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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과의 전쟁, 개봉박두

기사승인 2020.05.27  23: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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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다. 흔히들 어떤 어려움을 통하여 흔들리거나 변하지 않을 만큼 강하고 확고해지는 것을 표현할 때 쓴다. 좋은 말이다. 그런데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조금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비 온 뒤 풀은 내 키 만큼 자란다.’

나의 마을에서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곳은 내가 속한 공동체가 유일하다. 처음 이곳에 내려와서 농사를 짓는다고 할 때, 농사는 반드시 친환경 유기 농법으로 지어야 한다는 약속이 있었다. 나도 그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지금 생각하면 참 겁 없이 덤빈 도전이었다. 농사를 몰라도 한참 몰라서 선택한 길이었다.

첫 해 기대에 부풀어 기분좋게 시작한 농사! 밭을 갈고, 두둑을 만들고, 비닐을 씌우고, 경사진 밭을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맨 아래는 감자를 심었다. 석 줄 정도 심었다. 그 다음엔 상추는 기본적으로 심었고 오이, 가지, 토마토, 호박, 양배추, 브로컬리, 양상추 등 제철 작물들을 한 줄씩 심었다. 그리고 그 위에 두어 줄은 고추를 심었고, 또 남은 곳에는 고구마도 심고, 깨도 심고, 콩도 심었다. 무슨 힘이 있고, 무슨 용기로 그렇게 많은 작물들을 심었을까? 참 무모한 작부계획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진정한 소농의 길을 실험한 것이기도 했다.

처음엔 참 좋았다. 내 엄지손가락 만한 모종을 심고 나니 가슴이 뿌듯했다. 드디어 자급자족의 세계에 몸을 담았음을 실감했다. 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멋진 말에 아침 일찍 일어나면 먼저 밭으로 나갔다. 사이사이 고랑을 밟으면서 작물들에게 인사도 하고 격려도 했다. 시원찮게 자라는 작물에게는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위로의 기도도 했다. 그러면 신기하게 작물들이 더 힘을 얻어 일어서는 듯 싶었다. 아, 이 맛에 농사를 짓는구나! 여기까지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듯이 작물도 작았을 때가 예쁘다. 딱 먹을 만큼 자랐을 때, 소쿠리에 담겨지는 수확물을 딸 때까지 좋았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처음 비는 작물을 순조롭게 자라게 해주는 조건으로 좋았다. 대개 봄비가 그렇다. 여름이 들어서기 전, 작물이 땅의 기운에 점점 적응이 될 무렵, 비가 한 번 오고 나면 세상의 모든 대지는 파란 풀들이 도배를 시작한다. 아니, 도배는 이미 춘삼월에 했으니 오월이 되면 더워지는 기온에 사람의, 내 중지손가락만큼 자라있다. 뭐, 이 정도는 보기에 좋다. 참을만하다. 그러다 훈련원의 행사가 있어 바쁘게 행사를 치를 때면 밭에 가는 발길이 뜸해진다. 그러고 일주일 뒤 밭에 가면 아뿔사! 저절로 탄식이 나온다. 나의 동공이 저절로 흔들리는 것이 느껴진다. 아득해지는 정신, 눈을 감으며 이 노릇을 어이할고를 연발한다.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풀을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풀과의 전쟁을 시작할 것인가. 전장을 바라보니 나의 아군인 작물들은 적군인 풀 사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어떤 작물은 내가 풀인지 네가 작물인지 모를 정도로 엉켜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럴 때 농부는 결단을 해야 한다. 지원군을 애타게 기다리는 작물들을 향해 더 이상의 고민은 사치다. 바로 진격을 해야 한다. 때가 늦었다 싶지만, 늦었다고 여겼을 때가 또 적격이라 하지 않던가. 그런데 실상 농사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농사는 제 때를 놓치면 쉽지 않은 길이다.

무엇으로 지원사격을 해야 하는가. 풀 입장에서 보면 최고의 적은 제초제이지만, 나는 친환경 유기 농법을 자처했으니 제초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설령 친환경 유기 농법이 아니었어도 몸이 허약한(?) 나는 제초제 사용은 일절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모을 수 있는 지원 도구는 호미와 낫 그리고 가장 강력한 무기 예초기다.

호미는 밭에 풀이 땅에 붙어있을 정도로 작을 때 요긴하다. 어린 풀싹들이 올라올 때 호미로 긁어내면 땅 자체도 부드럽기 때문에 뿌리 채 뽑힌다. 그 다음 풀이 사람 손가락만큼 자라게 되면 낫이 용이하다. 이때는 풀 머리채를 붙잡고 낫질을 하면 쓱싹쓱싹 하며 잘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낫질한 고랑을 돌아보면 단정하게 이발을 한 머리와 같다. 처음 낫을 쓸 때 고생을 좀 했다. 낫질이 미숙했기에 몇 번 베이기도 하고, 날이 둔해져 풀을 베다 어깨가 빠질 뻔한 일도 있었다. 왜냐하면 날카로운 낫은 풀에 닿기만 해도 쓱싹 잘려나가는데, 날이 둔해지면 낫이 풀을 베는 것이 아니라 풀이 낫을 베는 것 같은 꼴이 되기 때문이다. 뭐든지 처음은 어려웠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낫질이 쉬운 것은 아니다. 차라리 예초기가 쉽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군가 나에게 호미와 낫과 예초기 중에 어느 것을 가지고 전장에 나갈 것이냐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예초기를 선택할 것이다. 예초기는 한 방이다. 호미가 화살이요, 낫이 소총이라고 한다면 예초기는 수류탄이라 볼 수 있다. 그만큼 풀에는 강력한 무기이다. 예초기에 대한 에피소드는 여러 개가 있기에 다음 편에 쓰기로 한다.

이렇듯 풀과의 전쟁은 매년 일어난다. 내가 풀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휴전은 없다. 내가 농사를 짓지 않는 이상 풀과의 전쟁은 봄부터 가을까지 특히 여름 한철은 격전을 치러야 한다. 그 전쟁이 올해도 시작됐다. 매번 내가 지는 전쟁이었는데 과연 올해는 어떻게 될까? 풀과의 전쟁, 6월에 개봉박두!

 

황은경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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