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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은퇴 목사의 새로운 삶!

기사승인 2021.10.20  23:03:24

노종해 ro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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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은퇴 목사의 새로운 삶!

 

노 종 해(CM리서치)

   
▲ 원주 귀래 산등성의 "쉼이 있는 교회"외 "예수연구소"-이요한 목사와 필자(사진:2021.10.20.)


2021년 10월 20일(수), 10:30분, 이요한 목사(총장)의 전화를 받고, 충주에서 30분 거리인 원주 귀래의 산등성으로 윤바울 목사(충주 영은교회 담임)와 함께 출발하였다. 쌀쌀한 가을 날씨에 햇빛이 환히 비치는 자동차 전용도로는 충주시 엄정면-소태면을 지나며 좌우로 펼쳐지는 가을 총천연색 단풍으로 펼쳐지는 산세는 굽이굽이 넘고 넘으며 정겨운 풍경으로 다가왔다.

 

   
▲ *충주에서 원주 귀래 산등성의 교회!-윤목사와 도착하여


충주와 원주 분기점인 귀래면 귀래리 산등성의 “쉼이 있는 교회”에서 12시에 만나기로 했으나, 우리는 11시10분에 도착하였다. 교회와 연구소, 이경재 감독 기념비를 둘러보며 기다리다가 산 넘어 인근 주유소 자판기에서 커피나 마시러 갈까하여, 산길 도깨비 길을 굽이굽이 돌아 매지리 마을을 지나 흥업면에 이르러 편의점을 발견하고 커피를 즐겼다.

 

   
▲ 흥업면 매지리의 연세대학 원주 캠퍼스 앞에서!-연세대 삼거리


바로 앞에는 연세대학 원주 캠퍼스가 있었고, 연세대학은 매지리 호수를 앞에 두고 뒤로는 산이 둘러 있는 넓은 캠퍼스 전경을 볼 수 있었다. 캠퍼스는 밝게 내리비치는 햇살 속에 단풍도 펼쳐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어느덧 12시 약속시간이 다가와 다시 산등성 귀래리의 “쉼이 있는 교회”로 향하였다.

이요한 목사(총장)는 교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반가운 인사를 나눈 직 후 교회 안으로 들어섰다. 교회 예배실 넓은 창으로는 산골짜기들이 펼쳐 보이고 있었다고, 창가의 탁자에서 은퇴 후 이요한 목사(총장)의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목원대학교 총장 은퇴, 환송예배(2010.8.31.)


이요한 목사는 목원대학교 총장으로 취임(2006.9.)하여, 5년 총장 임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하고(65세, 2010.8.), 인천공항 근처 을왕리 바닷가 아파트에서 건강을 돌보며 1년 반 정도 지냈다. 어느 날 장로들의 무리가 찾아와 교단을 위해 일해 달라고 간곡히 당부하였다. 당시 교단 책임자로 나서기 위한 자격으론 교회를 담임하여 목회하고 있어야 했었다.

마침 원주시내 인근의 여자목사가 병으로 사임하게 되어 비어 있는 교회가 있다고 지방감리사를 통해 듣고, 감리사의 안내로 찾아 가보니 몇 가옥이 없는 산자락 매지리 작은 산자락 마을의 지하교회였다. 교회에 들어서니 곰팡이 냄새가 나는 조그만 공간으로, 교인도 몇 명 안 되는 미자립 교회이며, 담임자로 나서는 이 없는 빈약한 산동네 교회였다. 이목사는 당분간 임시로 주일에만 오겠다고 하였으나, 몇 안 되는 노인 교인들이 기뻐하였다.

어느 날 주일예배 끝나고 나니, 부인교인 중에 한 분이 점심 대접하고 싶다고 해 따라가 보니 라면집이었다. 그래도 목사접대이니 괜찮은 곳이겠지 생각했는데, 건강상 잘 먹지도 않는 라면에 김밥 몇 개라니, 놀라웠고 충격이었다.

이요한 목사(총장)은 귀가 길에 곰곰이 자신을 점검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면서 목사란 이런 것이로구나, 깨닫게 되었으며, 빈약한 산골교회가 가슴 저려왔다. 조용히 기도하는 중에 목회로 삶으로 여생을 마감키로 결단케 되었다,

