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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호세아 2장 14절~3장 5절

기사승인 2019.09.15  23: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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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호세아 2장 14절~3장 5절

 

0. 호세아 3장 요약

호세아 2장 후반부와 3장은 우상숭배로 타락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방법, 치유, 회복, 솔루션)를 구체적으로 증거 한다. 행음으로 타락한 백성을 거친 광야로 다시 데리고 가서 처음 사랑을 기억하게 하신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잃어버린 축복과 평화도 회복될 것을 증거 한다. 호세아서는 수천 년 전에 기록된 북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예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구원의 메시지로 읽혀지는 이유가 있다. 시대와 공간을 넘어 무너진 인생, 깨어진 가정, 타락한 교회가 다시 회복되는 길을 동일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1.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➀ (14절~15절)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 오던 날 같이 하리라”

▶ 하나님께서 타락한 이스라엘을 구원(회복, 치유) 하시는 길(방법, 솔루션)을 구체적으로 증거 한다. ‘저를 개유하여’ 설득해서 알아듣게 잘 타이르신다는 뜻이다.‘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광야는 아무 것도 없는 곳이다. 인간의 한계와 실존을 철저하게 자각하는 곳이다.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광야로 이끄셔서 다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신다. (막1: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눅4:1)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광야를 통과하지 않고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다.

▶ 광야의 고난과 시련은 연단을 통한 성숙으로 인도한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 광야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환난과 고난이 소망과 생명으로 가는 길이 되게 하신다. 탕자의 실패가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길이 된 것처럼 죽는 것 같지만 사는 길이다. 시련과 장애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다면 나쁜 게 아니다. 인생의 문제를 만날 때 빨리 지나가기만 바라기보다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로 삼는 지혜가 요구된다.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고난이 교만을 겸손으로 변화시키는 묘약이다.

▶ (계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처음사랑으로 돌아가라. 컴퓨터를 포맷(Format)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처음으로 되돌리는 초기화다. 첫사랑의 장소로 데리고 가서 뼈아픈 눈물을 흘려서 참회하게 하신다. 왜 이렇게 하시나?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② (16절~17절) “그 날에 네가 나를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저의 입에서 제하여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여 일컬음이 없게 하리라”

▶ ‘내 바알’은 내 주인이라는 뜻이다. 내가 주인 삼았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 한분만 하나님으로 섬기게 되리라. 최고의 영성은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라는 찬송의 가사에 담겨 있다. ‘바알들의 이름을’ 주인 노릇하는 것들이 하나가 아니고 다수다. 돈과 명예, 권력과 사람, 쾌락과 정욕 등 세상에 의지하던 대상들을 가리킨다. 사마리아 수가 우물가 여인은 북이스라엘을 대표한다. (요4:16~18)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남편은 그녀가 의지하던 바알들(주인노릇)을 향한 헛된 예배를 가리킨다. 우상들을 예배의 대상으로 삼았던 일을 제하고 이제 하나님만 예배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 믿을 건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③ (18절~20절) “그날에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 ‘그 날에 내가 저희를 위하여’ 아담이 범죄로 인해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저주가 온 것처럼 이스라엘이 회개할 때 땅이 회복되는 역사를 증거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만물이 소생하는 기근~풍요, 축복과 평화로 이어진다. 신앙은 삶으로 예배는 일상생활로 이어진다. 삶은 어디서 오나? 예배의 성공은 인생의 성공으로 연결된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세상에서도 잘 산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순서가 중요한데 반대로 산다.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면 영혼이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우선순위가 중요하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모든 것을 더해 주 신다’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부어주시는 축복이다. 이런 복 받길...

 

 

2. 그날에 응답하리라

 

➀ (21절~22절) “그날에 내가 응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하고 하늘은 땅에 응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하리라”

▶ ‘그날에 응답하리라’ 회개, 관계정상화, 그리스도, 남편, 하나님만 경외(예배)하는 삶이다. 하나님과 하늘, 하늘과 땅, 땅과 곡식, 포도주, 기름이 서로 연결되고 연관되어 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온다.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안식일과 십일조의 정신이다. 하나님의 통치다.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하리라’ 삶에서 곡식(감사), 포도주(기쁨), 감람유(은혜)가 넘치게 되리라.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망각하면 결실 있어도 허무하다. 내가 움켜주면 모두 손가락사이로 빠져 나가게 하신다. 수입은 많아졌지만 감사와 기쁨은 적다. 주신 것을 누리지 못한다.

