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땅콩버터를 처음 먹은 것은 2010년 뉴욕에서였다. 아내가 유치부전도사로 사역했던 한인교회의 여자교사 한 분이 자신의 집에 많다며 몇 개의 땅콩버터를 나눠준 것이다. 뉴욕에서 유명한 베이글에 땅콩버터를 발라서 먹어 보았는데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하고 달달하면서도 약간 짭짭한 그 맛이 너무 좋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식빵이나 베이글에 무언가를 발라먹을 때면 과일잼보다 땅콩버터를 발라먹는 편이다. 땅콩버터중에서도 땅콩 알갱이가 씹히는 크런치땅콩버터를 더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땅콩버터를 땅콩 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땅콩버터라고 불리기 때문에 땅콩과 버터를 섞어서 갈아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땅콩버터에는 5-6%의 식용유와 소량의 설탕과 소금을 제외하고는 90% 이상이 땅콩이고 버터를 따로 섞지는 않는다. 땅콩버터는 재료상 수분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밀봉만 잘 하면 상하지도 않고 방부제도 필요 없다.
땅콩버터를 먹을 때마다 살이 많이 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땅콩버터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식품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과일 잼들은 50%이상이 설탕인 반면 땅콩버터에는 설탕함류량이 소량이기 때문에 하루 3스푼 정도만 먹는다면 살찌는 것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 뿐만 아니라 땅콩버터에는 단백질, 단일불포화지방, 비타민E, 나이아신, 마그네슘 등의 영양소가 들어 있어 테스토스테론 증가와 근육형성, 지방연소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훌륭한 음식이다.
땅콩버터가 상업화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땅콩을 갈아 먹은 것은 아주 오래되었다. 땅콩의 원산지인 남미에는 기원전 950년 무렵 아즈텍 인디안들이 땅콩을 갈아서 먹은 흔적이 있다. 명나라 때 땅콩을 전해 받은 중국에서도 땅콩을 갈아서 죽처럼 먹었는데 원시적 형태의 땅콩버터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 중미의 아이티에서 사람들이 나무통에다 땅콩을 갈아 죽처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땅콩버터는 20세기에 접어들 무렵 미국에서 개발되어 상업화에 성공한 식품이다. 의외로 미국인들이 땅콩을 먹기 시작한 역사 자체는 그리 길지 않다. 땅콩의 원산지는 남미이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볼리비아 등지에 살았던 원주민들이 키우던 작물이지만 남미에서 북미까지 직접 전해지지 않고 아프리카대륙을 거쳐 스페인을 통해 유럽으로 전해진 후 다시 북미로 전해졌다.
콜롬부스가 미국 대륙을 처음 탐험한 후 10년이 지난 1502년 포르투갈의 무역상인들이 남미 원주민들이 먹던 땅콩을 아프리카로 가져가서 퍼뜨린다. 아프리카에서 재배에 성공한 땅콩은 스페인을 통해 유럽에 전파되고 스페인 상인들이 땅콩을 다시 신대륙으로 가져오면서 미국에 땅콩이 전해지게 된 것이다. 포르투갈 상인이 남미에서 땅콩을 가져간지 약 300년이 지난 1818년 무렵 북미에서 땅콩이 본격적으로 재배되었다.
미국에 땅콩을 퍼트린 사람은 농화학자이며 발명가인 조지 W. 카버(George Washington Carver)이다. 그는 자작농들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 애를 쓴 사람으로 오래 농사를 지으면 땅을 망치게 되는 면화와 담배 농사 대신 땅콩 농사를 지으라고 권장한 사회운동가였다. 그리고 본인도 땅콩을 이용해 땅콩우유, 땅콩비누 등 땅콩 관련으로 약 300가지 특허를 출원하여 땅콩박사로 유명했다.
그는 1884년 볶은 땅콩을 갈아서 땅콩이 죽처럼 변할 때까지 만드는 기술로 미국 특허청의 특허를 출원한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의 마르셀루스 에드슨(Marcello Gilmore Edison)의 가공법을 생산과정에 응용해서 오늘날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땅콩버터를 개발했고, 이 덕분에 땅콩버터의 개발자로 인정받고 있다.
1890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에서 조지 바이어(George Bayer)라는 식품업자가 땅콩버터를 대량으로 만들어 판매를 한다. 그리고 1897년 미시간 출신의 의사 켈로그가 동생과 함께 땅콩버터 만드는 방법으로 특허를 받고 땅콩버터를 만들어 팔면서 땅콩버터가 널리 퍼진다. 씨리얼로 유명한 켈로그 형제 중 형이다.
혹시 식빵 한두 장에 잼을 발라 드신다면 과일잼보다 설탕이 없는 땅콩버터를 발라 드시라. 칼로리가 높을 것 같아서 살이 찔까 염려하며 먹었다면 3스푼 안에서 마음 편하게 드시라.
임석한 skygrace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