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국제
한일 위안부합의 어디로?동아시아재단 ‘정책 논쟁’ 제78호 - 진정한 치유와 미래를 위하여

문재인 외교와 위안부 문제

정경유착과 국정농단으로 얼룩진 박근혜 정권을 탄핵하고 파면시킨 1,700만 촛불시위는 한국 민주주의의 승리였다. 단 한 명도 사상자가 없이 비폭력, 평화적인 방식으로 사법절차와 선거제도를 거쳐서 정권교체를 이룩한 것은 한국 국민의 성숙함을 드러낸 것이었다. 서울시는 어둠을 몰아내고 위대한 대한민국을 일구어낸 촛불시위를 올해의 노벨평화상으로 추천할 예정이다. 대통령선거에서 1, 2위간 무려 560만 표차를 낼 만큼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0일 간단하게 치러진 취임식에서 통합과 개혁을 강조하였다.

그는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적폐청산과 재벌개혁, 일자리창출과 경제성장, 복지와 안전 등 10대 공약을 내세웠다. 이 가운데 9개가 내정에 관한 공약으로 채워져 있지만, 외교안보 항목인 ‘강하고 평화로운 대한민국’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 북핵문제와 자주국방을 강조하였다. 취임 축하 전화로 첫 외교 행보를 시작한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확고한 한미동맹을 재확인하였다. 중국 시진핑 주석과도 북한 비핵화와 사드 배치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한일관계는 상대적으로 우선순위가 낮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북핵과 사드 문제는 한일관계, 특히 한미일 안보협력과 직접 연동되어 있다. 미국과 일본정부는 중국과 북한에 대한 억지력 차원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을 추진해 왔다. 사드 배치는 미국의 MD체제에 편입되는 과정으로 보여진다. 작년 11월 체결된 한일간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역시 한미일 안보협력을 담보하는 중요한 기제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직후 아베 수상과의 전화통화에서 북핵 공동대응을 강조하였지만, 지난 2015년 12월 위안부합의를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다고 언급하였다.

2017년 2월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민의 70%는 위안부합의를 재협상해야 하고, 78%가 부산 소녀상을 존치해야 한다고 응답하였다. 일본정부가 송금한 10억엔으로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의 이사진들은 벌써 하나 둘 사표를 제출하였다. 위안부문제에 관련된 가장 핵심적인 시민단체인 정신대대책협의회는 여전히 1,281차 수요집회를 열었고, 한일합의 무효와 파기, 10억엔 반환을 주장하였다.

G20 정상회의 기간인 지난 7일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한일 위안부 협의에 대해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아베 총리에게 지적했다. ⓒ청와대

이에 대하여 일본정부와 국민의 입장은 완강하다. 아베 수상과 스가 관방장관은 수차례에 걸쳐서 위안부 합의의 성실한 이행을 요구해 왔다. 한국이 내세운 위안부 재협상은 결단코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일본국민도 아베 정권과 비슷한 입장이거나 크게 다르지 않다. 요미우리신문과 산케이신문 등 우파 언론은 물론 아사히신문이나 NHK 등 다수 매스컴은 일본정부를 지지하고 있다.

2016년 12월말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에 소녀상이 추가로 설치되면서 일본정부의 입장은 더욱 강경해졌다. 일본정부는 나가미네 주한대사와 모리토모 부산총영사를 일시 귀국시켰고, 한일 통화스와프(SWAP) 협상을 중단하였다. 일본국민들의 반한정서도 더욱 강해져서 풀뿌리 민심은 크게 악화되었다. 일본 내 진보적인 시민단체도 혐한감정에 고립되면서 거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일위안부 합의는 성실히 이행되었는가

2015년 12월 28일 한일간 위안부 합의가 관계 개선은커녕, 상호간 국민감정마저 악화시킨 원인은 도대체 무엇일까. 먼저, 당시의 합의내용과 이행여부를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박근혜 정부 출범 이래 위안부 갈등 여파로 무려 3년간 정상회담마저 개최되지 못한 상태에서, 2015년 한일수교 50주년 들어 관계개선 요구가 높아졌다. 결국 미국정부의 암묵적 지지하에 한일 정상이 합의하여, 12월말 양국 외교장관이 위안부합의를 공동 기자회견 형식으로 발표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일본군의 관여 하에서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끼친데 대해, 일본정부는 책임을 통감하고 아베 수상은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 둘째, 일본은 정부예산으로 약 10억엔을 거출하고, 한국정부가 위안부 지원재단을 설립한다, 셋째, 위의 조치가 착실히 이행되면 위안부문제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한다, 넷째, 소녀상 문제는 관련단체와 협의하여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다.

