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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고요하지 않다

기사승인 2021.09.19  19:52:19

김국진 산돌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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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고요하지 않다> 마들렌 치게 지음, 배명자 옮김, 흐름출판, 2021

산돌학교에 부임하고 두어 달이 지나고, 기숙사 사감 당직이던 날이다. 늦은 봄의 밤공기를 마시고 싶어서 창문을 열다가 마음이 동해서 기숙사 밖으로 나갔다. 학생들이 잠든 시간, 내 발걸음 소리가 부담스럽게 컸다. 갑자기 기숙사 뒤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밤에 기숙사를 빠져나가 학교에서는 금지된 인스턴트식품 대잔치를 벌이려고 편의점에 가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 설렜다. 나도 드디어 잡는구나 싶었다. 그간 내가 당직이란 걸 알면 요상한 미소를 짓던 낯짝들이 먹잇감처럼 뇌리에 떠올랐다. 최대한 근엄하게, 사극의 왕처럼 말했다. “나와라, 내가 가서 잡으면 벌이 클 것이야.” 그런데 도통 나오지 않는다. 발자국 소리만 부스럭거린다. 그래서 내가 다가갔다. 그러다가 깜짝 놀라서 주저앉을 뻔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인간 이상의 속도로 후다닥 산으로 달려 올라갔다. 감전된 마냥 다리가 떨렸다. 그 사건 이후로 나무가 빼곡한 학교 뒷산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졌다. ‘저기 어딘가에 그놈이 있다.’ 

정체 모를 ‘그놈’ 탓에 한동안 숲을 누리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숲에서 새소리도 들리고 쑥 자라난 버섯도 보이고 곤충도 눈에 들어왔다. 숲이 아늑하다고 느꼈을 때에도 나에게 숲은 여전히 정적이고 고요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최근 숲을 보는 마음이 또 한 번 달라졌다. 오늘 소개할 책 덕분이다. <숲은 고요하지 않다>는 행동생물학자인 마들렌 치게가 생물들의 소통(Biocommunication)에 관해 쓴 책이다. 책의 내용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동물이 있다. 다른 수컷 구경꾼이 있을 때는 자신이 점찍은 암컷과는 다른 특성을 가진 암컷에 구애하는 척, 눈치게임을 하는 물고기가 있다. 범고래들 사이에서는 때로는 침묵이 금이다. 공중변소 똥 더미가 소셜미디어인 동물이 있다. 허풍을 떨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인간만의 특성이라고 여기는 건 큰 착각이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 모든 생명체는 소통한다고 단언한다.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뿐이지 세포나 조직 기관과 같은 단위에서 개체와 개체군에 이르기까지, 살아있는 생모든 생명체는 정보를 생성하고 전달한다. 그리고 그 정보의 내용을 해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이 책에는 많은 동물들이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 속에서 처절하고 끈질기게 밀고 당기는 소통의 과정이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다른 반딧불이 종이 내는 불빛으로 다른 종류의 반딧불이 수컷을 유인해 잡아먹는 반딧불이 암컷 이야기, 놀래기의 청소춤을 따라해서 청소는커녕 살을 파먹는 가짜 청소 놀래기 이야기, 인간과 협동해서 사냥하는 큰돌고래 이야기는 흥미롭다. 파리를 정성껏 거미줄에 포장해서 암컷에게 선물하는데 파리가 시원찮을 때는 잡아먹힐 수도 있기 때문에 선물을 건네고 기절해서 죽은 척을 하고 있다가 암컷이 선물을 먹을 때 벌떡 일어나 짝짓기를 한다는 보육웹거미 수컷은 애잔함 그 자체다. 식물이 생각보다 능동적이고 위기의 상황에 빠르게 대처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자신의 잎을 갉아먹는 애벌레의 침에 함유된 화학물질을 감지하여 위에 부담을 주는 생화학적 물질을 방출하고 여차하면 참노린재나 말벌의 수용체에 도달하는 화학신호를 보내 도움을 받는 담배풀 얘기가 인상 깊다. 재미있는 내용에 쏙 빠져서 금세 읽더라도 다 읽고 나면 생명을 대하는 자세가 조금씩은 달라진, 지금까지와는 다른 마음으로 숲을 거닐 준비가 되어있는 자신을 만나게 되기를!

김국진 목사 (산돌학교)

김국진 산돌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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