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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지혜

기사승인 2018.06.19  00: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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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망 농사가 한창인 요즘은 성도들의 주일예배 참석이 어렵습니다. 이제 10월까지 모두들 비지땀을 흘리며 피망을 돌보고 수확할 것입니다. 부디 애쓰고 노력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주는 북미회담과 지방선거 등으로 인해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세기의 만남인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한반도의 평화를 향한 발걸음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습니다. 서로 미워하고 적대하던 마음을 돌이키고 조금씩 막힌 담을 허물어 나가겠다는 다짐을 하는데 70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웃 나라의 지지와 도움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지만 결국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그런가하면 읍내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유세 총력전이 펼쳐졌습니다. 좁은 읍내 길모퉁이마다 투표를 독려하고 지지를 요청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넘쳤습니다. 저는 사실 지역 후보들을 잘 알지 못하고 그들이 제안한 정책에 대해서도 잘 몰랐습니다. 책자가 우편으로 배송되기는 하였지만 공약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였습니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이미 후보들에 대한 사전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투표에 임하는 것 같았습니다. 투표결과를 본 제 주변의 지역민들 중 일부는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하루아침에 세상이 뒤집혔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좀 더 나은 삶,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을 정치인들이 깨달아 주기를 바랍니다.

   국제적으로는 북미회담, 국내에서는 지방선거가 이슈였다면 저희 가정의 이슈는 ‘행복이 이해하기’였습니다. 저희가 다가가면 뛰어오르거나 발 주위를 맴도는 행위를 하는 행복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진부령 정상 공원에서 행복이와 앉아서 책도 읽고 여유를 즐기려고 하였으나 펄쩍펄쩍 뛰며 안기는 행복이의 행동으로 인해 황급히 귀가한 어느 날 저와 아이들은 행복이를 이해하기 위한 적극적인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데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찾아낸 것이 바로 전문 훈련사가 반려견의 문제행동을 이해하고 수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프로그램 이었습니다. 사실 이전에는 ‘저런 프로그램을 누가 그렇게 열심히 볼까?’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집에 반려견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보겠구나.’하고 생각이 변했습니다. 관심은 새로운 필요를 낳고 필요는 변화를 가져옵니다.

   반려견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주인을 어렵게 하는 반려견들의 행동 수정은 대부분 단순하고 간단했습니다. 산책을 나가기 싫어하면 간식으로 보상하며 여유 있게 기다려 주어야 한다든지, 분리불안을 느낀다면 아기를 기를 때 까꿍 놀이를 했던 것처럼 주인이 사라졌다 금세 다시 나타나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든지, 흥분하는 반려견들은 너무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지 말고 단순한 동작과 표현으로 애정을 표현해 준다든지 하는 것들 말입니다. 개별적인 사례에 맞추어 반려견을 훈련하는 모습을 보니 저와 아이들도 “아~ 행복이도 저런 거구나.”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행복이가 펄쩍펄쩍 뛰는 것은 너무 좋아서 그런 것이지만, 사람에게 뛰어오르면 몸으로 밀어내면서 자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골든리트리버는 먹는 것을 아주 좋아하니 체중 유지와 관절 질환에 신경을 써야한다는 것 등 유익한 정보를 많이 얻었습니다.

   예전에 한 타인이 저에게 ‘강아지가 있어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그야말로 ‘없는’ 취급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었습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강아지나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보통은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저는 관심이 없어 특이하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변해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 삶의 영역 안에 있는 것들은 더 신경을 쓰게 됩니다.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이해가 어려우면 새로운 배움을 통해 어려움을 해결해 나갑니다. 서로 소통하기 위해서 양보하는 것이 아깝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희생하는 단계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국제적인 흐름도, 국내 정치도, 교회 안 성도간의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함께하는 삶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면 관심을 갖고 소통하고 희생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면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합니다. 책임과 봉사와 희생도 그것이 내 삶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면 세세히 보이고 무엇을 해도 즐겁고 기쁘지만,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면 무엇이 필요한지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행동으로 옮기기도 어렵습니다. 단순한 이치인데 새롭게 느껴집니다. 오늘 하루, 지금까지 저의 무관심함으로 인해 보지 못하던 것들을 볼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홍지향 ghdwlgi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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