2016년 8월 일본은 정부예산으로 10억엔(한화 약 100억원)을 보냈고 한국은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하였다. 245명의 위안부 피해 신고자가 있었고, 생존자 46명 중 34명이, 사망자 199명 중 45명의 유족이 위로금을 신청하였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와 사망자에 대한 지급율은 각각 74%, 23%에 이르렀다. 그러나 생존자 8명은 이를 거부하였고, 시민단체는 별도로 정의기억재단을 설립하였다.

그 이유는 일본정부가 국가책임, 법적 책임을 부인한 점, 보상금이 아닌 위로금 성격인 점, 일본에 최종적 불가역적인 면죄부를 준 것은 부당한 점,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은 민간단체 시설로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부산 시민단체는 2016년 12월 30일 부산 총영사관 앞에 새로운 소녀상을 설치하였고, 일본정부가 이에 강력하게 항의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 내에서 위안부합의 파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아베 수상과의 전화에서 사실상 재협상을 시사하였다.

얼핏 보면 위안부합의에 대해 한국정부가 제대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미 위로금 10억엔을 받아 피해자들에게 상당부분 지급한 점,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에도 불구하고 재협상을 요구하는 점, 서울 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은커녕 부산 총영사관 앞에 추가로 소녀상이 설치된 것 등은, 한국정부의 잘못으로 지적받기 십상이다. 과연 이러한 주장이 합당한 것일까. 한국정부가 일방적으로 비난 받아야 할 것인가.

이를 위해 먼저 한일 양국이 제대로 합의를 이행했는지 사실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한일 합의의 취지와 정신이다. 전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비난 받아야 마땅하다. 1990년 한국의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를 고백하면서 일본의 조직적인 전시 성범죄가 드러나게 되었다. 일본정부는 1993년 8월 고노담화에서 일본군 관여 하에 위안부 모집, 이송, 관리가 이루어졌음을 인정하였다.

2015년 한일 합의는 일본정부의 책임 인정, 사죄와 반성이 가장 핵심 사항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불과 20일도 되지 못해서 일본군의 강제연행을 부인하였다. 2016년 1월 18일 기시다 외무대신은 국회답변에서 일본군의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준 기록은 없다고 강변하였다. 실제로 일본군의 직간접 연행을 나타내는 자료는 도쿄재판과 바타비아 군사재판 기록 등에 나와 있는데다, 한국, 일본, 중국에서 다수 발견되었다. 그러나 일본 외무성은 이를 정식자료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1996년 유엔 인권위원회 특별보고관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는 위안소 제도가 국제법상 위반임을 명시하고 있다. 1998년 맥두걸 특별보고관은 일본정부와 일본군이 국제법을 어기고 성노예 제도를 운영한 점을 지적하였다. 2007년 7월 미국하원 결의안은 일본정부가 성노예제를 명백하게 공식 인정, 사죄하고, 역사적 책임을 수용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같은 해, 유럽의회와 캐나다 하원은 완전한 법적 책임을 이행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2007년 이래 지속적으로 강제연행을 부인해 왔다. 2014년 6월 일본 자민당은 고노 담화 검증위원회 보고서를 통하여 고노 담화가 마치 사실이 아닌 한일간 타협의 산물인 것처럼 깎아내렸다. 이러한 위안부문제 왜곡은 한일합의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2016년 4월 16일 일본 스기야마 외무성 심의관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여성차별 철폐위원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을 재차 부인하였다. 일본정부는 A4용지 4매 분량으로 같은 내용을 외무성 홈페이지에 게재하였다.

2015년 한일합의의 기본 취지와 정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책임통감, 사죄와 반성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한일합의는 마치 10억엔만 주면 위안부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되는 것이고, 일본공관 앞 소녀상은 당연히 이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0억엔 위로금과 소녀상 이전을 결부시킨 일본 정치가들의 발언은, 피해자는 물론 한국 국민들의 감정을 악화시켰다. 2016년 4월 7일 하기우다 관방부장관은 10억엔과 소녀상 이전은 패키지라고 주장하였다.

