것으로 점쳐졌다. 미국의 FTA 탈퇴 도미노는 이미 시작됐다. 지난 1월 23일 트럼프 대통령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철회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6일 오전 두 번째 행정명령 서명 준비가 완료됐다는 뉴스 속보가 나왔다. 이번에는 NAFTA 탈퇴용으로 알려졌다. 그날 오후 캐나다 달러와 멕시코 페소는 동시에 급락했고,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긴급히 전화를 걸었다. 그날 밤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좋은 전화를 받았고 양국의 요청에 따라서 NAFTA 재협상을 시작하겠다”고 공식발표했다. 물론, 자신이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파기할 수 있다는 조건도 붙였다.

여기서 눈여겨 볼 사실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먼저 상대방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론을 통해서 상대편에게 자신의 의사를 간접적으로 알린 후, 상대방이 연락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 목이 마른 자가 우물을 파듯이, 상대방의 불안심리를 활용하는 협상전략이다. 결국 NAFTA 재협상은 캐나다 및 멕시코 정부의 공식 요청에 의해서 진행되는 모양새가 되었다. 이는 협상초기부터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고도의 전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FTA를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있는가?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FTA도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있을까? 한미FTA 제24장 최종 규정에 의하면, 법적으로는 가능하다. 제24.5조(발효 및 종료)에 의하면 “이 협정은 어느 한 쪽 당사국이 다른 쪽 당사국에게 이 협정의 종료를 희망함을 서면으로 통보한 날부터 180일 후에 종료된다”고 명시된다. 즉, 상대국의 반대 여부와 관계없이 서면 통보만 하면 일방 파기가 가능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발효하긴 어렵고 종료하긴 쉬운 통상협정의 특징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상협정의 발효는 의회비준 등의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종료 절차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측 한미FTA 이행법(US-Korea FTA Implementation Act)은 한미FTA 종료와 동시에 효력이 정지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TPP에서 탈퇴한 것처럼, 또 다른 행정명령을 서명함으로써 한미FTA도 파기할 수 있다.

여기에서 눈여겨 볼 점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꼼꼼한 사람”(detail-oriented person)이라고 자평했다는 사실이다. 세부적인 사항을 중요시하는 그의 협상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록 그가 정제되지 않은 표현을 자주 쓰더라도 그의 말 속에는 세부적인 분석이 내포돼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유형의 협상가를 만날 경우, 상대방이 사용하는 자극적인 어휘에 현혹되지 말고 상대방의 복심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트럼프노믹스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공약의 핵심은 바로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이다. 기본원칙은 미국제품을 구입하고 미국인을 고용하는 이른바 “바이 아메리카, 하이어 아메리카”(Buy America, Hire America)이다. 트럼프노믹스의 통상정책의 얼개는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지난 3월 출간한 <2017년도 통상정책의제보고서>(2017 Trade Policy Agenda and 2016 Annual Report)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무역대표부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가장 큰 무역 거래였던 한미FTA에서 “드라마틱한”(dramatic) 무역적자 증가를 나타냈다고 지적했다. 무역수지 적자폭이 발효 이전보다 두 배 이상 커졌기 때문이다.

위 보고서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정책 기조를 읽을 수 있다. 첫째, 양자협상에 초점을 맞춘다. TPP를 탈퇴한 후, 일본 등의 TPP 회원국들과 양자협상을 시도할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 보다 높은 공정성을 상대 국가에 요구한다. 무역수지 균형을 공정성 기준으로 간주하고 무역수지 적자축소를 위한 재협상 또는 파기 전략을 쓸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지속적인 불공정행위에 대한 강경한 법적 조치를 취한다.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제도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독자적인 대응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FTA를 파기하면 미국이 더 손해다

과연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대로 한미FTA를 파기하면 미국에게 이득이 될까? 꼭 그렇지 않다. 상품 무역의 경우, 무역적자 폭은 오히려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FTA가 종료되면, WTO 최혜국대우(MFN) 관세가 적용되고 한국의 평균관세율이 미국보다 높기 때문이다. 즉, 미국기업이 한국에 수출할 때 상대적으로 관세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무역수지가 더욱 악화될 것이다. 또한 미국기업은 한·EU FTA 및 한·EFTA FTA를 통해서 관세혜택을 받는 유럽 기업과 불리한 경쟁을 하게 될 것이다.

서비스무역의 경우에는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서비스 무역 흑자를 계속 내왔고 2015년 기준 93.9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한미FTA를 파기할 경우, 미국은 여러 가지 제도적 안전장치를 잃게 된다. 첫째, 최혜국대우(MFN) 혜택을 잃게 된다. 투자, 국경간 공급 서비스, 금융서비스 분야 등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대우를 막을 수 없게 된다. 둘째, 신규서비스 분야 진출에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한미FTA는 개방하지 않은 분야를 기재하고 나머지는 모두 개방하는 이른바 ‘네거티브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셋째, 한국정부의 규제정책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잃게 된다. 예컨대, 한미FTA 협상 당시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논란이 일었던 투자자 국가분쟁해결제도(ISDS)이다. 미국기업이 한국정부를 상대로 국제중재를 신청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다.