결국 아내에게 원주 산골에 내려가 목회는 삶으로 생을 조용히 마감 하겠다고 결심을 나누게 되었다. 아내는 건강도 돌보아야 될 분이 은퇴하고 쉼도 없이, 그것도 산골목회라니 당치도 않다고 거절하였고, 아내는 바닷가 아파트를 몰래 예약까지 했다고 했다. 이목사는 지금도 심장에 스텐시술을 세 개나 넣고 관리하고 있으며, 당뇨 등 투병 중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요한 목사(총장)는 그동안 미국유학도, 교수도, 선교연구소도, 선교국 총무, 대학교 총장도 거쳐 보았지만, 정작 목회는 변변히 해 보지 못한 목사였던 모습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선교사를 내보냈지만 자신은 선교사로 나가보지도 못했고, 목회자를 양성해 보았지만 정작 자신은 목회도 못해 본 목사 아닌가? 자책하고 돌이켜 은퇴 후 부르시는 그날까지 조용히 묵묵히 낙향하여 목회의 길로 나가기를 결단하였다. 이것이 아버님 이경재 목사님(감독님)의 뜻도 이룰 것으로 여겼다. 아내도 남편의 굳은 결심을 물리치지 못하고 함께하였다.

이목사는 원주시 흥업면 매지란 곳으로 낙향하였고, 새벽기도회로부터 주일예배 인도까지 목회에 헌신케 되었다. 목회가 이렇게 힘겨운 줄 몰랐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친분관계와 연락소통도 끊고 묵묵히 목회하며 가난한 농촌 주민들과 사귀고 교류도 넓혀가게 되었다.

 

   
▲ 아버님 이경재 감독 기념비(초록색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와 교회, 예수연구소!


그러는 중 지하교회 예배실에서 산등성을 넘어 서는 곳, 원주와 충주 분기점 지점의 3층 주택 건물을 매입하여, 아버님 이경재 목사 기념교회와 기념비도 세우고, "쉼이 있는 교회"(1층)를 설립하였으며, "예수연구소"(2층)도 설립하였다. 3층에는 게스트 룸, 사무실, 기도실, 식당, 주방, 친교실 등도 설비하였다. 각 층마다 창가로는 산세가 펼쳐 보이고 있었다.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지은 주 여호와 나를 도와 주시네”, 필자의 마음에는 찬송이 저절로 울려 나오며 평온한 쉼으로 다가온다.

 

   
▲ 이요한 목사와 교회 얘배실-주일예배 오전10:30.-전면과 우측 창 밖으로 산 정경이 펼쳐진다!


요즈음에는 코로나로 인해 식사도 못하고 친교도 못하지만 주일예배를 오전 10:30분에 드리고 있으며, 주간에 틈틈이 원로목사님들, 동기 벗들이 방문해 오고 있다고 한다. 30년 선교사로 현장에서 이웃 충주에 거하고 있는 필자(노종해 목사)도 생각이나 만나고 싶어 윤바울 목사에 전화를 걸어 만남이 성사 된 것이다.

 

   
 

 

1층 예배당 창밖으로는 가을 단풍으로 수려한 산세가 펼쳐져 있고, 창밖으로 충주로 향하는 자동차 전용도로도 뻗어 있다. 교회 예배실에서 산등성과 산골 자연풍경을 바라보니, 영과 몸, 마음에 평온한 쉼을 주고 있었다.

 

   
▲ 점심을 위해 일어나기 전 창가에서!

 

이요한 목사님(총장)과 은퇴 후 새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시간가는 줄도 몰랐고, 오후1시가지나 점심시간을 훌쩍 넘겼다. 서둘러서 산 넘어 흥업면에 있는 중화요리 식당으로 향하였다. 신라호텔 주방장을 지낸 분이 원주 흥업에 내려와 중국요리 식장을 열었는데 간짜장 맛이 기가 막힌다고 했다. 그렇다면 맛보아야지요, 하고 흔쾌히 식당으로 향하였다. 과연 간짜장 맛이 일품이었으며, 바싹하고 달달한 탕수육과 함께 점심을 즐겼다.

 

   
▲ 간짜장 맛, 이런 맛은 최고네요!
   
▲ 우와! 탕수육 맛도 기가막히네요!


점심 후 오후2시 반에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 산골짜기를 구비 돌아 충주로 향하였다. 은퇴 이후 원로목사들의 새로운 삶 속에 함께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솟아오르고 마음을 적시였다.

“내 갈길 멀고 밤은 깊은 데 빛 되신 주,
저 본향 집을 향해 가는 길 비추소서!
내 가는 길 다 알지 못하나,
한 걸음씩 늘 인도하소서!” 아멘!(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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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층 친교실 입구!
   
 
   
▲ 3층 주방!
   
▲ 3층 소예배실, 기도실!
   
▲ 3층 소예배실 뒷 편으로 친교실이 보인다!
   
▲ *3층 입구 벽의 알림퍈!=청소년들의 모임 사진들!
   
▲ 쉼이 있는 교회 내, 창밖 산골 전경!

 

 

노종해 ro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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