2016년 10월 3일 아베 수상은 국회답변에서 위안부피해자에 대한 추가조치로서 사죄편지를 보낼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털끝만큼도 없다”고 반박하였다. 일본정부가 유난히 강조하는 10억엔 위로금도 전혀 법적 보상금 성격이라고 볼 수 없다. 일본정부는 특별법제정을 통한 국가책임과 개인보상을 거부하였다. 10억엔은 위로금이라고 강변하면서 내각부 예비비 가운데 일부 자금을 송금하였다. 내각부 예비비는 일본 국내 재난대책이나 해외 긴급지원 자금으로 편성되는 것이다. 과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보상금에 어울리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수요시위에서 한 할머니가 '역사를 잊지 말자'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한일합의의 구속력과 소녀상 이전 논쟁

한일 외교장관간 공동 기자회견은 구두 발표로 진행되었는데, 이것은 과연 국제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것인가, 외국공관 앞 소녀상은 이전되어야 하는가는 또 다른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적어도 양국 외교장관이 국제사회 앞에서 상호 약속한 것인 만큼 매우 큰 구속력을 갖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2015년 12월 한일 합의가 나오자 미국 국무부는 양국관계 개선을 기대한다고 환영하였다.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도 양국 정상의 지도력과 비전을 높이 평가한다고 강조하였다. 세계 각국의 반응은 찬반 여부에 불구하고 상당한 구속력을 대변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적인 법학자들은 구두발표가 국제법상 구속력이 있는 조약이 아니며, 피해자 참여와 동의 없이 이들 권리를 임의 처분한 것으로 국제법상 유효한 합의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조약법은 비엔나 협약에 따르면, 서면형식으로 국가간에 체결되며, 국제법에 따라 규율되는 국제합의를 의미한다. 한국외교부도 정보공개 청구 답변에서 각서나 서한이 없다고 하였고, 따라서 국제법상 구속력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정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한 10억엔은 보상금이 아니며, 따라서 국제법상 효력이 없는 양국 정부간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지지 성명, 특히 한국 내 일부 지지, 다수 일본 국민들의 지지는 매우 중요한 긍정적인 변수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피해 당사자가 완전히 배제된 상태의 한일간 합의는 정치적 타협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높다. 일본측의 지속적인 강제연행 부인, 국가의 법적 책임 부정, 미래 세대에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는 현실을 감안하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 문구는 외교관례상, 국민정서상 부적절한 것이며,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소녀상 이전은 일본정부가 집착해 온 요구사항이다. 위안부문제를 주도해 온 정대협은 수요집회 1천회를 맞이하여 2011년 12월 시민모금으로 평화의 소녀상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하였다. 일본대사관뿐만 아니라, 미국 글렌데일시에 추가로 설치하였고, 호주와 독일 도시에도 추진해 오고 있다. 소녀상과 기림비가 점차 전세계로 확산되자, 일본 외무성과 현지 일본인단체는 적극적으로 설치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실, 비엔나 협약 22조는 각국 정부가 외국공관의 안녕을 방해하거나 품위손상을 방지할 조치를 취할 특별한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위안부 합의에서 약속한 서울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은커녕, 부산 총영사관 앞에 추가 설치한 데 대하여 일본정부와 국민은 격렬하게 반발하였다. 탄핵정치 속에서 한국 외교부는 적절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고, 부산 시민단체는 소녀상 설치를 강행하였다. 이전 논란이 확산되면서 지방의회는 소녀상 이전을 규제하는 조례제정을 추진 중이다. 일본정부는 위안부 문제의 국제 쟁점화 못지 않게 소녀상 확산을 경계하고 있다. 소녀상이 일본의 명예를 부당하게 추락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일본 도쿄 시내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질 수 있다면, 서울과 부산 일본공관 앞 소녀상은 자진해서 철거될 가능성이 높다.

