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스바냐1장 7절~9절

기사승인 2021.03.01  18:02:53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공유
default_news_ad1
article_right_top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스바냐1장 7절~9절

 

1. 여호와의 희생의 날에

 

(7절)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찌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여호와가 희생을 준비하고 그 청할 자를 구별하였음이니라”

 

① 스바냐의 주제는 ‘여호와의 큰 날’이다. 하나님의 최후통첩이자 돌이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메시지성경) ‘시간이 되었다. 나의 심판 날이 다가왔다’ 스바냐의 예언은 역사적으로는 임박한 남 유다의 멸망을 가리키지만 ‘여호와의 날’은 역사적인 사건을 넘어 모든 시대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스바냐가 전하는 심판의 날은 남 유다의 멸망을 넘어 ‘이 세상의 종말’, ‘개인의 죽음’, ‘삶에서 만나는 위기’를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스바냐가 전하는 메시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적인 순간을 경험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 선포하는 예언으로 읽어야 한다. (마3:1~2)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였으니” 천국은 ‘죽어서 가는 하늘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심판의 날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바냐가 전한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와 세례요한이 전한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동일한 메시지다.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심판의 날을 대비하는 삶의 자세는 ‘회개’다.

 

② ‘여호와가 희생을 준비하고 그 청할 자를 구별하였음이니라’ 종말의 날을 가리키는 새로운 표현이 등장한다. ‘여호와의 희생의 날’이다. 희생은 문자적으로는 ‘죽음’을 뜻하고 ‘거룩하게 구별하심’을 의미한다. ‘그 청할 자를 구별하였음이니라’ 그 날은 모래위에 지은 집과 반석 위에 지은 집, 알곡과 쭉정이, 양과 염소를 판가름하는 최종 결산의 날이다. 타락한 예루살렘성전이 무너지고 거룩한 새 예루살렘성전이 세워지는 날이다.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사는 영생,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거듭남’의 순간이다. ‘여호와의 희생의 날’은 멸망의 날이면서 동시에 구원의 날이다. 죽음의 순간에 육신의 장막은 무너지고 이 땅에서 눈을 감는 날이지만 동시에 영원하신 아버지 품에서 눈을 뜨는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 죄악이 만연하던 이 세상의 종말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날이다. 삶에서 만나는 재난의 순간은 이전의 삶의 방식에서 돌이켜서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돌이키는 회개의 날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대미문의 재난은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사건이다.

 

③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찌어다” (메시지성경) ‘이제 입을 다물어라! 주 하나님인 내 앞에서 경건하게 침묵하여라!’ 마지막 날을 대비하는 삶의 자세를 증거 한다. 종말의 날, 죽음의 순간, 재난의 순간에 호들갑을 떨며 설치는 사람들이 있다. 임박한 종말론은 두려움으로 혹세무민한다. 지연된 종말론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방심하거나 인간적인 방법을 모색해서 회피하려고 한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타인에게 책임을 돌리며 남의 탓을 한다. 다 부질없는 일이다. 종말에 대처하는 믿음의 자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겸비하고,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리며 침묵하는 데 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기억하며 날마다 죽음을 준비하며 살았던 사람은 죽음의 순간에 초연하다. 삶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은 재난의 순간에도 담대하다. 마라나타,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노래한다. 이 믿음이 없어서 난리법석을 떤다.

 

 

2. 징벌의 대상자들

 

(8절) “여호와의 희생의 날에 내가 방백들과 왕자들과 이방의 의복을 입은 자들을 벌할 것이며”

 

① 그날에 징벌하실 대상들을 구체적으로 적시한다. ‘방백들’은 우두머리 곧 지도자를 가리킨다. 남 유다의 멸망은 본분을 망각한 지도자들의 책임이다. ‘왕자들’은 다윗왕조에 속한 모든 왕족들을 가리킨다. (왕상9:6~9) ‘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이전이 높을찌라도 무릇 그리로 지나가는 자가 놀라며 비웃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전에 이 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대답하기를 저희가 자기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부종하여 그를 숭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저희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 이스라엘민족은 축복의 본보기에서 저주의 본보기가 되었다. 축복을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축복에 합당한 삶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택하심을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게 더 중요하다.

 

② ‘왕자들’이라는 표현에는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요시아 왕의 세 아들(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시드기야)을 가리킨다. 심판의 기준은 혈통이나 직분이 아니다. (눅3:7~9)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이 돌들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구원의 기준은 ‘명목상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말씀대로 준행하는 ‘리얼 크리스천’이다.

 

③ 또 다른 징벌의 대상자를 적시한다. ‘이방의 의복을 입은 자들’은 수입품과 같은 호화스런 의복을 입은 남 유다의 귀족과 상류층을 가리킨다. (눅3:10~11)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라 하고’ 심판의 기준은 하나님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 구체적인 일상의 삶이다. (마25:1~45)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40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하시고... (45절)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심판의 기준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열매 맺는다.

 

 

3. 심판의 다림줄, 예수그리스도

 

(9절) “그 날에 문턱을 뛰어 넘어서 강포와 궤휼로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에게 내가 벌하리라”

 

① 징벌의 대상에 한 부류를 더 추가한다. ‘문턱을 뛰어넘어 강포와 궤휼로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탈과 착취를 일삼았던 불의한 청지기, 곧 남 유다의 탐관오리(관료)를 가리킨다. (눅3:12~14)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하고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때 일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바르게 제대로 해야 한다. 내 멋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상황과 형편에 따라서 아니라 말씀대로 해야 한다.

 

② ‘문턱을 뛰어넘어 강포와 궤휼로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메시지성경) ‘이교의 기도와 행습을 들여오는 자들을 내가 벌할 것이다. 또 이교의 미신들을 수입해 들여오는 자들, 거룩한 장소를 지옥구덩이로 만들어 놓는 자들을 내가 벌할 것이다’ 거룩한 성전을 타락시킨 종교지도자들이다. (마21:12~1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 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 도다 하시니라’ 하나님의 처소인 거룩한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던 본래적인 사명을 망각한 제사장과 레위인이다. (마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 하였나이까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③ (요10:1~15)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나는 양의 문이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목자라고 다 똑같은 목자가 아니다. 선한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지만 삯꾼은 양을 버리고 도망친다. 선지자라고 다 똑같은 선지자가 아니다. 양의 탈을 쓴 이리 같은 ‘거짓선지자’도 있다. 말씀대로, 뜻대로 행하지 않고, ‘문턱을 뛰어 넘어서’ 세상방식대로 자기 멋대로 행하는 ‘길 잃은 목자’를 징벌하신다. 심판과 구원의 기준(다림줄)은 ‘양의 문’되신 예수그리스도다. (눅21:5~8)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미석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저희가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이루려 할 때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가라사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며 때가 가까웠다 하겠으나 저희를 좆지 말라’ 마지막 때에 관해서 예수께서 하신 첫 번째 가르침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박한 통치, 곧 종말을 대비하는 믿음의 자세는 의외로 단순하고 명료하다. (36절)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다림줄로 삼아 온전한 믿음 위에 굳게 서서, 말씀대로 준행하며 기도에 힘쓰며 하나님의 심판대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김명섭 kimsubway@hanmail.net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