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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배로 시작해서 독배로 끝장난 세습 (다니엘 5장)

기사승인 2019.06.10  00:4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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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배로 시작해서 독배로 끝장난 세습 (다니엘 5장)

 

0. 다니엘 5장

 

바벨론제국의 마지막 왕 벨사살은 성전의 기구로 축배를 마시는 행패를 일삼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그가 마신 잔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교만으로 가득 채운 심판의 독배가 되었다. 자녀에게 부와 권세를 물려주는 세습은 복이 아니라 독이다. ‘스스로 높아지는’ 자만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회경제적인 여건으로 연애, 결혼, 출산, 주택 등을 포기하는 N포세대의 슬픈 현실이 벌어지는 근본 원인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전부로 여기는 물질주의적인 가치관에 붙들려 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란 일반적인 종교생활과 전혀 다른 차원이다. 눈에 보이는 세속적인 가치를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높은 가치, 물질적인 가치를 넘어 변하지 않는 영원하신 말씀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실존을 자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썩어지는 것, 두고 가는 것,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에 성공과 실패의 기준에 두지 않는다. 그런 일들에 목숨을 걸지 않기에 소중한 삶을 헛된 일에 허비하지 않는다. ‘하늘을 우러러보며’ 하루하루 순간순간 삶 자체가 선물하는 환희와 감격을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벨사살왕의 신성모독

 

➀ (1절~2절) “벨사살왕이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그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전에서 취하여 온 금, 은 기명을 가져오게 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

▶ ‘벨사살왕이 술을 마실 때에’ 단순히 궁중에서 벌어진 잔치가 아니다. 나라의 존폐가 경각에 달린 위태로운 때 술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날’은 바벨론 제국의 최후의 날이고, ‘그 사건’은 하나님의 심판을 재촉하는 사건이다. 대제국의 멸망 곧 인생의 한계를 인식할 때 자살, 발광, 종교 가운데 ‘자살’(절망, 자포자기)을 선택한 것이다.

▶ 죽음의 순간(위기의 순간, 절망의 순간) 중심이 드러난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다. ‘보이는 것’(물질 & 사람)만 의지하는 사람은 절망으로 자포자기하고 허무와 염세로 결국 쾌락과 방탕에 빠진다. ‘보이지 않는 것’(영원한 말씀 &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은 희망과 의미를 잃지 않고 담대함으로 겸비하며 끝까지 존엄을 지킨다. ‘마지막을 생각하며 오늘을 사는’ 참된 종말신앙이 주는 삶의 유익은 어떤 위기와 절망에서도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기쁨, 감사, 평안으로 삶을 빼앗기지 않는 데 있다.

 

② (3절~5절) “이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취하여 온 금 기명을 가져오매...무리가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

▶ 왜, 성전기물에 술을 담아 마시는 행위로 신성모독을 저질렀을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삶은 ‘자포자기’를 넘어 ‘신성모독’과 ‘우상숭배’로 이어진다. ‘하나님(삶의 의미와 존재의 목적)을 상실하면 퇴폐, 향락, 방탕에 빠진다. 경외하지 않는 삶은 ‘오만한 말’과 더불어 ‘잘못 사용하는 죄(허비)’를 저지른다. 십계명 가운데 둘째 계명은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Misuse)’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 ‘N포세대’는 사회,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연애, 결혼, 주택 구입 등 많은 것을 포기한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로 포기한 게 너무 많아 셀 수도 없다는 뜻이다. 기존 3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5포세대(3포세대+내 집 마련, 인간관계), 7포세대(5포세대+꿈, 희망)에서 더 나아가 포기해야 할 특정 숫자가 정해지지 않고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세대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물질적인 가치를 넘어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③ (6절~9절)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 편 분벽에 글자를 쓰는 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이에 왕이 즐기던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듯하고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힌지라...그러므로 벨사살왕이 크게 번민하여 그 낯빛이 변하였고 그 귀인들도 다 놀라니라”

▶ ‘사람의 손가락’은 앞서 느부갓네살의 꿈에 등장한 ‘보이지 않는 손’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권능과 하나님의 손가락 곧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낸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손의 신비한 역사가 있다. 내 노력과 힘이 끝장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 세상의 물질적인 삶이 전부가 아니다. 영원한 삶이 있다. 이 땅에서 눈을 감으면 아버지의 품에서 눈을 뜬다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 함이로다”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다.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삶은 썩어지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또한 삶의 위기 가운데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다. 이와 달리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삶의 위기와 죽음(절망)의 순간에 자신이 의지하던 것들과 함께 무너져 내린다.

 

 

2. 예언자 다니엘

 

➀ (10절~12절) “태후가 왕과 그 귀인들의 말로 인하여 잔치하는 궁에 들어왔더니...이제 다니엘을 부르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그 해석을 알려드리리이다”

▶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 다니엘을 기억하는 태후가 왕에게 조언한다. ‘망국에 충신은 없다’는 격언대로 바벨론제국이 위기를 맞이한 숨겨진 이유가 드러난다.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을 알지 못해서 충언에 귀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니엘의 출현으로 문제해결에 나선다. 위기의 순간에 조언에 귀 기울이고 길을 모를 땐 안내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먼저 의뢰해야지 자기 멋대로 사고치고 수습만을 바라면 안타깝지만 해결책이 없다.