비엔나 협약 22조 2항에 대한 해석도 바뀌고 있다. 비엔나 협약이 체결된 1960년대 외국공관의 품위 유지는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각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신장되면서 공관보호와 표현자유를 조화시키는 관점에서 새로운 해석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1984년 영국하원 외무위원회는 외국 공관을 표현의 자유로부터 완전히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만일 공관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고, 공관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이 보장되며, 공관 건물이 파손되지 않고 안전하다면, 비엔나협약 22조 2항은 지켜진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일간 화해는 가능한가

위안부 문제가 한일 양국에서 쟁점화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이었다. 1993년 8월 고노담화에서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한 이래, 뜨거운 외교 쟁점으로 부상하였다. 한일 양국 정부와 시민단체의 노력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1995년 아시아여성기금은 한국정부의 반발을 일으켰고, 단 60명이 위로금을 수령하는 데 그쳤다. 유엔보고서와 아시아 연대를 통하여 위안부 문제는 국제화되었고, 한국 사법부도 한국정부가 대일 위안부 협상을 추진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는 양국 정부가 적극적인 해법을 도출한 것이지만, 또 다시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겼다.

2017년 5월 10일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긴급한 동북아 정세와 안보 위기에도 불구하고 원칙적인 대일외교를 강조하였다. 유엔 인권위원회 산하 기구도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거들고 나섰다. 5월 12일, 유엔 고문방지조약에 근거해 설립된 고문방지위원회(CAT) 보고서도 한일 위안부 합의개정을 권고하고 나섰다. 피해자 보상은 물론, 최대한의 명예회복과 진실규명, 재발방지 수단을 제공하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합의내용과 범위에서 불충분한 2015년 한일위안부 합의를 개정할 것을 권고하였다.

한일 정상간 첫 전화 통화와 유엔기구의 권고 발표 이후, 위안부합의 재검토가 예상되면서 양국 갈등이 재연되지 않을까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미중 양국이 정치, 안보, 경제면에서 긴장과 갈등을 거듭하고, 북한의 도발적인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동북아 안보위기가 일상화되고 있는 요즈음, 한일협력이 지역 평화와 안정에 불가결한 요소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위안부 재협상이 양국관계의 입구론이 되면서 초기단계에서 양국 관계를 악화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일 양국은 먼저 정상회담, 특사파견, 셔틀회담 복원 등을 통하여 상호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한일간 안보와 경제 협력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대국적인 협력관계를 형성해 가고, 위안부 문제는 하위변수로 설정해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협상 파기, 재협상 용어보다는 추가나 보완협상 표현이 더 적절하다. 피해자와 시민단체, 양국 국민과 정부가 주체적으로 참가하면서, 궁극적으로 한일 양국의 정상이 최종해결을 문서와 회견으로 선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하여 먼저 한국정부는 부적절한 한일합의의 상징인 화해치유재단에 대한 활동정지 명령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피해자와 시민단체, 전문가와 정부담당자가 참여한 12.28 검증위원회를 설치하여 합의과정이 적절했는지 자세히 검토해야 한다. 여론전을 피하려면 비공개로 추진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최종 보고서는 12.28 합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말고, 궁극적인 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적어도 피해자에 대한 보상, 치유, 기억, 위로와 교육은 한국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일본정부도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한일관계를 기대한다면, 한일간 합의의 보완과 완성을 모색하는 문재인 정부의 제안을 거부해서는 안된다. 일본이 반복적으로 한국측의 요구를 뿌리친다면, 한일 관계를 경색국면으로 빠뜨릴 것이다. 일본정부나 주요 정치가는 위안부를 매춘으로 매도하거나 강제연행을 부인하는 언행을 자제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제대로 이행된다면, 내년 2018년 10월 8일 한일파트너십 20주년에서 한일 양국의 정상이 위안부문제의 최종해결과 함께, 화해와 협력을 선언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 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필자 소개

양기호는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부 졸업한 후, 일본 게이오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 취득하였다. 현재 성공회대학교 일어일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또한,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전문위원, 미국 듀크대학 아태연구소 방문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한일관계를 주제로 국내외 신문, 방송계에서 활발한 출연과 기고를 하고 있다. 주요 저서와 논문으로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과 한일관계』(2016), 「한일갈등에서 국제쟁점으로-위안부문제 확산 과정의 분석과 함의」(2015) 외 다수가 있다.

*본 게시물의 저작권은 동아시아재단에 있습니다.

양기호  khyang@skhu.ac.kr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