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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 오르기 멈추기

기사승인 2021.11.30  00:34:45

이광섭 전농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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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 오르기 멈추기  

<영성, 자비의 힘>, 메튜 폭스 지음, 김순현 옮김, 다산글방, 2002

   
 

창세기 28장을 읽다가 도망자 야곱이 광야에서 잠을 자던 중 하나님 체험을 하고 그 자리에서 외치는 장면에서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곳이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창 16:17,18). 하나님이 그토록 가까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깜짝 놀란 야곱의 입에서 튀어나온 감격의 일성! 그러고 보니 나 역시 내 앞에 놓여 있던 수많은 야곱의 사다리를 무심하게 지나쳐 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사다리를 영적인 무감각을 닦아 내는 도구로 삼으리라고 단단히 마음먹었지요.

이렇게 소박한 나의 하늘사다리 신앙은 메튜 폭스를 만나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메튜 폭스는 <영성-자비의 힘>에서 ‘야곱의 사다리’를 가장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그는 ‘야곱의 사다리’와 함께 ‘사라의 원(圓)’을 대비하여 설명합니다. ‘사라의 원’은 진정한 영성이 지향하는 ‘어울림의 메타포’입니다. 메튜 폭스는 생명을 생명이게 하는 핵심이 자비라고 말합니다. 자비는 서로 의존함입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서로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존의 힘을 회복하는 것이 바로 살아있는 영성의 핵심이라는 것이지요. 

메튜 폭스가 말하는 ‘야곱의 사다리’는 기독교 영성의 왜곡을 가져온 주범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영성의 핵심은 자비입니다. 그럼에도 기독교 영성에서 자비는 유배되고 말았습니다. 대신 강력한 초월과 상승을 상징하는 야곱의 사다리를 내세움으로 기독교는 힘과 성취를 숭상하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승의 동기는 성경에서 온 것이 아니라 헬레니즘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위를 바라보았지만, 히브리인들은 그들 가운데에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셨습니다. 출애굽기는 이를 분명히 일러주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머물려고,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온 하나님이다”(출 29:46). 히브리인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머물고 계시느냐는 것입니다. 히브리 성서의 영성은 ‘땅에 뿌리박은 함께하심’(amongness)의 영성이었습니다. 

야곱의 사다리를 숭상하는 영성을 받아들임으로써 기독교 신앙의 색깔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예배는 우러름(worship)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우러름의 예배는 필연적으로 지주(支柱)공경을 불러왔습니다. 영웅들과 성인들을 우러러보고, 성공을 으뜸으로 여기는 게 당연하게 되었습니다. 지주공경은 자기 자신의 힘은 경멸하고 다른 사람의 힘을 받드는 피학증의 사람을 만들어 낼 위험이 있습니다. 사다리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삶을 살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에 반해 ‘사라의 원무’(圓舞)는 어울림으로 표현되는 웃음과 기쁨의 영성입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주셨을 때 사라는 놀랐고, 예기치 않은 경이로움으로 웃었습니다. 이삭이란 ‘하나님이 웃으셨다’는 의미이잖습니까. 기쁨과 평화로 가득한 사라는 샬롬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에게는 기쁨이나 웃음이 없습니다. 사다리 오르기는 언제나 힘겨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계(level)의 패러다임 속에 빠져서 살아갑니다. 살아갈수록 잘 짜여진 이 사다리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오래전, 예수님이 들려주신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에 그토록 열광했던 것은 사마리아 사람이 자기가 타고 있던 나귀에서 뛰어내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는 상처 입은 사람을 보고 주저 없이 자기의 사다리에서 뛰어내렸던 것입니다. 

삼류가 삼류인 것은 남의 길을 가기 때문이라는 말은 사다리 오르기에 여념이 없는 우리의 흉내 내기 삶의 허상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다리 오르기를 멈출 수 있을까요. 성공의 영성으로 왜곡된 야곱의 사다리를 극복하고, 땅으로 내려오셔서 야곱과 함께 낙심과 슬픔을 나누었던 하나님, 그 자비의 통로였던 하늘 사다리를 복원할 수 있을까요. <영성-자비의 힘>은 나직하지만 물러서지 않을 기세로 가열찬 이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광섭 목사 (전농교회)

이광섭 전농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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