 

② (23절) “내가 나를 위하여 저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 ‘이스르엘’은 두 가지 뜻이다. 첫째 ‘디아스포라’ 흩어버리신다. 둘째 ‘나를 위하여 저를 이 땅에 심고’ 파종하다는 뜻이다. 창세기에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과 원리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단, 그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데 있다. ‘긍휼히 여기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 (시 103:13)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관계의 조건이 있다. ‘경외’다. 신뢰, 의뢰, 순종으로 ‘준행’한다.

‘너는 내 백성,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깨어진 언약을 갱신하신다. 누가 하나님의 백성이냐? 누가 하나님의 자녀냐? 혈통, 할례, 모세의 율법, 절기와 규례 등 외적인 기준이 아니다. 마음으로 ‘경외’(의지)하고 삶으로 ‘준행’(순종)하는 사람이다. 북이스라엘의 행음은 하나님과의 형식적인 관계는 유지하면서 속으로는 방탕하고 방종했다.

▶ ‘그날에 응답하리라’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비결은 하나다. 죄를 회개해야 한다. 참회와 회심이고 상한 심령이다. ‘난 안 돼’ 포기하거나 ‘안 그런 척’ 포장하면 안 된다. 주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부르짖으라 내 응답하리라’ 부르짖으면 응답하신다. 의뢰하면 응답하신다. 여쭤보라. 물어봐라.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의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귀 기울여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성령께서 말씀으로 응답하신다. 마음은 부패하고 꿈은 해몽이 자유라서 말씀으로 듣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3. 그 여인을 사랑하라

 

➀ (1절)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찌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가 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기로”

▶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숭배,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행위다. ‘건포도 떡을 즐길찌라도’ (삼하6:19, 대16:1~3) 제사보다 젯밥에만 관심 있는 신앙생활을 가리킨다. 희생과 자기부인이 아니라 욕망투사와 자기과시의 신앙생활이다. 이스라엘 자손과 하나님, 음부 고멜과 호세아의 아날로지다. 언약(약속, 권리와 혜택, 의무와 책임)과 긍휼(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나의 공로와 공덕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와 긍휼로 구원하신다.

 

② (2절~3절) “내가 은 열 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저를 사고 저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으니라”

▶ (출21:32) ‘30세겔’은 종을 하나 매입하는 금액이다. 값을 지불하는 사랑이다. 희생, 대속과 속량이다. 은혜는 공짜가 아니다. 주님께서 내 죄 값을 대신 치르신 것이다. 참된 용서의 조건은 희생제물과 손해배상의 값을 지불하는 속건제의 정신에 있다. 은혜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한다. ‘많은 날 동안...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상호존중의 사랑이다. 일방적인 명령과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본을 보이셨다. “새 계명을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 다시 기회를 주고 기다려주는 사랑이다.

 

③ (4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군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 왕(지도자, Leader), 군대(軍, Army), 제사(예배와 절기), 주상은 (창28:18) 하나님 임재의 상징으로 세운 돌기둥이다. (삼상7: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에봇은 제사장의 예복이다. 드라빔(삿17:5)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도구다. 앗수르에게 멸망하고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다 잃어버리고 빼앗긴다. 심지어 성전까지 허물어 버리신다. 주신 분의 뜻에 합당하지 않을 때 이 모든 것을 폐지하신다. 제 아무리 소중한 것도 본래적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촛대를 옮기시고 문을 닫으신다. 하나님이 닫으시면 열자가 없다. 주신 분께서 거두신다. 상실을 통해서 진정한 가치를 재발견한다. 잃어버린 후에 소중함을 발견하게 된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는 안 믿는 게 아니라 잘못 믿은 것이다. 안 믿는 것보다 잘못 믿는 것이 더 심각하다.

 

④ (5절) “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하므로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우상숭배와 여로보암의 길 대비된다. 우상숭배로 교만했고 멋대로 불순종했다. 다윗의 길은 하나님을 경외로 은혜를 기억해서 겸손했고 준행하며 순종했다. 어떤 길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말일에는’ 과거의 허물, 과거의 영광 자랑할 게 없다. 용두사미, 그 시작은 화려했으나 끝이 부끄러운 인생과 신앙이 많다. 끝이 아름다운 인생이 되어야 한다. 최후에 웃는 얼굴이 되어야 한다.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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