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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해 붙이기가 만연한 세상에서 신실하게 설교하기

기사승인 2021.03.06  23:01:28

신현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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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해 붙이기가 만연한 세상에서 신실하게 설교하기

<설교 표절로부터의 해방> Praying with Paul: A Call to Spiritual Reformation, 스캇 M. 깁슨 지음, 김귀탁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8년

명절이 되어 10년 전 은퇴하신 원로 목사님을 찾아뵙고 인사드리는데 새 책을 한 다발 주셨다. 표지와 양장은 빳빳한데 곳곳에 줄쳐진 은퇴목회자의 독서 열정에 존경의 마음이 일었다. 그중 가장 많이 군데군데 접히고 줄쳐진 책이 있었다. 전도사로 5년을 함께 하는 내내 그분의 주일 설교를 들어왔던 나는 ‘설교 표절’에 대한 원로 목사님의 입장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설교의 진실함에 대해서만큼은 결코 타협하지 않을 기백이 목회자에게 있어야한다고 오래 전에도 조언하셨다. 

어느 목회자나 설교는 하고 있다. 은연중에 자신이 설교에 있어 전문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설교자에게 설교하거나 설교 방법론을 강의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설교 표절에 관한 문제 제기 자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국교회에서 대형교회 목사의 설교 표절이 가끔 이슈가 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애매한 형국을 틈타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설교 홍수 속에서 표절한 설교를 또 다시 표절하는 사례도 흔하게 볼 수 있다. 

표절을 문제 삼는 것이 어려운 까닭은 자신의 설교에 대한 지적 소유권을 기업의 특허권이나 독점계약 판권처럼 주장하기 어려운 목회자 고유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그 실태가 파악될 수 없을 만큼 설교 표절이 만연해있는 현실에 뿌리 내린 설교자의 그릇된 생각이다. 너무 바빠서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를 대거나, 자신의 무능력을 호소하면서 유명 설교자의 생각과 예화를 출처도 밝히지 않고 사용하는 것을 합리화하기도 한다(이에 대해 저자가 칼 바르트의 말을 인용한 반박은 피해갈 수 없다. 117쪽). 교인들에게 좋은 것을 소개하는 것이 뭐가 나쁘냐는 식으로 공익적 동기였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에서 표절을 두둔하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은혜만 받으면 돼!’라는 식의 은혜 지상주의와 ‘해 아래 새것이 없다(전 1:9)’는 말씀을 오용하면서 깐깐하게 굴지 말라는 식의 반지성주의적 입장을 공공연하게 천명하는 목회자들도 있다. 나 역시 그런 의견에 일부 동의하고 있었다. 결은 다르겠지만 이는 실용주의적 입장으로 포장된 명백한 결과 지상주의이다. 스리슬쩍 표절의 편리함에 올라타는 설교자 자신을 옹호하는 경우다. 표절 설교를 듣고 출처를 알게 된다 해도 다수의 청중은 관계의 불편함을 꺼리는 성향 때문에라도 설교자의 나태함과 부도덕함을 모른척하고 넘어간다. 청중의 무관심이 이 같은 입장을 더욱 강화한다. 이들에게 성과는 언제나 수단을 정당화한다. 불편을 감수하고 파고들기 전에는 명백한 표절로 규명하기 어려운데다가  유명 설교자들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든다. ‘설교 표절이 죄’라는 사실을 덮어 버리는 것이다. 조지프 고원(Joseph Gowan)의 말대로 ‘어디서 옳음이 끝나고 어디서 잘못이 시작되는지 말하기 어려운 주제가 바로 표절’이다. 

우리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 말할 수 있지만, 알고 있는 것을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 편이 많다고 해서 그릇된 것이 옳은 것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최근 유명인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과거 폭로와 징계가 주는 교훈이 있다. 성공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갈지라도 길은 반듯하게 가야한다는 것이다. 규칙 없이는 승리도 패배도 없다. 언젠가 발목 잡히게 될 날(그분 앞에 설 날)이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한다. 앞서 가는 이를 시샘하여 거짓 폭로로 사람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이들의 추잡한 속내도 분별해야 한다. 하지만 악독과 거짓, 편법을 동원하여 성공만하면 된다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설교 표절은 이 책의 표현 그대로 ‘나쁘게 말하면 이것은 도둑질이며, 좋게 말해도 거짓말’이다.

