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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은총으로》 (By the Grace of God, Grâce à Dieu)

기사승인 2020.05.29  00:3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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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신의 은총으로》 (By the Grace of God, Grâce à Dieu)

 

바로 얼마 전에도 그리스도교는 참혹한 망신을 당했다. 한 교단의 최고 자리에까지 오른 이가 저지른 지속적인 성폭력 문제가 다시금 수면에 떠오른 것이다. ‘얼마 전에’가 아니라 ‘얼마 전에도’라는 말을 써야 한다는 사실은 얼마나 참담한가. 여전히 목사 직위를 유지하고 있는 그는 아예 거금의 퇴직금까지 미리 챙겼다고 한다. 아마도 그는 잘 늙고 잘 죽을 것이다. 그리고 그 교단은 끝내 그 죄를 속죄할 길이 없을 것이다.

《신의 은총으로》는 한 가톨릭 사제가 10년 넘게 70여명의 남자 아이들에게 성폭력을 가한 실제 사건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대개 이런 유의 영화들이 사실을 파헤치는 주인공들을 전면에 세운 르포 형식을 취하는 것과 달리 영화는 철저히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어린 시절 겪었던 성폭력의 상흔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직장에 다섯 자녀를 거느린 마흔이 된 주인공의 마음을 여전히 헤집고 있다. 자신에게 성폭력을 가했던 신부가 여전히 신부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영화는 이 신부의 범죄 뿐 아니라 그동안 이 신부의 범죄를 은폐하고 있었던 교구의 위선을 낱낱이 드러낸다. 이 장면,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장면이 아닌가.

영화의 많은 끔직한 장면 중 초반에 이 피해자와 신부를 화해시키고 중재시키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다. 상담자는 노년의 가해 신부와 중년이 된 피해자에게 셋이서 손을 잡고 기도하자고 제안하고 그들은 함께 주기도문을 외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이 대목에서 일그러진 얼굴의 주인공 피해자는 차마 이 구절을 입에 담지 못한다. 앞서 말했듯 영화는 한 사람의 피해자 주인공이 아닌 여러 명의 피해자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가족의 이해로 그나마 상흔을 딛고 일어난 사람이 있는 반면, 가족의 몰이해로 여전히 상흔 속에 헤매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상흔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영화는 성폭력의 상처가 얼마나 깊게 한 인간의 영혼을 베고 삶 전체를 망가뜨리는가를 똑똑히 보여준다.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한 영화는 가해자들의 실명을 사용한다. 영화의 제목은 실제로 한 기자회견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던 추기경의 말에서 따왔다. 자신은 몰랐으며 은폐한 적 없다고 강변하면서 앞서 발생되었던 여러 성폭행 사건들에 대해 추기경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던 것이다. “신의 은총으로 공소시효도 지났습니다.” 물론 이 문자적 번역은 큰 오해를 담고 있다. 추기경이 말한 ‘신의 은총으로’라는 말은 정말로 그가 ‘하나님의 은총으로’라는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다. ‘grâce à Dieu’라는 표현은 영어의 ‘thank God’처럼 프랑스어에서는 ‘다행히’라는 일상적 표현으로 사용되는 관용어이다. 이 말을 들은 기자 역시 바로 이 점을 지적한다. ‘grâce à Dieu’는 ‘다행히’라는 뜻인데 어떻게 여기에 ‘다행히’라는 말을 붙일 수 있냐고. 그러나 영화는 이 관용어가 지니고 있는 원래의 의미를 파고든다. 당신들 교단 책임자들의 태도는 결국 ‘신의 은총으로’ 이 일을 덮었다는 뜻이 아닌가? 당신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아닌가?

교계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변명이라고 들리는 말은 거의 언제나 동일하다. 합의하에 맺은 성관계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십계명의 한 계명을 떠올린다. “간음하지 말라.” 예수께서도 언급하신 간음은 쉬이 오해되고 말았다. 간음을 음란과 동의어로 파악하는 것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간음의 정확은 의미는 영어의 adultery, 즉 간통, 불륜이다. 성경은 불륜을 저지른 남녀 모두를 돌로 쳐 죽이라 명했다. 따라서 요한복음 8장에 등장하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듯 몸을 파는 여인이 아니다. 그녀는 불륜을 저지른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예수가 지적했던 위선은 바로 이것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함께 불륜을 저지른 남자는 어디 있느냐?” 여자만 잡아와 예수께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던, 어쩌면 같은 죄를 저지르며 서로를 비호하고 있던 남자들의 위선을 예수는 분명하게 지적하신 것이리라. 그런데도 이 불륜이 아무렇지도 않은 양, 사회법으로는 문제가 안 되니 당당하게 불륜을 주장하고 무죄 판결을 받았노라 주장하는 성범죄 목사들을 교단은 여전히 비호하고 은폐한다. 돌로 쳐 죽일 수는 없을지라도 목사직이라도 파직시키는 게 교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가 아닐까? 영화의 마지막에서 첫 번째 피해자로 등장했던 주인공의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묻는다. “아직 하나님을 믿으세요?” 그리고 주인공은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차마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이진경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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