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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과 믿음

기사승인 2019.08.17  14:5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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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지방이 벌컥 뒤집혔다. 좀 과장하면 그렇다. 그 이유는 어떤 이단 종교단체의 소행이 분명한 스티커가 지방의 거의 모든 교회의 간판에 철커덕 붙었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다행인 것은 간판에는 아니고 교회 입구 가로의 볼록거울 뒷부분에 붙었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읽을 수 없는 곳에 붙었으니 다행이란 뜻이다.

이번 일을 당하면서 생각이 많다. 이런 열심이라면 웬만한 열성분자가 아니다. 오늘날 이런 열성을 가지고 자신의 신앙을 전파하는 교회의 성도가 얼마나 될까. 눈 씻고 찾으면 있긴 있겠지만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단에는 있다는 게 자꾸만 생각의 거미줄에 걸린다. 우리는 흔히 열심과 믿음 좋은 걸 동일선상에 놓고 본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보면서 다시 느끼는 것은 열심과 신앙은 멀어도 아주 멀다는 것이다.

열심과 믿음은 그 생각하는 각도가 아주 다른 두 개념이다. 열심으로 말하면 기독교를 반대하는 반기독주의자들의 열심을 어디다 비기겠는가. 기독교계 이단들도 이 부류에 속한다. 교회를 파괴하고 성도들을 이간하는데 전력을 다 쏟는다.

예수님 당시에도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은 참 열심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금식과 외식적 기도생활, 율법 준수를 그 누구도 따라가기 힘들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 회칠한 무덤’이라고 나무랐다.

그렇기에 이단들이 온 태안군을 누비며(혹 다른 지방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이런 스티커 붙인 사건을 ‘열심’으로는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믿음이 좋다’고 말하긴 어렵다. 물론 그들의 세계에서는 믿음이 좋은 것으로 통하겠지만.

내용의 대강은 이렇다. 앞뒤를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긴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말이 되게 간추려 본다.

‘교회가 불신앙의 죄에 빠졌다. 신선한 이미지보다 야만적인 종교인들처럼 세상 욕심에 충족하며 살고자 십자가 진리의 도를 혼탁하게 했다. 죄와 탐욕에 빠져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에 종속되었다. 개종자 양아치들로 무례하며 박수무당 같은 거짓종교가 되었다. 헌금만 눈독들이고 우상 숭배하는 이교도들이 되었다. 교회의 사망선고를 내린다.’

굉장히 선각적 언어들로 그럴듯하다. 이단이 타락하고 있는 교회를 향하여 일갈하고 있는 터라 그냥 무시하기엔 무언가 시원치 않다. ‘개종자 양아치’란 말만 안 들었어도 현대의 예레미야를 만난 느낌이다.

하지만 자신을 참 진리 추종자로 여기며 어기적거리던 예수님 당시의 종교주의자들을 그대로 만난 느낌이다. 하긴 예수님도 그들의 행동을 따르지 말고 그들이 하는 말은 들으라고 하셨다. 그들이 붙인 스티커는 딱 그런 것이다.

열심과 믿음을 혼돈하지 말자. 바른 믿음을 가진 자가 열심을 내야 한다. 그게 진정한 열심이다. 더 나아가 믿음은 자신이 좋다고, 자신이 바르다고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최종 판단은 하나님의 몫이다. 판단은 그분께 맡기고 말씀대로 살자.

 

   
▲ 김학현 목사

김학현 nazunj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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