표절에 대한 진부하고 일반적인 논쟁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은 어느 지점부터인가? 설교 표절을 명확하게 정의 하는 것이다. 표절은 ‘다른 설교자의 창작물을 낚아채서, 그것을 자신의 개인 소유물인 양 전하는 도착된 행위(78쪽)’이다. 어디까지가 표절이냐를 따지자는 말보다 표절이 무엇이고, 왜 문제인지, 설교자가 어떤 책임으로 이를 대해야하는지에 대한 설교 윤리를 설정하는 것이다. 다른 어떤 처벌 때문이 두려워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 표절이 얼마나 심각하게 설교자와 회중의 신뢰 관계를 깨뜨리는 짓인지 깨닫고 근절하며 정직한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남의 설교를 베껴서 그렇지 않은 척, 사람들 앞에 포장해 전달하는 것이 우리를 은혜로 부르신 하나님, 온전함과 신실함을 요구하시는 구주 앞에서 중차대한 배약행위가 됨을 알아야 한다. 반성 없는 자기 인식 곧, 성찰의 부재와 열등감, 비교의식, 습관적 게으름이 상습적으로 표절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설교자의 내면이다.

표절의 동기는 그 밑바닥에 가면 이는 더욱 분명히 나타난다. 설교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동기일 것이다. 왜? 무엇 때문에 설교를 잘하고 싶은 것인가? 좋은 목회자요 설교자라는 평판을 얻고자하는 욕망이 그 밑바닥에 있다. 설교를 위해 기도하고 자료를 수집-연구하여 스스로 준비하는 것보다 남이 했던 설교를 허락 없이 오려서 붙이는 쪽이 더 교인들의 ‘아멘’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맡은 일을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이로 인해 마음이 조급해지다보면 표절이라는 반칙을 저지른다. “표절은 고의로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말을 자기 자신의 것인 양 제시하는 것이다. 그의 의도는 속이려는 것이고, 동기는 보통 금전이나 찬사와 같은 개인적 이득이다(84쪽).”

주일 설교 전에 자신의 설교문을 카피 킬러(인터넷 표절검사 서비스)에 넣고 돌려보았을 때 당신은 과연 떳떳할 수 있는가? 책을 읽으며 꿈을 꾼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강단에 서는 말쟁이들의 몰락과 함께 드러날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설교자’의 등장을 기대한다.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훌륭한 설교자는 표절을 하지 않는다. 그는 표절 대신 연구를 하며, 검색 대신 기도를 한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전도사 시절, 교회 장로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잠깐이지만 단 둘이서 차를 타고 갈 일이 있었는데 서툴렀던(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때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지난 수요일 설교에 감동 받았다는 인사 끝에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유명한 목사님들 설교를 가져다 쓰는 것이 당장에는 통하는 것 같아도 나중엔 그렇지 않지요.” 10년이 지나 그 말에 대답할 수 있다. 평생 누구 설교를 가져다 쓰느니 차라리 더듬거리고 못하더라도 정직한 말씀연구와 기도의 결과를 가지고 올라가겠노라고 말이다.

내 생각에 이 책은 아직까지 이따금 표절을 일삼고 있는 50~60대 설교자들에게는 소용이 없다. 늦었다. 통절한 회개와 절치부심 없이는 이미 해온 방식이 있는지라 관성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젊은 설교자들에게 강한 일침이 될 것을 확신한다. 쉽게 누군가의 설교에 전염되기도 하지만, 정직한 기도와 노력을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 가는 것은 설교단에 서게 된 지 3~5년 안에 결정될 것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과 함께 드는 확신이다.

200쪽이 채 되지 않는 작은 책이지만 내용은 인터넷 댓글 논쟁처럼 가볍지 않다. 단숨에 읽고 또 읽었다. 설교 표절을 맞닥뜨린 한 부부의 이야기와 그를 둘러싼 교인들의 반응, ‘그게 무슨 문제냐’며 뻔뻔하게 대처하는 목사 이야기를 상황극으로 재현한 마지막 부분은 불과 몇 년 뒤 한국교회 안에서 현실이 될게 분명하다. 

신현희 목사 (안산나눔교회)

신현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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