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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9조

기사승인 2018.08.15  02: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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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8월은 한반도도 한반도지만,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구었다. 오죽하면 신기록을 연일 갈아 치운 무더위 탓에 한국인과 일본인 모두 차라리 태풍이라도 불어와 뜨거운 고기압을 뻥 뚫어 주기를 소망하는 일치된 간절함을 품게 하였다.

  이런 무더위에 히로시마를 생각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뜨겁다. 지난 8월 6일, 올해로 73주년을 맞은 ‘원폭 희생자 위령식 및 평화기원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묵념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속이 탔을 것이다. 게다가 아베의 3선이 마치 보장된 듯한 일본발 뉴스는 이를 개헌과 연결 짓는 호헌세력을 떠올리게 하면서 더욱 후덥지근하였다.
  
  지난 6월 초에 히로시마를 방문했을 때도 일찍 찾아 온 여름 탓을 할 만큼 몹시 무더웠다. 히로시마 공항에서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하필이면 왜 이곳에 원폭을 투하했을까 하는 어리석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동안 히로시마 원폭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으려니 생각한 것은 전적으로 내 무지였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까닭은 군국주의의 심장부를 겨냥한 것이었다. 군사도시 히로시마는 1873년부터 대륙 침략의 거점이었다. 1894년 6월, 히로시마 주둔 5사단 7천명이 우지나 항을 거쳐 조선으로 들어왔고, 7월 23일에는 경복궁을 점령하였다. 8월 1일, 청일전쟁이 발발하면서 대본영은 히로시마로 이전하였고, 메이지 일왕도 히로시마로 이주하였다. 전쟁 중 히로시마는 임시수도였다. 군국주의의 중심인 히로시마는 1945년까지 이어졌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미군의 B29 폭격기가 군사도시 상공에 떨어뜨린 ‘리틀보이’는 군인과 군사시설만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4만 명으로 추정되는 군인을 제외하고도, 직접 피폭자는 히로시마 시내에 머물던 30~31만 명에 이른다. 그 중에서 조선인은 2만 7천명에서 2만 8천명이라니, 조선인이야말로 무죄한 피폭 당사자였다. 게다가 같은 피폭자여도 조선인에게는 피난할 만한 친척도 없었고, 훗날 피폭자로서 마땅히 받을 권리인 ‘피폭 카드’에서도 소외와 차별을 받았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에는 날마다 전국에서 모여 든 수학여행단으로 가득하였다.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온갖 교복을 입은 아이들은 엄숙하였고, 교사와 안내인의 말에 고분고분하였다. 질서정연하달까, 일본인 소년소녀의 차분한 역사수업은 그래서 더욱 불편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에게 천 마리의 종이학은 여전히 피해자와 연대하는 일이고, 슬픔을 이어가는 끈이었다.

  아베 총리는 올해도 ‘비핵 3원칙’을 강조하며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려는 일본의 의무를 다짐하였다. “핵무기를 갖지도, 만들지도, 보유하지 않겠다”는 ‘비핵 3원칙’은 1969년 사토 에이사쿠 총리가 처음 주창한 이후, 해마다 히로시마에서 반복되어온 일본의 국시와도 같다.

  어쩌면 일본의 피해자 코스프레는 우리 눈에는 가당치 않아 보이나, 히로시마 이후 세계가 추구해 온 핵 갈등과 협력의 맥락에서 보면 당연하다. 사실 일본인은 가해자이며,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다. 우리가 불편해 하는 것은 가해자로서 일본이 지닌 위선이지, 피해자들의 억울한 눈물은 아닐 것이다.  

  일본에는 두 가지 ‘규조’가 있다고 한다. 일본 왕의 궁성인 ‘규조’(宮城)와 일본 헌법의 ‘규조’(9條)를 말한다. 두 가지 ‘규조’는 과거로부터 계승된 일본인의 정체성이며, 미래로 나아가야 할 시대적 당위성이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과거의 정체성을 계속 떠받들면서, 미래의 당위성은 흔들고 무너뜨리려고 한다.

  일본은 패전 이후 1949년 현재의 헌법을 제정하였다. 이를 ‘평화헌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제9조 때문인데, 1항 전쟁 포기, 2항 전력(戰力) 포기와 교전권 부인 등 ‘평화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당시 일본의 입장에서는 지긋지긋한 전쟁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점점 미국의 재군비 압력과 자위대로 대표되는 사실상의 군사력은 9조의 평화주의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지금 아베를 비롯한 자민당 등 집권세력은 개헌을 추구하고, 이에 맞서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시민은 적극적인 호헌을 주장한다. 그렇게 일본 열도는 무더운 여름에서 다시 뜨거운 여름으로 향하고 있다.

 

송병구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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