 

② (13절~16절) “네가 우리 부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 온 유다 자손 중의 그 다니엘이냐...이제 네가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면 네게 자주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네 목에 드리우고 너로 나라의 셋째 치리자를 삼으리라”

▶ 벨사살의 말 속에는 예언자를 멸시하는 오만방자함을 보여준다. 다니엘을 멸시하는 것은 다니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곧 보내신 이를 멸시하는 것이다. (눅10: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보내심을 받은 자의 권위는 반드시 보내신 분의 뜻만 전달해야 하고 보내심을 받은 자들은 보내신 분의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 (요6:28)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③ (17절) “왕의 예물은 왕이 스스로 취하시며 왕의 상급은 다른 사람에게 주옵소서 그럴찌라도 내가 왕을 위하여 이 글을 읽으며 그 해석을 아시게 하리이다”

▶ 벨사살은 다니엘에게 자주 옷, 금은보화, 고위관직을 약속한다. 하지만 자기처지를 분간치 못하는 한심한 소리다. 다니엘은 세상적인 보상과 상급을 거부한다. 예언자는 세상 상급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는 직언을 해야 한다. 세상의 영광과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결코 사람의 칭찬과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칭찬과 하나님의 평판만을 두려워해야 한다. ‘존귀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라’는 찬송가 가사는 오늘날 찾아보기 힘든 참된 종의 자세를 증거 한다. 다니엘은 비록 바벨론의 노예로 잡혀왔지만 하나님의 참된 종이었다.

 

 

3. 저울에 달아보시는 하나님

 

➀ (18절~21절) “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강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게 되었었나이다”

▶ ‘임의로 죽이고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하나님의 주권과 위임에 따라 흥하게도 망하게 하신다. 벨사살왕은 교만해져서 스스로 왕노릇하지만 삶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생명과 건강, 물질과 자녀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우리는 다만 위임 받은 청지기일 뿐이다. 마음이 높아져서 이것을 망각하는 것이 바로 교만이다. 하나님의 삶의 주관자 되심을 아는 것(경외, 하늘을 우러러보는 것)이 지혜다. 누구나 예외 없이 이 진리를 자신의 장례식 때 깨닫게 된다. 그때는 너무 늦다. 하루라도 빨리 깨닫는 게 은혜다.

 

➁ (22절~24절)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고 그 전 기명을 왕의 앞으로 가져다가...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 벨사살왕은 느부갓네살왕의 칙령을 통해 이미 ‘다 알고’도 준행하지 않았다. 오늘날 세습 목회자들의 문제는 스스로 유능하다고 착각을 한다. 자녀에게 유산을 세습해도 동일한 문제가 나타난다. 한마디로 귀한 것을 모르고 자만한다. 벨사살왕이 우상숭배와 신성모독을 일삼은 원인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교만 때문이었다. 왕권을 위임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했다. 우리도 부와 번영, 건강과 지식으로 교만해지면 하나님이 안 보인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자랑하거나 내세울게 없다. 물질을 주신 분 기억, 건강을 주신 분 기억, 지식을 주신 분을 기억해야 한다. 진정한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기념)하는 것이다. 자기과시VS자기부인으로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한다. 인생 최고의 지혜이며 헛된 세상 속에서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③ (25절~28절)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은 아람어 음독인데 ‘세어보고 세어보고 저울에 달아보매 부족하여 조각을 내다’는 뜻이다. ‘메네’ (세어보신다. 지켜보신다. 판단하신다. 감찰하신다) 삶의 주관자 위임하신 분이 거두어 가신다.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맡기신 분께서 촛대를 옮기신다. ‘데겔’ 왕을 저울에 달아 보시니 무게가 모자랐다. 기준미달, 함량미달이었다. (계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Book of life)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행위대로 심판하신다. 몇 가지 율법준수가 아니라 총체적인 삶을 심판하신다.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경외 하는가’ 아니면 ‘멸시 하는가’이다. 경외는 겸손과 순종으로 나타난다. 교만과 불순종은 하나님을 경외치 않기 때문이다. ‘베레스’ 왕의 나라가 쪼개져 메데와 바사의 손에 넘어갔다.

 

④ (29절~31절) “바로 그날 밤에, 바벨론 왕 벨사살이 살해되었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그때 다리오의 나이는 예순 두 살이었다”

▶ 바로 그날 밤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 이 모든 일이 바벨론 멸망 직전에 벌어진 사건이다. (눅12:20~21)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땅만 보며 살지 말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의 나라가 멸망한 원인도 동일하다. 우리의 삶도 동일하다. 우리의 삶도 하나님이 세어보시고, 달아보신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땅만 보며 사는 세속주의에 빠져 자만이 하늘을 찌른다. 한국교회가 사는 길은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고 흥하게도 하시고 망하게도 하시는’ 삶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회복, ‘회개’외에 다른 살 길은 없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망한다. 또 망해야 마땅하다.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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