한미FTA의 종결은 한국 제품의 미국시장 접근을 막는 것은 아니다. FTA 혜택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함으로써 가격경쟁력이 약화되고 결과적으로 시장점유율이 다소 하락할 것이다. 문제는 한국상품의 가격상승이 반드시 미국상품을 사는 ‘바이 아메리카’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과 유사한 산업구조를 가진 다른 국가의 상품이 대체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한미FTA가 종결되면 미국제품 구매 및 미국인 고용이 증가하지 않고, 반면 한국시장에서 미국제품의 가격경쟁력 약화 및 미국시장에서의 중국, 일본 등의 FTA 비체결국 상품의 상대적인 가격경쟁력 강화로 미국의 무역적자폭이 오히려 증가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손해 보는 장사를 하려고 하는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

한미FTA는 2012년 3월 15일 발효됐다. 지난 3월 미국무역대표부가 발간한 <국별무역장벽 보고서>(2017 National Trade Estimate Report on Foreign Trade Barriers)에 의하면, 한국은 미국의 7번째 수출시장이고, 미국의 상품 및 서비스 수출은 한미FTA 발효 이전보다 23.1% 증가했다.

한미FTA 때문에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폭이 증가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상품무역 적자폭이 상대적으로 큰 중국과 일본은 FTA를 체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2016년 상품무역 적자는 3470만 달러로 전체의 43.2%에 육박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운동 당시 중국을 환율조작국(currency manipulator)이라고 강력히 비판한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의 경우, 689만 달러로 전체의 9.8%를 차지했다. 두 국가에 대한 무역적자의 합은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한국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는 277만 달러로 전체의 3.8%에 불과하고, 중국에 대한 적자폭의 1/12도 안 된다.

오바마 행정부 기간인 지난 6월 미국국제무역위원회(USITC)가 발간한 <미국의 기체결 FTA 경제적 영향 평가보고서>(Economic Impact of Trade Agreements Implemented Under Trade Authorities Procedures, 2016 Report)에는 트럼프노믹스와 상반되는 분석결과가 나온다. 첫째, FTA가 무역수지 적자폭을 감소시켰다는 분석이다. 무역수지 적자폭이 FTA 비체결국과의 교역에서 훨씬 크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국, 캐나다, 멕시코 등의 FTA 체결국과는 26.3%이나, 중국과 일본 등의 비체결국과는 49.4%를 기록됐다. 둘째, 한미FTA의 교역수지 개선효과가 상당히 컸다는 분석이다. 2015년 기준 한미FTA 교역수지 개선효과는 158억 달러로 추정됐다. 미국의 대 한국 교역수지는 283억 달러 적자이나, 한미FTA가 없었다면 적자폭이 440억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됐다. 트럼프노믹스 원리를 적용할 경우, 한미FTA 덕분에 미국 상품은 더 많이 팔렸고 더 많은 미국인들이 고용된 셈이다. 즉, “바이 아메리카, 하이어 아메리카”에 상당부분 일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Think Big

한국정부는 지금 한미FTA ‘재협상 또는 파기’라는 기로에 서 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해도 부작용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미국정부가 원하는대로 ‘공정한 협상’을 한다고 해도 국회비준 여부는 불확실하고 정치적 책임공방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만약 파기가 될 경우, 미국시장에서의 한국제품의 가격경쟁력 약화로 수출위주의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 상황에서 한국정부의 선택의 폭은 그리 넓어 보이진 않는다. 결국은 강대국인 미국, 즉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서 재협상 또는 파기 여부가 결정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자기주장이 확고한 강경한 협상가와 협상할 경우, 몇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첫째, 상대방의 협상타결의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예상외로 협상타결을 처음부터 원치 않는 딜브레이커(deal breaker)인 경우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NAFTA와 달리 한미FTA가 미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을 감안한 출구전략도 수립해야 한다. 둘째, 상대방의 우선순위를 파악해야 한다. 특히 상대방이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을 경우에는 상대방의 감정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가장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슈가 가장 중요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직선적인 표현을 쓰는 협상가의 경우, 단어 의미의 경중의 차이에도 유의해야 한다.

셋째, 상대방이 수용할 만한 대의명분을 제시해야 한다. 상대방이 자신의 입장 변경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 후,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협조가 필요하며 이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한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상대방을 구석으로 모는 것이 아니라, ‘명예로운’ 출구로 인도해 주는 것이다. 한미FTA 재협상문제를 보다 큰 틀에서 접근하는 씽크빅(Think Big) 전략이 필요할 때이다.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 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필자 소개

안준성은 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 텔레커뮤니케이션 학사 및 J.D., 조지워싱턴 대학교에서 텔레커뮤니케이션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협상의 이론과 실제, 국제비즈니스법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IT통상전략센터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당시 한-싱가포르 FTA, 한-일 FTA, 한-EFTA FTA 협상 및 한미 통상현안 점검회의(Korea-US Quarterly Action Meeting) 등에 정보통신부(현 방송통신위원회)의 통상법률자문관으로 참여했다. 베트남정부에게 WTO가입 협상전략을 자문했고,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ODA프로젝트였던 베트남IT입법지원사업에 법률전문가로 참여했다. 김앤장법률사무소 방송통신그룹 미국변호사로 근무하면서 해외투자, 글로벌 M&A 등의 국제거래 관련 자문을 하였다.

*본 게시물의 저작권은 동아시아재단에 있습니다.

안준성  mail@keaf.org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